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4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42화(44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42화
참으로 불편하게 싸이클 위에서 인형 눈깔을 15개째 붙이고 있다가 갑자기 든 생각에 김도빈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야, 도빈아. 그냥 한 자루 사서 둘이 나눠 쓰면 안 되냐? 먼저 쓰는 사람이 글씨 좀 빨리 쓰면 되잖아.”
“형, 제가 그 생각을 못 한 거 같아요? 당연히 그 방법도 고려해 봤죠.”
김도빈이 당당하게 말했다. 구라 치지 마. 내가 김도빈보다 이 좋은 아이디어를 늦게 생각해 냈을 리가 없어.
내 속도 모르고 김도빈은 아주 자랑스럽게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니까 조삼모사더라고요. 인형 눈을 힘들게 붙이고 편하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느냐, 인형 눈을 좀 편하게 붙이고 시간에 쫓겨 가며 펜 하나로 돌아가며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느냐.”
내가 열다섯 개의 인형에 눈깔을 붙일 동안 겨우 여덟 개 완성해 놓고 말이 많다.
“일곱 개만 더 붙이면 펜 하나 얻잖아, 인마! 그렇게 손이 느려 터져서 오늘 안에 60개 완성하겠냐? 어?”
김도빈이 조금 더 빨리 인형을 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계도 없어서 타블렛 화면의 타이머를 확인해 보니 벌써 시간이 5분이나 지나 있었다.
딱 봐도 빽빽해 보이는 자기소개서는 빨리 잡아도 작성하는 데에 기본 10분은 걸릴 것 같았다. 둘이 돌아가면서 쓰면 저 항목을 고민 없이 곧바로 갈겨 작성한다는 가정하에 20분, 문제는 남은 시간이 25분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김도빈이 고민 없이 저 자기소개서를 10분 만에 작성할 리가 없다는 것에 서예현의 칼로리 집착증을 건다.
그렇지만 김도빈이 인형 눈 붙이고 있는 꼴을 봤을 때 60개 완성하면 30분 타임 리미트는 끝나 있을 것 같았다.
김도빈이 내게 새로이 건네는 인형을 거절하고 싸이클에서 몸을 일으켰다.
“엥, 형. 거기에서 나오면 저희 층 조명도 나간다니깐요.”
“내가 인형 눈을 붙일 테니 네가 밟아라. 분업 하자, 분업. 이러고 있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다.”
김도빈의 뒷덜미를 잡아 싸이클 앞까지 끌어 놓고 인형 더미 옆으로 돌아와 인형 눈알을 붙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하체를 움직이지 않고 안정적으로 자리에 앉아 하나의 일에만 집중을 하니 능률이 확 올랐다.
“와… 저게 바로 재능이구나. 막내도 손 빨랐는데 형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
5분 만에 인형 25개를 더 완성한 나를 보며 김도빈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똑바로 밟기나 해, 인마. 지금 불 안 들어온 거 안 보여? 팍팍 밟아, 팍팍!”
“와, 대박. 잔소리를 하면서도 손이 안 멈춰. 형은 진짜 몸 쓰는 일은 다 잘하는 것 같아요.”
“지금 내가 머리 쓰는 일은 못 한다고 돌려 까는 거냐?”
“그거 너무 제 과대 평가라서 부담스러워요.”
3분도 안 되어 남은 열두 개의 인형까지 모두 완성하자 300코인이 입금되었다는 안내 멘트가 자판기에서 흘러나왔다.
“아, 어디에서 코인 받나 했더니 저기에 입금되는 거야? 이야, 지하층 신기하다.”
최상층이 제일 꿀 빨고 지하층이 제일 개고생했다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하지 디테일한 건 기억하지 못한 터라 이런 것들은 제법 신기하고 신선해 진심 어린 리액션을 뽑아 낼 수 있었다.
자판기에서 볼펜 두 개를 뽑고 김도빈한테 싸이클을 넘겨받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김도빈이 싸이클을 돌리면서 자기소개서를 시간 내에 작성할 수 있을 리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키, 몸무게, 생년월일 등이야 바로바로 작성이 가능한 항목이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멤버들 한 줄 평,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 사소한 TMI 등의 항목들은 고민을 좀 해봐야 했기에 시간이 좀 걸렸다.
