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1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9화(419/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9화
닭가슴살 샐러드로 아침 식사가 차려진 식탁에 앉아 수저 대신 포크를 제일 먼저 들며 엄숙하게 선언했다.
“내가 이번에 대화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단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 다 같이 대화의 시간을 하루에 한 번씩 가져 보는 게 어떠냐?”
내가 포크 드는 걸 보기 위해 내게 몰렸던 네 쌍의 시선이 포크를 들자마자 흩어지려다가 그 말에 다시 고정되었다.
“갑자기?”
“참 일찍이도 깨달았다.”
“그거 너무 초등학교 숙제 같은데요. 매일 가족끼리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후기 써 오라고 할 거 같다고요.”
“대화의 시간은 매일 시도 때도 없이 가지지 않아요? 레브 회의로?”
그나마 레브 회의를 꺼낸 류재희의 반박만이 저 네 개의 반응 중 가장 들어 줄 만한 반응이었다. 제일 헛소리 같은 반응은 언제나처럼 김도빈의 차지였고.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리더가 머리 쥐어짜서 내놓은 아이디어에 초등학교 숙제가 뭐냐, 초등학교 숙제가.
“이상하고 별 쓸데없는 것까지 회의하는 거 말고. 속에 담아 두고 있던 불만이나 그룹 생활, 숙소 생활하면서 힘든 점, 누구는 이런 부분을 좀 고쳤으면 한다, 하는 거. 그런 걸 단체로 말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고.”
“지금 말해도 돼?”
“아, 참고로 정규 앨범 작업 관련 불만은 안 받습니다, 형님.”
“정규 앨범 작업 관련 아니야. 나는 네가 그 드레싱을 샐러드에 그만 들이부었으면 좋겠어.”
내가 샐러드가 촉촉해지다 못해 축축하게 잠길 정도로 한껏 붓고 있던 저칼로리 드레싱 병을 가리키며 서예현이 진지하게 말했다.
무슨 시저 드레싱 듬뿍 뿌려먹는 것도 아니고 맛대가리 없는 저칼로리 드레싱도 잡는 게 사람의 도리냐고 우기고 싶었지만 막상 지적한 본인은 드레싱도 뿌리지 않고 샐러드 야채만 으적으적 씹고 있었기에 내가 할 말이 없었다.
“제 제안에 이렇게 제일 먼저 솔선수범해 주시고, 참 협조적이십니다, 형님.”
빈정거리며 드레싱 뚜껑을 닫다가 오늘 꾼 꿈이 떠올라 멈칫했다.
그래, 서예현한테 좋게 말하라고 했었지.
나도 한 번 지적받은 건 바로바로 고치려 노력해야지.
“협조적인 태도가 참 보기 좋습니다. 역시 레브의 맏형.”
짝- 짝!
어조를 누그러뜨리며 칭찬의 박수를 치자 서예현의 표정에 혼란이 깃들었다.
“비꼬는 거야, 진심이야? 나도 못 읽겠네.”
뭐긴, 반반이지. 서예현이 앞말과 뒷말에 담긴 감정을 둘 다 읽어 낸 걸 보니 역시 진정성은 통하는 모양이다.
“준아, 너도 담아만 두지 말고 즉각즉각 말해. 나한테 똑같은 잔소리를 한 게 세 번 넘어도 말하고. 너는 너무 홀로 썩히려 해서 문제라니까.”
“그날 이후로 이미 그러고 있지 않아?”
그때 주먹 다툼 이후 확실히 견하준과 내가 서로에게 솔직한 속내를 가감 없이 말하는 빈도가 늘어나긴 했다.
회귀 전에는 너무 많은 게 너무 오랫동안 꼬여서 우리가 뒤늦게나마 그놈의 낙하산이든 내 태도든 대화를 나누고 오해를 풀었다 한들 예전의 가장 친한 친구 사이로는 돌아갈 수 없었겠지.
그러니 나도 회귀 전의 견하준에게 이제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더 말해, 더. 사소한 것도 싹.”
지금의 관계가 회귀 전의 결말을 보며 생각했던, 꼬인 것 없이 첫 단추부터 비로소 옳게 끼워진 관계였으니.
