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3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36화(43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36화
환장하겠네, 진짜. 나는 또 뭐라고.
긴장이 탁 풀림과 동시에 허탈함과 실소가 훅 몰려왔다. 그래, 달려온 녀석이 김도빈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인 내가 멍청이지.
어이가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긴장이 한순간에 풀려서 그런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대꾸했다.
“노크도 안 하고 갑자기 들어와서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런데 김도빈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아니라고, 자기가 자기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결백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낯선 김도빈의 반응에 내가 더 괜히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 자식, 답지 않게 왜 저래?
잔뜩 경계심과 겁이 서린 표정을 한 채 김도빈이 입을 열었다.
“혀, 형. 귀신 씌인 거 아니죠…? 제가, 제가 괜히 눈치챈 거 티 내는 바람에 그 연습실 귀신 데려와서 그게 형한테 붙은 거 아니죠?”
또 다시 이마가 지끈거렸다. 그래, 김도빈 말에 긴장한 내가 등신이지.
목소리도 덜덜 떨리다가 삑사리 내는 꼴을 보아하니 제 딴에는 진지한 질문이었나 보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내가 귀신 붙은 것처럼 보이냐?”
“원래 형은 ‘귀신? 귀-이-신?’ 이거부터 박고 시작하잖아요!”
원래 하려고 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힘이 쭉 빠지는 바람에 그냥 생략했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귀신 들렸다는 오해를 받다니.
“그래, 너 말 한번 잘했다. 귀신? 귀-이-신? 지금 시간이 무슨 새벽도 아니고 훤하디훤한 저녁 10시에 귀신은 얼어 죽을!”
기대를 충족시켜 줬건만 김도빈은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 진짜 얼어 죽은 귀신이면 형 말에 더 빡칠 수가 있다고 더욱 벌벌 떨어 댔다.
“야, 도빈아.”
“넵, 형.”
“만약 귀신이라고 생각한 근거가 빈약하면 각오해라?”
김도빈의 눈앞에서 가볍게 손을 풀며 협박조로 말을 했음에도 김도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예전이었으면 지레 겁먹고 쫄았을 텐데, 내가 많이 만만해진 건가. 리더로서의 권위를 한 번 또 세울 때가 됐나.
이 정도면 레브 회의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희가 연습실 문을 잠그고 가잖아요.”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 사이, 김도빈은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연습실에 보조 배터리 두고 왔는데 내일 쓰려면 충전해야 해서 하준이 형한테 열쇠 받아서 다시 가지러 갔거든요.”
“어, 그래.”
“그런데 연습실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요. 막 끕끕거리면서 울고 있는 소리 같은 게. 그래서 혹시 막내인가 싶어서 전화했는데 아니래요.”
“그럼 예현이 형인가 보지.”
“아니래요! 다 숙소에 있대요! 그래서 형한테 바로 튀어온 거예요!”
“왜, 혹시 나일까 봐?”
“아니요? 당연히 형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제외했죠. 솔직히 형이 홀로 연습실에서 울고 있는 게 더 호러잖아요. 그건 이제 형이 아니라 형 탈을 쓴 무언가겠죠.”
“그럼 왜 온 건데.”
“보조 배터리 가지러 같이 가면 안 돼요? 혼자 가긴 무섭단 말이에요. 진짜 사람 우는 소리 들렸어요.”
김도빈이 내 작업실로 달려온 본론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내가 무슨 무당도 아닌데 왜 왔나 했다.
“내일 연습실 가니까 그때 챙기면 되지, 굳이?”
“콘센트에 꽂힌 충전기 사용 우선 순위는 맨날 형들이잖아요. 저랑 재희는 10%도 충전 못 한다고요. 그러니까 보조 배터리 가지고 다니죠.”
“충전기 순서 양보해 줄게. 내일 가.”
“보조 배터리에 귀신 들리면 어떡해요! 그래서 숙소에 가져왔는데 그게 밤마다 제 꿈속으로 들어와서 악몽으로 만들고, 자고 있는 제 목 막 조르고 그러면…!”
“또 헛소리한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 왜, 전에 갔던 펜션 페이크다큐도 진짜라고 또 우겨 보지?”
