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1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3화(41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3화
녹음 부스 안의 서예현이 내가 INST를 틀기도 전에 마이크에 대고 다급히 덧붙였다.
“아, 시작하기 전에 조건 하나만 달자.”
대체 얼마나 자신 있으면 조건까지 달겠다는 거지? 말하라는 신호로 손을 휘휘 젓자 서예현이 눈을 빚내며 말했다.
“내가 이 곡 녹음할 동안 네 입에서 ‘다시’ 소리가 일곱 번 이상 나오지 않으면 그놈의 형님 소리랑 존댓말 때려치우기.”
이제 하지 말라는 말도, 질색도 하지 않아서 나름 적응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또 이런 식으로 내가 이렇게 부르는 걸 서예현이 반기지 않는 걸 확인 받자 역시 계속 부르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여간 서예현도 참 어쩔 때는 김도빈보다 더 답답하다니까.
나한테서 형님 소리와 깍듯한 존댓말을 그만 듣고 싶다면 그걸 즐기고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되는데 말이야.
꼭 저렇게 정직한 반응을 보여서 내가 계속하게 만들잖아.
“오, 형님. 상당히 자신 있으신 모양입니다? 일곱 번 이하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조건을 거신 겁니까?”
저렇게 자신만만한 걸 보아하니 내가 준 가이드 녹음 파일을 휴가 동안 듣긴 들은 모양이었다. 얼마나 이해하고 소화해 냈을지 기대가 들 정도였다.
“형님, 목 다 풀었습니까?”
“아, 조금만 기다려 봐. 왜 이렇게 재촉을 해? 다른 때에는 긴장 풀기 전까지 마이크 앞에 서지도 못하게 했으면서.”
“그건 형님이 마이크 앞에만 서면 하도 죽상을 지어 대면서 제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발발 떨어 대서 그런 거 아닙니까.”
내가 서예현의 녹음 시작을 이렇게까지 기다려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내 기대치를 이렇게 한껏 올려놓은 만큼 나를 실망시켰을 때 각오해야 할 거다.
INST 중 서예현의 개인 파트 부분이 녹음 부스에 울렸다.
서예현의 목소리가 INST 위에 덧입혀졌다.
눈가에 그림자가 지도록 깊숙이 눌러썼던 조교 모자의 챙을 쓱 올리며 눈을 깜빡였다.
이건… 기대 이상인데?
“오? 예현이 형 악마랑 계약한 거 아니에요?”
김도빈이 내 생각을 대변해 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가이드 녹음을 주면서도 서예현이 이 정도 느낌을 살짝 살리기만 해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했건만 서예현은 내가 준 가이드 녹음을 토대로 자신의 파트를 제법 제대로 소화해 냈다.
일단 이 파트의 큰 틀은 확실히 잡혔다. 운 좋게 얻어걸린 것도 요령도 아니라는 게 딱 느껴졌다.
내가 가이드 녹음에 담지 못한, 서예현만 살릴 수 있는 특유의 느낌이나 곡에 맞추는 세부적인 부분의 느낌은 살짝 부족했지만 그건 차근차근 디렉팅으로 완성시켜 나가면 될 일이었다.
“예현이 형, 이대로 DTB 5 나가도 되겠는데요?”
“랩 실력 자체는 음…. 청류가 때보다 살짝 더 오르긴 했지만 랩 실력 자체가 괄목할 만한 성장은 아니야. 다만 본인이 이제 본인 파트 소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은 거지.”
류재희의 농담 같은 말에 진지하게 대꾸해 주면서도 입가의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마우스를 클릭해 INST를 멈추고 뒤로 감으며 물었다.
“형, 얼마나 연습했어?”
“시간 날 때마다 입에 펜 물고 앞에 카이사르 앉혀 놓고 연습했지.”
서예현이 은은하게 뿌듯함이 묻어 나오는 얼굴을 하고선 즉답했다. 입에 펜 물고 발음 연습하던 건 몇 번 봤는데 가이드 녹음도 이렇게 열성적으로 연습했다니, 감동이었다.
견하준의 랩 실력을 체험한 이후로 레코딩 때 서예현을 이해해 보자고 나름 다짐을 했건만 이런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지.
짝짝, 박수를 치며 서예현에게 진심 어린 칭찬을 보냈다.
“괜찮았어. 상당히 괜찮았어.”
“진짜?”
“어, 지금까지 한 녹음 중에서 제일.”
“진짜로?”
믿기지 않는지 거듭 묻던 서예현이 환하게 웃으며 헤드셋을 냉큼 벗었다. 손에 쥐고 있던 펜을 까딱거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선 물었다.
