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1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6화(41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6화
제발 일정을 당겨야 한다는 연락만 아니어라…!
현재 제일 받고 싶지 않은 연락 1위라고 생각하는 그 내용만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와, 잠 못 자겠는데.”
헛웃음 섞인 중얼거림에 목을 길게 뺀 김도빈이 내 휴대폰 화면을 보기 위해 기웃거렸다.
“뭐래요? 일정 당겨졌대요? 데드라인이 혹시 내일까지래요?”
“그런 끔찍한 말 좀 하지 마라. 말이 씨가 된다고.”
투덜거리며 김도빈의 정수리를 꾹꾹 눌렀다.
다행히 일정을 당긴다는 소식은 아니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바쁜 때에 일거리 하나가 추가되는 소식이긴 했다.
“하준이 드라마 OST 데모곡 모집하는데 그쪽 OST 제작사에서 데모곡 좀 보내 달라고 연락이 왔다네?”
“거절은 안 받는대요?”
“인마, 이걸 왜 거절해. 딱 보니까 하준이 솔로곡으로 드라마 OST 하나 삽입하고 싶어서 우리한테 데모곡 의뢰 넣은 것 같은데.”
무려 견하준의 첫 드라마인데, 그것도 대히트 칠 드라마인데 조연이라고 그냥 넘기긴 아쉽지 않은가.
무엇보다 드라마가 뜨면 자연스럽게 OST도 흥행을 하게 되니 나쁠 건 없었다.
그저 내가 좀 더 갈릴 뿐이지.
마감 데드라인이 1주일이라니. 2주일이면 일단 우리 정규 앨범 곡 작업이라는 급한 불부터 먼저 끄고 여유롭게 작업이 가능하겠지만 1주일이면 여유를 부릴 시간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까 회귀 전에는 딱히 견하준이 출연한 드라마 OST를 작곡했던 기억이 없군.’
내 기억으론 견하준이 불렀던 OST가 몇 곡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내가 작곡하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제작사 연락이 닿지 않았든가, 아니면 내가 다른 작곡 의뢰 및 프로듀싱으로 바빠서 OST는 뒷전이라 맡지 않았든가.
아무래도 전자일 확률이 높았다. 그때도 견하준과 딱히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으니 바빠도 내가 신경을 써 줬겠지.
물론 그때의 견하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제 평생을 묻지 못할 질문을 나 혼자 궁금해한다고 답이 나오겠냐. 센치해지려는 기분을 가볍게 털어 내고 승낙의 내용이 담긴 답장을 보냈다.
시놉과 대본을 보기도 했고, 드라마 내용도 회귀 전 기억 덕분에 흐릿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드라마에 어울리는 OST를 작곡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였다.
제작이야 그쪽 제작사에서 알아서 해 줄 테니 내가 맡아야 하는 일거리는 우리 음반보다 훨씬 적은 셈이군.
한시름 놓고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며 OST 작업까지 끼워 일정을 재정립하던 도중, 또 한 번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답장이 왔겠거니 싶어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확인한 나는 눈에 들어오는 끔찍한 글자들의 향연에 반사적으로 눈을 비비적거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 아주 제대로 본 거였다.
“아니야… 이럴 리 없어….”
드라마 OST 데모곡 작업을 승낙하자마자 우리 정규앨범 곡 일정 데드라인이 당겨졌을 리가 없다고!
“얌마, 네 말이 씨가 됐잖아! 내가 그런 끔찍한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했지!”
결국은 김도빈의 그 헛소리 같은 끔찍한 말이 현실로 이루어진 꼴이었다. 눈을 번뜩이며 목 마시지를 빙자한 헤드록을 선사해 주기 위해 팔을 뻗자마자 김도빈이 잽싸게 몸을 벌떡 일으켜 내 팔을 피했다.
“절대 제 말 때문에 데드라인이 당겨진 건 아닐 거예요! 제가 말하는 대로 다 이루어졌으면 레브는 진작 국내 1군이 뭐야, 너튜브 10억 뷰는 가볍게 찍는 월드 스타 됐죠!”
“시끄러, 인마! 그런 부정 탈 말은 왜 해서!”
