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1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5화(41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5화
네 명이 자리를 비켜 주는 것보다는 두 명이 나오는 게 나았기에 견하준과 녹음실을 떠나 빈 회의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따뜻한 물이 든 컵을 두 손으로 쥔 견하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빈이랑 예현이 형이 왜 그렇게 녹음 일정만 잡히면 죽상이었는지 이제 좀 이해가 가네. 평생 이해 못 할 영역일 줄 알았는데.”
견하준이 언급한 그 둘은 오히려 오늘 녹음을 기죽지 않고 내 프로듀싱 때보다 평탄하게 끝냈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오늘 지원이 형이 유독 너 집중 마크하긴 했어. 너도 알다시피 그 형도 나만큼이나 음악에는 꽤 깐깐하잖냐. 서라온 선배님급이나 되어야지 의견이랑 스타일 수용해 주지.”
“그래도 도빈이랑 예현이 형이랑 재희는 별문제 없이 잘 끝냈잖아. 그럼 나한테 문제가 있었다는 거겠지.”
또 한 번 긴 한숨을 내쉰 견하준이 컵에 든 따뜻한 물을 홀짝였다.
쥐고 있던 컵의 수면을 한참 내려다보던 견하준이 문득 깨달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특별함으로 여기지 말고 좀 내려놓자는 게 음악도 포함이었구나.”
그 말에 굳이 긍정도 부정도 내뱉지 않았다. 처음으로 레코딩에서 특별함이라는 계단이 사라진 벽을 마주한 견하준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으니.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견하준이 무슨 판단을 홀로 내린 건지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미간을 문질렀다.
“그러면 그냥 네가 지적해 주지. 남의 입 빌리지 말고.”
내가 저한테 직접 말하기 싫어서 지원이 형을 끌어들였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흠, 처음 취지는 그게 아니었는데. 견하준은 서예현으로 시작하여 우연히 얻어걸린 대어였지.
아닌가? 견하준의 랩 실력을 한 번 체험해 본 후로 이런 흐름이 된 거니 시작은 결국 견하준이었나?
의식의 흐름으로 또 생각이 흐르다가, 어쩐지 견하준의 말투가 원망하는 듯한 말투 같아서 오해도 빨리 풀어줄 겸 고개를 짧게 저었다.
“이거 관련해서는 내가 누구 지적할 처지가 아니거든.”
“…너도 모르고 있었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식의 떨떠름한 물음에 멋쩍게 뒷머리를 쓸어올렸다. 스타일을 잡기 전이라 제법 긴 뒷머리가 손가락과 손가락 틈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냥, 처음에는 내가 더 네 음색이든, 네 보컬이든 훨씬 잘 살릴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게 어느새 습관이 되어 버려서.”
관계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회귀 전의 족쇄가 묶여 있을지는 몰랐다.
그건 제법 충격이었다.
회귀 전의 그 기억마저도 닿지 못할 성역이라 생각했던 음악에까지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니.
“내가 더? 우리 곡을 다른 프로듀서한테 맡겼던 적이 있었어?”
의아함이 묻어나오는 견하준의 질문에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이제 이런 거 하나하나로 흠칫할 과거의 내가 아니다.
이 정도쯤은 유연하게 넘길 수 있다고.
“왜, 내우주 있잖아. 그때 기억 안 나냐? 하긴, 벌써 몇 년 전이냐.”
나도 그때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긴 했지만 그 곡이 회귀 전에도 시초이긴 했으므로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너도 아주 잘 알다시피 내 음악을 가장 처음으로 구현해 주는 건 너잖아. 그래서 너무 익숙해진 바람에 안주해 버렸나 봐.”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쳤다. 탁자 위에 놓인 물컵의 수면이 잘게 흔들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따지고 보면 넌 나한테 휘말린 거지. 솔직히 네 잘못은 없어. 내 문제였지.”
순순히 내 잘못을 시인했다. 굳이 견하준의 잘못을 묻는다면 나를 채찍질하지 않고 같이 안주해 버린 정도?
“또 그런다. 우리 음악이 너만의 책임은 아니잖아.”
“왜, 나 또 슬럼프 올까 봐? 별걱정을 다 한다. 이 정도로는 안 오지. 이 정도 책임감쯤은 항상 느끼고 있는 무게인데.”