“그거 진짜래요! 이모가 무당이 빨리 팔아 버리던가 그 집 밀어 버리라 했다고 그랬다고요!”
“그거 다 굿값이랑 부적값 떼어 먹으려는 수법이다.”
이제는 숫제 가슴을 퍽퍽 두드리는 김도빈을 향해 부드럽게 물었다.
“도빈아, 연습실에 귀신이 있는 게 무섭냐, 칼 들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게 무섭냐?”
“둘 다요.”
“둘 다가 어디 있어. 하나만 골라, 인마.”
“그럼 귀신이요. 칼 들고 있는 사람은 112에 신고해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라도 있는데 귀신은 못 하잖아요.”
저런 이상하고 지독한 쫄보 자식을 봤나.
결국 김도빈을 따라 몸을 일으켰다. 내 차는 그냥 작업실에다가 두고 김도빈의 차로 소속사로 이동했다.
“이야, 운전 많이 늘었다? 역시 처음 배울 때 빡세게 배워야 한다니까.”
“그러니까 지금 형은 제 운전 실력에 감탄하고 있는 게 아니라 형의 그 스파르타 교육과 선견지명에 감탄하고 있는 거네요.”
“잘 아네.”
출입증을 찍고 사옥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 우리 연습실 앞에 도착했다. 흐느낌 소리의 ‘흐’자도 나지 않고 고요했다. 김도빈이 그렇지, 뭐.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마자 부드럽게 열리는 문에 눈썹을 치키며 내 등 뒤에 바짝 붙어 선 김도빈을 돌아보았다.
“너 문 열었었냐?”
“기억이 안 나요. 내가 문을 열었던가? 문고리에 손 짚은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네가 열었겠지. 네가 정신 빼놓고 다니는 게 한두 번이냐?”
벌컥, 문을 열자 김도빈이 내 등을 쿡쿡 찔렀다.
“형, 뭐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데. 네가 직접 봐 보던가.”
김도빈의 목덜미를 잡아 휙 끌어오며 연습실 조명을 켰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연습실이 우리를 반겼다.
“그냥 네 뇌내망상을 현실로 착각한 거 아니냐? 너 분명히 복도 어둡다고 쫄아 있었을 텐데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잽싸게 제 보조 배터리를 챙긴 김도빈을 향해 심드렁하게 말하자 김도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귀신 소동은 대충 일단락되는 듯했다.
* * *
“그러고 보니까 우리 내일부터 점수 집계되나?”
“우리가 올라가면 도 1위 후보에서 내려오겠죠? 은근 아쉽네요. 서라온 선배님 대신 나와서 트로피 받는 거 재미있었는데.”
“혹시 모르지. 다른 곡이 내려가고 그건 남아 있을 수도.”
컴백 첫 주는 김도빈의 부상으로 정신없는 사이에 빠르게 지나갔다. 정말 김도빈의 말대로 액땜이라도 했듯 쇼케이스 이후에는 별일 없었다.
음원 역시 굳건하게 1위를 지키고 있었고 나머지 곡들도 순위가 10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활동 스케줄이 끝나면 개인 스케줄을 가기 전에 짬 날 때 연습실에서 짧게나마 안무 연습을 했다.
“눈 감고도 대형이랑 동선 맞춰서 출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더 연습을 해야 할까.”
“형은 아마 활동 끝날 때까지?”
“그 정도만 해도 돼? 1년이 아니고? 내 실력 그렇게 늘어난 거야?”
휴대폰에 정신 팔린 김도빈의 아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서예현이 기뻐했다. 나도 속으로 1년은 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서예현의 말에 흠칫했다. 왜 겹치고 난리야.
“<’Till dawn>은 발라드라 안무라도 많이 없지, 는 어떻게 된 게 타이틀곡보다 더 어려워.”
“가 타이틀곡 됐으면 형 꽤 고생했겠다. 그런데 형 에 표 던지지 않았어?”
“왜 윤이든이 할 법한 말을 하는 건데.”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여느 때처럼 움직이지 않는 제 몸이 아닌 안무 난이도에 불평을 하는 서예현의 목소리와 간간이 대꾸해 주는 견하준의 목소리가 조용하게 울렸다.
