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1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8화(418/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8화
시스템이 보다 못했는지 내 눈앞에 상태창을 띄웠다.
역시 헤매고 있으면 상태창도 속 터지는지 묻지 않아도 알아서 알려줘서 편했다.
[본인의 기억과 감정 사이의 미묘한 괴리감을 느끼면 열어 봐야 할 기억이었는데 시스템 대상자 본인이 반대로 한 것.] [시스템의 의도대로 갔으면 대상자가 본인 기억과 감정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해 평생 처박혀 썩을 기억이었음.]“아하, 그러니까….”
내가 아무 문제 없는 지금 괜히 기억의 파편을 열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소리지?
그런 건 내가 오픈하기 전에 미리미리 말 좀 해 주면 안 되냐?
짧은 한숨을 내쉬며 옷소매를 걷자 팔목 안쪽에 새겨진 타투가 눈에 들어왔다.
서른 살의 나라고 주장하던 놈이 새겨 놓은 흔적이.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건강 염려를 집어치우고 스스럼없이 소중한 몸에 타투를 박아 넣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를 알아야겠다.
스물여덟부터 서른까지라고 하면 제법 긴 시간으로 느껴지지만 거기에 군 복무 21개월을 제외하면 의외로 큼지막한 사건 몇 개만 훑으면 될지도?
원인이 되는 일이 일어난 곳이 군대만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그 기억을 찾으면 나는 군대 두 번 간 놈이 되어 버리는 거라고. 신검 1급 떠서 빼는 것도 안 되는데.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알아낸 것만 일단 두 가지다.
시스템이 던져 주는 퀘스트를 완수하여 미션 보장으로 기억의 파편 받기. 하지만 이 방법은 오늘처럼 시스템이 내건 조건을 충족해야만 가능하다.
수면제를 섭취한 후 에러로 뜨는 기억을 엿보기. 하지만 이 방법은 또 될지 안 될지 미지수다. 가까운 시일 내에 수면제를 한 번 더 먹어 봐야겠다. 토해 내지 않고 꿋꿋하게 씹어 삼키면 또 에러가 뜨지 않을까.
자매품으로 차연호한테 기억이 돌아오는 법을 묻는 것도 있지만 차연호에게 굽히고 싶지 않으므로 일단 보류.
팀 탈퇴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이야 그냥 무시하면 된다고 하지만 차연호도 뇌가 있는 이상 그 방법을 제게 이득되는 방향으로 판을 끌어오기 불가능하다면 쉽사리 알려 주지 않을 테고.
혹여 기억을 찾은 충격으로 또 슬럼프가 오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당장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멜로디 영감만 세 개인 걸 보니 슬럼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아침 운동을 나가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찌푸둥하고 찝찝한 피로도 풀 겸 눈을 붙였다.
‘사이좋게 지내라고까지는 안 할게. 그냥 예현 형한테 말이라도 좀 좋게 하면 안 돼?’
‘말이 씨발 좋게 나와야지 좋게 하지. 그 새끼 얼굴만 봐도 짜증 나는데 뭘 바라.’
‘하아… 그러니까 네 이런 태도가 문제라고. 네가 항상 먼저 날카롭게 말을 하니까 그 형도 맞받아치느라 그러는 거 아니야.’
‘너는 서예현이 나 대하는 태도는 문제 안 삼고 꼭 나한테만 뭐라 하더라? 그 말만 지금 열 번째다. 아무리 너한테 서예현보다 내가 더 편하다고 해도 이건 형평성의 문제 아니냐?’
‘예현 형이 먼저 너한테 시비 거는 일이 얼마냐 있냐고. 나나 그 형이나 얼마나 노력하는데도 네가 계속…! 아니야, 됐다. 열 번째라고 했지? 그만할게.’
‘곡이 좀 그래도 처럼 역주행할 수도 있잖아요. 벌써 실망하긴 이르죠.’
‘이딴 곡으로? 그래, 이딴 곡 연습할 시간에 물 떠놓고 서예현 얼굴 덕 보길 다 같이 빌기나 해라. 그럼 역주행 확률이나 좀 올라가겠다.’
‘이든아… 꼭 그렇게 말을 해야 해? 다 같이 힘내 보자고 좋게 말할 수도 있잖아.’
