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2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26화(42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26화
내 머리는 반반 머리였다.
차라리 위아래 반반이었으면 말이나 안 하지, 오른쪽 왼쪽 반반이었다. 오른쪽은 애쉬 그레이, 왼쪽은 흑발.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싶었다.
다른 멤버들 머리 색은 지금까지 활동하며 했던 머리 중에서 제일 잘 어울리는데 왜 나만 양반후반 머리인가.
내 머리를 보고, 한 10분인가 후에 갑자기 견하준이 짬짜면이 먹고 싶다는 굉장히 뜬금없는 소리를 해서 혹시 내 머리가 짬짜면을 떠올리게 한 건가 싶어 더 우울해졌다.
물론 이 머리가 내게 안 어울리지는 않았다. 스타일리스트 팀과 함께 비주얼 회의까지 거쳤는데 나 엿 먹어 보라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우스워지는 머리로 활동을 진행할 리가 있겠는가.
나에게도 제법 어울리고 콘셉트에도 제법 맞춘 머리였다. 그저 내 미학과 영 거리가 있었을 뿐이지.
드디어 후드 아래 드러난 내 머리를 빤히 보던 김도빈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디즈니에 101마리 달마시안 애니 있잖아요.”
“내 머리가 달마시안 점박이 무늬 같다고?”
“아니요? 거기에 나오는 악당 같아요. 그 악당도 반반머리가 특징이었는데.”
달마시안밖에 생각이 안 나 대체 얘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고찰하고 있는데 견하준이 선수 쳤다.
“아, 기억난다. 달마시안 가죽 벗겨서 모피 코트 만들려고 한?”
“이런 미친! 무슨 그런 미친놈이 다 있어! 내가 그런 천하의 시발놈 같이 보인다고?”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시발놈이라 해서 초심도가 깎였지만 후회 따위는 없었다. 강아지로 모피 코트를 만들려 하는 천하의 싸패는 시발놈이라는 욕도 부족했다.
무심결에 양손으로 머리를 쥐었다가 어떤 꼴로 보일지 생각하고 멈칫했다. 젠장, 당분간 머리를 쥐어뜯을 때 양옆이 아니라 앞뒤로 쥐어야 하나? 아니, 그게 더 우스워 보이려나?
이 머리는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귀찮았다. 한쪽만 푸석해질 머릿결이라든가.
물론 내가 원하는 것만 하고 살 수 없고, 내 취향과 동떨어져도 최고의 결과치를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한 법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머리를 보고 떠오르는 게 짬짜면이랑 강아지로 모피 코트를 만들려 하는 악당은 좀 너무하지 않냐.
물론 짬짜면은 견하준이 직접적으로 시인하지 않긴 했지만 맥락이란 게 있잖냐?
어느새 제 휴대폰이 있는 곳까지 굴러가 휴대폰으로 101마리 달마시안 빌런을 검색해 본 서예현이 다시 굴러와서 내게 휴대폰 화면에 뜬 사진을 보여 주며 키득거렸다.
“오, 봐 봐. 진짜 닮았어.”
초점 없는 눈으로 서예현을 바라보자 서예현이 식겁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머리 색이 닮았다고, 머리 색이! 설마 외모가 닮았다는 소리겠냐고!”
“주어를 생략한 것에서 형님의 의도가 아주 잘 느껴집니다. 누굴 그 정도도 못 읽는 빡대가리로 보십니까.”
아래에서 연습실 조명을 받아 반짝 빛나는 서예현의 머리 색깔이 존나게 잘 나와서 더 빡쳤다. 내가 했을 땐 저런 색이 안 나왔던 것 같은데. 염색약도 사람 얼굴을 가리는 건가.
류재희의 인상이 염색으로 한결 더 짙어졌다면, 머리 색을 바꾸며 인상이 확 달라진 멤버들도 존재했다.
일단 김도빈은 아니었다. 김도빈은 그저 맹한 인상이 덜 맹해진 정도였다.
그럼 남은 건 서예현이랑 견하준이라 이렇게 빙빙 돌려 말할 필요가 없었군. 아무튼,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라 머리 색이 이렇게까지 인상을 좌지우지하는 건가 싶어서 신기했다.
“그런데 준이 너 드라마 촬영은 그 머리로 괜찮냐…?”
