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3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30화(43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30화
* * *
“막내야, 가습기 좀 끄면 안 되냐…? 나 지금 무슨 수족관 속 물고기가 된 느낌이다.”
축축한 공기에서 제발 벗어나고 싶어 진지하게 류재희를 붙들고 말했다.
손수건으로 단단히 목을 감싸 맨 류재희가 텀블러에 든 따뜻한 물을 홀짝이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최상의 목 컨디션을 유지해야 해요. 안 그래도 감기 걸려서 목 상태가 평소보다 깎인 거 같은데 서라온 선배님의 노래를 제가 망치면 어떡해요.”
“어쩌긴, 지원이 형한테 닦이면서 녹음 끝내고, 후보정 떡칠을 하면 되지. 거기에 너 믿어도 된다고 호언장담했던 나까지 지원이 형한테 닦이는 건 덤이고.”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나는 류재희가 정말로 지원이 형을, 그리고 나를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이건 내 마음에 드는 견하준의 음색만큼이나 변할 리 없는 명제였다.
“그래서 제가 지금 목 관리를 미친듯이 하고 있잖아요. 우리 형 욕 안 먹이려고.”
“취지는 좋은데, 그래, 정말로 다 좋은데 목 관리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서 차고 넘치지 않냐- 이 말이지. 목구멍이 하도 습해서 입 열면 목구멍에서부터 물 한 바가지는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하는 소리다, 인마.”
내가 투덜거리자 류재희는 배은망덕하게도 진짜 물 쏟아지는지 보게 입 한 번 열어 보라는 소리나 해 댔다.
역시 내가 일렬의 사건들을 거쳐 오며 너무 유해진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가까운 시일 내에 기강을 한 번 잡긴 해야할 것 같았다.
“차라리 날달걀을 삼켜라. 숙소 공기를 심해로 만들지 말고.”
“그건 이미 했죠. 저를 뭘로 보시고.”
그래, 이미 했구나…. 류재희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나는 날달걀 비려서 생으로는 절대 못 삼키겠던데.
“곡 잘 나와서 우리 정규 2집 홍보에 제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어요.”
은근슬쩍 야망을 드러내는 류재희의 머리를 가법게 헤집었다. 이전에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그룹 기여도 강박인 줄 알았는데 그냥 이 녀석 성격 자체가 야망이 넘치는 모양이다.
회귀 전에는 야망을 펼칠 기회조차 없었기에 억누르고 있어 나조차도 몰랐던 거겠지.
“네 평소 목 상태로 불러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이제 가습기 좀 끄자. 우리 녹음할 때도 이래 보지 그랬냐.”
“그러면 형이 유난 떤다고 할까 봐요.”
“사실 지금도 유난 떤다고 하고 싶긴 하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습기를 굳이 끄진 않았다. 본인이 최상의 목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다는데, 뭐.
막내를 위해서라도 내가 몇 시간 간 아쿠아리움에 갇힌 물고기로 살아야지. 내가 리더가 돼서 그 정도도 배려 못 해 주겠냐.
물론 내가 습한 공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터라 며칠씩 참아 주는 건 불가능했다.
“3주 차이면 뭐… 확실히 디싱이라 진행은 우리보다 훨씬 빠르구먼.”
“우리가 정규 앨범이라 준비 기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죠. 아무튼, 동발 수준은 아니라 다행이네요.”
“뭐가? 네가 서라온 선배님이랑 낼 듀엣곡이? 아니면 우리 정규 앨범이?”
씩 웃으며 묻자 류재희가 한쪽 입꼬리를 비죽 올리더니 도발하듯 얄밉게 대꾸했다.
“글쎄요? 형이 형 곡에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에 달려있겠죠?”
당연히 우리 정규 앨범이 다행이지. 서라온 선배님의 곡은 내가 미래에서 결과를 봤고, 우리의 정규 2집은 회귀 전에 없어서 내가 쉬이 결과를 짐작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한 번쯤은 미래에서 성공이 확정된, 그런 곡과 성적 걱정 없이 붙어 보고 싶긴 했다.
