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3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35화(43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35화
귀의 상처에 손이 닿지 않게 조심히 어깨에 팔을 얹자 김도빈이 눈에 띄게 흠칫했다.
“제가 사실 기억이 날아가서 하극상을 한 기억이 안 나요.”
눈을 굴리면서 필사적으로 잡아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눈이 가늘어졌다.
흠, 상황이 상황이기도 했고 분위기나 풀어 보자 가볍게 던진 농담에 가까웠는데 김도빈의 반응이 저러니까 정황이 없어서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 굉장히 무슨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처럼 느껴졌다.
자기도 부상 입고 현재 진행형으로 출혈이 진행 중인데다가 멤버들이고 스탭들이고 주변에서 정신 없게 만들었으니 저 녀석한테 그런 하극상을 당했음에도 나는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 갑작스러운 부상을 입고도 놀란 티 하나 내지 않고 꿋꿋하게 무대를 마친 김도빈이 기특했기도 하고 말이다.
그랬는데, 이걸 기회 삼아서 했다고 하면 말이 좀 달라지지?
“그래? 기억이 안 나? 이상하다? 기억이 안 나는데 왜 자꾸 내 눈을 그렇게 피하냐?”
“저 원래 형 무서워하잖아여.”
내 팔을 잽싸게 털어 내고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으며 김도빈이 입술에 침 하나 안 바르고 뻔뻔한 얼굴로 이빨을 까 댔다.
요사이 김도빈의 태도와 오늘의 하극상을 떠올리니 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웃기고 있네. 요새는 딱히 무서워하지도 않고 할 말 다 하더만. 그리고 너는 무서운 사람한테 사람 등짝 내리치면서 정신 사나우니까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하냐?”
그랬다.
나는 무려 김도빈한테 등짝을 맞았다. 게다가 타박도 들었다.
웃다가 내 등짝 두드리는 건 흥에 겨워서 그렇구나- 하고 봐 줄 수 있었다. 이걸 하극상의 범주에 넣기에는 애매했다.
하지만 타박과 저지를 동반한 등짝 스매싱은 명백한 하극상이었다.
이전에 비슷한 짓을 했던 류재희야 무작정 디스랩 갈기려고 했던 내가 찔리는 게 있었기에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이 자식은 내가 무려 걱정을 해 주는데도 내 등짝을 짝 내리치며 나를 타박해 댔다.
내가 크루 형들 등짝 때리면서 잘못이든 실수든 지적했다고 생각해 봐라. 어우씨, 뭔 소리를 들을까 소름이 다 돋네.
아무리 친한 형동생 사이여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아니, 그건 형이 자꾸 119 부르라고 난리니까…! 안 그래도 사방에서 응급 처치를 해야 하네 당장 병원에 가야 하네 뭐하네 난린데 형이 제일 목청 높게, 어휴.”
경황 없어서 저도 잊은 것 같아 넘어가려 하니까 저렇게 고의적이었다고 실토를 하네.
“조금 놀랐을 뿐이지 솔직히 119 부를 만큼 아프지도 않았는데. 이건 솔직히 정당방위? 미필적 고의? 뭐지?”
김도빈이 적절한 단어를 찾으려는 양,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야, 네가 피 너무 흘려서 어지러운 것 같다고 해서 내가 119 부르라고 했지! 네가 멀쩡하다고 했으면 부르라고 했겠냐?”
“아니, 그치만 저도 생색 좀 내고 싶었단 말이에요. 극한 상황과 고통, 과다 출혈을 이겨 내고 무대를 꿋꿋이 마친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 이런 걸로.”
역시 내가 김도빈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서예현보다는 당연히 낫고. 멤버 다섯 명 중에서 세 번째로 나으면 리더 할 만하지, 뭐.
자화자찬함과 동시에 내가 팀 내에서 제일 노답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를 느낄 찰나.
“그래도 제가 역시 형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수정 메이크업을 받던 김도빈이 개소리를 시전했다. 포도 앞에서 관심 받으려고 그렇게 굴러 대더니 이제는 류재희랑 나란히 개 언어라도 습득한 모양이었다.
“저는 이 정도 피 나는 걸로 119 부르라고 난리는 안 치니까요.”
