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44화(44/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4화
“이번 주 1위는…… 축하드립니다! NITY의 그라데이션!”
1위 트로피를 건네받는 선배 걸그룹의 옆에서 진심 어린 박수갈채를 보냈다.
저분들 덕분에 KICKS도 1위를 못 했기에 아주 감사하고 만족스러웠다.
NITY의 활동은 이번 주로 끝이니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레브와 KICKS의 대결 구도로 접어들 터였다.
“형, NITY 선배님들 팬이었어요?”
“아니?”
“그런데 무슨 박수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쳐요? 아도라 선배님들 영접한 도빈이 형 보는 줄…….”
“차라리 욕을 해라. 말 진짜 심하게 하네.”
“이든이 형? 저 옆에 있는데요?”
김도빈이 옆에서 징징거렸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현재는 1위 발표가 끝나고 CP 인사를 위해 복도에서 죽 늘어서 대기 중이었다.
우리의 맞은편에는 연차가 비슷한 KICKS가 섰다.
대기실에서 둘 셋씩만 모여 이야기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서로 꽤 서먹해졌는지 이전의 그 뒷담으로 하나 된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상태의 놈들을 보는 내 입맛은 매우 고소하기 그지없었다.
PD 올 때까지 시간도 남았겠다, 대충 서치 위클리 퀘스트 겸 모니터링을 했다.
-캬 견하준 도입부 찢었다 역시 킬링파트 견하준만큼 소화하는 멤은 없는 듯
-이든이 텐션 오늘따라 왜 이렇게 높아? 울 애기고영 기분 좋아서 무대에서 우다다하고 다니는 거 보니까 나도 괜히 뿌듯하고 좋다
-윤이든 팬들 ㅈㄴ 신기함 어떻게 저 얼굴을 아기고양이로 모에화할 수가 있지 인상 센 남돌 투표하면 강세한 제치고 1위도 충분히 먹겠는데
└내 말이 하도 애기고영 이래서 키 한 165 정도 되는 줄 180이라고 해서 개놀람
-내우주 때가 전생같다…… 내우주 때 입덕했던 석 달 전의 내게 스타일리스트와 레브 무대를 찬양할 날이 올 거라고 말하면 절대 안 믿겠지
└우와 내우주때 입덕이라니 찐팬이다
-윤리다가 멤버들 음역대랑 음색이랑 창법 다 고려해서 작곡했다더니 진짜 파트 다들 찰떡이다 특히 유제 후렴구는 진짜…… 컴백라이브에서 말한 것처럼 영어발음 때문에 하준이한테 갔으면 이 느낌 안 나고 많이 아쉬웠을 거 같음
-오늘도 어김없이 뉴 안무를 창시해 내신 예현오빠
-도빈이 오늘 날아다니더라ㅎㅎㅎ 울 멈무 ㄱㅇㅇ
내가 안 본 사이에 또 서예현이 안무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내 상상 속의 무대에는 서예현의 안무 실수까지 구현되어 있었기에 별로 타격은 없었다.
CP 인사까지 마치고 퇴근하자마자 리얼리티 촬영이 이어졌다.
반지하 숙소에서 촬영하는 건 영 그림이 안 사는지 촬영은 숙소 근처의 개인 카페를 빌렸다.
그래도 대표님이 괜찮은 매물을 찾으셔서 곧 이사할 테니 버릴 것들 미리미리 버려 놓고 짐도 싸 놓고 숙소 정리도 좀 하라고 매니저 형한테 전해 들었다.
대표님의 안목을 절대 믿지 못하는 우리는 사람이 살 만한 집은 맞냐고 매니저 형 얼굴 볼 때마다 1분에 한 번씩 캐물었고, 대표님 사무실로 쳐들어갈 기세인 우리를 말리기 위해 매니저 형은 결국 예비 숙소 사진을 보여 줬다.
사진으로 본 숙소는 다행히 겉보기에는 깔끔하고 괜찮았다. 집에는 그 이상한 안목이 발휘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레브 멤버 분들이 체험해 보고 싶은 콘텐츠를 멤버들 간의 회의를 거쳐 여기에 써서 저희에게 전달해 주시면 돼요. 적당히 두세 개 정도?”
