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2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28화(428/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28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류재희가 다시 말을 반복했다.
“형이 라방에서 만들어 준 만두피 떡볶이.”
“왜…?”
갑자기 그게 왜 먹고 싶은데. 지금은 요리왕 대장금 아이템도 없단 말이다.
아이템 도핑이 없는 지금의 내가 떡볶이를 만든다면 OA 라이브 방송에서 선보인 그 때깔 좋은 떡볶이가 아니라 견하준이 한 입 먹고 소화제를 털어 넣었던 곤약떡볶이급의 폐기물이 완성된다.
그걸 아픈 애한테 먹이는 건 내가 생각해도 못할 짓이었다.
“먹고 싶은 거 말하라 해서 말한 건데 왜냐고 물으신다면….”
“아니야, 막내야. 분명 먹고 싶은 다른 메뉴가 있을 거야. 잘 생각해 봐.”
왜 많고 많은 음식 중에 하필 그거냐고.
만약 치킨이나 피자, 짜장면 같은 게 먹고 싶다고 했으면 나는 서예현과의 전쟁도 불사하고 어떻게든 그걸 배달시켰을 것이고, 제철이 아닌 과일이 먹고 싶다 했으면 마트랑 백화점 식품관을 털어서라도 가져왔을 터였다.
그것들은 과정이 힘들다 해도 일단은 가능한 영역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게 있어서 막내의 저 말은 전설의 꽃 우담바라 가져 오라는 소리와 일맥상통했다.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그 아이템 없다고, 지금.
“지금 생각나는 게 그거밖에 없어요. 먹고 싶은 것도 그것밖에 없고.”
세상에는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불가능한 일이 있다, 막내야. 안타깝지만 바로 오늘이 세상의 쓴맛을 느껴야 할 날 같구나.
“예현이 형이 도끼눈을 뜨고 있어서 국물 딱 한 숟갈만 떠먹을 수밖에 없던 그 맛이 자꾸 머리에 맴돌더라고요.”
내가 속으로 혀를 차고 있는 동안 류재희는 계속해서 힘 다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엄마가 예전에 해줬던 떡볶이 맛이랑 비슷한 거 같아서… 그냥, 그렇게 되고 연 끊고 나니까 그런 게 문득 한 번씩 떠오르면서 사무쳐서….”
어쩐지 물기까지 묻어나오는 듯한 류재희의 목소리에 다급하게 시스템을 속으로 불러 재꼈다.
시스템! 뭐하냐? 자냐?
빨리 요리왕 대장금인지 요리신 대장금인지 아이템 좀 내놔 봐!
이걸 듣고도 아이템을 안 주면 너는 정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거다.
시스템을 협박하던 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시스템은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무형의 무언가라는 사실을.
덕분에 내 협박은 시스템한테 씨알도 들어먹히지 않았고, 나는 또 한가득 쌓여 있던 랜덤 티켓 깡을 해야 했다.
‘와, 이걸 안 주네.’
무려 열 개의 랜덤 티켓을 깠는데도 아이템 대장금 어쩌고는 나오지 않았다.
그거 안 주려면 만병통치물약이나 주지, 망할 시스템.
삶의 위기를 너무 아이템에만 의존하지 말라는 시스템의 빅피처인가. 그런데 왜 그 빅피처를 꼭 막내가 아플 때 보여 주고 그러냐.
어차피 류재희는 근처 분식집 시판 떡볶이로 바꿔치기라도 해? 하지만 류재희가 과연 속세의 맛과 핸드메이드의 맛을 구별도 못 할까.
내 고민과 당혹감이 류재희에게도 다 보였는지 이불을 목 끝까지 올린 류재희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제가 떡볶이에 정신이 팔려서 형 요리 조건이 까다로운 걸 깜빡 잊고 있었네요. 형 힘들면 굳이 안 해 주셔도 돼요. 제가 괜한 부탁을 했나 봐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류재희의 눈에 아쉬움과 미련이 그득한 게 보여서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얌마, 형이 그 정도도 못 해 주겠냐?”
일단 호쾌하게 외치고 봤다.
그래, 사실 아이템은 내제된 내 재능을 극대화시켜 주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한테 엄청난 요리 재능이 내제되어 있을 수도.