그래서 하극상을 하셨겠다? 목 마사지를 선사해 주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밴드가 붙은 김도빈의 귀를 빤히 보며 입을 열었다.
“도빈아, 상처 다 나으면 보자.”
“그런데 솔직히 진짜 시끄럽긴 했어. 도빈이 아니었으면 내가 네 등짝 때렸다. 119가 무슨 만병 통치약이야? 무슨 일 있을 때마다 119 찾아.”
서예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끼어들었다.
“그 무슨 일이 다 유혈을 동반한 일인 건 머릿속에서 싹 지우신 겁니까, 형님? 지금까지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유혈 사태가 일어났었는데 그건 쏙 빼 놓고! 저만 유난인 놈으로 만들면 어떡합니까.”
“너는 유난 맞아. 감기 몸살도 구급차 불러 달라고 했잖아.”
“저희 데뷔하고 4년 동안 이든이 형은 총 각혈 두 번에 코피 한 번, 몸살 난 적 한 번이요. 그리고 건강 검진 결과 각혈의 원인이 될 만한 병도 없고 폐랑 기관지, 위, 식도에도 이상 없음.”
“얘는 참 튼튼한데 한 번씩 굉장히 스펙타클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쟤 피 토한 게 아니라 코피 난 게 목구멍으로 넘어갔거나 자기가 입 안쪽 깨물어서 피 난 거라니까.”
서예현이 나의 건강 이슈를 후려쳤다. 시스템의 극악무도한 페널티라고 말하지 못하는 게 참으로 한스러웠다.
더 난리를 치다간 내가 시스템의 존재까지 까발리며 김도빈과 같은 놈으로 묶일 수 있었기에 일단 1보 후퇴했다.
만병 통치약… 흠.
컴백 인터뷰를 위해 MC들이 있는 곳으로 불려 가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서예현이 던졌던 단어가 둥둥 떠다녔다.
“위험하고 섹시한 다섯 남자들로 돌아온 레브의 컴백 스테이지, 많이 많이 기대해 주세요! 뮤직 캠프 채널 고정!”
* * *
이변 없이 5인조로 컴백 스테이지를 무사히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김도빈은 류재희의 닦달에 의해 팬카페에 올릴 글 작성을 시작했다.
제 부상을 걱정해 준 데이드림에게 감사를 전하며, 부상은 심하지 않고 굳이 따지자면 안무를 하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자신의 탓이며 쇼케이스를 끝까지 이어 나간 것, 오늘 음방에 선 것은 모두 제 의견이었다는 논조의 글을 류재희한테 몇 번이나 첨삭 받고 나서야 김도빈은 드디어 해방되었다는 얼굴로 FROM 게시판에 셀카와 함께 글을 올렸다.
류재희는 부상이 작게 보이도록 셀카 각도까지 코칭해 줬다. 옆에서 세세하게 지시를 해 줘도 더럽게 각도를 못 마추는 김도빈 때문에 결국 내가 옆에 앉아 손을 잡고 휴대폰 각도를 조정해 줬다.
그래, 역시 김도빈보다는 내가 훨 낫지.
김도빈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나머지 멤버들도 첫 쇼케이스의 소감을 올렸다. 이제는 두 줄 이상으로 글을 쓰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망할 시스템은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은근슬쩍 기준을 다섯 줄로 늘려놨더라. 최대한 컴백 스포를 피하려고 네 줄로 글을 올리려고 한 날에 초심도가 깎이며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도빈이 귓불 쪽을 꿰맨 실밥을 빼러 가고 나서 한 사흘 후에 만병통치약을 자연스럽게 건넸다. 이 정도 날짜면 아물기 시작한다고 하더라.
귓불의 밴드가 눈에 걸려 바로 주고 싶었지만 너무 급작스럽게 상처가 아물면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 회복력이 빠르다는 핑계를 댈 수 있을 만한 날짜까지 기다렸다.
만병통치약을 마신 김도빈은 그날 약을 다시 바르기 위해 밴드를 뗐다가 다 아물었다고 온 숙소를 돌아다니며 제 귓불을 멤버들에게 보여주고 다녔다.
