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3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32화(43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32화
카메라는 멀어지는 류재희를 따라가는 대신 한 손으론 모노클과 신사 모자를 쓴 토끼 인형을 안고 다른 한 손에는 회중시계를 든 채로 오른쪽 이정표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고 있는 김도빈을 비추었다.
서예현에게 웃는 얼굴 가면을 받아 든 김도빈은 그 가면을 쓰는 대신 그것으로 입가를 가린 채로 서예현이 가리킨 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서예현이 느릿한 발걸음으로 따르고, 카메라 화면이 천천히 이동하며 왼쪽 이정표 앞에 말뚝 박힌 듯이 서 있는 윤이든의 무표정한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앞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검은 물이 한쪽 눈 밑의 눈물점을 지나 마치 눈물처럼 볼에 긴 물 자국을 남겼다.
그와 동시에.
우- 우우우-
느릿한 아카펠라가 곡의 시작을 알렸다.
늪으로 걸어 들어가는 류재희와 늪 위의 길에 발을 디딘 김도빈의 모습을 한 번씩 비춘 화면은 류재희를 따라 검은 물로 들어갔다.
점차 섞여 드는 멜로디와 빨라지는 비트, 그 위에 덧입혀지는 나른하게 말을 거는 듯한 류재희의 음정.
멜로디는 빠르고 경쾌한 축에 속했지만 음정은 몽환적이고 나른했기에 곡의 속도감과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이 서로 부딪혀 부조화를 일으키며 곡을 한결 난해하게 만들었다.
늪 안으로 들어간 류재희의 앞에 보이는 건 또 다시 흰 나뭇결에 박힌 수많은 눈으로 저를 지켜보는 자작나무 숲이었다.
메디코 델라 페스테를 쓴 견하준이 에서 나왔던 장면처럼 한쪽을 가리켰다.
까마귀 머리의 그림자로 변하는 견하준의 얼굴, 나무에 걸려 있는 레브 멤버들의 초상화, 윤이든과 서예현이 앉아 있는 티 파티, 찻잔 속의 반투명한 검은색 물, 각자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 늪 위의 길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김도빈, 계속 밤임을 나타내는 검은색 배경.
그 무채색과 기괴함의 향연에도 류재희는 계속해서 서예현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길을 걸어간다.
드디어 [EXIT]라 써진 이정표에 다다랐나 싶은 동시에, 나무 위에서 툭- 무언가가 떨어졌다.
모노클과 신사 모자를 쓴 토끼 인형이 밧줄로 목을 맨 형태로 류재희의 바로 앞에서 달랑거리고 있었다.
류재희의 눈이 깜빡거리는 것이 검은색으로 물든 화면으로 연출되며, 다시 화면이 돌아오자 새 부리 가면을 쓴 견하준이 방향을 가리키는 장면이 나타났다.
다시 시작점.
레브의 단체 안무 씬이 한 번 나오고 다시 견하준이 가리킨 곳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류재희의 모습이 담겼다.
출구를 찾아도 목을 맨 채 떨어지는 토끼 인형과 함께 원점으로 돌아오고, 계속 반복할수록 류재희를 둘러싼 배경은 더욱 기괴해져 간다.
부리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메디코 델라 페스테, 점점 짙어지는 윤이든 찻잔의 검은 물, 윤이든도 먹힐 정도로 환해진 서예현 뒤의 후광과 미소, 김도빈이 점점 쥐어뜯을 만큼 강하게 붙들고 있는 토끼 인형, 붉게 칠해진 멤버들의 초상화.
숨 막힐 정도의 오컬트적 연출 사이에서 나타난 레브의 단체 안무 씬은 시청하는 이한테 조금이나마 숨 돌릴 틈을 내어주었다.
느슨한 셔츠, 잘그락거리는 체인, 절제된 안무.
한 번씩 나오는 아카펠라 부분은 멜로디를 자르고 들어가며 곡의 어둡고 호러틱한 분위기를 확 살려냈다.
여섯 번을 원점으로 돌아온 류재희가 바닥에 쓰러지고, 다시 늪 위의 길에서 마찬가지로 원점으로 돌아온 김도빈이 푸우, 한숨을 내쉬며 웃는 얼굴 가면을 쓴다.
카메라는 가면을 벗은 채로 류재희를 내려다보는 견하준을 지나 티 파티 중인 서예현과 윤이든을 비추었다.