[아닙니다!]시스템 네가 뭘 알아.
* * *
“도빈아, 막내 불러 와라.”
내 옆에서 환장의 요리쇼를 구경하던 김도빈이 내 지시에 굉장히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컴백 앞두고 몸살 걸린 나약한 놈은 이 그룹에 필요없다고 막내를 독살하시려는 거예요…?”
“그래도 나름 곤약떡볶이보다는 괜찮게 되지 않았냐…?”
“아니, 왜 기준이 또 곤약떡볶이로 회귀하신 거예요. 라방에서 신들린 요리 실력을 선보이신 지 얼마나 됐다고. 잠깐, 신들린? ‘귀’신들린…?”
그래, 시발. 대장금 귀신 들렸다. 어쩔래.
시스템은 진실만을 말하는 놈이었다. 나한테 요리 재능이 내제되긴 개뿔이. 이게 정말로 나의 최선이었다.
“막내가 내 떡볶이 먹고 싶다고 했으니까 맛이라도 보라고 해. 약 먹어야 하니까 뭐라도 먹는 게 낫지.”
“라방에서 성공시켰던 떡볶이겠죠. 절대 이런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을 텐데요.”
“시꺼, 인마. 말대꾸 꼬박꼬박 그만 하고 빨리 막내 데려와.”
김도빈은 내 강요에 이게 맞나 싶은 얼굴로 터덜터덜 복층 계단을 올라 류재희의 방으로 사라졌다.
“류재, 혹시 탄내 나지 않아?”
김도빈, 저 자식이…. 내가 눈을 부라리자 김도빈이 찔끔해서 눈을 피했다.
두어 번 코를 찡긋한 류재희가 고개를 저었다.
“탄내? 안 나는데.”
“네가 지금 코가 막혀서 그래.”
“시끄러, 짜샤. 막내가 안 난다고 하면 안 나는 줄 알아.”
아이템의 힘 없이 완성한 떡볶이가 담긴 그릇을 식탁에 앉은 류재희의 앞에 놓아 주며 김도빈을 향해 타박했다.
젓가락으로 떡볶이를 뒤적거리던 류재희가 영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떡볶이를 한 입 먹었다. 우물거리던 류재희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받아먹는 주제에 밥투정은 좀 그렇긴 한데, 그때랑 맛이 다른데요….”
“시간이 빠듯해서 그래, 시간이. 여기 계신 예현 형님이 무조건 네가 오후 여덟 시 전에 먹을 수 있도록 완성시키라고 얼마나 쪼아 댔는지. 재료 사오는 시간도 고려를 안 해 주고 말이야. 이게 다 예현 형님 덕분이니까 나 말고 저 형님을 원망해라.”
다행히 서예현이 오늘의 요리를 망친 아주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다.
물론 서예현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나를 전적으로 도와준 셈이다.
“역시 형은 그때 잠깐 신내림을 받았던 게 분명해요.”
“뭐, 인마. 두 가지 조건 중에 한 가지가 충족이 안 됐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무슨 신내림은 신내림이야.”
내가 김도빈과 한창 말씨름을 하는 사이,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은 류재희가 입을 열었다.
“맛이 똑같았으면 계속 엄마 떡볶이가 생각났을 텐데 이 떡볶이 덕분에 이제 아프면 형 떡볶이가 제일 먼저 생각날 거 같아요.”
이걸 잘됐다고 흐뭇해 해야 해, 어째야 해?
“물론 그게 꼭 먹고 싶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냥 생각만 나겠다는 거죠.”
내가 또 저한테 이런 떡볶이를 먹일까 무서웠는지 류재희가 다급히 덧붙였다.
분명 감동적이어야 하는 상황 아닌가? 왜 이렇게 된 거지? 이게 다 내게 아이템을 주지 않은 시스템 때문이다.
나를 대체 뭘로 보는 건데. 나도 그게 긍정적인 말은 아니란 걸 충분히 알아챘거든?
그리고 나도 양심이란 게 존재하는 사람이다, 재희야. 너는 형을 지금 이딴 떡볶이를 먹이면서도 고마움을 강요하는 쓰레기로 보였냐.
“덕분에 덜 서러워졌어요. 미화됐던 기억도 마지막 기억으로 잘 덧칠됐고요.”