“그럼 저도 말해도 돼요? 인간적으로 스케줄 없는 날에 아침 열 시까지는 자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여덟 시 반 기상은 너무 일러요.”
“열 시? 아침에 잠으로 낭비하는 시간이 아깝지도 않냐, 너는? 밤에 휴대폰을 늦게까지 하지 말고 차라리 일찍 자라. 너 숙면의 중요성 몰라? 수면 부족으로 인해서 발병하는 병이-.”
“그럼 아홉 시!”
“무슨 시장에서 가격 흥정하냐?”
결국 일주일에 두 번씩 늦잠을 허용해 주기로 김도빈과 타협했다. 그래, 나만의 기준을 타인에게 너무 강요해도 안 되지.
근데 그렇게 늦잠 자면 건강 안 좋을 텐데. 너무 과도한 수면도 건강을 해친다고 건강 이슈 기사에서 본 것 같은데.
“막내, 너는 할 말 없냐?”
“도빈이 형이 형들 안 볼 때 난간 타고 내려가는 짓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이제 안무 연습도 들어가야 하는데 메댄이라는 인간이 다치면 어쩌려고.”
류재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의 시선이 김도빈에게 향했다. 총 네 쌍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김도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눈을 부릅뜨며 즉시 타박과 잔소리를 쏟아 냈다. 이게 류재희가 원하는 반응일 게 분명했기에. 사실 내가 잔소리하고 싶은 것도 있고.
“너는 나이가 몇인데 그걸 걷기 싫어서 난간 타고 내려가냐.”
“가끔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죠.”
“시끄러워, 인마. 한 번만 더 난간 타고 내려온다는 소리 들리기만 해 봐. 계단 내려올 체력도 없다고 간주하고 아침 운동 끌고 다닐 줄 알아.”
어떻게 그걸 말할 수가 있냐고 류재희한테 징징거리기 시작하는 김도빈을 다들 익숙하게 무시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까 나 오늘 좀 리더다웠군. 이런 게 바로 리더의 역할이지.
리더인지 트롤러인지 구별이 안 가던 과거의 윤이든은 죽었다. 그러고 보니까 진짜 죽었댔지, 음.
* * *
“하루는 왜 24시간일까. 인간은 왜 그 24시간 중에 일곱 시간 이상은 무조건 자야 하는 걸까. 왜 하루는 48시간이 아닌 거지? 이렇게 할 일이 많은데?”
“엥, 하루가 48시간이면 너무 길지 않아요?”
“길긴 뭐가 길어. 하루가 48시간이어도 적정 수면 시간 지키면 지금 이걸 다 못 끝내게 생겼는데. 아이고, 내 수명. 내 수명 실시간으로 갈려 나가고 있네.”
“저도 갈리고 있어요. 저도 지금 안무와 음원을 다 어우르고 있다고요.”
“그래그래. 너 짱 해라. 짱 해.”
안무 리스트 체크하느라 바쁜 거 알아서 음원도 검수만 맡기는데 누가 들으면 내가 아주 혹독하게 부려 먹는 줄 알겠다, 야.
적당한 시간에 김도빈을 먼저 보내고 나 홀로 늦은 저녁까지 쭉 작업실에 틀어박혀 OST 데모곡과 병행하여 정규 앨범 곡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계획대로 모두가 잠든 늦은 밤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아무도 깨지 않게 살금살금 선반을 열어 상비약을 모아 놓은 상자를 열었다.
또 수면제를 먹는 꼴을 들키면 우리 웬수 같은 멤버들이 또 빙의했다고 난리 난리를 칠 게 분명했기에 무사히 수면제 두 알과 물 한 컵을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아니, 사람이 수면제를 먹으면 그렇게 잠이 안 오냐고 걱정을 해야지 무슨 허구한 날 빙의 의심이나 해 대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 놈들만 모아 놓은 그룹이다, 여긴. 나는 제외하고 싶었지만 양심에 찔려서 그냥 나까지 이상한 놈으로 묶었다.
불면증 증상도 없는데 수면제를 먹는 건 처음이어서 약간 긴장은 됐다. 이게 혹시 건강이나 수면 패턴에 지장을 주지 않겠지?
