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4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41화(44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41화
“이게 뭐야!”
이 프로그램 촬영이 들어가고 처음으로 연기가 아니라 진실된 감정이 담긴 대사를 내뱉었다.
내 기억 속 모습보다 더욱 열악한 지하실 꼴을 보고 하는 소리도 맞았고, 두뇌 외주를 기대했던 류재희 대신 남아 있는 김도빈을 보고 하는 소리도 맞았다.
우중충한 회색 시멘트가 발린 벽과 창문 하나 없는 좁은 공간, 큼지막한 자판기와 키오스크. 한쪽에 대충 쌓인 채로 놓인 그릇들, 퀴퀴한 음식 냄새.
최상층과 지하층을 차례로 겪으니 투자 잘못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쫄딱 망해서 알거지 되는 상황을 미리 체험해 보는 것 같았다.
이게 온전히 내 선택으로 인한 결과라는 걸 고려했을 때 결이 어느 정도 비슷했다. 투자할 때 조심하라는 교훈도 주고, 차암 유익한 프로그램이군.
그래, 지하층 환경이 이따위라는 건 각오하고 왔으니까 그나마 괜찮았지만,
“왜 너만 남아 있냐?”
김도빈 캐리까지는 각오하지 못해서 안 괜찮았다.
난 몸은 힘들어도 머리는 편안할 류재희 버스를 기대하고 왔다고. 이건 몸과 머리 둘 다 개고생하는 루트잖아.
내 물음에 발로 열심히 싸이클을 굴리며 김도빈이 대답했다.
“그야 제가 형이니까, 헉, 막내라도 이런 구질구질한 지하층이 아니라, 허억, 호화로운 최상층 생활을 누리라고 올려 보냈죠.”
네가 올라갔어도 아무도 형이 되어서 동생 고생시키고 혼자 꿀 빨려 한다고 욕 안 해, 인마. 팬들도 가끔 네가 막내인지 류재희가 막내인지 헷갈려하더라.
그리고 우리 그룹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네가 류재희보다 키 작아서 동생인 줄 알 건데 대체 무얼 위한 양보인가.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김도빈의 표정이 참으로 뿌듯해 보여 뭐라 하지도 못하겠다. 그래, 본인이 형 노릇 좀 하고 싶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냐.
“그런데 형, 빨리, 빨리 교대 좀여.”
다 죽어 가는 김도빈의 재촉에 내가 싸이클로 다가가자 김도빈이 드디어 살았다는 얼굴로 후다닥 내려왔다. 얼마나 열심히 돌리고 있었던 건지 아주 얼굴이고 등이고 아주 땀 범벅이었다.
지성과 반비례해서 체력은 넘쳐 나는 녀석이 저렇게 될 정도면 얼마나 개고생을 해야 한다는 거지…?
갑자기 최상층을 포기한 게 급격하게 후회되었다. 심지어 여기는 두뇌 외주 맡길 류재희도 없다. 못 미더운 김도빈밖에 없다고. 내가 몸과 두뇌를 모두 써야 한다는 소리라고.
<왕자와 거지>에서 따신 궁전 놔두고 괜히 제 발로 집 나가서 개고생한 왕자의 심정이 바로 이랬을까.
“형이 이거 돌리는 동안 제가 간단하게 이 지하층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이랑 아침에 재희랑 함께 겪었던 일을 설명해 드릴게요.”
“그런데 이거 꼭 돌려야 해?”
“네, 이거 안 돌리면 여기 조명도 나가요. 이게 1층이랑 2층이 쓰는 전기 생성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거 멈추면 여기 조명이 꺼지더라고요? 문제는 여기 창문이 없어서 그런가 조명 꺼지면 진짜 아무것도 안 보여요.”
“어둠에 눈을 적용시키자. 그럼 굳이 싸이클을 안 돌리고 있어도 되지 않겠냐? 아니면 저 자판기에 손전등이나 랜턴이나 촛불 같은 거 없어?”
“그리고 위층 키오스크 안 켜지면 저희도 밥 못 먹으니까 돌리긴 해야 해요.”
내가 의심병 환자 시늉을 하며 호화로운 방에서 시간 때우기 용으로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할 때 막내 라인은 이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골방에서 형들이 있는 방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싸이클을 돌리고 있었을 걸 생각해도 눈물은 딱히 안 났다.
