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43화(43/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3화
현재 시각 AM 1:28
기상 시간까지 앞으로 2분. 어제 11시부터 1시까지 잠깐 눈을 붙인 나와 견하준, 그리고 서예현은 모두 기상 상태였다.
그 짧은 숙면 시간에도 얼굴이 혹여 부었을까 봐 찬물로 세수하고, 어떻게든 멀쩡한 꼴로 세팅해 보겠다고 끙끙거리던 서예현을 구경하다가 다시 베개에 얼굴을 박았다.
“막내 일어났으려나…….”
“문자 보내 봐. 안 자면 폰이나 하고 있겠지.”
견하준의 중얼거림에 잠을 영 못 자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평소였으면 맞춰 놓았을 알람은 미리 꺼 놓았다.
캠코더 든 사람이 멤버들을 깨우고 다니며 ‘갓 일어난 모습’을 담는 게 대본이었으니 말이다.
똑똑, 노크하는 소리에 우리 셋은 일제히 자는 척에 돌입했다.
“네, 여기는 형라인 셋이 쓰는 방입니다. 크기가 저희 방의 두 배예요. 180cm가 넘는 사람만이 쓸 수 있습니다.”
벌컥, 문이 열리며 류재희가 들어왔다.
“다들 곤히 자고 있네요. 그래도 저랑 도빈이 형은 작은 매트리스 하나씩 있어서 따로 자는데 여기는 큰 매트리스 하나여서 강제 동침을…… 아, 동침은 동일 침대의 줄임말입니다.”
캠코더에 대고 혼자서 속닥거리며 떠들던 류재희가 잡은 첫 타깃은 서예현이었다.
“여기는 레브의 비주얼 맏형, 예현이 형입니다. 이 형은 자는 모습도 잘생겼네. 역시 세상은 불공평해요.”
방금 전까지 카메라에 추하게 나올 수는 없다며 온갖 난리를 치고 있던 서예현의 모습을 상기했을 때 그저 코웃음만 나오는 말이었다.
물론 평소 자는 모습도 봐 줄 만은 하지만 저렇게 세팅된 모습과는 비빌 바가 못 되었다.
“예현이 형, 일어나요.”
연기 천재 견하준이 충고한 대로 서예현은 대사 없이 입 다물고 상체만 일으켰다.
이름하여 아침이라 정신 못 차리는 비몽사몽 콘셉트였다.
“일어난 김에 팬분들께 아침 인사 한번?”
“굿모닝, 데이드림.”
알람 대신 서예현의 아침 인사로 시작하는 하루라니. 상쾌한 하루의 시작이라고는 빈말로도 못하겠다.
“그다음은 우리 레브의 리더, 이든이 형입니다. 그래도 잘 때는 인상이 좀 순해 보이지 않아요?”
그다음 타깃을 나로 정했는지 내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던 류재희가 내 몸을 흔들었다.
“이든이 형, 아침이에요.”
“……일어났어.”
뒹굴, 몸을 돌려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대꾸했다.
내 콘셉트는 잠 덜 깼으면서 일어났다고 우기며 계속 잠들려 하는 콘셉트였다.
“안 일어났잖아요. 빨리 잠 깨요!”
“어어.”
적당히 대꾸하며 후드를 뒤집어썼다. 옆에서 스르륵 몸을 일으키는 기척이 느껴졌다.
“오, 하준이 형. 제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난 거예요?”
“재희도 잘 잤어? 웬일로 일찍 일어났네.”
“웬일이라뇨. 제가 레브에서 제일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이잖아요.”
류재희는 목소리 하나 삐끗하지 않고 뻔뻔하게 사기를 쳤다.
어쩌면 연기 천재는 견하준이 아니라 류재희일지도 몰랐다.
“안 깨우면 10시까지도 자고 있는 녀석이 무슨 아침형 인간이야. 혹시 아침형 인간의 뜻을 모르니, 막내야.”
놈의 구라를 무시하지 못하고 투덜거리며 상체를 일으키자 내게도 인사 한마디 하라고 류재희가 캠코더를 들이댔다.
“좋은 아침.”
