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1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7화(417/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7화
* * *
“하준이는 요즘 뭐 한대? 그 녀석 통 내 연락을 안 받아. 언젠간 받겠지- 하던 게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걔 진짜 나랑 절교하자는 거냐?”
내 투덜거림에 류재희가 어색하게 웃었다.
작업실 의자에 편히 등을 기대어 앉아 류재희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잠시 고민하던 류재희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작업실 뒤편 소파에 몸을 기댔다.
“휴대폰이랑 메일 다 되는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서 내가 무슨 쌍팔년도처럼 편지라도 써야 해? 야, 막내야. 내가 지금 편지 쓸 테니까 네가 대신 전달해 주라? 오케이?”
대충 작사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편지지야 여기에 편지 쓰고 이거 찢으면 편지지지.
편지 봉투야 뭐, 우체국도 아니고 류재희한테 맡길 건데 굳이 필요하나? 그냥 고이 접어서 주면 되지.
내가 TO. 준까지 썼을 때 류재희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써서 저한테 주지 말고 그냥 편지지랑 편지 봉투 사서 거기에 적고 부쳐요.”
“어차피 같은 숙소 살면서 왜? 우표 값 아깝게.”
“하준이 형 나갔어요.”
그 말을 하면서도 류재희의 얼굴에는 ‘이걸 말하는 게 맞나’라는 표정이 걸려 있었다.
“…독립했어? 아님 입대?”
“독립이요. 입대는 드라마 촬영 끝나고 바로 한대요. 예현이 형도 군 복무 중이라 이제 숙소에는 저랑 도빈이 형만 있어요.”
“서예현이랑 김도빈 이야기야 내 알 바 아니고.”
“그래도 같은 그룹이었잖아요.”
“씨발, 방송 아니면 말 섞고 살지도 않았던 게 벌써 몇 해인데 같은 그룹 이 지랄이야?”
짜증스럽게 대꾸하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혹시나 견하준의 연락이 누락되어 내가 보지 못했나 싶어 메신저들을 확인했지만 사라지지 않은 1과 오지 않은 답장만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자식, 혹시 전화번호도 쥐도 새도 모르게 바꾼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내 연락을 씹을 이유가 없지 않나?
“하, 새끼. 집들이에나 좀 부르지. 내가 집들이 오라고 연락한 것도 씹어 놓고, 자기 집들이에도 안 부르네. 너희는 부르든?”
류재희가 짧게 고개를 저었다. 아주 잠깐의 주춤거림마저도 수상쩍게 느껴져 눈을 가늘게 뜨고 류재희를 추궁했다.
“내가 확인 못 한다고 구라까는 거 아니지? 물어봐서 부르기만 했다고 해 봐라?”
“진짜거든요? 그리고 형 어차피 하준이 형 관해선 저 말고 물어볼 사람도 없잖아요.”
류재희가 잔뜩 억울한 얼굴로 내 뼈를 때렸다. 하긴, 류재희 말고는 아직까지 레브로 묶이는 견하준의 소식을 전해 들을 사람이 없긴 했다.
류재희는 나랑 모두 단절된 레브라는 그룹에서 유일하게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가는 녀석이었으니.
신경질적인 손길로 내 머리를 헤집으며 짜증 어린 의문을 내뱉었다.
“걔는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건데? 나는 계약 기간만 지나면 때려치울 거라고 내가 걔한테 몇 번을 미리 말했는데 뭐가 그렇게 배신감이 들어서 그러냐고, 씨발. 진짜.”
“그전부터 하준이 형 태도가 영 이상하다고는 못 느꼈어요?”
“그러고 보니까 말수가 적어지긴 했어. 그런데 그냥 재계약 시즌 다가오고 나 나간다고 해서 심란하니까 그러는 줄 알았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쉬니 류재희가 혀를 찼다.
“형은 일단 본인 위주로만 생각하는 그 습관을 고칠 필요가 있어요.”
“너 뭐 아는 거 있냐?”
등받이에 기댔던 허리를 류재희 쪽으로 휙 기울이며 묻자 류재희가 제 상체를 뒤로 빼며 대꾸했다.
“저는 이것만은 하준이 형 편이에요. 형 스스로 깨달아야죠. 섬세하지 못한 것도 정도가 있어요.”
“내 잘못이라고?”
실소를 터트리며 나직하게 되묻자 류재희가 어깨를 으쓱하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언젠간 꼭 깨닫길 바랄게요. 저는 이 부분에서는 도움 못 드려요.”