“당분간은 헤어스프레이로 염색하고 촬영해야지. 나 때문에 괜히 뮤비랑 컨포를 국내에서 촬영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염색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견하준이 약간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견하준의 드라마 촬영 스케줄 때문에 몇 주는 발이 묶이는 해외 촬영은 불가능해 뮤직 비디오 촬영은 국내에서 진행된다고 콘티와 함께 전해 들었다.
스튜디오에서 조명 끼고 찍는 씬이 많았기에 딱히 해외가 아니어도 퀄리티에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긴 했다.
“네 탓이겠냐. 어차피 우리 소속사, 해외에서 뮤비 세 편 찍을 예산부터 안 될걸? 해외에서 찍었으면 뮤비 한 편이었을 거 국내 촬영이라 세 편 찍었다고 생각해.”
“맞아요, 하준이 형. 언제부터 우리가 해외 촬영이 당연했다고 그래요. 저희도 국내가 훨씬 편하고 좋죠. 안 그래도 도빈이 형이랑 저도 고정 스케줄 있는데요, 뭐.”
내가 견하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네자 류재희도 카피캣처럼 나를 따라 했다.
“하준이 형, 형이 지금 상념이 많아서 괜히 별것도 아닌 걸로 땅굴 파고 들어가시는 거예요. 자, 하준이 형의 머리를 비우기 위해 연습 재개합시다!”
짝짝!
김도빈이 박수를 치며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다가 갑자기 든 생각에 눈을 깜빡였다.
“쟤는 왜 내가 할 대사를 자기가 치고 있는 거냐?”
* * *
“으아아… 뮤비 세 편 처음에 들었을 때는 좋기만 했는데 촬영 강행군 들어가니까 빡세네요.”
“아무래도 일정 내에 끝내야 하니까. 스탭 분들도 힘드시겠지.”
견하준이 가면을 만지작거리며 류재희의 한탄에 대꾸해 주었다.
이번 활동의 센터이자 세 뮤직 비디오의 주연을 맡은 류재희라 힘들 만도 했다. 우리 중에 제일 뛰어다니고 구르고 물에 들어가고, 아무튼 제일 고생을 한 게 류재희였다.
참고로 김도빈의 예언대로 첫 번째 뮤직 비디오는 퍼포먼스 파트가 없었다.
“오늘이 두 번째 뮤비 첫 번째 촬영일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이거 촬영을 내일 끝내도 아직도 촬영할 거 하나가 더 남았다는 게….”
“그래도 오늘은 뛰지는 않잖아? 머리 위로 물 끼얹어질 일도 없고.”
정말로 ‘개고생 체험, 삶의 현장’이었던 어제의 촬영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시커먼 물세례를 몇 번을 맞았던 어제만 생각하면…”
투덜거리다가 갑자기 드는 오한에 멈칫했다.
잠깐, 어제? 뭔가 어제 있었던 매우 중요한 일을 잊은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런 젠장! 이걸 잊고 있었다니!”
드디어 떠오른 그 ‘매우 중요한 일’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어제가 용철이 형 정규 2집 발매일이었는데. 이 형 뜨고 처음 내는 정규라 발매되자마자 인별에 올려서 홍보 좀 때려 주려고 했는데 이걸 까먹고 있었네.”
내 계획이 이렇게 틀어지다니. 그걸 자각하자마자 지대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지금 인별에 앨범 발매 캡쳐해서 올리면 까먹고 있다가 올린 티 다 나겠지? 그건 너무 가오 빠지는 일이었다.
“그럴 만도 해. 우리 어제 뮤비 촬영 끝나고 숙소 오자마자 다들 지쳐서 바로 곯아떨어졌잖아.”
견하준이 옆에서 나를 다독였지만 내게는 지금 들리지 않았다.
“어쩐지 단톡이 엄청 쌓였더라. 아, 형들! 한 명이라도 갠톡으로 삐삐 좀 쳐 주지!”
어떻게 한 명도 나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있어?
거칠게 머리를 헤집으려다가 지금 뮤비 촬영 중인 걸 자각하고 손을 쓱 내렸다. 곧 휴식 시간 끝나고 다시 촬영 재개하는데 세팅해 놓은 머리를 망치면 안 되지.