“대중들한테 서라온 선배님처럼 무조건 믿고 듣는 곡으로 자리 잡으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하려나.”
“형, 자신 없어요? 청류가랑 Ride or die에서 충분히 증명했잖아요. 형 음악은 실패할 리가 없다니까요.”
류재희의 말에 듬뿍 묻어나오는 굳건한 믿음에 내가 다 머쓱해져 뒷머리를 헤집었다.
“그럼 너는 만약 겹쳤으면 어느 곡 응원했을 거냐?”
“음… 정산 비율로 치면 다섯이 나누는 것보다 둘이 나누는 게 제 당장의 지갑 사정에는 낫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역시 우리 그룹이 잘되는 편이 낫죠.”
“얌마, 이럴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히 우리 곡을 응원한다고 해야 하지 않냐?”
투덜거리며 류재희의 머리를 꾹꾹 누르면서도 입가에는 미약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녹음을 마치고 온 날에 류재희는 서라온 선배님과 찍은 셀카와 받은 싸인을 자랑해 댔다.
분명 지원이 형에게 오늘 레코딩하면서 좀 엄격하게 한 터라 애가 기죽어 있을 수 있으니 잘 달래 주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내가 그 연락을 받은 게 꿈 속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아무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진 않고 건성건성 대꾸 정도만 해 주었다.
요새 몇 주간 답지 않게 지나치게 훈훈하긴 했지. 익숙한 풍경을 보니 이제야 내가 아는 레브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1위-new ‘서라온, 유제 – Stay’ ♥︎99,999+]발매된 듀엣곡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가뿐히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음원 강자 서라온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음방 활동이 없었기에 류재희는 연습 시간을 쪼개지 않아도 되었고, 음방 대신 서라온 선배님이 타 남성 보컬들과 를 부르는 영상들이 올라오며 류재희의 보컬 실력은 알아서 올려치기가 되었다.
-웬만하면 이런 말 안하는데 싹 다 원곡이 훨 낫다…ㅋㅋㅋㅋ
-디포는 원곡처럼 좀 담백하게 불러보지 바이브레이션을 왜 그렇게 넣는거냐 ㅈㄴ 듣기싫게
-아니야 원곡 특유의 시원시원한 맛이 없어ㅠ 지를때 좀 시원하게 질러보지ㅠㅠ
-남자파트 보컬만 바꼈는데도 곡 느낌 진짜 달라진다 그래도 아직까진 원곡 압승
-알앤비 레전설이 와야지 겨우 원곡 이기는구나 몰랐는데 유제였나? 얘 노래 잘했네
-엥 차연호 버전이 원곡 압승까지는 아니던데;;; 개취론 원곡이 훨씬 더..
음방 없이도 류재희의 보컬 실력 홍보가 된 셈이었다.
차연호가 잔뜩 약이 올라 곧바로 따져 물으러 오거나 연락이라도 올 줄 알았더니만 제법 조용한 게 꽤 의외였다.
그렇지 않아도 긁혔을 차연호의 속을 더 긁으며 정보를 빼낼 절호의 기회였는데 퍽 아쉬웠다. 내가 그 방법도 다아 생각해 놨는데 말이야.
“음방에서 라이브로 서라온 선배님이랑 듀엣할 기회 없어서 안 서운해?”
“괜찮아요. 나중에 서라온 선배님이 콘서트 무대에 불러 주신댔어요.”
서예현의 물음에 류재희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래, 기왕이면 음방보다는 콘서트 무대가 좋겠지.
“이걸로 우리 이번 정규 2집 홍보나 많이 됐으면 좋겠다. 이든이 형 DTB급 버프는 안 나올 거 같긴 해도 울 막내가 레브라는 것만 잘 알려지면 되는데.”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운 김도빈이 중얼거렸다.
흠, 김도빈이 꿈꾸면 항상 우리 멤버 중 누군가가 이루던데 이번에도 그렇게 되겠군.
그리고 그날, 나는 꿈을 꿨다.
류재희가 주인공으로 나온 이번 3부작 뮤직비디오.
공개되기 전, 우리가 미리 보았던 그 결과물의 주인공이 류재희가 아닌 내가 되어 있는 개꿈과도 같은 꿈을.