“가족 이야기지? 떡볶이 이야기 아니지?”
내가 집요하게 물어도 류재희는 웃기만 할뿐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떡볶이 몇 입 안 먹었네. 계란죽이라도 끓여 줄까?”
“일단 그거라도 먹을게요. 빨리 열 내리고 컨디션 돌아와야지 연습하죠.”
류재희는 견하준이 만들어 준 계란죽을 반 그릇 겨우 비우고 해열제를 먹고 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와, 이거 설거지 다 어떻게 하냐.”
“그러게 냄비랑 숟가락 적당히 쓰라니까.”
“준아, 네가 한 5초만 빨리 말해 줬어도 내가 숟가락 세 개는 덜 썼겠다.”
내가 고군분투한 흔적들을 싹 치우고 내 방에서 한숨 돌리자 어느새 시간은 저녁대를 넘어 밤으로 접어들었다.
‘해열제 먹고 시간 지났으니까 열이 좀 내렸으려나? 생각난 김에 막내 상태나 한 번 보고 와?’
혹여 류재희의 열이 떨어지지 않았을 때를 대비하여 물수건이라도 가져가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이미 수건을 물에 적시고 있는 서예현과 거울을 통해 시선이 딱 마주쳤다.
“형님, 그거 물기 꽉 짜야 하는 건 아시죠?”
“이제는 알거든. 사람을 뭐로 보고.”
힘 줘서 물수건을 꽉 짜며 서예현이 투덜거렸다. 내가 분명히 물수건의 물도 안 짜고 그대로 올린다고 하던 저 인간의 대답을 기억하는데.
좀 더 힘 꽉 줘서 짜 보라고 코치를 하니 서예현이 충분히 다 짰다고 우겨 댔다.
서예현의 손에서 물수건을 낚아채어 꽉 짜자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봐 보십쇼, 물 한 바가지는 더 나오겠습니다.”
“그래, 너 힘 세서 좋겠다.”
서예현이 투덜거리며 뽀송해진 물수건을 다시 받아들었다.
류재희의 방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로 마스크를 쓴 채로 방 바닥에 이불 깔고 드러누워 있는 김도빈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얼굴이 살짝 열 기운으로 달아오른 류재희의 이마 위에 놓인 물수건이었다.
일단 물수건이 물기를 많이 머금지 않은 정석 상태로 깔끔하게 접혀 있는 걸 보니 김도빈의 작품은 절대 아니었다.
김도빈이 이렇게 섬세한 놈이 아니라는 건 회귀 전후를 통틀은 숙소 생활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서예현과 나는 지금 물수건을 생각해 내고 물수건 하나 들고선 류재희의 방에 막 도착했고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견하준뿐이군.
역시 제일 섬세한 녀석다웠다.
혹여라도 잠든 류재희를 깨울까 옆에 우리가 가져온 물수건을 두고 조심스럽게 방 문을 닫은 나랑 서예현은 1층까지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가며 이동했다.
“한 발 늦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제일 늦었네.”
머쓱했는지 볼을 긁적인 서예현이 복층을 힐긋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서예현이 제 방으로 들어가기 전, 그를 툭 쳤다. 나를 돌아보는 서예현을 향해 씩 웃으며 물었다.
“형님, 이래도 우리가 아직도 비즈니스로 모인 놈들 모임입니까?”
언젠가의 서예현이 했던 말.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말.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서예현이 드디어 그 말을 기억해 냈는지 입을 허 벌렸다.
“너 그 말 아직도 안 잊고 담아 두고 있었냐? 하여간, 한 번씩 짜치는 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도 모자라 얼마나 한심함을 포현하고 싶었던 건지 혀까지 차 대는 서예현을 향해 어금니 깍 깨물고 으르렁거렸다.
“누가 짜치는 놈이야, 누가.”
아오, 막내 라인 깰까 봐 성질대로 버럭버럭 내지를 수도 없고. 악문 어금니가 절로 까득- 갈렸다.
그런 나를 약 올리듯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 서예현이 어깨를 으쓱하고 혹여 내게 잡힐세라 방으로 쏙 들어갔다.
하여간, 마지막까지 훈훈할 틈도 안 주는 가 족같은 팀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