“저는 이만 안무 시안 확인하러 가 볼게요!”
불똥이 제대로 튈 걸 직감했는지 김도빈이 후다닥 작업실을 벗어났다.
잠죽자, 잠죽자를 중얼거리며 마른세수하다가 어제 본 뉴스 기사 내용이 떠올라 멈칫했다.
하필 짧은 수면 시간이 건강을 해치는 지름길이라는 건강 이슈 뉴스를 본 다음 날 이런 일이 생기다니…!
당뇨에 면역력 저하에 미세혈관 손상 및 심혈관 질환에 비만 위험도 상승에 뇌진탕과 치매까지, 이게 싹 다 수면 부족으로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질환이랬는데.
그러니까 몇 시간 더 일하려다가 몇십 년 더 먼저 가는 셈 아닌가.
그렇다고 적정 수면 시간을 맞춰서 숙면을 취하면 작업을 마감일 안에 끝내지를 못하고.
이것 참 딜레마였다.
하지만 팀 제도의 좋은 점이 무엇인가. 여럿이 있으니 혼자만 갈릴 필요 없다는 게 팀 제도의 몇 안 되는 장점 아닌가.
물론 팀원들을 믿지 못하면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 하겠지만 나는 이제 우리 멤버들을 충분히 믿을 수 있었다.
“막내야, 바쁘냐? 안 바쁘면 형 살리는 셈 치고 좀 튀어와라. 혹시 예현이 형도 숙소에 있냐? 혹시 있으면 같이 데려오고.”
옆에 같이 갈다 보면 뭐라도 쓸모가 생기겠지. 일단 갈아 넣자!
* * *
견하준이 첫 촬영을 끝내고 온 저녁에는 숙소에서 소소한 축하 파티가 열렸다.
모든 파티 음식은 서예현의 손을 거쳤기에 칼로리가 200kcal가 넘어가는 음식 따위는 없었다. 파티라고 기대를 잔뜩 고조시켜 놓고 막상 식탁에 보이는 닭가슴살과 풀때기의 향연은 이제 익숙했기에 아무도 불평을 내뱉지 않았다.
이 식단에 불만을 표출하고 먹고 싶은 걸 주장해 봤자 서예현의 컴백 얼마 남았느냐는 잔소리와 칼로리 무한 공격만 받을 뿐이기 때문이다.
평소의 서예현은 전혀 무섭지 않았지만, 아니 오히려 만만했지만 칼로리 한 번 말해 보라고 눈을 희번뜩이다가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다 못해 자기가 먼저 줄줄 내뱉는 서예현은 좀 공포스러웠다.
“내가 지금 네 첫 드라마 촬영을 축하해 주려고 16일치 건강을 포기하고 왔잖아.”
포크로 양념도 소금간도 하나 되어 있지 않는 닭가슴살 하나를 쿡 집으며 잔뜩 생색을 내자 견하준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아니, 그 전에… 네가 건강을 포기해?”
“에휴, 원래 일정대로 갔으면 건강을 그만큼까지는 포기할 필요 없었을 텐데 일 하나가 더 추가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심각성을 부각하자 견하준의 눈이 더욱 커졌다.
옆에서 김도빈이 쓸데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쓸데없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든이 형이 데뷔 초랑 많이 변한 걸 저도 잘 알기에 이제 웬만해서는 빙의라는 말을 남발하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이건 진짜로 이든이 형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닌데요…? 혹시…?”
슬그머니 십자가를 그리고 있는 손가락을 발견하고 눈을 부라리자 대놓고 흠칫한 김도빈이 견하준의 뒤로 슬쩍 숨었다.
서예현도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한 마디 보탰다.
“아니, 하루치면 몰라. 16일치라니까 진짜 윤이든 아닌 것 같다고.”
“그런데 왜 16일치예요? 무슨 기준이라도 있어요?”
“그래, 잘 물어봤다, 막내야.”
이 파티에 참가하는 대가로 나흘간의 수면 시간을 적정 수면 시간보다 네 시간을 줄였으니 건강을 포기하는 수면 시간을 하루당 1시간으로 잡으면 나는 16일치의 건강을 포기한 셈이다.