선명한 붉은 시야가 꿈에서 깨고 나서도 빌어먹게도 생생해서, 거친 숨을 토해 내며 고개를 숙였다.
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는 걸 알아챈 건 습관처럼 앞머리를 쓸어올리고 난 이후였다.
[외부 침입 시도를 성공적으로 차단했습니다.] [‘위험도’를 삭제합니다.]* * *
XX.04.20.FRI PM 6:00
4월 13일, LnL의 공식 홈페이지 메인에 날짜와 시간이 공개되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저날 공개되는 것이 티저겠거니- 하며 일주일을 기다리던 데이드림에게 20일에 공개된 것은 바로 선공개곡 의 음원과 MV였다.
의 MV 썸네일은 위에서 쏟아지는 한 줄기 검은 물을 머리 위로 맞고 있는 흑발 윤이든의 옆모습이었다.
윤이든 본인 기준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무표정한 얼굴과 이질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새하얀 배경은 콘셉트를 쉬이 짐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MV는 클로즈업 된 눈 문양 같은 나뭇결에서 새하얀 자작나무 숲으로 줌아웃 되며 시작했다.
느릿한 듯 빠른 박자감으로 마치 탱고음 같은 기타 연주가 전주로 흐르고.
멜로디를 읊조리는 것 같은 서예현의 랩으로 곡의 서막을 열며 쭉 까마득한 자작나무 숲만 비추던 화면이 짙은 흑발에 느슨한 와이셔츠 차림의 류재희를 포커싱했다.
끈적한 멜로디의 느린 듯 빠른 비트.
어지러히 사방에 흩어진 제멋대로의 이정표. 길이 없는 공간.
끝없이 늘어진 흰 자작나무. 류재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자작나무의 수많은 눈.
나무 사이에서 불쑥 나타난 메디코 델라 페스페.
금빛 천칭, 심장과 붉은 피, 심장 쪽으로 기우는 천칭.
피투성이가 된 류재희의 손과 그에 반해 깨끗한 와이셔츠, 맨발을 차례로 훑듯이 비춘 화면이 다시 메디코 델라 페스페를 담았다.
미동도 없이 류재희를 지켜보고 있던 이가 손을 들어 새 부리 가면을 벗는다.
거의 백발에 가까운 플래티넘 블론드에 머리 끝만 연갈색으로 물든 견하준의 무표정한 얼굴이 드러났다.
견하준이 말없이 손끝으로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으로 향하며 남기는 류재희의 발자국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여러 갈래의 길.
각자 다른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설치하는 김도빈의 모습이 비치고, 류재희가 김도빈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두 개의 이정표만 남긴 김도빈이 어둠 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화면이 한 번 깜빡이더니 이정표 뒤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로브를 쓴 금발의 서예현이 천사같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쪽을 가리키고 흑발과 애쉬그레이의 상반된 머리색이 반씩 나뉜 윤이든이 정색하며 왼쪽을 가리켰다.
잠시간 고민하던 류재희는 오른쪽을 택한다.
이때까지 흰색 길 위에 옅은 붉은자욱을 남기던 발자국이 오른쪽으로 향하며 더욱 짙게 물들어 갔다.
류재희가 선택한 이정표 아래의 바닥에 길게 늘어진 박쥐 날개 그림자를 짧게 비춘 화면이 반대쪽 이정표의 바닥을 비추고.
바닥에 점차 퍼지는 검은 물. 윤이든의 몸을 훑듯이 올라가는 카메라 앵글. 윤이든의 머리 위에 떨어지고 있는 한줄기 검은 물.
앞머리를 타고 뚝 떨어진 검은 물 한 방울이 클로즈업되더니 화면이 깜빡이는 찰나간 검은 물이 든 고풍스러운 병을 들고선 미소 짓고 있는 서예현이 스쳐 지나간다.
다시 바닥에 떨어지는 검은 물방울을 마지막으로 MV 영상이 끝났다.
선공개곡 의 MV로 레브는 이번 정규 앨범의 콘셉트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번 앨범의 콘셉트는 호러 기반의 섹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