시발, 이제 내가 해야 하잖아.
“형, 싸이클 돌리면서 타블렛에 있는 지하층 규칙 보세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 그런데 그거 살살 돌리면 전기 안 들어와요. 완전 빡세게 밟아야 해요.”
김도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주 적극적으로 내 따까리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새로운 싸이클 노예를 싸이클에 묶어 두기 위해서 이 정도도 못하겠는가.
[C-house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 이곳의 화폐는 ‘코인’으로, 필요한 것들을 이용하려면 코인이 필요합니다. 가격은 자판기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2. 인형 눈 붙이기 작업으로 코인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인형 10개당 50코인입니다. 코인을 획득할 수 있는 최소 작업물의 단위는 10개부터입니다.
3. 싸이클을 돌리면 전기가 생성됩니다. 만약 싸이클을 돌리지 않을 시 본 층의 전기가 위의 두 층을 유지하는 데에 사용됩니다.
4.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 총 세 번 제공됩니다. 원하는 메뉴의 가격이 남은 식대를 넘는다면 추가 코인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5. 벨이 울리면 반드시 타블렛 화면을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6. 각 방에 전화 찬스가 딱 한 번씩 주어집니다. 딱 한 층에 딱 한 번 전화를 걸 수 있습니다.]
타블렛에 뜬 규칙은 확실히 2층에서 내가 보았던 규칙과는 달랐다. 300코인이라 명시되어 있던 식대도 굳이 말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코인을 사용하는 방법도 달랐다.
사용하려면 코인이 필요하다고 해 놓고도 코인을 넣는 곳이 없어서 그 방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하던 2층과 달리 지하층은 자판기에 코인을 넣어야만 했다.
밑의 두 항목은 2층과 똑같군. 싸이클을 돌리며 타블렛에 뜬 규칙을 쭉 훑고 있자 김도빈이 옆에서 역시 파워부터 다르시다며 아부성 박수를 짝짝 쳐 댔다.
“저기 앞에 화면 보이시죠. 저 화면으로 1층이랑 2층 동시에 볼 수 있어요.”
아부를 끝마친 김도빈이 싸이클이 놓인 곳의 정면 벽에 붙은 두 개의 작은 모니터를 가리켰다.
왼쪽의 모니터에는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견하준과 서예현의 모습이 보였고, 오른쪽 모니터에서는 푹신하고 넓은 침대 위를 행복한 표정으로 굴러 다니는 류재희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 이걸로 100코인 벌어놓은 건가? 와, 쉽지 않네. 쉽지 않아. 하준아, 다 했어?
-어, 코인 채워졌다. 형, 키오스크에 100코인 들어왔어. 생수 하나 더 깔까?
견하준과 서예현이 있는 1층은 키오스크를 이용하여 코인 결제를 하는 모양이었다.
-와, 이게 행복이지. 잠깐만, 그럼 이든이 형은 이걸 못 누리고 뭐가 있을 거라고 의심만 하다가 지하층으로 간 거야? 와, 갑자기 안 부러워졌어. 원래 줬다 뺏는 게 더 잔인하다던데. 불쌍한 이든이 형…
사운드도 다 들렸다. 나의 혼잣말과 헛짓거리를 이 녀석들이 모두 보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래, 지하층이 다 알고 있었던 이유가 이거였지. 이제야 기억났다.
“아침에는 제가 1층 보고 재희가 2층 봤는데 역시 개꿀잼 보장 이벤트 층에 눈이랑 귀가 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다행히도 형이 의심하느라 저 부대 시설을 이용 안 해서 저희가 고생을 덜할 수 있었어요. 만약 형이 티비 켜거나 플스 했으면 저희 분업도 못 하고 둘 다 싸이클 돌리면서 인형 눈 붙이고 있었어야 했을걸요.”
빈 싸이클을 가리키며 김도빈이 한숨 돌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2층에서 생수 마시면 저희 자판기 생수병 코인 가격이 올라가요. 대박이죠. 형이 하나 꺼내 먹어서 10코인 올랐어요. 더 먹지 말라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요. 제가 형한테 전화 찬스 쓰려는 거 재희가 막았다니까요.”