따지고 보면 아침은 아니고 밤에 가까운 새벽이지만, 반쯤 감은 눈으로 캠코더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돌 짬밥이 7년 차 정도 되면 ‘잠이 덜 깬 것 같아 보이면서도 추해 보이지 않는 눈 크기’를 유지하는 것쯤은 껌이었다.
평소였으면 서예현이 제일 먼저 일어나 아침 운동을 가고, 견하준이 그다음으로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나는 차례로 두 번 울린 알람 듣고 반쯤 잠이 깨 비몽사몽 정신으로 매트리스에 누워 휴대폰 메모장에 번뜩 생각난 가사나 끄적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견하준이 밥 먹게 애들 깨우라고 하면 일어나서 막내 라인 방에 가 제일 시끄러운 노래 한 곡 스피커 풀음량으로 틀어 놓고 깨웠겠지.
류재희가 제일 먼저 기상했을 때부터 이것은 조작 방송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사히 기상 연출을 마친 우리는 류재희의 뒤를 따라 막내 라인이 쓰는 방으로 향했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도빈이 형을 깨워 보겠습니다.”
“도빈이 아직도 안 일어났어?”
“형들 다 깨우고 깨우래요.”
침대에 속 편하게 널브러진 김도빈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자식, 진짜 잔다.
우리처럼 자는 척 쇼하다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진짜 기상 모습을 보여 주게 생겼다고.
제 한 몸 희생해서 조작뿐인 리얼리티에 진정성을 선사해 주고 있다니까.
“도빈이 형! 기상!”
“형들 다 깨우고 깨우라니까…….”
잔뜩 뭉개진 발음으로 웅얼거리는 김도빈을 우리 셋은 류재희의 뒤에서 흥미진진하다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형들 다 일어났어. 형만 안 일어났다니까?”
“아, 거짓말하지 말고…….”
“거짓말 아니니까 늦장 부리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
내 목소리에 뭉그적거리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던 김도빈이 비척비척 이불을 내리고 상체만 일으켰다.
“엥, 진짜네. 형들, 안녕히 주무셨…… 흐아아암.”
그리고 못생긴 얼굴로 크게 하품하는 그 모습은 류재희의 손에 들린 캠코더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래도 나름 아이돌인데 저런 얼굴이 방송을 타면 쓰나.
실눈을 뜬 채로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얼굴이 보기에 꽤 안쓰러워 친히 이불로 가려 주었다.
하여튼, 아침부터 이런 쇼를 한바탕 한 덕에 컴백 첫 음방에 대한 긴장감은 대충 풀어진 지 오래였다.
씻고 숙소에서 나와 숍에서 메이크업과 헤어 세팅을 받고 새벽 4시에 음악방송 사전녹화가 이루어지는 방송국에 도착했다.
“KICKS는 이번 주에 1위 후보라던데 우리는 1위 후보 안 들었대요?”
“컴백 첫 주는 음방 1위 후보 못 들어. 집계 점수가 없잖아.”
정말 만약 1위 후보에 들었다고 해도 앨범 판매량도, 음원 순위도 현저히 떨어지는 우리가 이번 주에 1위를 할 가능성은 로또 1등의 확률에 가깝고 말이다.
그래도 오늘의 1위 후보를 생각하니 열불이 뻗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 대기실까지 리얼리티 카메라 안 따라오는 게 다행이네.’
단체 대기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면상들을 눈에 담자마자,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다.
다음 주에 우리와 본격적으로 경쟁이 붙을 놈들. 이번 주야 저놈들이 1위를 하든 말든 상관은 없었지만 기뻐하는 꼴을 직관하기는 싫으니 부디 다른 후보가 1위를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음원 차트 순위야 KICKS 놈들이 떨어지고 우리가 오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오, 아프다더니 용케 컴백 안 미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역시나 내뱉어지는 빈정거림에 사람 좋은 미소를 얼굴에 걸쳤다.
“누구누구들께서 혹여나 자기들이랑 붙는 거 겁먹어서 컴백 미뤘다고 오해하실까 봐 못 미루겠더라고.”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던 KICKS는 곧 내가 저들을 비꼬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런데 벌써 잊었냐? 내가 말 걸면 뭐라 했더라?”