내가 시발 이거 뽑으려고 얼마 있지도 않은 랜덤 티켓을 다 깠다.
그러니 김도빈은 나한테 삼보일배하며 고마워해야 한다. 물론 남아 있더라도 처박아 놓고 존재도 잊어 버렸을 확률이 높았지만 일단 김도빈을 위해서 쓴 것이지 않은가.
에휴, 예전이었으면 견하준 빼고 알 바 아니었을 텐데 지금은 신경 써야 할 놈이 하나에서 넷으로 늘어났으니.
시스템도 김도빈을 편애하는 게 분명했다. 류재희가 몸살 났을 때 요리 아이템이고 만병통치약이고 쓸모 있는 걸 도통 내놓지를 않더니 김도빈이 다쳤을 때만 쓸모 있는 아이템을 내놓다니.
비(非)김도빈 편애를 좀 멈춰 봐라, 시스템 이 자식아.
[편애한 적 없습니다.]“참,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가늠이 안 간단 말이야.”
작업실 의자에 기대어 탁자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작업실의 좋은 점은 멤버들 눈치 보면서 시스템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허공에 대고 떠들어 대면 오해 사기 딱 좋지.
강제적인 행동 교정이야 둘째치더라도 페널티를 건 이상한 퀘스트들은 귀찮음을 넘어 내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들까지 위협했지만 그렇다고 시스템이 마냥 나를 위협만 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이번처럼 적절한 아이템으로 도움이 될 때도 있었고, 초심도만으로도 벅찬데 위험도인가 뭔가 하는 또 쓰잘데기 없는 것까지 내 삶에 추가되는 빌어먹을 참사도 막아주지 않았나.
저번에 서른 살의 내가 잠깐 빙의인가 회귀인가를 했을 때 차연호가 내게 넘기며 잠깐 내게 머물렀던 그 위험도 시스템은 초심도처럼 내게 고통을 선사하는 것도 아닌데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 찝찝했다.
“분명히 그때 외부 침입 시도라고 했지. 위험도가 해킹 개념이라면 그 위험도라는 시스템은 너랑 별개냐?”
본체를 해킹하는 프로그램도 있으므로 섣불리 판단하기엔 뭐했다.
[초심 되찾기 프로젝트는 오직 ‘윤이든’ 님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입니다.] [본 시스템은 오직 하나의 프로젝트만 수행 가능합니다.]이게 무슨 일급 비밀이라도 되어서 직설적인 대답을 하는 게 불가능한건지, 말을 저렇게 복잡하게 풀어서 했지만 결국 내 가정이 맞다는 뜻이었다. 초심도와 위험도는 별개의 시스템이다.
그럼 차연호가 지금 제 패로 가지고 있는 ‘기억을 되찾는 법’은 쓸모 없어진 패라는 소리였다.
보유 시스템이 다른데 차연호가 쓴 방식이 내게도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
결국은 시스템이 던져 준 기억의 파편만 받아먹는 방법밖에 없다는 소리인가. 게임에도 버그와 치트가 있듯 분명 다른 방법이 존재할 것 같은데.
‘이걸 역으로 이용해서 차연호에게 과거 기억이든 걔 시스템이든 정보를 좀 뜯어 낼 수 없나?’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려 머리를 굴려 봤지만, 자꾸 하와이에서의 일만 반복 재생되었다. 내가 머리를 써 본 결과가.
두뇌 교환 1일권 아이템, 뭐 이런 건 없나? 막내도 하루쯤은 생각 없이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삐삐삐삑-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비밀번호를 급하게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작업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오려면 온다고 말을 미리 하고 와야 할 거 아니야. 인상을 찌푸리며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의 말아먹은 침입자의 얼굴을 보자 장전하고 있던 윽박이 싹 사라졌다.
얼굴이 아니라 꼴을 보고 말이다.
“형, 형!”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김도빈이 손까지 떨어 대며 내게 곧장 달려왔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무슨 일이냐고 다급히 물어보자 겨우 숨을 고른 김도빈이 연신 두려운 눈으로 뒤를 힐긋거리고 나를 보기를 반복하더니 내 미간에 깊은 골이 생긴 걸 본 후에야 결심이 선 듯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희 연습실에 귀신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