“그런데 왜 벌써 헤드셋을 벗었어? 나 아직 끝났다는 소리 안 했는데?”
“끝난 거 아니야? 한 번에 패스여서 지금 그놈의 형님 소리 집어치운 거 아니야?”
“괜찮았다고 했지 완벽했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형님. 얼른 다시 헤드셋 쓰십쇼.”
“그럼 왜 말투는 원래대로 돌아왔던 건데?”
“그야 디렉팅할 때는 진지하게 해야 하니까 그렇지.”
“야! 네가 진지하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거 아니라고 네 입으로 증명한 거야, 지금!”
“형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 괜히 또 그래. 형님 소리 그만 듣고 싶으면 녹음 잘해, 오늘.”
비척비척 헤드셋을 다시 쓰는 서예현한테 세부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다시 한번만 해 보자. 다 좋았는데 좀 더 사람을 홀리는 듯한 느낌을 살려서. 나긋하다기보다는 몽환적으로. 지금은 너무 나긋해. 그러니까, 느낌이 홀리는 게 아니라 안내인 같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 서예현이 디렉에 맞추어 다시 파트를 불렀다. 물론 아직 견하준처럼 요구를 띡 던지면 찰떡같이 받아먹는 수준은 못 되었지만 그래도 성장했음이 느껴졌다.
내가 서예현한테 과한 감동을 받아 실력이 극대화된 것처럼 느껴지는 건지도? 그만큼 내 안의 서예현의 기대치가 낮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류재희가 이랬어 봐라.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하라는 호통 당장 터져 나왔지.
“좋아, 90퍼센트까지 끌어왔어. 형, 혹시 몽환적이라는 내 요구가 너무 추상적이야? 그러면 이렇게 해봐. 목소리에 힘을 빼고 부르다가 끝부분만 살짝 속삭여 보는 거야. 속닥거리기보다는… 그래, 뭉게. 뭉게 봐.”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조금 아리송해 보이는 서예현의 표정에 간단하게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할 수 있겠어? 다시 가자.”
내 디렉을 곧장 잘 따라오는 서예현 덕분에 분위기 역시 전례 없이 훈훈했다.
“좋아, 좋아! 휴식 없이 바로 다음 파트 가자!”
짝짝!
박수를 치며 경쾌하게 말하자 서예현이 어? 하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한 번 안 쉬어? 항상 파트 하나 끝내고 쉬었잖아.”
“그건 형이 파트 하나를 30분에서 40분씩을 잡아 먹어서 그랬고. 지금은 빨리 넘어갔잖아. 형 벌써 지쳤어? 아니면 그 일곱 번이 파트 하나에 일곱 번이었어?”
벌써 지쳤냐는 말에는 고개를 좌우로 젓던 서예현이 파트 하나에 ‘다시’ 일곱 번이었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이 곡 전체에 일곱 번은 해야지. 공동 파트까지 합해서.”
“공동 파트는 왜?”
“알았어, 공동 파트는 빼 줄게. 형 개인 파트만.”
내가 많이 봐줬다. 가이드 녹음을 따로 준 보람이 있을 만큼 연습해 온 노력도 가상하니까.
“지금 거기랑 거기 이을 때 호흡 딸리지? 그래서 이쯤에서 형이 미리 호흡을 확보하려고 하니까 이쪽 부분이 약해지는 거거든? 계속 유지를 해야 하는데?”
랩 천상계에서 살 때는 몰랐지만 바닥인 견하준의 랩 실력을 체험하고 오자 서예현 눈높이에서의 디렉팅도 한결 수월해졌다.
‘이걸 못해?’의 마인드가 아닌 ‘이것도 어렵겠구나’의 마인드로 접근하니 나도 좋고 서예현도 좋고, 녹음실 분위기가 얼어붙지 않은 덕에 다른 멤버들도 좋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었다.
이 만고의 진리를 이제까지 모르고 있었다니. 회귀 전까지 통틀면 몇 년을 손해 본 거지- 싶다가 회귀 전에는 레브 디렉팅을 내가 안 했다는 걸 깨닫고 그냥 이번 회차만 셌다.
“그래도 연습을 한 게 보인다, 형. 시도는 괜찮았어. 호흡을 어디에서 하냐면 lost paradise 이 부분 끝나고. 오케이? 다시 해 보자.”
