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2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21화(42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21화
“형, 떡볶이 말인데, 만두피로 떡을 대체하는 건 어때? 특색 있지 않아?”
이게 서예현이 당부했던 것 중 하나인 레시피 변형이라 안 받아들이려나?
하지만 이것 말고는 정말로 방법이 없었다. 라면 끓여서 제출했다간 성의 없이 방송에 임했다고 욕먹을 위험도 있단 말이다.
김밥도 밥은 있긴 하지만 밥으로만 김밥을 만드는 재주가 나한테 있을 리가. 밥 뭉쳐서 주먹밥이라고 내놓을 자신은 있지만 그 행동에 따라오는 결과까지 감당할 자신은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주먹밥과 라면은 센스의 문제가 아니라 성의의 문제다.
“음, 밀떡도 밀가루 떡이니까 만두피랑 비슷하려나?”
“그래,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떡이 없으면 만두피지.”
“특색 있고 괜찮게 들리기는 하는데 하필 네 아이디어라 영 불안하다…”
“그럼 형이 이거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 봐. 나는 무조건 따를게. 요리에 한정해서는 형이 나보단 낫잖아.”
“저칼로리 분식이 뭐가 있지…?”
“우리가 먹는 게 아니야, 형.”
“알아, 그런데 내가 고칼로리를 못 만들어.”
컨셉질도 저렇게는 못 하겠다. 아무리 컨셉질을 해도 ‘진짜’와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걸 서예현은 저렇게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서예현은 저칼로리에만 사로잡혀 다른 대체 메뉴를 생각해 내지 못했고, 결국 만두피 떡볶이가 우리의 메뉴로 선정되었다.
드디어 우리가 재료를 선택할 차례가 다가왔다.
이전에 곤약 떡볶이를 만들었을 때 재료가 뭐였는지 떠올려 보려 했지만 알아서 다듬어지고 계량되어 놓여 있던 재료를 한꺼번에 냄비에 때려 붓고 끓인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형, 재료 뭐 필요해?”
빠르게 줄어드는 시간 제한 타이머에 재료 담는 걸 거들기 위해 양배추를 담는 서예현에게 묻자 서예현이 손끝으로 만두피를 가리켰다.
“이전에 곤약 떡볶이 레시피 적을 때 양념 재료는 대충 익혔긴 했거든? 일단 너는 저기 가서 만두피랑 파랑 달걀 몇 개 가져와.”
만두피를 덥석 집어 들자 서예현이 다급히 나를 만류했다.
“그거 다 가져오지 말고 3분의 1만! 우리 라자냐 만드는 거 아니잖아!”
아무리 내가 요리를 못 해도 우리의 요리에 만두피가 이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냥 적당히 떼어내려고 다 들어 올린 거지. 사람을 뭐로 보고.
서예현은 이제 능숙한 손길로 떡볶이 양념 재료를 담고 있었다. 흔치 않게 믿음직스러워 보여 나도 마음 놓고 달걀을 부족하지 않게 넉넉히 다섯 개를 담았다.
타임아웃을 알리는 타이머에 담은 재료를 들고 우리에게 배정된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가져온 재료를 확인하던 서예현이 달걀을 보고 떨떠름하게 물었다.
“삶은 달걀을 다섯 개나 넣을 필요가 있어? 설마 심사위원당 하나씩이야?”
“혹시 부족할까 봐 그랬지.”
“두 개면 충분하거든. 자, 너는 일단 달걀을 두 개 삶아. 달걀 삶을 줄은 알지?”
“아니, 누가 달걀도 못 삶겠냐고. 그런데 몇 분 삶아야 해? 5분?”
“누가 달걀도 못 삶긴. 네가 못 삶는다. 5분이면 노른자는커녕 흰자도 안 익거든. 9분 삶아. 소금 한 꼬집 넣고 삶아야 하는 건 알지?”
“오우, 당연히 알지.”
아무리 나라도 달걀 삶을 때는 소금과 식초를 넣어야지 삶을 때 깨지지 않고 깔 때 껍질이 잘 벗겨진다는 상식쯤은 알고 있다.
