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1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1화(41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1화
윤정아가 벙찐 눈으로 통화 종료가 뜬 화면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혹시 고양이한테 성격 더럽게 생긴 것 같다는 뜻으로 말한 걸로 오해하셔서 기분 상하셨나…?”
이건 나도 빡쳐도 되는 거지?
“어떡해! 아무리 사납게 생겼어도 당연히 예현 오빠한테는 큐티빠띠애기고영이었을텐데! 내가 최애를 영접한 기쁨에 뇌를 거치지 않고 말을 꺼내 버렸어…!”
윤정아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했다.
“얌마, 내 휴대폰!”
이제는 머리를 내 휴대폰에 박으려고 하는 윤정아를 뜯어말리고 있던 중, 다시 서예현한테 영상 통화가 왔다.
“정아야, 예현이 형한테 네 정수리 보여 주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있어라.”
심드렁하게 말하자 윤정아가 후다닥 머리를 들었다. 별로 헝클어져 보이지도 않는 머리를 정리하네 어쩌네 난리법석을 떠는 윤정아를 보며 혀를 차다가 전화를 받았다.
-아, 죄송합니다… 카이사르가 혹시 상처 받을까 봐 급하게 끊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려서…
서예현이 전화를 끊은 이유를 밝히며 윤정아한테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 말같지 않은 이유를 들으며 너무 섬세하고 다정하다고 옆에서 별 호들갑을 다 떨어 대는 윤정아 덕분에 말문이 다 막혔다.
대체 어딜 봐서? 아니, 애초에 나랑 닮았다는 소리가 고양이가 상처받을 만큼의 심한 욕이야?
-앞에 또 하필 비교군이 있었잖아요. 그걸 또 카이사르가 보고 있어서. 우리 카이사르가 똑똑해서 사람 말을 알아듣거든요.
나를 가리키며 멋쩍게 웃으면서 하는 말에 눈을 부릅떴다.
“형님, 지금 저한테 그거라고 하신 겁니까?”
“아니요! 제가 눈이 삐어서 잘못 본 것 같아요! 이든 오빠가 아니라 오빠 닮았어요!”
내 말은 가볍게 씹은 서예현이 윤정아의 다급한 말 바꾸기에 사르르 웃으며 물었다.
-그렇죠?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 윤정아가 카이사르와 서예현의 닮은 점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윤정아가 말하는 닮은 점이라 해 봤자 눈이 두 개 있고 코가 하나 있고 고양이의 털과 서예현의 머릿결이 둘 다 윤기가 좔좔 흐른다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서예현은 한껏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가만히 그걸 옆에서 보고 있는 내가 바보가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예현이 형, 그런데 진짜로 솔직히 카이사르 이든이 형 닮았어요. 형 닮은 게 아니라.”
차마 듣다 못한 김도빈이 사실을 내뱉었지만…
-뭐라고, 도빈아? 너 지금 우리 팬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뜬 서예현은 오히려 김도빈을 억까하면서 나랑 카이사르가 닮았다는 것을 끝까지 부정했다.
그 말에 감동을 받으며 제 인생 평생 탈덕은 없을 것이라 맹세하는 윤정아의 꼴까지, 아주 총체적 난국이었다.
“아니, 솔직히 저도 닮은지 잘 모르겠긴 한데 형님은 왜 카이사르가 저를 닮았다는 말에 그렇게 과민 반응을 하십니까?”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너는 포도가 나 닮았다는 소리 들으면 좋겠어?
“? 당연히 좋지 않겠습니까.”
-…….
잠깐 침묵한 서예현은 도저히 역지사지의 사례를 찾지 못하겠다는 비명 같은 외침만 남기고 또 전화를 끊었다.
괜히 했다는 생각만 드는 영상 통화를 마치고 지쳐 늘어졌다.
내게 대가리를 박는 수준의 깍듯한 감사 인사를 올린 윤정아는 이제 자신이 놓친 아체대 핫클립을 봐야겠다며 방으로 쏙 들어갔다.
나온 김에 할아버지에게 잡혀서 이것저것 또 묻는 이야기- 방금 다 같이 시청했던 DTB라는 프로그램이 정말로 정상적인 프로그램인지, 그걸 보는 주 시청층은 어떤지, 저게 정말로 내가 말한 대로 랩 실력을 평가받는 곳이 맞는지, 저기에서 1등을 하면 뭐가 좋은지 -에 꼬박꼬박 대답하는 류재희를 지켜보며 끼어들 타이밍을 노리고 있는데 이헌이 형이 나를 축 치며 물었다.