서예현 한 줄 평에 칼로리 집착증 말기 환자, 김도빈 한 줄 평에 가끔 개 같은(욕 아님, 문자 그대로의 뜻) 짭막내, 류재희 한 줄 평에 내 두뇌 외주업체라고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유일하게 고민 없이 쓸 수 있는 거라곤 견하준의 한 줄 평밖에 없었다. 평생 갈 절친.
나도 몰랐던 인형 눈 붙이기라는 의외의 재능 덕분에 무사히 시간 내에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수거하러 온 제작진에게 제출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소서는 왜 쓰라고 하는 거지? 이력서인가?”
남는 시간에 코인이라도 벌어 놓자고 김도빈과 또 교대해서 인형 눈을 붙이다가 갑자기 든 궁금증에 중얼거리자 김도빈이 숨을 헐떡이며 대꾸했다.
“스펙 좋은 사람은 위로 보내고 스펙 나쁘면 아래층으로 가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스펙 기준이 뭐지? 센스 있는 답변? 헐, 좀 더 신경 써서 작성할걸.”
“키 순서로 나누면 좋겠다.”
“저랑 예현이 형을 지하층에 보내고 싶다는 소리시죠?”
곧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식대가 모자란 맛없는 식사를 피하기 위해 열심히 인형 눈을 붙여 500코인을 더 벌어 놓았다.
“에이, 형.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위층에서 넣은 코인은 환불 안 되고 고스란히 내려온다는 걸 막내도 이제 아니까 막내가 코인 잔뜩 넣어서 식대 늘려 줄 거예요.”
모니터로 본 류재희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키오스크에 코인을 넣고 있었다. 나 때와 달리 다시 코인을 뱉어 내는 키오스크를 보며 류재희가 카메라에 대고 X 자 표시를 그렸다.
-이든이 형, 도빈이 형. 지하로 코인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우리한테 보내는 신호였군. 난 또 뭐라고.
키오스크에 음식 메뉴가 뜨는 걸 보고 류재희가 중계를 시작했다. 견하준과 서예현은 여전히 지하층에 있는 우리보다 훨씬 덜 힘든 일로 코인 벌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 점심 시간 시작했다. 지하층에 다 들리겠지? 이든이 형 혼잣말도 들렸으니까? 형들, 지금 메뉴 다섯 개밖에 없어요. 식대 500코인에 메뉴 가격은 다 똑같이 100코인이에요. 따로 코인 지출을 안 해도 돼요.
어라?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 순순히 밥을 줄 리가 없는데?
-그런데 메뉴가, 오… 제가 방금 자기소개서에 썼던 메뉴가 나왔나 봐요. 제일 좋아하는 음식에 썼던 떡치즈파송송계란탁라면이 그대로 여기에 있어요.
심지어 본인의 취향에 맞춘 메뉴를 준다고?
지하층인 우리한테는 분명히 좋은 일이건만 왜인지 계속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잠깐만요, 나머지도 메뉴도 읽어 드릴게요. 비록 형들의 선택지는 없겠지만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하라는 취지로다가.
류재희는 지하층에서 1층과 2층의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걸 잘 활용하고 있었다. 내가 최상층에 있을 때 지하층에 부담을 줄 일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김도빈의 성격이었으면 자기가 기꺼이 고생을 감수할 테니 자기들이 당한 만큼 나한테 갚아 주자고 했을 테니까. 그리고 류재희는 아주 효과적으로 나를 개고생시켰겠지.
-음, 제가 쓴 떡치즈파송송계란탁라면이랑, 발사믹 소스를 뿌린 리코타 치즈 샐러드랑요.
이건 누가 봐도 서예현이 쓴 음식 메뉴였다.
-그리고 고등어구이 백반.
이건 견하준이 쓴 메뉴가 분명하다. 견하준은 생선구이를 좋아했다.
-그리고 순대국밥이랑요, 야채 비빔밥.
류재희가 우리 말을 듣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절로 반문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뭐라고? 순대국밥? 머리국밥이 아니고?”
“왜? 왜 돈까스가 아닌 거야? 왜 야채 비빔밥?”
분명 나는 좋아하는 음식 칸에 머리국밥을 썼다. 김도빈도 아마 돈까스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싫어하는 음식 칸에 쓴 순대국밥이 메뉴로 있냐고. 국물에 퉁퉁 불은 순대를 먹는 건 나한테 고역이란 말이다.