다만 그 상식이 달걀을 재료 칸에서 가져올 때는 생각이 안 나고 서예현이 말하고 나서야 생각난 게 문제였다.
“그런데 소금을 안 가져왔다. 형이 가져왔지?”
“나도 안 가져왔는데. 어쩔 수 없지. 그냥 삶아. 나트륨 섭취 덜하고 좋네.”
“내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가 먹는 게 아니야, 형. 심사위원들 입맛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그렇다고 간장을 넣고 삶을 수는 없잖아.”
방송 촬영 중이고 카메라와 패널들 앞이라 서로에게 건네는 말의 어조는 이보다 더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방송만 아니었으면 서로에게 빡대가리니, 칼로리 집착증이니 할 말 다 하고 속 편하게 요리했을 텐데.
달걀이 든 냄비에 물을 올리고, 만두피에 물을 묻혀 가래떡처럼 돌돌 말고 있는 서예현의 옆에서 거들었다. 내가 손이 더 빠르고 꼼꼼하게 완성하는 걸 확인한 서예현은 내게 만두피 가래떡화를 맡기고 대파와 양배추를 다듬기 시작했다.
능숙한 칼질로 쓱쓱 떡볶이에 들어갈 채소를 손질하고 마늘을 다진 서예현은 이제 떡볶이 양념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고춧가루와 고추장, 간장, 다진 마늘을 넣어서 섞은 서예현이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내 기억 속 레시피에는 설탕 한 스푼이었거든? 그런데 그렇게 넣으면 너무 달 것 같은데 설탕을 반 스푼 정도로 좀 줄여도 되지 않을까?”
“내가 세 번째 말하지만 우리가 먹는 게 아니야, 형. 레시피를 따라.”
양배추를 적당히 데친 물에 양념을 풀고 떡처럼 돌돌 말아 놓은 만두피를 넣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했으나 떡볶이 국물이 끓기 시작한 이후로는 난이도가 급격히 하드 모드로 치달았다.
“물도 묻혀서 말았는데 왜 풀어지는데? 이래 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형, 휘젓지 말아 봐.”
“그런데 이거 안 저으면 눌어붙잖아.”
“그래? 어쩌지?”
“일단 젓자. 눌어붙어서 타는 것보단 만두피 풀어지는 게 더 낫겠지.”
저을수록 점점 처참해지는 비주얼에 나와 서예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어떻게든 그릇에 예쁘게 담아 보려 노력했지만…
“이게 맞나…?”
너덜너덜 찢어지기까지 해 더욱 처참해진 만두피 떡볶이를 보며 서예현이 해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냄비에 남은 만두피를 하나 먹어 보니 내 손길이 아닌 서예현의 손길이 닿아서 그런지 맛은 그럭저럭 괜찮긴 했다. 하지만 지금 맛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거 비주얼이 너무 심각하지 않아? 우리가 이걸 요리랍시고 제출해도 되는 걸까? 음식이 맛만 좋으면 된다지만 그래도 겉모양이 6할은 먹고 들어가는데 이런 개밥 같은 걸 내도 될까?”
“개밥이라니, 형. 개밥한테 실례야. 요즘 개밥이 사람 밥보다 더 잘 나와.”
“그렇구나. 우리 결과물은 개밥보다도 못한 거구나.”
넋 나간 목소리와 얼굴로 서예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심사할 때 형이 심사위원들 앞에 서 있어. 형 얼굴로 이 완성물 겉모양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야. 어때, 굿 아이디어 아닌가?”
“그럴까?”
평소에는 헛소리 좀 하지 말라고 맞받아쳤을 텐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 보니 서예현도 우리가 제대로 조졌음을 체감한 모양이었다.
하긴, 이 완성본 비주얼을 봐도 위기를 느끼지 못하면 안과 가서 시력 검사 한 번 받아 봐야지.
이걸 이대로 제출할 시 심사평가에서 들을 혹독한 독설들이 쉬이 예측 가능했다. 맛은 딱히 문제가 없으니 겉모습만 어떻게 수습하면 될 것 같은데. 위를 덮어 버린다든가.
