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2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29화(429/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29화
다행히 류재희의 열은 하루 만에 제법 내렸다. 물론 열만 내린 거지 몸 컨디션이 좋아진 건 아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휴일을 하루 더 늘렸다.
춤이 가장 약한 서예현만 아무래도 개인 연습이라도 해야겠다며 김도빈을 끌고 연습실로 향했다.
“저 때문에 단체 연습도 못 하고… 대형이랑 동선 얼른 마저 익혀야 하는데….”
“다들 지친 김에 쉬는 거지, 뭐. 너한테 고마워할 놈들은 있어도 여기 너 원망할 놈은 아무도 없어.”
오늘도 침대 위를 벗어나지 못한 류재희의 침울한 중얼거림에 쓸데없는 죄책감 가지지 말라고 잔열이 남은 이마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툭, 치며 대꾸했다.
“약 먹어야 하니까 아침으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그래, 그 칼로리 귀신 없을 때 얼른 말해 버려. 눈치 안 보고 마음 편하게 먹게.”
서예현이 연습실로 사라진 지금이 기회였다. 류재희를 재촉하자 잠시간 고민하던 녀석이 느릿하게 내뱉었다.
“오뚜기 양송이 수프요. 크림 수프였나? 아무튼, 어렸을 때 아프면 동네 본죽은 비싸다고 맨날 마트에서 그 수프 사다가 끓여 주셨거든요.”
주어는 없지만 생략된 주어가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아플 때는 죽보다 그게 훨씬 더 잘 넘어가요. 습관이 되어서 그런가.”
아니, 본인이 먹고 싶은 거라고 하긴 했지만 이게 맞나…? 과거의 쓰라린 기억의 산물을 먹게 두는 게 맞는 건가?
혼란스러운 와중, 류재희의 말을 듣고 의문점이 생겨 곧바로 물어보았다.
“그러면 어제 떡볶이는 대체 왜 생각난 거야?”
옆에서 시간 재촉하던 서예현이 아니었으면 다시 요리 고자로 찍힐 뻔했던 어제를 생각하니 팔에 소름이 다 돋았다.
“아프니까 괜히 엄마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러다가 엄마 떡볶이 맛이랑 비슷하다고 느꼈던 형 떡볶이까지 생각의 가지가 뻗어 나갔고. 아파서 정신 없어서 생긴 의식의 흐름이었죠.”
평소의 뻔뻔함을 되찾은 류재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말을 뱉는 본인만 아무렇지 않지, 듣는 우리들은 존나게 진지해졌다.
아니, 이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으면 싸이코 아니냐?
“이든아, 근처 마트에서 오뚜기 크림수프랑 양송이수프 가루 좀 사 올래? 나는 그거 제일 맛있게 만드는 레시피 좀 찾아 보고 있을게.”
“그래, 추억의 맛을 좋은 기억으로 덮는 건 준이 너한테 위임하련다. 내가 아침이라 손이 덜 풀렸어, 지금.”
나는 아무래도 또 류재희한테 너무 부정적인 의미로 강렬한 기억밖에 선사해 주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건 견하준한테 맡기는 게 속 편했다.
지금은 아침이라 오후 8시 이후에 뭐 먹으면 안 되니까 빨리 만들라고 옆에서 쪼는 서예현도 없고, 수프 재료야 수프 가루와 물 혹은 우유만 있으면 부족할 일도 없지 않은가.
내가 요리를 실패한 핑계를 댈 만한 게 없다는 소리였다.
손이 덜 풀렸다는 핑계 정도나 가져다 붙이며 견하준에게 떠넘길 수 있을 뿐.
삼선 슬리퍼에 대충 발을 꿰고 숙소를 나와 터벅터벅 근처 편의점으로 향하는 도중, 지원이 형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야, 이든아. 커버 영상 잘 봤다. 이야, 완전 기깔나게도 찍었더라?
장난기 어린 감탄사에 머리를 긁적인 것도 잠시.
-누가 봐도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구도랑 영상미던데. 마침 이 시기가 녹음 끝나고 안무 받고 딱 뮤비 촬영 들어갈 시기 아니냐?
역시 동종업계 종사자답게 지원이 형은 일정을 다 꿰고 있었다.
덕분에 이 형 앞에서는 컴백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오직 용철이 형만을 위해서 시간 내어 각 잡고 커버 영상을 찍은 착하고 섬세한 동생 코스프레는 글러먹었다.