나였으면 이럴 때 쓰지 언제 쓰냐고 얼른 전화 찬스 쓰라고 동조하고 있었을 텐데. 막내야, 우리 어떡하냐.
“그래도 지하층 겪은 재희가 2층으로 올라가서 우리한테 막 갑작스러운 부담이 쏟아지진 않을 거예요. 상황을 아예 모르는 1층의 형들이 2층으로 올라가면 문제죠.”
“1층은 2층처럼 다른 층 상황 아예 모르고?”
김도빈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최상층이 신경 쓸 게 많은 만큼 이 C-house의 생태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류재희가 위에서 버티고 있는 편이 공리주의적인 면에서는 가장 베스트이긴 하다.
나 1인분, 김도빈 0.5인분, 총 1.5인분의 두뇌로 지하층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게 문제지.
“아, 맞아. 형, 이따 점심 먹을 때 무조건 다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골라야 해요. 여기 음쓰 버리는 곳 없어요. 저 그래서 제육 덮밥 맛없었는데 꾸역꾸역 다 먹었어요.”
아침밥으로 제육 덮밥이면 잘 먹었네. 서예현은 분명 비싼 샐러드를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먹었을 테니 견하준이 저렴하게 먹은 건가? 혹시 1층에서도 이 C-house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눈치챘나?
“그리고 저희는 2층이랑 1층이 먼저 선택하고 남은 돈으로 남은 메뉴만 먹기 가능해요. 아침 식사 때처럼 2층에서 키오스크 돈 먹튀가 되고 1층에서 돈을 많이 안 쓰면 그나마 좀 선택지가 있는데 만약 위층에서 많이 써 버리면 금액 맞춰서 먹든가 아니면 인형 눈 열심히 붙이든가 해야죠.”
다가오는 점심 시간이 두렵다며 김도빈이 호들갑을 떨어 댔다.
“그러면 재희는 아침으로는 뭐 먹었냐? 참, 그러면 1층은 뭐 먹었든?”
내심 막내 라인 아침 든든하게 먹이기 계획이 성공했는지 궁금했기에 슬쩍 묻자 제법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듯한 얼굴로 김도빈이 줄줄 대답했다.
“형이 키오스크에게 200코인 먹튀 당하고 예현이 형이 샐러드에 무슨 드레싱 뿌려져 있을지 모른다고 삶은 계란 먹은 덕분에 저희는 따로 돈 안 들이고 재희는 김치볶음밥, 저는 제육 덮밥 먹었어요.”
“하준이는?”
“하준이 형은 순두부찌개랑 김치볶음밥 중에서 고민하다가 순찌 선택했고요.”
서예현이 샐러드가 아닌 삶은 계란을 선택한 건 의외였지만 이유를 듣자 곧바로 납득이 갔다. 독한 인간 같으니. 컨셉질도 그렇게는 못 하겠다.
김도빈이 제육 덮밥을 먹은 내막을 알게 되자 1층이 눈치챘다는 가정은 곧바로 폐기되었다.
스피커로 벨이 울리며 들고 있던 타블렛 화면이 규칙에서 미션 안내로 바뀌었다.
[미션 2: 자기소개서 작성하기] [점심 식사 전까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여 문 앞에 놓아 두시길 바랍니다.] [자기소개서 회수 시간: 00:30:00]문이 벌컥 열리더니 종이 두 장을 내려놓은 스태프가 다시 문을 잠그고 쓱 사라졌다.
“뭔가 문 열리고 사람이 가져다주니까 약간 고립된 느낌이 덜하지 않아여? 저였으면 2층부터 지하층까지 물류 엘리베이터 같은 거 뚫어서 딱딱 전달했을 듯요.”
“예산이 부족했나 보지.”
나는 여전히 싸이클을 돌리고 있었고 김도빈이 종이를 가져왔다.
“도빈아, 펜 있냐?”
“잠깐만요. 확인해 보고 올게요. 형, 자판기에 볼펜 있어요! 한 자루에 150코인이래요. 두 자루면 인형 60개에 눈 붙이면 돼요. 오 그래도 둘이 하면 금방 하겠다!”
빈 싸이클에 내 몫이라고 박스 깔고 올려 놓은 인형과 접착제, 인형 눈깔을 집어 들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왜 일어났는지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