마커와 작은 화이트보드를 내미는 제작진의 안내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만 카페인 섭취 금지령이 내려졌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주문한 레몬티를 홀짝였다.
견하준은 카페라떼, 서예현은 아메리카노, 김도빈은 민트초코, 류재희는 청포도에이드.
다 자기들이 꿋꿋이 고집하는 음료였다.
그래도 다른 음료 한 번씩은 찾는 막내 라인과 다르게 견하준과 서예현이 회귀 전 7년 동안 다른 음료를 먹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의견 있으신 분?”
“나.”
“오, 역시 우리 리더. 제일 먼저 아이디어를 내시는군요! 과연 우리 레브 리더 님이 생각한 레브의 리얼리티 콘텐츠는?”
“대학병원에서 진행하는 정밀 건강검진.”
내 말에 모두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류재희가 이마를 짚으며 한탄했다.
“아, 형. 제발요.”
“왜? 그거만큼 유익한 콘텐츠가 어디 있어?”
건강도 챙길 겸 겸사겸사 수면내시경 헛소리까지 찍으면 개꿀잼 콘텐츠 하나 뚝딱 아니냐고.
정밀 건강검진을 화이트보드에 적으려 하는 내 손길을 필사적으로 제지하며 김도빈이 외쳤다.
“저 피 뽑기 무섭단 말이에요!”
“도빈아, 네 나이가 열여덟 살이지, 여덟 살이냐?”
“그냥 평범하게 소풍, 놀이동산, 이런 거 하면 안 될까요?”
“진짜 여덟 살이냐?”
“여덟 살만 놀이동산을 간다는 편견을 버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내 손에서 어느새 마커를 쏙 빼간 류재희가 잽싸게 놀이동산을 적었다.
“정밀 건강검진도 적으라니까.”
“다수결로 합시다, 다수결로. 놀이동산 원하는 사람 손!”
류재희와 김도빈, 두 명이 손을 들었다.
“건강검진 원하는 사람 손!”
오직 나만이 손을 들었다. 어느 선택지도 고르지 않은 두 놈을 쳐다보았다.
“아니, 두 사람은 나이도 있는데 당연히 건강검진을 택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 너랑 동갑이야, 이든아.”
“나 너랑 한 살 차이다.”
나이 이야기에 왜인지 울컥한 것 같은 견하준과 서예현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형이랑 준이 너는 뭐 하고 싶은데?”
“농촌 체험이나, 음…….”
내가 웬만해서는 다 들어 주고 싶었는데 유감이지만 그건 탈락이다, 준아.
농촌 체험. 찍는 우리도 힘들고 보는 시청자들도 딱히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힐링 체험이라지만 아무에게도 힐링되지 않는 lose-lose 콘텐츠.
시골 똥개 김도빈만 농촌체험에 무슨 로망이라도 있는지 눈을 반짝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시큰둥했다.
아메리카노만 무슨 화보처럼 홀짝이고 있던 서예현이 입을 열었다.
“바다 가자, 바다.”
“오, 괜찮은데?”
“저도 바다는 찬성이요.”
“에엥, 겨울 바다는 못 들어가잖아요. 그냥 여름에 가면 안 돼요?”
“이번에는 발만 담그면 되지. 여름에도 한 번 가고.”
다수의 동의를 얻고 바다는 깨끗하게 지워진 화이트보드에 적힐 수 있었다.
“요리 경진 대회는?”
“와, 준이 치트키 쓰네?”
“맞아요, 우우우! 어우준이잖아요.”
“어우준?”
“어차피 우승은 견하준 줄임말이요. 하준이 형이 심사위원이면 몰라도 참가자면 아마추어 대회에 고든 램지가 나온 꼴 아니냐고요.”
견하준이 심사위원이라 한들 심사 목록이 구운 닭가슴살 vs 회오리오믈렛 vs 라면 vs 간장계란밥인데? 진짜 가슴이 싸늘해지는 개허접 대결이다.
그나마 우승 후보는 내 회오리오믈렛?
이후로도 익스트림 스포츠 체험, 번지점프, 클라이밍, 등산, 병원 건강검진 체험, 공포영화 감상,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 체험, 락밴드 체험 등등이 나왔으나.
모두 다수결에서 두 표를 넘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와, 30분 동안 하나 적은 거 실화?”