“아오씨, 용철이 형 혹시 내가 단톡에서도 축하랑 언급도 안 했다고 삐친 거 아니겠지?”
다른 형들은 둘째치고 용철이 형한테까지 따로 온 게 없는 채팅방을 보자 괜히 초조해졌다.
“아니야, 그 형은 이 정도로 삐칠 사람이 아니야. 내가 DTB에서 자기 팀 다 탈락시키고 피처링 부탁해도 머리 한 대 쥐어박기로 끝냈는데 그럴 리가.”
까먹었다고 말하기 머쓱해서 메시지를 보내지도 못하고 거의 자기 세뇌급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내 옆에서 류재희는 이미 차트 확인 중이었다.
“확실히 힙합이 대세이긴 대세인가 봐요. 어제 뜬 곡인데 벌써 음원 차트 5위네요.”
[5위-new ‘D.I – WAVE’ ♥21,953] [21위-new ‘D.I – 비행(Feat. 윤이든 of Reve)’ ♥38,001]쭉쭉 차트를 내리던 류재희가 손을 멈칫했다.
“오, 언제 피처링하셨어요? 따로 막 D.I 래퍼님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그냥 편하게 D.I 형이라 해. 뭔 놈의 래퍼님이야. 그 형 은근 감수성 쩔어서 내 친한 동생인 네가 이렇게 부르는 거 알면 너무 거리감 있다고 눈물 훔칠걸?”
슬쩍 류재희가 보여주는 차트 순위를 눈에 담았다.
“그냥 수록곡이라 부담 갖지 말라 해서 피처링 파트만 녹음해서 전달했는데 순위 왜 이렇게 높아?”
좋은 곡에 내 존재 버프까지 들어가서 수록곡 치곤 높은 모양이었다. 애초에 곡이 별로였으면 아무리 용철이 형이라고 해도 내가 피처링 오케이 안 했지.
수록곡 피처링도 내가 용철이 형한테만 준 특권이었다. 용철이 형 말고 다른 사람이 타이틀곡도 아닌 수록곡 피처링을 요청한다? 어림도 없지.
“자, 이든 씨 파트부터 촬영 다시 갈게요!”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이 실수를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며 몸을 일으켰다.
내 촬영 순서에는 잡념을 지우고 촬영에 임하고, 다른 멤버들의 순서에 다시 머리를 굴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실수 수습은 물론이요, 용철이 형의 곡 홍보까지 될 만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혼자서 찍거나 멤버들을 데리고 아마추어적으로 찍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프로가 앞에 있는데 한 번 찔러는 봐야 하지 않겠나.
오늘 자 뮤비 촬영을 마치자마자 감독님께 다가가 조심스럽게 요청드렸다.
“감독님, 혹시 이 스튜디오에서 30초 정도 원테이크로 곡 커버 영상 찍기 가능할까요?”
부터 , <청류가(淸流歌)>와 <연하가(煙霞歌)> 뮤직 비디오 촬영을 쭉 맡아 주시며 우리와 꽤 친밀해진 감독님이라 부탁을 꺼내볼 수라도 있었다.
다행히도 감독님은 그 정도면 일도 아니라고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감독님이 용철이 형의 신곡을 듣고 음향 감독님이 MR을 찾는 동안 내가 입고 왔던 후드티로 의상을 갈아입었다.
마이크를 옷에 차고 스튜디오 중앙에 섰다. 불이 꺼지며 홀로그램 영상이 스튜디오 벽을 뒤덮었다. 다행히 오늘 뮤비 촬영장은 홀로그램 배경을 이용한 곳이라 촬영 장소 스포가 될 위험은 없었다.
흘러나오는 용철이 형의 정규 2집 타이틀곡 MR에 맞추어 제일 인상 깊었던 소절을 내 스타일로 읊었다.
곡 커버 영상 촬영은 원테이크인 만큼 한 번에 끝났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또 뵙겠습니다!”
저녁에 편집본을 받아 보고 재생하자마자 자축할 생각도 없었는데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크으, 이건 진짜 이틀 늦게 올려서 맘 상했어도 싸악 용서될 퀄리티다, 솔직히.”
용철이 형이 이거 보고 나한테 바로 연락 한다 vs 만다. 이걸로 홍보 잘되면 생색 엄청 내야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인별에 커버곡을 업로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