내 부담의 무게를 덜어 주고 싶은 견하준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책임이 없거나 가볍다고 하면 더 슬럼프가 오지 않을까 싶다.
견하준의 정수리에 손바닥을 턱 얹고 머리칼을 마구 헤집었다.
“나는 이제 내 음악에서 너를 지금보다 더 다양하게 써먹고 싶을 뿐이라고. 네 자존심을 꺾고 싶은 게 아니라.”
제 머리를 엉망으로 만드는 내 손길을 피하며 나를 돌아보는 견하준을 향해 가볍게 투덜거렸다.
“야, 나도 자존심 상해, 솔직히. 너를 내 음악에 더 잘 써먹을 수 있었던, 그래서 내 음악의 범주를 넓혀 갈 수 있었던 기회가 무려 몇 년이나 있었는데 그 아까운 시간들을 싹 날린 거 아니야.”
만약 오늘 지원이 형을 부르지 않았다면 몇 해를 더 손해 봤을지 감도 안 왔다. 매너리즘에 빠지고 정체된 음악 때문에 지독한 슬럼프가 다시 찾아오고 나서야 원인을 찾아 한참을 헤맸겠지.
그리고 그 끝에 견하준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면… 내 멘탈도 견하준의 멘탈도 얼마나 털렸을지 감도 안 왔다.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그만큼 더 굴리면 될 거 아닌가! 미래에 갈등까지 동반되어 낭비할 시간을 줄였다고 생각하자.
“나란히 매너리즘에 빠져서 정체되는 것보단 기분 한 번 상하고 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게 낫지 않겠냐?”
기왕 회귀 전보다 더 높은 곳을 보고 오자고 결심한 거, 적어도 그때보다 더 좁은 세상으로 들어가지는 않아야지.
내 음악도, 견하준의 음악과 연기도.
긴 한숨을 내뱉은 견하준이 손으로 눈가를 덮으며 퍽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일단 대체 오늘 녹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알려줘. 나는 나름 디렉에 따른다고 생각했는데 G1 프로듀서님은 아닌가 봐.”
“어떻게 하긴. 그냥 자아를 최대한 죽이는 수밖에 없지.”
보컬은 내가 서예현한테 하는 것처럼 시범을 보일 수도 없으니 내가 내 보컬 실력으로 견하준한테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느니 견하준이 스스로 깨닫는 게 훨씬 더 빨랐다.
“지금 문제는 네가 너무 네 스타일을 고집하는 거야. 이건 지원이 형도 집은 문제점이고. 너 지금 네 스타일을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여기에 정답 없어. 그냥 디렉팅을 따라.”
“고집… 항상 네가 별말 없이 넘어가서 녹음할 때만큼은 내가 항상 맞다고 생각했나 봐. 그게 이런 식으로 결국은 드러나는구나.”
“나야 이제까지 네 스타일을 베이스로 뒀지만 지금 레코딩에서는 그게 아니잖아. 워낙 네 쪼가 확고해서 바로는 못 버리겠지만 그래도 노력해 봐. 너 항상 잘해 왔잖아.”
내가 던져 주는 충고를 진지한 얼굴로 듣던 견하준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착잡해 보이는 얼굴에 녹음을 다시 들어가기 전, 긴장이나 풀라는 의미로 농담조로 말을 던졌다.
“아, 네 음색만큼은 평생 내려놓을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솔직히 차연호 음색이랑 비교하는 지원이 형 말 들으니까 나한테는 아직 특별한 모양이더라. 누가 봐도 네가 더 나은데.”
“누가 걱정했다고 그래.”
짜식, 쑥스러워하긴.
고개를 저으면서까지 부정해 대는 견하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씩 웃었다.
“그래, 그래. 앞으로는 좀 빡세게 가 보자. 일단 오늘부터.”
녹음실의 문을 벌컥 열자 모두의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녹음 잘 마무리하라는 의미로 툭툭, 두어 번 어깨를 다독여 주고 견하준의 어깨에 얹어 놨던 팔을 풀었다.
녹음 부스로 다시 들어간 견하준이 약간은 긴장한 얼굴로 마이크 앞에 섰다. 지원이 형의 옆자리에 털썩 앉자 그런 나를 미묘한 눈으로 보던 지원이 형이 INST를 재생했다.
