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4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45화(44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45화
기껏 준비해 놓은 탈출 미션들이 한낱 휴지 조각이 되어 버렸다는 걸 생각하니 1층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매우 가벼워졌다.
방송 분량 못 채우는 건 내 알 바 아니죠? 제작비 더 들여서 급하게 다른 팀 하나 더 섭외하시든가.
드디어 도달한 1층 문 앞의 키패드에 외우고 있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탈출 특전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맞는 패스워드를 입력했을 때 들릴 만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구하러 왔다!”
문을 벌컥 열며 당당하게 소리 치면서 들어가자 세 쌍의 놀란 눈이 내게 꽂혔다. 유독 굳어 있는 김도빈을 가볍게 툭 친 서예현이 키득거렸다.
“윤이든이 도빈이 네가 하고 싶어 했던 거 먼저 선수 쳤는데?”
여기에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날 구하러 오려고 생각했다니. 꿈도 크다, 도빈아.
“아니, 저희 그렇게 슬픈 이별을 한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제가 형 구출하기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자력 탈출을.”
“자력 탈출에 더해서 너희도 구하러 왔잖아.”
최대한 멋있게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하자 서예현이 질색했다. 반응 너무하네.
내게 시원한 생수병을 건네는 견하준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씩 웃었다.
“준아, 진짜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순대국밥 억지로 꾸역꾸역 먹을 뻔했어.”
“나름 먹을 만하더라고. 당면 순대가 아니라 고기 순대였거든. 아마 당면 순대보다 고기 순대가 더 호불호 갈릴 거라 생각해서 그랬나?”
“당면보다는 더 먹을 만한데 솔직히 그것도 싫어. 국물 텁텁해지더라.”
당면 순대가 들어간 순대국밥을 먹고 다시는 안 먹는다고 선언하자 순대국밥의 진정한 맛을 모른다며 주성이 형이 데려갔던 가게의 고기 순대가 들어간 국밥도 역시 내 취향은 아니었다.
참고로 내가 아는 사람 중 최고의 국밥충이었던 주성이 형은 태훈이 형과의 부산 여행 이후로 국밥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이 되었다. 태훈이 형 옛 단골집 돼지 국밥이 별로라고 했다가 그 여행에서 평생 먹을 국밥 다 먹었단다.
남은 물을 입에 털어 넣으며 모니터로만 지켜봤지 직접 오는 건 처음이었던 1층을 둘러보았다. 깔끔한 가정집 방처럼 생긴 1층은 호텔 방 같았던 2층보다는 소박했지만 거의 지하 감옥이나 다름없던 지하층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일단 그 망할 놈의 싸이클을 돌리고 있지 않아도 되는 것부터 천국이긴 하다.
1층에 몇 분 있었다고, 지하층에 있을 때보다 얼굴이 훨씬 펴진 김도빈이 나를 붙들고 질문을 쏟아냈다.
“형, 그런데 진짜 어떻게 온 거예요? 설마 문 박살 냈어요? 아니면 문고리 고장 냈어요? 아니면 키패드를? 그게 아니면… 설마 제작진 유인해서 물 열렸을 때 밀치고 탈출한 건 아니죠?”
“혼자 미션 받았겠지.”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서예현에게 지하층 체험을 시켜주지 못한 게 한이었다. 저 인간이라면 다이어트 된다고 아주 기뻐했을 텐데.
“제가 겨우 미션 따위로 그곳에서 벗어난 줄 아십니까. 미션 받기 전에 자력 탈출했습니다, 형님.”
“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나온 거야…?”
제작진이 그려 놓은 루트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는 걸 드디어 깨달았는지 서예현이 아연한 얼굴로 물었다.
“도빈이가 말한 것 중에 정답에 가까운 게 하나 있긴 해.”
고개를 까딱이며 말하자 김도빈의 눈이 커지더니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서예현과 견하준을 붙들고 말했다.
“형들, 어떡해요? 이든이 형이 제작진을 밀친 게 아니라 협박했나 봐요. 이거 방송 타도 괜찮은 거 맞아요?”