계속 디렉팅을 이어 가며 일곱 번째 ‘다시’ 소리를 내뱉었다. 이제 녹음은 거의 끝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마지막 소절을 마무리하고 희망에 찬 눈빛으로 나를 보는 서예현을 향해 인자하게 웃어 주었다.
“마지막 소절 한 번만 다시 갑시다, 형님.”
여덟 번째 ‘다시’였다.
서예현의 형님이라 불리지 않을 권리는 그렇게 물 건너갔다. 저얼대 서예현이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지 않아서 ‘다시’를 한 번 더 덧붙인 게 아니었다.
“으아아악! 너 일부러 그러지!”
머리를 움켜쥔 서예현이 마이크에 대고 난동을 부려 댔다.
“형님, 제가 저 좋자고 이러겠습니까. 곡 퀄리티 올리려고 이러지. 간만에 훈훈한 분위기로 녹음 끝내는데 저도 초 치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 소절 한 번만 더 하고 이 곡 얼른 끝냅시다. 끝부분을 살짝 더 늘리고 마지막 어절 템포만 한 박자 더 느리게. 약간 약 올리는 느낌으로.”
“마지막 어절?”
고개를 까딱하자 잠시 고민하던 서예현이 준비됐다는 신호로 손을 들어 올렸다.
마지막 소절도 완벽하게 마친 서예현이 가슴을 쫙 펴고 무슨 개선장군마냥 위풍당당하게 녹음실 부스에서 나왔다.
“형님, 제가 드린 가이드 라인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까?”
“응, 녹음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어. 전에는 어떻게 불러도 네가 항상 다 뜯어고치라고 해서 좀 아연했는데 지금은 길이 처음부터 딱 제시되니까, 음.”
형님 소리를 멈추지 못한 게 그렇게 통한에 찬 일이었는지 나를 보자마자 뚱한 표정을 하고 있던 서예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그래서, 이번 녹음이 네 기대치에는 충족했어?”
“여덟 번만에 끝낸 거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픽 웃으며 대꾸하자 서예현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싱글벙글한 미소가 걸렸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준다면 소원이 없겠다, 정말로.
다음으로 녹음 부스 안에 들어간 류재희는 이 곡의 가이드 녹음을 진행한 만큼 평탄하게 녹음을 마쳤으며, 견하준이야 언제나 보컬에서는 내 기대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모두가 행복한 녹음실에서 단 한 사람만은 행복하지 못했다.
“도빈아, 다시. 방금 음정 흔들렸다.”
“다시. 이거 경쾌한 곡 아니잖아. 분위기 맞추자.”
“다시. 내가 분위기 맞추자고 했지 가사 얼버무리라고 했어?”
“다시 가자.”
“끊어. 이어 나가지 말고 끊으라고. 부르는 본인은 답답하게 안 느껴져? 다시.”
잠깐 쉬어 가자고 INST를 멈추자마자 녹음 부스를 튀어나온 김도빈이 서예현을 잡고 짤짤 흔들어 댔다.
“예현이 형! 저를 남겨두고 형만 다시 지옥에서 벗어나면 어떡해요!”
“도빈아, 내가 너를 정말 아끼긴 하지만 너와 함께 하기 위해 그 다시 지옥에 다시 걸어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
“이든이 형! 저도 가이드 녹음 주세요!”
“난 래퍼고 넌 보컬이야. 대신 너는 내가 하나하나 세세하게 집중 디렉팅 해 주잖아.”
“저도 래퍼로 전향할래요!”
“힘이 넘치는 걸 보니까 계속해도 될 것 같다. 자, 다시 부스 들어가자, 도빈아.”
다시 지옥의 굴레에서 홀로 빠져나온 서예현만 녹음실로 비척비척 들어가는 김도빈에게 상쾌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와, 그러고 보니까 너희 그룹 프로듀싱은 처음이다. 내가 너랑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는데.”
“평소에는 제가 다 하니깐요. 이번 곡은 비교 좀 해 보고 싶어서 형님한테 부탁했죠. 너무 안주하면 매너리즘 찾아오잖아요.”
“짜식이 나를 비교군으로 쓰려고 하고 있어. 아, 참고로 나는 친한 동생이라고 살살 해 주고 그런 거 없다?”
“그건 예전에 연말 가요 축제 프로젝트 그룹 하면서도 들은 소리인데요.”
뮤직 비디오 촬영이 들어갈 마지막 한 곡은 지원이 형이 직접 프로듀싱을 맡았다.
그래도 우리 멤버들도 기본적인 실력이 다들 있는지라 순탄하게 지나갈 거라 생각했던 지원이 형의 프로듀싱은 의외의 곳에서 난관에 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