서예현은 아래를, 윤이든은 위를 각각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쉿-
동시에 고개를 뒤로 돌린 서예현과 윤이든이 입술 위에 검지를 올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굉장히 찝찝한 장면으로 뮤직 비디오가 끝이 났다.(악몽)>
-호러섹시라며!!!!! 호러잖아!!!!! 개무서워!!!!
-개쫄보라 무서운 거 잘 못 보는데 내가 끝까지 다 볼 정도면 나쁘진 않았음 좀 분위기가 기괴해서 그렇지 갑툭튀도 없고
-이제 알았다 호러는 단체안무 섹시의 단맛을 더욱 극대화시켜 줄 소금 같은 거구나
-섹시한데 무서워… 무서운데 섹시해… 뮤비보면서 이것만 무한반복
-충격 윤이든도 섹시가 가능했다 턱 괴고 탁자에 찻물 붓는 거 왜 이렇게 섹시함
└저기요 꽂힌 포인트가 좀 이상한 거 같은데요
-미드나잇 뮤비보다 더 무서운데
-기괴한 악몽 진짜 잘 표현했다 너무 잘 표현해서 내가 오늘 악몽 꿀거 같음
-섹시컨셉 오그라들어서 싫어했는데 호러에 마른땅에 스포이트로 한방울씩 떨어뜨리는 수준으로 본격 섹시 주니까 개같이 핥아먹게 됨
-충격 도빈이 이정표 설치기사인 줄 알았는데 흑막이었어
-오늘 엄마랑 같이 자야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마주도 들어갔다는 것밖에 모르겠다… 천재일몽 해석 기다려요
-도빈이가 예현이랑 짜고 쳐서 유제를 악몽으로 처박은 거 아님? 그런데 토끼인형은 뭐지? 저게 유제를 원점으로 돌리는 장치? 같던데 그리고 유제가 원점으로 가는 게 반복될수록 예현이는 힘? 후광? 그런 걸 얻는 것 같고
-노래 중독성 무슨 일이야 난해한데 첫 귀에 좋은 노래라는 게 성립될 수 있는거임? 노래도?
-왜 이게 타이틀곡인지는 알았다 귀에 좀 더 꽂히는 이지리스닝은 미드나잇인데 이게 미드나잇보다 훨씬 머릿속에 남긴 하네
“다행이다, 곡도 좋고 뮤비랑 곡 반응도 괜찮고.”
자칫하면 오그라들 수 있는 콘셉트를 담백하게 뽑아낸 뮤비와 그걸 잘 소화시킨 멤버들에 김 모 양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확실히 <내 우주로 와> 이후로 뽑히는 뮤직 비디오들은 평타 이상이었고, 때부터는 평타 이상이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로 영상미와 내용 모두 잘 뽑혀 나왔다.
이제 초창기 데이드림들도 점차 <내 우주로 와> 뮤비 PTSD를 치유하며 마음 놓고 뮤직 비디오 재생 버튼을 클릭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타이틀곡이 매우 잘 뽑혔다는 걸 확인한 김 모 양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음 뮤직 비디오로 마우스 커서를 향했다.
<’Till Dawn>의 뮤직 비디오 썸네일은 반투명한 베일 아래에서 눈을 내리깐 채 누워 있는 류재희의 모습이었다.
컴백 한 번에 뮤직 비디오가 무려 세 개!라고 좋아하다가 갑자기 드는 오한과 끔찍한 가정에 김 모 양은 소름이 오소소 돋은 팔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설마 세계관 쌓으려는 김노답의 큰 그림은 아니겠지.”
기괴한 호러 세계관은 이렇게 섹시라는 콘셉트와 일회성으로 결합했을 때나 좋지, 장르 자체가 마이너틱할뿐더러 취향도 꽤 타서 이게 계속 이어지면 신규 유입을 끌어모으기에 부적합했기에 김 모 양은 덜컥 걱정이 들었다.
설마 대표가 그것도 모르겠냐고 안도하기에는 멤버들이 한 번씩 농담하듯 말하던 김노답의 취향은 확실히 너무나 노답이었으니까.
만약 김노답이 취향 따라 SF+호러 세계관으로 애들을 굴린다면….
“그날이 LnL 사옥 앞에 근조 화환 쫙 늘어지는 날이지.”