‘그러면 뭐 희망찬 말만 해 줄까? 현실 도피하라고?’
‘와, 진짜 이딴 소속사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준아, 너는 많고 많은 소속사 중에 왜 하필 여길 왔냐.’
‘…미안.’
‘아니, 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망할….”
물꼬라도 트였는지 어렴풋이 떠오르다가 한순간에 쏟아지는 과거의 기억들에 찝찝한 피로가 가시기는커녕 더욱 심해졌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는 걸 회귀 전의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그랬으면 우리의 결말이 최악만은 면했을까.
상쾌한 아침은 물 건너 갔지만 기지개를 켜며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방 밖으로 나갔다. 이사 온 지 일주일은 더 됐는데도 새 숙소와는 여전히 낯을 가리고 있었다.
이 숙소의 풍경이 익숙해지려면 한 한 달은 지나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걸 확실히 자각하고 있어서 그런가, 다행히 견하준의 얼굴을 마주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분명히 기억에서 막 벗어났을 때는 견하준이 존나 괘씸해서 한 대 치고 싶었는데 머리를 식히고 나니 KICKS 낙하산이 존나 괘씸해서 걜 한 대 치고 싶어졌다.
회귀 전, 여유도 인내도 부족했던 우리 둘의 문제는 누구에게도 잘못을 일방적으로 전가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최악의 형태로 절연당하고 홀로 마음 고생한 과거의 내가 약간 짠해서.
“야, 준아. 나는 OST 데모곡 중에 뭐가 내 곡인지 말 안 해 줄 거다.”
하품하며 제 방에서 막 나온 견하준에게 부러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못 부르면 솔로곡도 없는 걸로?”
중의적인 뜻이 담긴 말이었다. 내 곡을 잘 살리지 못하거나, 내 곡을 견하준이 부르지 못하거나.
“아, 이 OST에 내 솔로곡이 달려 있는 거야?”
견하준은 내가 농담이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견하준이 내 곡을 못 부르리라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너한테 이 정도 심술쯤은 부려도 되겠지.
“형은 왜 또 아침부터 심술이에요?”
2층 계단에서 내려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를 타박하는 류재희의 머리카락을 씩 웃으며 가볍게 헤집어 주었다. 이제 보니 잘 키운 막내 하나 다섯 견하준 부럽지 않구나.
“아침부터 왜 이러세요? 혹시 하준이 형이랑 싸웠는데 유일하게 저만 형 편을 든 꿈이라도 꾸셨어요…?”
얌전히 내 손길을 받고 있던 류재희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류재희가 예측한 꿈의 내용과 내가 본 기억이 상당히 비슷해서 그런 셈이라고 피식거리며 정수리를 두어 번 토닥여 주고 머리에서 손을 뗐다.
똑똑, 서예현의 방 문을 두드렸다가 아무 반응 없는 방 안에 문을 여니 빈 방이 나를 맞이했다.
“아, 이 인간 진짜 징하네. 같이 좀 가자니까.”
이사하면서 우리가 아침에 한창 돌던 공원의 러닝 트랙이 사라진 덕에 아침 운동은 그냥 헬스장에서만 하고 있었다. 공원이 있긴 한데 영 달릴 맛이 안 나더라.
같이 나가자고 해도 꼭 서예현은 이전 숙소에서의 버릇이 남았는지 아니면 나랑 같이 나가기 싫은 건지 꼭 이렇게 홀로 휙 나갔다. 기상 시간도 얼마 차이 안 나면서, 하여간.
언제나처럼 루틴인 아침 운동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 견하준과 류재희만이 주방에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뭐야, 김도빈 아직도 안 일어났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김도빈은 독방을 쓰면 안 될 것 같은데. 깨워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늦게까지 퍼질러 자고 있는 거 아니야.
어쩐지 성가신 계단이 있는데도 2층을 너무 강경하게 고집한다 했다. 2층이면 굳이 깨우러 오지 않을 걸 예상하고 2층을 쓰겠다고 우긴 거겠지.
이러면 또 그 기대를 깨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 김도빈의 늦잠 기대를 박살 내기 위해서 복층 계단을 매일 아침 오르내리는 수고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뭐 운동 더 하고 좋지.