“그러게. 적어도 두 개는 채워야 하는데.”
“하나는 정밀 건강검진 하자니까? 건강도 챙기고, 콘텐츠도 뽑고 일석이조잖아.”
“이든이 형, 아직도 포기 안 했어요?”
[타 멤버들을 배려하지 않은 의견 고집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따끔하게 찔러 오는 듯한 고통에 움찔, 몸이 떨렸다.
“그래, 막내야. 그리고 사랑하는 나머지 멤버들아. 건강검진은 포기할 테니 좋은 의견이나 내 봐라.”
서러워 죽겠네. 내가 건강검진 고집하면 얼마나 고집했다고.
“대체 재미와 감동까지 다 잡을 수 있는 콘텐츠가 뭐가 있을까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어. 하나는 포기해.”
“저는 너튜브 천만 뷰 영상의 주인공이 되는 게 꿈이라서 포기 못 해요.”
“진짜 너다운 꿈이다, 도빈아.”
점점 늘어지는 회의 시간에 제작진들은 제한 시간을 추가했고, 결국 우리가 작성해서 낸 건…….
[바다, 요리(?)]“요리 뒤에 물음표는 뭔가요?”
“요리 콘텐츠인데 뭐로 할지는 아직 못 정해서…… 아하하…….”
아마 개허접 요리 경진대회가 될 확률이 제일 높지 않을까.
그렇게 촬영이 마무리되고, 메인 작가가 우리를 불렀다.
“조금만 더 캐릭터가 확실하고 튀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 레브 멤버분들도 충분히 매력적이긴 한데, 카메라에 담기는 모습들을 보면 확 사는 캐릭터가 현재로서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예능 포지션을 정하라는 소리였다.
회귀 전에도 레브는 딱히 유잼 그룹이라는 말을 듣고 살지는 않았기에 과거의 기억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을 터였다.
다음 촬영 때는 확실해진 캐릭터성을 기대한다는 말을 끝으로 우리는 녹초가 되어 퇴근했다.
이번 촬영지가 숙소 근처라는 게 정말로 다행이었다.
-내용: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팬들에게 보여 줄 모습을 만들어 보세요! 서치를 통해 팬들이 당신에게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 알아보고 그에 맞춰 콘셉트를 생성해 보는 게 어떤가요?
-보상: 초심도 10, 랜덤 티켓
-기한: 3일
※알맞은 콘셉트를 만들지 못할 시 페널티가 존재합니다!]
이전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은 퀘스트에 눈썹을 치키기도 잠시, 바뀐 기한을 보자 식겁했다.
사흘 안에 또 콘셉트 못 잡으면 페널티라니.
각혈과 뒷수습하느라 개고생한 악몽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 머리로는 도저히 팬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콘셉트를 생각해 낼 수가 없었기에-그때도 그래서 포기했지 않은가– 멤버들의 도움을 좀 받기로 했다.
내가 그룹에 기여한 게 얼만데 서로 상부상조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예능 포지션인지 뭔지도 정해야 하고 말이다.
아직 숙소에 설치된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지금이 적기다.
망설임 없이 크리스마스 기념곡 작업 계획을 내다 버리고, 회의할 때마다 쓰는 공책을 꺼내 들며 외쳤다.
“얘들아, 회의하자!”
11회라는 글자에 밑줄을 찍찍 긋고 12회로 고쳤다.
“그런데 우리 벌써 뭐 했다고 회의가 제12회죠?”
“몰라. 저번에 치킨을 무슨 브랜드로 시켜 먹을까 회의한 게 내 기억 속 마지막 회의인데.”
“오늘은 무슨 회의죠? 피자 브랜드?”
“도빈아, 제정신이니? 활동기에 피자를 먹겠다고? 탄수화물과 지방 폭탄인 피자를? 자기관리 안 하냐는 소리 듣고 싶어?”
“예, 예현이 형, 진정하세요…… 지금 엄청 이든이 형 같아요…….”
“아니,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심한 건 내 면전에서 그런 말 하는 댁이랑, 댁 보고 나 떠올린 김도빈이고.”
짝! 견하준의 손뼉 소리에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말꼬리 잡기 싸움이 그쳤다. 큼큼, 목을 가다듬고 회의를 개최했다.
“오늘 회의 주제는 컨셉 잡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