“뮤직비디오 촬영하는 김에 끝나고 겸사겸사 찍었죠. 거의 자투리 영상? 그런데 역시 형도 보셨네요. 형이라면 100% 봤을 것 같긴 했어요.”
-네가 커버해서 본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지?
킬킬거리는 지원이 형의 말에 장난스럽게 물었다.
“저 나와서 본 거 아니었어요?”
-그거 자의식 과잉이다, 이든아.
“그럼 제가 납득할 만한 다른 이유 한 번? 지금으로썬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가 저밖에 없는데.”
능글맞게 맞받아치자 헛웃음을 한 번 내뱉은 지원 형이 대꾸했다.
-내가 프로듀싱한 사람이라서 그런다. 이제 납득됐냐?
음, 확실히 납득되는 이유였다. 그나저나 용철이 형 정규 앨범 타이틀곡을 지원이 형이 맡은 경위가 궁금해졌다.
“오, 곡이 확실히 각 잡은 태 나더라니. 그런데 어쩌다가 같이 작업하신 거예요?”
-내가 용철이한테 원백 형 거쳐서 부탁받았거든. 타이틀곡으로 뽑아 놓은 곡이 좀 약한 것 같다고. 그래서 비트 하나 주고 프로듀싱 해 줬지.
아니, 지금 제일 가까운 동생이 프로듀싱 천재인데, 나를 패스하고 지원이 형한테 비트랑 프로듀싱 부탁을 했단 말이야?
-용철이가 너 바쁜 것 같아서 부탁 못 했다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진 말고.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지원이 형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덧붙였다.
“섭섭하게 생각한 적 없거든요.”
-뭘, 목소리에 아주 섭섭함이 그득그득 묻어나오더만.
“궁금증을 섭섭함으로 곡해하시면 제가 너무 쪼잔해 보이잖아요.”
툴툴거리자 지원 형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네가 커버 영상 유행 열어 준 덕분에 곡도 확 떠서 내가 괜히 뿌듯하더라. 이제 또 빔스크린 배경이 아니라 진짜 바다 배경으로 찍는 게 유행하더라고? 그래서 AJA가 그거 찍으러 바다 간다더라.
“결국 AJA 형님까지 유행에 편승하셨군요.”
유행이 물결 배경 스크린에서 진짜 바다로까지 발전되는 걸 보니 금방 식지 않고 적어도 몇 주는 더 갈 거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오우, 이 기세로 쭉 가면 1위도 한 번 찍겠는데?
“조만간 뿌듯할 일 또 있으시겠네요. 이번에 저희 선공개 곡도 형님이 프로듀싱해 주신 곡이잖아요.”
-수록곡으로 빼긴 아쉽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 대더니 결국은 선공개 곡으로 가는구나.
“아, 형님, 저 이제 곧 편의점 들어가야 하는데 혹시 용건 더 있으세요?”
-아, 커버 영상도 커버 영상인데, 서라 누나 듀엣곡 보컬 때문에 전화했지.
“듀엣곡이요?”
이제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뒤져서 기억 속에서 서라온의 곡을 찾아냈다. 발매하는 곡마다 히트를 쳤으니 기억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이 시기에 나올 서라온의 듀엣곡은 제법 길게 남녀 보컬 듀엣곡으로 화자되는 동시에 서라온의 남성 보컬들 격파곡으로 유명해졌다.
그렇게 날다 긴다 하는 수많은 남성 보컬들과 커버곡 콜라보를 했건만 그중 서라온의 보컬에 먹히거나 밀리지 않은 남성 보컬은 딱 세 명이었다.
회귀 전에 원곡 남성 보컬로 참가했던 오디션 출신의 솔로 가수와 보컬로 유명한 중견 R&B 그룹 가수, 그리고 알테어 차연호.
우리 그룹 보컬들이야 뭐, 그 당시에는 서예현과 쩌리들 중 쩌리들을 맡고 있었으니 서라온이랑 커버곡 함께 부를 기회도 없었지.
-사실 연호가, 아, 알지? 알테어 차연호? 어떻게 알았는지 연호가 먼저 연락해서 서라 누나랑 듀엣곡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이미 찜해 놨던 보컬이 있어서 보류했거든.
흠, 견하준인가?
-너희 막내였냐? 메인보컬이?
아니었다.