“후…… 됐다. 가라.”
손을 휘적이는 걸로 류재희를 배웅하고 다시 의자를 빙글 돌려 스탑했던 작업을 재개했다. 드라마 OST 데모곡 요청이야 이제 익숙했다.
마무리 작업을 끝낸 데모곡을 메일로 전송했다. 항상 가이드 녹음을 도맡아 주던 목소리가 아닌 게 퍽 아쉬웠다.
아쉬움을 곱씹다가 내 곡들이 견하준의 가이드 녹음을 덧입지 못한 지 꽤 됐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탈퇴하기 몇 달 전부터 계속 견하준이 가이드 녹음 부탁을 거절했지…’
드라마 촬영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였지만 류재희가 말한 그 이유 모를 이유 때문이었나, 사실.
담배를 입에 물며 습관이 되어 버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
내가 OST 데모곡을 넣었던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첫 번째 충격은 내 곡이 OST에 선정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 충격은 드라마의 주연이 견하준이라는 사실이었다.
견하준이 부른 OST 곡을 들으며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어째서? 항상 가이드 녹음을 견하준 너한테 맡기던 습관 때문에 데모곡은 항상 네 음정에, 네 음색에 제일 최적으로 맞추어졌을 텐데.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한들 그것까지 변하는 건 아닐 텐데.
아니면 내 곡이 선정되지도 못할 만큼 그렇게 엉망이었나?
음악감독에게 확인사살을 당하고 미친 듯이 견하준한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냈다.
제발 이야기 좀 하자고. 연락을 씹는 건 둘째치고 왜 내 곡을 거부했냐고. 내 음악이 거부할 정도로 너한테 그렇게 끔찍했냐고. 그러면 왜 이제까지 가이드 녹음을 맡아 준 거냐고.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결국 나는 류재희를 불렀다.
“너 견하준이랑은 숙소 나가고도 계속 연락하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류재희가 잠깐 주춤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연락만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이거지?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걔 왜 내 문자 씹는대냐? 연락을 몇 번이나 해도 답장도 안 하고. 너 걔 독립한 집 주소 있냐? 주소 좀 내놔 봐. 직접 찾아가게.”
“그렇지 않아도 하준이 형 말 전해 주러 왔어요, 형.”
한숨을 내쉰 류재희가 몇 번을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형… 하준이 형이 형이랑 마주하기 불편하대요. 자기 때문에 형이 LnL 와서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낸 것 같아서 죄책감 들기도 하고, 그냥… 힘들었대요.”
“뭐…?”
“빚은 다 갚았으니까 이제 서로에게 미안할 건 없는 사이래요.”
“그게 무슨 개소린데! 빚은 또 뭐고 뭐가 힘들었다는 건데! 아니, 말을 해야 알 거 아니야! 류재희 너한테 말 같지도 않은 말이나 전달해 달라고만 하면 끝나는 거냐고!”
류재희의 어깨를 단단히 붙들고 으르렁거렸다.
“야, 견하준한테 똑똑히 전해. 뭐가 문제인지 네 입으로 직접 말하라고. 씨발, 안 그래도 지금 작곡 안 풀려서 죽을 맛인데 친구라는 놈이 짐이나 얹어 주네.”
겁먹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류재희가 뒤늦게 눈에 들어와 류재희를 붙들고 있던 손을 떼고 마른세수하며 짧은 사과를 건넸다.
“미안하다, 너한테 화풀이할 일은 아닌데.”
그리고 그날 새벽, 보통 사람이라면 전화를 받지 못할 시간대에 찍힌 부재중 전화와 함께 음성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그리고 난 그걸 이른 아침에야 작업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네가 보낸 문자는 다 읽어 봤어. 네가 그렇게 충격받을지는 몰랐는데. 그래도… 나는 네 곡을 도저히 부르지 못하겠어, 이든아. 내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한테 네가 작곡한 곡이 새로운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방금 들은 말을 이해해 보려고 애쓰는 와중에도 견하준의 담담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너는 정말로 끝까지 모르네. 네가 섬세하지 못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것까지 알아채지 못한 건 우리 사이가 딱 그 정도였다는 뜻이겠지. 네게 진 빚은 지난 7년간 충분히 갚았다고 생각해.