“그런데 진짜 그거 다 대본이었어?”
“어어, 내가 쓴 대본. 싸이퍼는 즉흥이었지만 파이트머니 디스전이나 등산복 같은 몇몇 설계는 미리 짜 놨지.”
다른 사람이 대뜸 ‘그거 다 대본이었지?’라고 물었으면 정색을 했을 테지만 이헌 형의 질문이라 표정 하나 구기지 않고 응대해 주었다.
왜냐하면 방금 DTB 시즌 4 연속 세 편을 다 함께 시청하고…
천만다행으로 민소매라는 것까지는 들키지 않았지만 지퍼를 잠그지 않은 져지 아래에 드러난 크롭티를 보고 왜 저렇게 입고 나왔는지.
1차 디스전에 복면은 왜 쓰고 나왔는지.
2차 디스전에 남자한테 꽃다발에 커플링까지 가져다 바치면서 고백은 왜 했는지.
조별 음원 미션에서 등산복은 대체 왜 입고 갔는지.
내 랩 실력에 집중하기보다 꼬치꼬치 캐묻기만 하는 어른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꾸할 기력도 없어서 대충 대본이라고 둘러 댔기 때문이다.
아니, 티비 속의 내가 개쩌는 랩을 하고 있는데 그게 눈에 들어오냐고. 힙합의 H자도 모르는 어른들께 DTB 시즌 4는 너무 일렀던 모양이다.
“아, 그럼 방송국 대본은 없는 거야?”
“서바이벌인데 참가자한테 방송국 대본 줘서 익히게 할 시간이 어디 있어. 프로듀서들이면 모를까.”
“와, 그러면 그 미친 짓을 다 네 재량과 순발력으로 했다는 소리네. 대단하다, 너도 진짜.”
이헌이 형의 감탄에 담담하게 대꾸했다.
“내가 좀.”
내가 대단하다는 소리는 칭찬이 아니라 사실이지 않은가. 그러니 겸손을 떨 것도 없었다.
잠깐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 이헌이 형이 궁금한 것이 많았는지 거듭 질문했다.
“그러면 유피랑 너 2차 예선 결과도 유피 올리고 패자부활전으로 너 붙여 준다고 합의된 게 아니라 진짜 실제상황이었던 거야?”
“모르지, 프로듀서 대본은 있었을지도.”
그 회차가 가장 대본 논란이 많았던 회차이긴 하지. 하지만 그 대본의 유무는 나도 모른다. 이헌 형의 어깨에 팔을 턱 걸치며 은근하게 목소리 낮추어 물었다.
“그런데 형은 누가 그 매치의 진정한 우승자라고 생각해?”
“솔직히 혈연 렌즈 다 빼고 봐도 너지. 나는 유피 스타일보다 네 스타일이 더 좋더라.”
“캬, 이 형 힙합 입문했다더니 벌써 귀가 탁 트였구먼?”
만족스럽게 웃으며 이헌 형의 어깨를 신나게 탁탁 두드렸다.
이헌 형은 내 모습들이 방송국 대본이라고 하는 놈들을 명절에 싹 성북동 친가에 데려와서 본투비 어그로를 직관시켜 줘야 한다며 한술 더 떴다.
흠, 그건 좀.
류재희와 할아버지가 나누는 대화가 귓가에 들려왔다.
“어르신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DTB 시즌 4가 작년 최고 히트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리고 이든이 형은 그 최고 히트 프로그램에서 자기 실력만으로 우승을 거머쥐었고요. 옷이 좀 그래도 이든이 형 랩하는 건 멋있게 보이지 않으셨어요?”
잘 키운 막내 열 맏형 부럽지 않다. 고양이 닮은꼴에 발악하는 맏형보다 저렇게 내 위상을 올려 주는 막내가 훨 낫지. 본받아라, 서예현.
똑소리 나는 류재희의 말에 잠깐 침묵한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래, 그래도 티비에 같이 나온 녀석들 중에서 저 녀석이 제일 잘하긴 하더만.”
이헌이 형이 툭, 나를 치며 말했다.
“야, 이든아. 할아버지가 네가 제일 잘한단다.”
“오우, 기분 이상해. 지금 당장이라도 딴따라짓이 뭐가 자랑스럽냐고 한 소리 들어야 할 것 같은데.”