“언제 일어날지 궁금해서 지금 하준이 형이랑 내기 중이에요. 제가 아홉 시 반에 걸고 하준이 형이 여덟 시 반에 걸었어요.”
류재희가 수저를 식탁에 놓으며 말했다.
시계를 보니 8시 25분이었다. 내가 김도빈을 지금 깨우면 내기는 견하준의 승으로 끝나겠군.
두어 번 노크를 해도 안에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자 벌컥,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대(大) 자로 누워 팔자 좋게 퍼질러 자고 있는 김도빈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발소리를 내지 않고 김도빈에게로 다가가 귓가에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빈아, 지금까지 퍼질러 자고 있으니까 좋냐? 깨우는 사람도 없어서 팔자 폈다? 내가 새벽마다 모닝콜 한번 해 줘? 하루를 내 호통으로 시작해 볼래? 어?”
꿈에서 무슨 맛있는 걸 혼자 먹고 있는지 입맛을 쩝쩝 다시던 김도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다 번쩍, 눈을 뜬 김도빈이 제 눈앞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기겁했다.
“흐아악!”
한 차례 비명과 함께 몸을 파드득 떤 김도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또, 또또또 혹시…?”
“너는 말을 어조만 듣고 내용은 안 듣냐?”
“아, 이든이 형 맞구나. 저 그렇게 나긋하게 저를 깨우는 형한테 PTSD 있어요. 평행세계 악귀 들린 형도 그렇고요.”
“서른 살이라던?”
내가 덧붙인 물음에 김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김도빈은 서른 살의 나라고 주장하던 놈과 룸메이트로 며칠을 함께 지내고 곡 작업까지 같이한 녀석이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며칠 간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졌기도 했고, 하필 김도빈이 평행세계 이 지랄을 해 대는 덕분에 반쯤은 헛소리로 치부했지만 일단은 서른 살 윤이든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을 저 녀석이라면….
밑져야 본전이었다.
“야, 도빈아. 혹시… 그 서른 살의 나라고 주장하는 놈한테 무슨 특이점 같은 거 없었냐?”
“형 데뷔 초 때보다 훨씬 더 성격 파탄 났고 꼴초였어요. 아, 또 있다. 하준이 형한테 엄청 지독한 악감정 비스무리한 거 가지고 있던 거랑 예현이 형 진짜 싫어했던 거?”
기억의 파편을 보니 회귀 전의 내가 견하준에게 악감정을 가질 만도 하긴 했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뚝 끊겼으면.
“음악은?”
지나가듯 묻자 김도빈이 아차, 하는 얼굴로 짝! 손뼉을 쳤다.
“아, 그걸 말 안 했다. 작곡을 못 한대요, 작곡을! 그게 말이 돼요? 음악 못 하는 이든이 형은 외모 뺏긴 예현이 형이랑 똑같은데!”
“와, 그렇게 비유하니까 정말 심각해 보이면서 음악을 못 하는 내가 세상 쓸모 없게 느껴진다.”
아니다, 그래도 나는 랩이라도 하지 외모 뺏긴 서예현은 대체 어디에다가 써먹어?
김도빈에게 들을 건 대충이나마 다 들었으니 다시 침대에 누우려 하는 김도빈의 뒷덜미를 콱 붙들었다.
“안 일어나냐? 빨리 일어나서 나가, 인마. 여덟 시 삼십 분을 넘기지 말라고.”
“왜요? 오늘 아홉 시에 단체 스케줄 있어요? 아닐 텐데?”
“묻지 말고 얼른 나가. 얼른, 빨리. 굼벵이 삶아 먹었냐? 걸음이 왜 이렇게 느려?”
내 재촉에 김도빈이 비척비척 방을 나섰다.
정확히 8시 30분이 된 시각을 확인하고 주방을 향해 신나게 외쳤다.
“야, 준아! 네가 이겼다!”
샐러드가 담긴 그릇을 식탁 자리에 탁탁 놓던 류재희가 굉장히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기에 건 거 없거든요? 형은 그렇게 저를 패배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아아니, 그냥 여덟 시 반에 시간이 가깝길래.”
그런데 내가 왜 이걸 변명을 하고 있냐. 가장의 무게가 어디까지 추락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