녹음실을 울리는 견하준의 보컬을 들은 지원이 형의 표정은 이전보다 많이 풀려 있었다.
“아까보단 훨 나아졌네. 방금 그 마지막 부분만 다시. 저기요, 부를 때의 그 ‘요’ 자 음으로.”
그래도 한 번에 단점을 고치고 완벽해지는 건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일이라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견하준의 파트 녹음은 무사히 끝났다.
“오케이, 여기는 내가 뭐 트집 잡을 게 없네.”
내 파트를 마지막으로 지원이 형과 함께한 레코딩이 마무리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 이 그룹 정말, 어우. 타 그룹 프로듀싱하면 한 번씩 생각날 거 같아. 진짜 이런 레코딩 처음이야.”
한 수십 번 터트린 감탄을 또 입에 올린 지원이 형이 내 어깨에 팔을 턱 얹었다.
“솔로 앨범 작업할 때도 불러. 거기에 이름 좀 얹게. 솔로 앨범은 당연히 정규겠지?”
“에이, 형님. 벌써 그렇게 부담 주지 마시고요. 솔로 앨범 정규면 2년 잡고 들어가야죠.”
“내가 곡 몇 개 줄까? 나 너한테 떠넘기려고 만들어 놓은 곡 몇 개 있는데.”
“확정되면 바로 받아 갈게요.”
“수고의 의미로 술 한 잔 안 사주냐?”
“처음 겪는 녹음실 혹사에 충격 먹었을 우리 리드 보컬 위로 좀 해 줘야 해서요.”
“이미 위로 잘 받고 있는 거 같은데?”
지원 형의 손가락을 따라 사선을 옮기자 견하준 옆에서 나와 함께한 녹음 다시 지옥 일대기와 자신들의 심리상황을 줄줄 늘어놓는 서예현과 김도빈이 보였다.
생각해 보니까 할 말은 빈 회의실에서 다 했구나. 경험자들한테 위로받는 게 최고지.
마음 놓고 지원이 형과 밖으로 향했다.
* * *
후반 작업까지 얼추 마무리한 세 곡을 A&R 팀에게 보내고 아주 잠깐의 숨 돌릴 틈이 주어졌다.
물론 나한테는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곡 작업으로 인해 갈리고 있었다.
“세 곡을 완성했는데도 아직도 여덟 곡이나 남았다니. 진짜 정규는 다르구나… 청류가랑 연하가 두 곡 녹음한 게 전생 같다.”
내 옆에서 김도빈이 책상에 뻗어 중얼거렸다. 나 혼자 갈리긴 억울해서 같이 갈리려 데려온 조수였다.
견하준은 드라마 촬영을 시작해서, 류재희는 견하준 대신 가이드 녹음으로 갈려야 해서, 서예현은 같이 있어 봤자 나만 두 배로 갈릴 게 분명해서 그렇게 김도빈이 최후의 1인이 되었다.
“도빈아, 이거랑 이것도 네가 좀 체크해라. 사운드 튀는 부분 있으면 타임 체크해서 말해 줘.”
“혀엉, 저 이따가 안무 시안들도 체크하러 가야 하는데에-.”
“아오, 말꼬리 계속 늘려라. 그게 스물두 살의 말본새냐.”
“형님, 저는 이따가 안무 시안들도 사전 확인하러 가야 해서 잠시간의 휴식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너는 왜 중간이 없냐. 너 지금 일부러 그렇게 극존칭 쓰지. 나 약 오르라고.”
“저는 그냥 형이 예현이 형한테 하는 걸 카피한 것뿐인데요. 서얼마 형도 예현이 형 약 오르라고 그러는 거예요?”
“와, 빨리도 알아챈다. 너 빼고 다 알고 있어. 지나가는 비둘기도 알겠다, 인마.”
결국 음원 파일 하나만 넘기며 한탄을 내뱉었다.
“아오, 내가 보조용으로 다 키워 놨는데 꼭 필요할 때 이러네. 그냥 안무 체크할 멤을 또 따로 만들면 안 되냐? 내가 이런 쓸만한 조수를 안무에 뺏겨야 해?”
“저는 프듀멤이 아니라 메댄인데요.”
“명예 프듀멤 해라. 내가 시켜 줄게.”
김도빈과 시시덕거리는 와중,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