그 나름의 고요를 깨부순 건 김도빈의 갑작스러운 외침이었다.
“형들, 빽! 빽! 팻캠에 뭐 잡혔어요! 내가 말했잖아요! 진짜 귀신 맞다니까!”
운전석 쪽으로 몸을 뻗어 제 휴대폰 화면을 보여 주며 김도빈이 난동을 부려 댔다. 그래도 목숨 소중한 건 아는지 내가 신호 대기하느라 차 멈췄을 때 그 난리를 떨더라.
어두컴컴한 배경에 흐릿하게 사람의 인영처럼 무언가가 뜬 화면이 보였다.
괜히 찜찜해지네.
“대체 팻캠은 또 언제 설치한 건데?”
“저는 귀신 있는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싶지 않다고요! 저 혼자 밤늦게까지 연습할 일이 생기면 어떡해요!”
“그냥 청소하는 사람 아닐까?”
“우리 연습실 문 잠갔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들어와요! 청소도 수요일이랑 일요일 아침에만 맡기고 열쇠도 없는데!”
김도빈의 비명 같은 외침에 차 내부에 침묵이 감돌았다.
“형, 그런데 진짜 귀신이라 한들 가서 뭐하게?”
“이든이 형이 퇴치해 줄 거야. 우리한테는 이든이 형이 있어.”
“내가 무슨 퇴마사냐?”
신호가 바뀌었다. 숙소로 갈 것인지 아니면 소속사로 차를 돌릴 것인지 고민하고 있자 조수석의 견하준이 나를 툭툭 쳤다.
“그래도 일단 가 보긴 하자. 저게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어도 문제잖아. 그런데 이 시간에 사옥 들어가려면 출입증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러니까… 하준이 네 말은 누가 출입증을 복사해서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는 소리지…?”
서예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에 견하준이 멋쩍게 볼을 긁적이며 대꾸했다.
“아니, 나는 그냥 내부인일 수도 있다는 소리였는데.”
“아니, 그런데 진짜 예현이 형 추측이 맞을 수도 있잖아요. 만약 출입증 복사해서 들어온 사생이면 더 큰일인데!”
침입자를 사생이라고 판단 내린 류재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 와중에 김도빈은 계속 귀신 설을 밀고 있었다.
“소금이라도 사 갈까요?”
“형, 사생한테 소금 뿌리게?”
“아니, 왜 다들 귀신일 수도 있다는 추측은 안 하는 건데? 우리 다 같이 산장이랑 펜션 겪지 않았냐고!”
그야 거기에서 귀신을 안 마주쳤으니까.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매니저를 부를 수는 없어 바로 소속사로 차를 돌렸다. 대략 20분 정도 달려서 다시 소속사에 도착했다.
“이 소리. 제가 들은 소리가 이거였어요.”
연습실 문 앞에 서자 희미하게 들려오는 훌쩍거림에 김도빈이 목소리 낮추어 속삭였다.
“남자 울음 소린데?”
“총각 귀신?”
“에휴.”
견하준이 열쇠를 꺼내는 동안 실험 삼아 연습실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분명 우리가 막 잠그고 확인했을 때까지만 해도 턱턱 막히던 문고리가 아주 부드럽게 돌아갔다.
결연한 표정들과 함께 말없이 시선이 교환되고.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 연습실 불부터 켰다. 조명이 들어와 공간이 환해지며 거울에 등을 기댄 채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놀란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앳된 얼굴은 우리 그룹 막내인 류재희보다 더 어려 보였다. 급하게 몸을 벌떡 일으킨 침입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둥지둥했다.
“죄, 죄송합니다. 빈 연습실인 줄 알고….”
연신 꾸벅이던 고개를 들자 눈에 온전히 담긴 얼굴이 퍽 익숙해서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많은 게 바뀌었지만 때로는 바뀌지 않는 것들도 있더라.
첫 콘서트에서의 팬 이벤트 문구도, 그리고…
회귀 전에 가장 아끼던 후배를 이렇게 다시 이 소속사의 연습실에서 마주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