지금 잠이 안 오긴커녕 피곤해 죽겠는데 이 상태에서 수면제를 먹어도 되는 건가.
이걸 먹고 기억도 못 찾으면 나는 그냥 건강 해친 놈이 되는 거 아니야?
온갖 고민과 걱정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손가락으로 집은 수면제 한 알을 빤히 바라보다가 결연한 얼굴로 입에 털어 넣었다.
물과 함께 수면제를 목구멍 너머로 넘기려 하다가 이전과 별다를 바 없이 넘기기 직전에 토해 냈다.
기도로 넘어가려 하는 물에 잔기침을 몇 번 내뱉었다. 다른 알약은 잘만 넘어가는데 꼭 수면제만 이러더라.
그래, 물과 함께 삼키는 건 실패다. 그러니 이제 씹어먹기 전략으로 간다.
미리 작업실 근처 편의점에서 사 왔던 레몬 맛 막대 사탕을 주머니에서 쓱 꺼냈다.
서예현이 봤으면 막대 사탕 칼로리 읊어 보라고 난리를 쳤을 테지만 지금 나는 서예현과 룸메이트가 아니니 상관없었다. 독방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입 안에 수면제를 던져넣고 어금니로 짓씹었다.
알약의 미묘한 맛이 입안에 퍼지고 거부 반응이라도 일으키듯 절로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이전과 같은 에러 창은 뜨지 않았다.
한 번 에러 일어났다고 바로 고친 거야? 이럴 때만 쓸데없이 부지런하네.
휴지에 수면제 조각을 뱉고 남은 물로 입을 헹군 다음 막대 사탕을 곧바로 물었다. 레몬맛이 입 안에 퍼지며 조금 살 것 같았다.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어쩐지 살짝 가물가물한 시야에 눈을 두어 번 느릿하게 깜빡였다.
수면제로 기억을 되찾는 건 실패로 돌아갔다. 차연호에게 굽히기 싫다면 결국은 정석법밖에 없나.
“그런데 대체 그 29살 기억의 파편을 여는 조건이 뭐였길래 대화하다가 그 기억이 풀려?”
[‘기억의 파편(29)’이 뜨는 필수 조건: 절연 분기점 무사 회피 및 사이 개선도 100 달성] [‘기억의 파편(29)’ 개방 조건: 견하준의 드라마 OST 승낙]기억이 현생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면 기억을 풀어 주는 건가.
내가 기억하는 것과 현실의 괴리감이 일상에 균열을 만들면 언제든지 까서 확인할 수 있도록.
내가 절연한 기억도 없으면서 견하준이 나를 손절했다 굳게 믿고 있었던 것처럼, 류재희와의 마지막 대화를 기억하고 있음에도 류재희가 나를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다고 고마워하던 것처럼 또 놓친 부분이 있나?
[깊이 파고들지 않기를 추-]시스템이 띄운 상태창의 글자를 채 다 읽기도 전에 가물가물한 시야가 스르륵 어둠에 휩싸였다.
* * *
오늘은 서예현과 함께하는 예능 촬영일.
원래는 서예현과 견하준, 이렇게 둘이 예능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견하준의 드라마 촬영 스케줄이 변동되는 바람에 그날 마침 스케줄이 없는 내가 견하준의 대타로 들어가게 되었다.
김도빈은 <트러블 트레블> 촬영 때문에 오늘 저녁에야 귀국하고, 류재희는 음방 MC 스케줄이 있었으므로 레브 멤버 두 명이 필요한 스케줄의 대타를 뛸 수 있는 건 오직 나밖에 없었다.
좋아, 덕분에 수명이 8일 더 갈리게 생겼군.
“망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형님.”
“상금 무조건 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줄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형님.”
머리카락을 차마 쥐어뜯지는 못하고 제 머리만 감싼 서예현이 절망하여 중얼거리는 말에 꼬박꼬박 대꾸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게 우리가 오늘 나가는 예능인 <15 Minutes>는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중인 요리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그래, 다 완벽한 내가 공부와 더불어서 영 젬병인 종목인 요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