크루 형들을 따라다니며 국밥충 체험을 했을 때도 순대국밥은 딱 한 번 먹고 그 뒤로 안 먹을 정도였다.
“도빈아, 너도 혹시 싫어하는 음식에 야채 비빔밥 썼냐?”
“네, 저 야채만 있는 비빔밥 진짜 싫어한단 말이에요. 나 그거 못 먹는데, 굶어야 하나?”
싸이클에서 내려오며 김도빈이 울상을 지었다. 싸이클을 팍팍 돌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1층과 2층은 그 층에 있는 당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를, 지하층은 제일 싫어하는 메뉴를 넣어 놨군. 가격이 다 똑같은 것과 식대가 딱 맞춰진 것에 이유가 다 있었다.
자기소개서는 점심 메뉴 선정을 위한 일종의 페이크였던 것이다. 내가 또 이걸 까먹고 쓸데없이 착실하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네.
-잠깐만… 야채 비빔밥? 하준이 형 원픽 메뉴인가? 아닌데, 하준이 형은 고등어백반일 텐데. 하준이 형은 생선구이 좋아하니까. 야채 비빔밥 누구지? 이든이 형인가? 이든이 형은 분명 국밥일 텐데. 발사믹 소스를 뿌린 리코타 치즈 샐러드… 이렇게 까다로운 샐러드는 당연히 예현이 형일 것이고.
야채 비빔밥에서 이상함을 느꼈는지 류재희는 차분하게 메뉴를 분석해 보고 있었다. 역시 내가 인정한 두뇌 외주업체다웠다.
-그러면 남은 건 도빈이 형인데, 그 형은 야채 비빔밥 싫어하잖아. 고기가 없는 비빔밥을 도빈이 형이 제일 좋아하는 거라고 썼을 리가 없고…
중얼거리던 류재희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면 지하층은 싫어하는 음식 페널티인가? 그러네. 위층에서 본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우선으로 택할 것이고, 그러면 지하층은 자동으로 본인들이 자소서에 적은 싫어하는 음식을 먹어야 하겠네. 그래서 메뉴가 가격이 다 똑같았구나.
“막내야! 너밖에 없다! 역시 네가 최상층으로 가는 건 옳은 선택이었다!”
“역시 막내! 레브의 두뇌!”
날카로운 추론에 지하층에서는 열광적인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면 내가 야채 비빔밥을 먹어야겠다. 지하층은 음식 버릴 곳도 없는데. 그런데 이든이 형은 뭐지? 그 형 국밥충인데? 한 사람만 싫어하는 음식을 먹게 해서 지하층에 갈등을 유발하려는 건가?
너무 나갔다, 재희야. 그리고 아무리 국밥충이라도 싫어하는 국밥 정도는 있는 법이란다.
“오예! 야채 비빔밥 안 먹어도 된다! 형, 제가 라면 먹어도 되죠? 저도 순대국밥 싫어해여.”
류재희의 선택으로 인해 김도빈은 기뻐 날뛰었지만 여전히 순대국밥이라는 지뢰가 존재하는 나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2층이 점심 식사 메뉴 선택을 마치고 1층으로 점심 메뉴가 내려가자 우리의 시선도 2층에서 1층으로 옮겨갔다.
-400코인 남았고 메뉴는 네 개 남았네? 하준아, 음식 다 100코인인데? 내가 적은 거 그대로 있네. 발사믹 소스를 뿌린 리코타 치즈 샐러드. 난 무조건 이거지.
-아, 방금 자소서에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 썼던 게 점심 식사로 나온 건가 보네.
-떡치즈파송송계란탁라면… 이거 누구야? 누가 이런 극악무도한 칼로리 음식을 쓴 거야? 도빈이야, 막내야? 윤이든은 뭐, 당연히 국밥일 테고, 하준이 너는 고등어 백반 맞지?
서예현의 손이 키오스크 화면의 고등어 백반으로 향했다.
“안 돼! 순대국밥 먹기 싫다고!”
이성을 잃고 눈에 뵈는 게 없는 터에, 내 눈에 전화기가 딱 들어왔다. 전화 찬스를 쓸 수 있는 전화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