웃음기 싹 뺀 얼굴로 지그시 쳐다보자 인상을 찡그린 KICKS 리더 놈이 손을 내저었다.
“야야, 그냥 저기랑 말 섞지 마. 무시해, 무시.”
“누가 개념 없는 뒷담 그룹 아니랄까 봐. 자기들이 먼저 선빵 쳐 놓고 무시하라는 건 어느 나라 법도냐?”
내가 입을 열기 전, 서예현이 선수를 쳤다.
오랜만에 내가 아닌 타인에게 발휘되는 사람 속 긁어 대는 능력에 감격을 받아 입을 틀어막았다.
저 형이 드디어 밥값을 하는구나.
“내버려 둬. 지레 겁먹기라도 했나 보지.”
가볍게 몸을 풀며 들으란 듯 조소했다.
초심도가 깎일 게 분명했기에 회귀 전처럼 주먹다짐을 못 하는 건 조금 많이 아쉬웠다.
‘굳이 먼저 얼굴 붉힐 필요는 없지.’
KICKS의 활동은 우리와 같이 끝난다.
즉, 활동이 끝날 때까지 저것들 면상을 계속 봐야 한다는 소리다.
짜증 나지만 따지지도 못하는 게, 저놈들이 활동을 길게 하는 게 아니라, 연말 시상식 때문에 우리가 활동을 짧게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순서가 되자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무대로 향했다.
사전녹화를 방청하러 온 우리 팬들이 우리가 무대 위에 올라가자 환호했다.
때보다 수가 더 늘어난 것 같았다.
<내 우주로 와> 때의 텅텅 비어 있던 무대 밑이 너무 기억에 오래 남아서였을까.
망돌 시절을 슬슬 잊어 가던 7년 차의 윤이든이 보던 풍경은 항상 이랬기에 이 풍경이 내게는 더 익숙할 터인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뮤직비디오에서 입었던 것과 비슷한 착장의 무대의상 깃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내 의상은 폼이 큰 라이더 재킷이었다.
“우리 일몽이들! 잘 지냈어요?”
류재희의 인사에 함성이 대답을 대신했다.
“오랜만이네요, 데이드림. 본의 아니게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나와 함께 응급실 목격담의 투톱 주인공, 견하준과 꾸벅 사죄의 인사를 올리자 팬들이 소리쳤다.
“아니야아악!”
“괜찮아! 괜찮아!”
“아프지 말고 우리 오래오래 보자!”
쏟아지는 걱정과 격려에 어쩐지 속이 또 울렁거려 머쓱하게 웃으며 뒤돌았다. 울지 말라는 외침에 곧바로 다시 원위치했지만.
“안 울어요.”
타이밍 좋게 사전녹화를 촬영한다는 사인이 내려왔다. 팬들과의 소통을 멈추고 무대에 대형을 잡고 섰다.
경쾌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힘을 빡 준 채 시원하게 뻗어져 나오는 견하준의 도입부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놈의 만병통치물약, 내가 안 먹고 견하준에게 먹이길 잘했다고. 그렇지 않았으면 첫 소절부터 찢은 오늘 같은 무대는 나오지 못했겠지.
레브 멤버들이 부를 것을 생각하며 썼던 첫 곡.
회귀 전에는 내 손으로 타 그룹에게로 넘겼던, 그리하여 내가 상상한 것과는 달라진 무대를 미련 넘치는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곡.
내게 꽤 많은 저작권료를 벌어다 주고, 나를 프로듀서로 자리매김하게 해 주고, 갓 데뷔한 후배 그룹을 라이징으로 올려 주었지만 가장 큰 미련을 남겼던 곡.
그 곡을 레브가, 우리 그룹이 무대 위에서 부르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목소리로. 내가 상상했던 그 무대 그대로.
[밤새워도록 이 음악에 몸을 맡겨오늘, 이 밤이 다 가도록 let’s party time]
“let’s party time!”
응원법인지 밑에서 우렁차게 외치는 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처음으로 이 회귀가 속죄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꿈이라면 이 무대를 다 마치기 전까지는 깨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느낄 정도로.
절대 이루어질 리 없다고 생각했던 내 머릿속 버킷리스트 내용 하나에 체크 표시가 그려진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