차연호 상위 호환이라 당연히 견하준일 줄 알았더니, 견하준이 아니라 류재희였다니. 역시 음색은 취향의 차이인가.
하긴, 지원이 형은 프로듀싱 당시 견하준의 쪼를 지적하면 지적했지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었다.
‘확실히 류재희 정도면 안 밀리고 회귀 전 원곡보다 더 잘 부르겠는데?’
류재희가 이 듀엣곡을 부르는 건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이게 독이 될 일은 없었다. 게다가 류재희는 서라온 선배님의 오랜 팬이었다.
내가 예전에 했던 피처링도 그렇게 부러워했는데 본인이 피처링도 아니고 무려 듀엣을 맡으면 얼마나 행복해 하겠는가.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이유.
이런 좋은 기회를 차연호에게 고이 양도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차연호가 잘될수록 그 자식이 나를, 그리고 우리 그룹을 성가시게 만들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나한테 팀에서 탈퇴하라는 헛소리만 안 씨부렸어도 내가 양보를… 안 했겠군, 음. 그렇게 됐다, 연호야.
차연호가 나보다 두 살인가 세 살인가 위이긴 했지만 서예현도 지금 나한테 진정한 형 소리는 못 듣고 있는데 어딜.
-이번에 프로듀싱하면서 들으니까 걔 보컬이 꽤 괜찮더라고? 프로듀싱도 제법 잘 따라오고. 서라 누나도 흔쾌히 오케이해서 너희 소속사 측으로 컨택하기 전에 먼저 괜찮은지 의사 좀 물어보려고 너한테 연락했다.
혹시 차연호가 내가 의도하고 스틸한 줄 알고 난리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솔직히 알 바 아니었다.
꼬우면 우리 막내보다 실력을 더 키우시던가.
“제가 숙소 가서 저희 막내한테 물어보고 바로 다시 연락 드릴게요. 제가 봤을 때는 100% 오케이할 게 분명한데 그래도 물어는 봐야죠.”
-그래, 물어보고 바로 연락 줘. 일정 대략이라도 잡게.
“아, 그러고 보니 혹시 서라온 선배님은 컴백일 언제로 잡으셨대요?”
음원 발매 날짜랑 시기가 우리와 겹치지 않는다는 걸 듣고 나서야 안도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준범이 왜 그렇게 인맥 찬양을 해 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실력이 인맥보다 우위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편의점에서 오뚜기 수프 가루를 종류별로 사 들고 날아갈 듯한 발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봉투 안에 든 다섯 개의 가루 수프 팩을 받아든 견하준이 당황하며 물었다.
“무슨 수프 가루를 이렇게 많이 사 왔어?”
“아니, 수프 종류가 여러 개더라고. 뭐가 맞는지 몰라서 그냥 쓸어왔어. 아플 때마다 죽 대신 끓여 먹으면 되지.”
견하준에게 대꾸해 주고 우렁차게 류재희를 불러 재꼈다.
“야, 막내야! 이 형이 너 아픈 거 싹 나을 만한 소식 하나 가져왔다!”
“수프 다섯 개 사온 거요…? 그건 저도 방금 들었어요.”
복층 계단을 내려오며 류재희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거 말고, 인마. 너 서라온 선배님이랑 듀엣곡 부르게 생겼다.”
“제가요…?”
떨떠름한 얼굴로 저 자신을 가리키며 물은 지 겨우 30초가 지나자마자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 수준의 환호를 내지르며 숙소 거실을 뛰어다니는 류재희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이야, 벌써 싹 나았네.
* * *
-…래서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 다음 기회에 같이 한 번…
“어쩔 수 없죠. 형 말대로 다음 기회가 있다면 그때 불러 주세요. 그런데 그 보컬 누구예요? 저를 그렇게 칭찬하시던 형이 저를 포기하고 선택한 그 보컬이 꽤 궁금한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차연호의 미간이 좁혀졌다.
끝까지 입가의 웃음을 잃지 않고 G1의 통화를 마친 차연호가 휴대폰을 귓가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한숨을 내뱉었다.
평소였으면 비릿한 실소였을 테지만 G1의 입에서 언급된 그 그룹에 있는 면상이 반사적으로 떠올라 도저히 웃음이 안 나왔다.
‘그래도 덕분에 계획 하나 더 구상할 필요는 없겠군.’
이제는 만성적으로 자리한 두통을 가라앉히려 진통제를 삼키며 차연호는 무심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