괜히 내 머리를 헤집으며 중얼거렸다.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고 팬서비스로 윙크를 날려 드리자마자 할아버지가 표정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기껏 프로의 면모를 보여드리니까 왜 저래?
류재희와 김도빈을 계속 친가에 불편하게 두기도 뭐했기에 슬슬 우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몇몇 사촌 형들이 나를 붙잡고 뒤늦게 사인을 요구해 왔다.
형들은 DTB 시즌 4를 안 봤어도 형의 친구들은 DTB를 본 모양이었다.
“너 내년에 프로듀서로 나오냐고 물어봐 달라는데?”
“안 나온다고 전해줘. 나는 덥넷 측에 요청받은 게 없다고.”
“덥넷 시청자 게시판에 규탄글 써도 되냐는데…?”
“솔로 앨범 올해 나오녜.”
“올해는 어렵다고 전해줘.”
“이쯤 되면 나 빼고 다 DTB 본 거 아니야? 나 솔직히 친구들 사이에서 네 이름 나오는 거 보고 깜짝 카메라인 줄.”
“야, 그런데 이든아. 그 베레모랑 가슴골 셔츠 진짜 네가 유행시킨 거야? 가슴골 셔츠는 그렇다 치고 베레모를 대체 왜 쓰고 나온 거야?”
“설명하자면 길어.”
질의응답과 함께 요청받은 대로 사인 밑에 멘트도 멋들어지게 써 주고 사촌 형들과 한껏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셀카도 한 컷씩 박아 준 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 봉투. 돈 잃어버리지 말고 여기에다가 넣어서 가져가.”
내게 봉투를 받아 할아버지에게 받은 세뱃돈을 신중하게 넣는 김도빈을 보다가 갑자기 든 생각에 투덜거렸다.
“아오씨, 도빈이를 일찍 데려올 걸 그랬나. 그랬으면 진작 40만 원씩 받았을 텐데 대체 몇 년을 손해 본 거야? 얌마, 네가 재작년인가 언젠가에 집만 늦게 갔어도 영통 세배하고 딱, 어?”
“이게 다 저를 배척하고 막내만 가까이한 결과죠.”
“내가 언제 너를 배척했냐? 네가 설 연휴에 휴가 시작하면 제일 먼저 집에 튀어 가니까 이렇게 된 거 아니야.”
내 잔소리가 길어지리라는 걸 예감했는지 김도빈이 잽싸게 말을 돌렸다.
“와, 그러면 이제 하준이 형만 형 조부님께 세뱃돈 안 받아 본 거네요? 영통 세배 때 예현이 형도 받았다면서요. 그런데 대학 자퇴한 건 대학 진학으로 안 쳐 주셨어요? 예현이 형은 심지어 인서울이었는데?”
그러네? 견하준만 지금 할아버지한테 세뱃돈을 뜯어 내지 못했네? 견하준 혼자 멤버들과 공유하지 못하는 이 세뱃돈의 추억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리더로서 걱정이 됐다.
…내년에는 견하준을 한 번 데리고 가?
* * *
성북동 친가에 다녀오고 난 다음 날 아침에는 김도빈을 강제로 집에 보냈다.
휴가도 슬슬 끝나 가는데 괜히 집안일로 신경 쓰지 말고 정규 앨범 준비에나 집중하라는 내 배려였다.
며칠간 집에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이참에 싹 만나고 류재희와 함께 숙소로 돌아오자 제일 먼저 숙소에 와 있었던 김도빈이 우리를 반겼다.
“형이랑은 화해했냐?”
“네, 서로 사과하고 풀었죠. 어차피 형은 졸업하고 경찰 되면 겸업 금지라 미래의 형수님께 카페 차려 드리는 걸로 퉁쳤어요.”
“형, 진짜 카페 차려 주게?”
“어차피 우리 형은 결혼 못 할 거 같아서 괜찮아.”
돈 굳었다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김도빈을 보며 회귀 전 김도빈의 형이 결혼을 했던가 떠올려 보려 노력했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서 관뒀다.
어차피 결혼했더라도 그때의 김도빈이 내게 자기 형 청첩장을 건네 줬을 리도 없고.
“그래? 그러면 혹시 모르니까 미래에 유행하는 디저트나 몇 개 예측해 줄까?”
뚱카롱이라든가, 크로플이라든가, 약과라든가.
김도빈 형의 결혼 여부는 모르겠지만 그것쯤은 회귀자의 지식을 써먹기 가능했다.
회귀 전 지식은 이렇게 써먹는 법이지. 암,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