이 일방적인 음성 메시지에 의문을 내뱉어 봤자 답이 돌아오지 않을 멍청한 짓인 걸 알기에 혀끝까지 올라온 질문을 속으로 겨우 삼켰다.
-네게 하는 답장은 이게 마지막이야. 그러니 너도 내게 연락하지 말아 줘. 이만 줄일게. 잘 살아.
잔인하기 그지없는 마지막 인사를 끝까지 담담하게 내뱉은 견하준의 음성 메시지가 뚝 끊겼다.
“씨발, 씨발!”
콰직-
거칠게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아직 컴퓨터에 남겨 놨던 견하준의 솔로곡을 미친 듯이 드래그했다. shift 키를 누른 상태로 delete 키에 손가락을 가져대다가 멈칫했다.
“씨발, 진짜…”
손가락을 치우고 키보드에 머리를 박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방금까지 떠오르던 악상이 머릿속에서 엉망으로 뒤엉켰다.
* * *
“허억…!”
마치 물에 빠졌다가 거칠게 수면 위로 잡아끌어 올려진 것처럼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다급한 헐떡거림이 제법 길게 뒤따랐다.
호흡이 조금이나마 진정되고 나서야 내가 본 장면과 생각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었다.
첫 장면이었던, 나와 류재희를 둘러싼 주변 배경은 퍽 익숙했다. 회귀 전, 유일하게 안정을 찾던 장소이자 숙소보다 더 편안했던 내 작업실이었다.
몇몇 기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기기가 낯설고 신식 같아 보이는 걸 보아하니 내가 기억하지 못한 미래가 맞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손등.
무심코 내려다보았던 손등은 타투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러면 내가 에러로 인해 엿보았던 그 쓰레기 삶보다는 앞쪽의 기억이라는 소리군. 그러면 기억의 파편 옆에 적혀 있던 29가 스물아홉 살이라는 가정이 맞는 건가.
곰곰이 내가 보았던 기억의 파편을 되새기던 중, 현재와 엮인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
내 마지막 기억 속의 견하준은 그저 며칠간 나랑 말을 섞지 않았던 것뿐인데 나는 왜 견하준이 완전히 나랑 절연했다고 한 치의 의심 없이 굳게 믿고 있었지?
그저 오기로 먼저 말을 붙이지 않았을 뿐이지 말을 붙였다가 견하준에게 일방적으로 무시당한 적도 없고, 견하준의 입으로 직접 절교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없는데.
내가 다시 데뷔 초로 돌아오고 견하준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들었던 원망, 배신감, 다시금 이유 모른 채로 절연 당할 미래의 불안감.
이제 보니 겨우 그 며칠 간의 침묵 어린 냉전으로 들 만한 감정도, 감정의 무게도 아니었다.
그리고 류재희도 생각해 보니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 류재희와의 마지막 기억은 7주년 인터뷰가 끝난 지 며칠 후, SNS 반응을 보여주고 사과문 쓰라는 말에 입장문 아니냐고 했다가 “형은 진짜 답이 없네요.”라고 한숨 쉬는 것이었는데 왜 나는 그것만으로 류재희가 마지막까지 나를 놓지 않았다고 단정했지?
물론 류재희가 유일하게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까지 말을 붙여주긴 했다만 맥락상으로 보면 누가 봐도 손절 직전의 대화 아닌가.
어째서 나는 회귀 전의 류재희한테 고마움과 애틋함을 간직하고 있었던 거냐고.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은 이딴 식으로 끝났는데도.
한꺼번에 몰려오는 의문과 그 뒤로 따라붙는 진실에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하게 절묘하게 기억을 잘라 놨군.’
마지막 기억을 나와 대화가 단절된 견하준, 그리고 마지막까지 내게 말을 붙였던 류재희로 남겨 내가 굳게 믿고 있던 그 전제들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 거다.
그룹을 성장시키고 사이 개선도를 올리느라 정신없어서 그 미묘한 삐꺽거림을 파고들 겨를도 없었고. 절대 내가 눈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게 차연호가 말했던 ‘기억의 조작’임이 확실했다.
생생한 꿈의 형태로 기억을 보고 와서 그런가, 아니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진실을 마주해서 그런가, 잠을 잤는데도 영 잔 것 같지가 않았다.
시스템이 잘라 놓은 기억을 찾는 게 최우선이라는 생각과 좋은 기억도 아닌데 굳이 이런 기억들을 되찾아야 하냐는 생각이 상충해 갔다.
그때.
[전제가 틀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