그때, 만두피 떡볶이를 이어 두 번째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서예현을 휙 돌아보며 결연하게 말했다.
“그래. 형, 덮자.”
“뭐, 뭘 어떻게 덮어? 만두피로 위를 덮자고? 차라리 그게 비주얼적인 면으로는 더 나을 것 같긴 하다. 만두피 몇 장 남았어?”
“아니, 만두피 말고.”
내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따라 시선을 옮긴 서예현이 눈을 깜빡이다가 뒤늦게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유일한 요리 특기를 선보일 시간이군.
남은 떡볶이가 든 냄비를 버너에서 내려놓은 서예현이 대신 프라이팬을 올리는 동안 빠르게 보울에 달걀 세 개를 풀어 휘저었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조심스럽게 달걀물을 붓고 오른손에 젓가락을 들었다.
“3분 남았거든? 그 안에 만들 수 있어?”
“3분이면 열 개도 만들지.”
서예현의 걱정 가득한 물음에 믿음직스럽게 대꾸해 주고 이제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회오리오믈렛 제조를 시작했다.
프라이팬 위에 둥글게 퍼진 달걀물을 젓가락으로 양 가장자리에서부터 중앙으로 크게 한 번 끌어와 잡아 주고 그 상태에서 젓가락을 천천히 돌려가며 회오리 모양을 잡아 준다.
모양을 잡은 달걀이 어느 정도 익었을 때 프라이팬을 들고 그릇 위에 부어 주면 완성.
이제 겉모양이 거지 같던 떡볶이는 회오리오믈렛 아래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오, 비주얼이 떡볶이가 아니라 오므라이스라고 해도 믿겠다.”
솔직히 오늘의 MVP는 인간적으로 나를 시켜 줘야 한다. 이걸 살리네, 이걸.
땡-
완성을 알리는 종을 치며 자화자찬하다가 내 말에서 특이점을 깨닫고 멈칫했다.
“그런데 잠깐만. 오므라이스도 분식집에서 팔지 않나?”
“그러네…?”
“우리 뭐 한 거야?”
“그러게…?”
쉬운 길을 두고 먼 길도 아니고 거의 오지를 걸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이 멍청한 행태에 둘 다 넋이 나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래도 특색 있는 요리로 방송 분량은 뽑았잖아.
서예현과 나란히 서서 겸허히 평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내 눈앞에 상태창이 제멋대로 펼쳐졌다.
[보유 아이템 목록] [-요리왕 대장금: 1시간 간 요리 능력 상승]그렇구나. 요리 능력 상승 아이템이 있었구나.
이런 게 있으면 촬영 전에 좀 말해주지 그랬냐, 도움이라곤 안 되는 망할 시스템아.
오므라이스가 지금 생각난 것도 혈압 오르는데 이걸 왜 굳이 지금 보여주는 거냐? 나 여기에서 혈압 올라서 쓰러지라고?
* * *
방송 촬영을 마치고 진이 다 빠진 채로 숙소로 돌아오자 <트러블 트레블> 촬영을 마치고 귀국한 김도빈과 우리와 마찬가지로 스케줄을 마치고 온 류재희가 현관 앞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아무리 내가 가장의 무게, 이러고는 있어도 스케줄 끝난 나를 마중 나오는 이런 연출까지는 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전에 어서 오셨냐는 인사 대신 재촉 같은 물음이 쏟아졌다.
“형들, 몇 등 했어요?”
그래, 얘네도 아직 그 정도까지 가진 않았구나. 그렇지만 촬영 잘 하고 왔냐는 인사가 먼저지, 우리 등수 까는 게 먼저냐? 어?
“그건 왜 물어봐?”
퉁명스럽게 묻자 김도빈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대답은 물론이요 내가 묻지도 않은 말까지 쏟아냈다.
“내기했거든요. 저는 예현이 형이 있어서 3등에 걸었고 막내는 오늘의 주제로 고칼로리 음식이 나올 확률이 50%라고 4등에 걸었어요.”
요즘 또 내기가 유행이냐? 꼭 류재희가 껴 있는 걸 보니 류재희의 새로운 취미임이 분명했다.
대답 대신 손가락 하나를 척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