“그거 말고, 인마! 키패드!”
왜 당연하게 내가 제작진을 협박해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건데. 허공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김도빈이 의문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엥, 자판기에 망치 없었는데…?”
서예현은 거기에 한몫 더 거들었다.
“키패드에 싸이클 집어 던져서 박살 낸 거 아니야? 그럼 확실하게 고장은 났겠는데?”
지하층에 남은 이가 서예현이 아닌 지성이 있는 나라서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촬영 이후 우리 정신적 피해 배상금을 뜯어내도 모자를 판국에 기물 파손으로 인한 손해 배상금을 뜯길 뻔했군.
이 인간도 은근히 과격하다니까.
“정전시켜서 나왔다. 다행히 키패드가 건전지가 아니라 전기로 연결된 거더라고. 그러니까 지하층의 전원 공급이 아예 차단되면 키패드도 작동하지 않을 거란 계산 하에 싸이클에서 내려 지하층 전기를 차단했지.”
내 자세한 설명에 이건 또 새로운 관점에서의 해결법이라고 서예현이 감탄했다.
“어쩐지 우리 층 조명이 갑자기 깜빡거리더라고. 도빈이가 이든이 형 힘들어서 지쳐 쓰러진 거 아니냐고 얼마나 우는 소리를 했는지 몰라.”
“형은 방통위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잖아요.”
견하준과 김도빈은 서로가 얼마나 나를 걱정했는지 앞다투어 폭로하고 있었다. 역시 탈출시켜 줄 맛이 나는 반응이었다.
“운이 제법 좋았네. 만약 배터리 작동이었으면 실패했을 텐데.”
“드디어 처음으로 맞는 말을 하셨습니다, 형님. 아니었으면 탈출이 아마 한 시간은 더 늦어졌을 겁니다, 아마.”
서예현과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자 김도빈이 불쑥 끼어들어 서예현에게 뭐라 했다.
“예현이 형,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나 뭐 잘못 말했어…? 그냥 사실만 이야기한 건데?”
서예현도 대체 뭐가 잘못이었는지 이해를 못 하고 방금까지 서예현과 대화하고 있던 나도 대체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게 뭔지 이해를 못 했다.
“성공한 일에 굳이 실패를 상정하면 이든이 형 기분이 나쁠 수도 있잖아요. 이럴 때는 칭찬을 해 줘야죠.”
“아니? 딱히 기분 안 나쁜데? 배터리 작동이었으면 실패했으리란 건 일단 사실이잖아.”
당사자인 내가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하니 김도빈은 할 말이 없어진 얼굴로 멍하게 눈만 깜빡이다가 견하준을 돌아보며 물었다.
“하준이 형, 저 두 사람이 이해가 가요?”
“나도 솔직히 이해는 안 가지만 그냥 그러려니 해.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견하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 지금껏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찰떡같은 맞춤형 위로와 칭찬을 해 준 거라니, 좀 감동이었다.
“그런데 지하층이 정전됐으면 여기 1층도 전기 공급 끊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안 끊기지?”
“애초에 지하층의 전력 공급으로만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아니었겠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방 두 개 전기를 공급하려면 싸이클 한 대로는 턱도 없어.”
내 말에 김도빈이 잔뜩 억울한 얼굴로 바닥에 연신 발을 굴려 댔다. 계속 싸이클 돌리고 있었던 게 어지간히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헬스장에서 실내 자전거 몰아 탔다고 생각하면 덜 억울하다는 내 충고에 김도빈은 격하게 고개를 저어 댔다.
“그러면 우리가 싸이클 굳이 안 돌려도 됐다는 소리잖아요.”
“돌리긴 돌려야 했겠지. 우리 층의 전기를 위해서라도. 사실상 우리 층 전기 자급자족이었던 거야.”
“그럼 이제 우리 뭐 해요? 다음 미션 올 때까지 여기에서 기다려요?”