눈을 살벌하게 번뜩이며 김 모 양은 <’Till Dawn>의 뮤직 비디오를 재생했다.
첫 장면부터 길에 쓰러진 류재희를 비추어 준 덕분에 세 뮤직 비디오의 내용이 이어진다는 걸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지친 얼굴로 류재희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다시 걷기 시작한다. 견하준이 가리키는 곳을 보며 잠시간 주저하던 류재희는 여느 때처럼 그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다시 나온 티 파티 장소. 다시 각자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윤이든과 서예현.
류재희는 드디어 윤이든이 가리킨 곳을 향해 걸어가고, 윤이든이 미소 지음과 동시에 서예현의 표정에서 미소가 싹 지워진다. 후광 역시 점차 꺼지기 시작한다.
[EXIT]에 다다른 류재희가 늪 밖으로 걸어 나와 김도빈을 마주했다. 김도빈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늪에서 불쑥 나와 제 발목을 덥석 잡는 손에 저항 한 번 못 하고 늪으로 끌려 들어갔다. 검은 늪 위에 웃는 얼굴 가면만이 둥둥 떠 있었다.드디어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배경에 걸렸다. 바닥에 누운 류재희의 위에 베일을 덮어씌워 준 윤이든이 류재희의 몸을 마치 피에타 조각상처럼 들어 올려 제 무릎 위에 올렸다.
베일을 제 손으로 걷고 일어난 류재희가 드디어 견하준이 가리키는 곳으로 멀어진다.
그들이 벗어난 검은 늪의 수면이 요동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켜 류재희를 뒤쫓는 윤이든을 마지막으로 뮤직 비디오가 끝났다.
“어쩐지 뮤직 비디오가 짧다 싶었더니 곡이 2분 50초구나?”
참았던 숨을 터트리며 김 모 양은 재생바 시간을 확인했다. <’Till Dawn>의 곡도 꽤 신선했다. 작곡 첫 이름이 윤이든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히 이번 정규 앨범은 실험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다.
-그러니까… 남자 얼굴에 현혹되지 말라는 게 교훈인가?
-이건 솔직히 취향차이 아니냐고 나는 날티상 미남이 취향이라 당연히 이든이 선택했을 텐데
-그런데 진짜 재희가 주인공인게 신의 한수… 만약 이든이었으면 전혀 걱정이 안 되었을 거 같음… 오히려 멤버들 멱살 잡고 맞는 길 찾아내라고 협박할까 봐 조마조마했을듯ㅠ
“아니, 우리 애기고영 캐해 왜 저래? 우리 애가 무슨 애들 멱살을 잡아.”
그녀야 멤버들 얼굴을 중점으로 뮤직 비디오를 감상했으나, 분명히 떡밥을 찾은 이가 뮤비 해석을 올려 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안고 그녀는 서치에 돌입했다.
그래, 영상미 넘치는 영상 화보도 좋지만 역시 뮤비는 떡밥 해석 보는 맛이지.
* * *
“와, 반응 무슨 일이야.”
파죽지세로 올라가는 뮤직 비디오의 조회 수에 서예현이 왜인지 멋쩍게 들리는 감탄을 작게 내뱉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서예현은 기획 단계에서 실험적인 면이 있는 호러섹시보다는 검증된 섹시 콘셉트를 더 밀긴 했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국은 본인의 의견을 포기했지만 한 번씩, 특히 뮤비 촬영할 때 염려를 표하곤 했다.
우리의 컨셉은 언제까지나 호러가 아닌 섹시니 호러가 섹시를 뒷받침해 주어야 하는데 호러가 섹시를 잡아먹으면 어떡하느냐고.
그런 말을 왜 내 얼굴을 보면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 <’Till Dawn>이 나란히 음원 차트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좀 신기했다.(악몽)>
타이틀곡인 는 몰라도 다른 곡들은 언제 순위가 내려갈지 몰랐기에 잽싸게 캡쳐까지 마쳤다.(악몽)>
내가 물병 좀 달라고 손을 내밀자 그걸 보고 원샷해서 싹 비워 버린 김도빈이 기왕 물 다 처마신 김에 소화 잘- 되라고 목 마사지나 해 주려는 내 팔을 피해 연습실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그 개판이 된 상황 속에서 견하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까 내일이 우리 첫 쇼케이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