펜과 노트까지 가져와서 내 계산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자 나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들이 거둬졌다.
“네 계산상으로 따졌을 때 윤이든 너 지금까지 밤샘 작업이랑 새벽 작업으로 수명 한 몇 년은 까먹은 것 같은데 16일치 정도면 뭐…”
“그냥 건강 챙기는 평범한 이든이 형이네요.”
서예현과 김도빈은 대놓고 안도한 얼굴들이었다.
“형이 혼자 다 하려고만 하지 말고 사람을 갈아요. 여기 갈릴 사람 많잖아요.”
류재희는 본인을 포함하여 갈아야 할 사람 목록을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짚어 묶어 주기까지 했다.
역시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은 우리 막내밖에 없었다. 코끝이 찡해져 내 몫의 닭가슴살을 류재희한테 몇 개 양보해 주었다.
“생색 한 번 부리려고 했다가 또 빙의 의심이나 받고, 아오. 그놈의 빙의 의심은 도대체 언제 그만둘래?”
“아니, 형은 한 번 전적이 있잖아요. 귀신 들린 전적이. 그래서 그렇죠. 형이 빙의 체질일 수도 있잖아요.”
“뭔 소리야. 내가 언제 귀신 들렸다고 그래. 또 헛소리 한다.”
“그러면 형 설마 맨정신으로 나긋하게 말하고 <애니멀팜> 보면서 맨정신으로 눈물 흘리고 귀신 들렸다고 오리발 내민 거예요…?”
아, 맞다.
“아, 그때?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야! 나는 기억이 없는데 당연히 그 귀신인가 뭔가 들린 게 깜빡깜빡할 수도 있지!”
윽박지르자 김도빈이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상대의 입을 막을 때는 목소리 높이는 게 최고였다.
한시름 놓은 얼굴의 견하준이 나한테 가볍게 타박했다.
“이든이 너는 무슨 생색을 그런 식으로 내고 그래.”
“하준이 형이랑 관련된 거라 지금 저렇게 생색내는 거예요.”
“나랑? 아… 설마 OST?”
견하준은 김도빈의 힌트에 금방 정답을 찾아냈다.
“섭외는 될 것 같아. 안 그래도 OST 제작사 측에서 미리 컨택 왔거든. 그런데 아마 OST AR곡 선정을 내가 할 수 있을지를 모르겠네.”
약간의 염려마저 비쳐 보이는 견하준의 표정에 자신만만하게 씩 웃었다.
“나 그거 자신 있어. 딱 듣자마자 네 곡이라고 알아챌 수 있게 작업하는 거. 내가 무조건 너한테 내 곡 선정되게 해 준다.”
“그래. 드라마 OST이긴 해도 따지고 보면 내 첫 솔로곡인데 기왕이면 네가 작곡한 곡이 좋지.”
견하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앞에 상태창이 떴다.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기억의 파편(29)’이 해금됩니다.]내가 대체 무슨 조건을 달성한 건지 감도 안 왔다.
어쨌든, 덕분에 스물아홉 개인지 스물아홉 살인지 모를 기억이 해금되었다.
파티인지 단체 식단인지 모를 저녁 식사가 끝나고 모여서 정규 앨범 일정 이야기 좀 하다가 견하준이 풀어 주는 촬영 뒷이야기도 듣고 잘 시간이 다 되어서야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풀썩 눕자마자 상태창을 눈앞에 띄웠다.
시스템이 지워 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망설임 없이 파편을 붙들었다. 문득 내 방이 독방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어떤 기억이든 이 기억을 보고 난 이후의 내 동요를, 내 반응을 다른 녀석들한테 들키지 않을 수 있어서. 시스템이 이 기억을 괜히 지운 건 아닐 테니까.
이전에 에러로 엿본, 엉망으로 살아가던 지워진 시간 속의 내 모습처럼.
[‘기억의 파편(29)’을 열람합니다.]기묘한 속 울렁거림과 함께 시야가 흔들리며 깜빡거리더니 눈앞의 풍경이 서서히 변했다.
지워진 기억이 눈앞에 재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