“아니? 막내 구하러 가야지. 혼자 있으면 얼마나 외롭겠냐. 심지어 2층은 싸이클도 없어서 몸의 고단함으로 마음의 허전함을 이겨 낼 수도 없는데.”
“아니요. 그래도 개똥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지하보다는 2층이 훨씬 나은 것 같은데요.”
습관적으로 내 말에 반박한 김도빈이 갑자기 태세 변환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막내는 지금 푹신하고 넓은 침대에 외롭고 심심하게 누워 있겠죠. 형이 전기 생산의 굴레에서 벗어난 줄도 모르고 형한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너는 왜 나한테 부담을 주고 있냐.”
지하층을 겪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크에, 1층에서 나름 편안한 시간을 보냈던 서예현과 견하준은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다.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가 키패드에 비밀 번호를 입력하자 1층에서 났던 소리가 아닌 삐빅- 하는 짧은 소리가 났다.
문고리를 내려 봐도 여전히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설마?
“뭐야, 맞게 눌렀는데 왜 이래? 우리가 1층에서 이야기하고 있던 동안 이거 비밀번호를 바꿨나?”
“이든아, 틀린 거 계속 누르지 마. 다섯 번 틀리면 아예 안 열릴 수도 있어. 우리가 또 비밀번호 알아내서 눌러 봐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것도 생각해야지.”
세 번째로 비밀번호를 입력하려는 나를 견하준이 만류했다. 결국 1층처럼 위풍당당하게 문을 여는 건 실패하고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2층처럼 비밀번호를 어느새 슬쩍 바꾸어 놓을까 봐 1층의 문을 열고 그 앞을 단단히 지킨 채로 류재희 없는 레브 제859회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 주제는 <막내 구출하기>.
“준아, 1층 전화 찬스 썼어?”
“아니? 아직.”
“다행이네. 안쪽은 아직 못 바꿨을 수도 있으니까 전화 찬스로 막내한테 키패드 비밀번호 알려 주자. 안쪽에서 한번 열어 보라고.”
견하준과 김도빈이 문을 지키고 있는 동안 1층의 전화 찬스를 이용해 2층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조금 가더니 류재희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막내야, 문 바로 옆에 키패드 있지? 거기 4529 눌러봐.”
-이든이 형, 1층으로 올라갔어요? 도빈이 형도 지금 1층에 있어요?
“어, 우리 지금 다 1층에 있고 너만 그 방에서 탈출하면 돼. 4529 눌러서 문 당겨 봐.”
-안 그래도 제작진 한 분이 아까 전에 들어오셔서 비밀번호를 바꿨거든요. 안 될 것 같긴 한데 일단 한 번 눌러 볼게요.
이런 젠장, 대처 한번 빠르네. 어떻게든 분량을 더 뽑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방금 2층 문 바깥에서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입력했을 때 났던 소리와 똑같은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역시 안 되네요. 아마 저한테는 따로 미션 갈 것 같아요. 형이 예상보다 너무 빨리 지하층 탈출하셔서 그런가 봐요. 저녁 식량 배분이 투표 항목에 있었던 걸 생각했을 때 아마 저녁 먹고 나서 미션 주려고 했던 거 같은데.
짧게 웃은 류재희가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들, 저는 알아서 탈출할 테니까 형들이라도 먼저 벗어나세요. 저라도 방송 분량은 뽑고 가죠, 뭐.
금방이라도 전화를 끊을 것만 같은 류재희의 멘트에 다급하게 외쳤다.
“야야야야, 막내야! 아직 끊지 말아 봐! 내가 탈출 방법 생각을 좀 더 해 볼테니까! 나 지금 오랜만에 머리 쓰고 있거든?”
김도빈이랑 서예현이 생각해 냈던 것처럼 키패드를 박살 내? 깽값이야 소속사에서 물어 주면 되지. 우리 정산금에서 그 깽값 까기만 해 봐라. 그러게 누가 이런 예능 물어오래.
키패드를 충분히 박살 낼 수 있을 만한 물건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내 시야에 우뚝 서 있는 1층의 키오스크가 들어왔다.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