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5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54화(45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54화
“형, 그냥 저 겁주려고 하는 말이죠? 진짜 하나도 재미없어요. 저 오늘 잠 못 자요. 형이 기획한 장난이죠?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납량 특집 이런 거 안 할게요.”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고 있던 김도빈이 싹싹 양손을 비비며 내게 애원하듯 말을 와다다 쏟아 냈다.
그 빠른 속도에도 발음이 뭉개지는 곳 하나 없이 또박또박 들리는 걸 보니 극한의 공포로 인해 랩 재능이 깨어난 모양이었다.
“내가 한 거 아니라니까?”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한 내 얼굴을 본 김도빈은 이게 역 깜짝 카메라 따위가 아닌 현실임을 드디어 받아들였는지 싹싹 빌던 걸 멈추고 알아들을 수 없는 하이톤의 비명을 지르며 내게 안기기를 시도했다.
“아, 뭐야.”
물론 나는 이 상황에서 강아지면 몰라, 시커먼 사내놈을 껴안는 시츄에이션은 딱 질색이었기에 김도빈의 얼굴에 손바닥을 덮어 쭉 밀어냈다.
나한테 거부당한 김도빈은 곧바로 견하준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려갔지만 마찬가지로 견하준에게도 거부당하고 서예현에게 착 들러붙었다.
평소였으면 서예현도 붙지 말라고 한 소리 했을 테지만 귀신 소리 비스무리한 것에 쫄았는지 그런 김도빈을 가만히 내버려두고 있었다.
어, 오히려 같이 붙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용케 캠코더를 내던지지 않고 이 상황을 캠코더에 담고 있던 류재희도 슬금슬금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그 말 있잖아. 녹음실에서 귀신 나오면 대박 터진다는 말. 이번 리패키지가 정규를 뛰어넘을 수준으로 대박 터진다는 징조로 받고 너무 겁먹지 말자.”
애써 분위기를 띄워 보려 디키 프로듀서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런 말을 하는 그의 눈동자도 필사적으로 녹음 부스 너머를 보는 건 피하고 있었다.
아니, 무슨 잡음 좀 섞인 것 가지고 다들 겁먹고 그래?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기기 이상이거나 그럴 수도 있지. 왜 꼭 귀신 소리라고 확신을 하냐.”
“누가 들어도 귀신 소리잖아요!”
아직 녹음 부스로 다시 떠밀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지레 겁먹은 김도빈이 비명처럼 내 말에 후다닥 대꾸했다.
“진짜 귀신 소리를 안 들어봐서 모르겠다. 너 살면서 귀신 소리 들어봤냐.”
“지금 이거요!”
“이게 진짜 귀신 소리라고 확정 났어? 아니잖아.”
“아니, 녹음된 저 소리 들으면서 소름 끼치는 느낌 빡 들지 않았어요?”
“아니, 전혀?”
“나도 딱히.”
견하준까지 내 말을 거들자 김도빈은 제 편을 들어줄 다른 이를 찾아 간절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그 소리 듣고 바로 소름 돋던데.”
“저도요. 바로 뒷목 서늘해지고 팔에 소름 오소소 올라왔잖아요.”
“내가 솔직히 음향 오류가 이런 식으로 나는 건 잘 못 봤는데… 잡음이면 사운드가 보통 뭉개지지 두 개가 듀엣처럼 이렇게 들리진 않잖아.”
나머지 쫄보 셋은 역시나 바로 김도빈의 말에 동조했다.
슬로우로 확인해 보려고 0.2배속으로 재생해 보자 무섭다고 소리 좀 줄이라고 사방에서 난리였다. 느리게 들어보니 보컬이랑 Inst랑 부딪혀서 사운드가 깨진 건 확실히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귀신 목소리가 녹음됐다는 건 더 안 믿겼다.
왜, 기왕 녹음실 기어들어 온 김에 노래도 한 곡 뽑고 가지? 류재희 파트에서 시원하게 고음도 내지르고? 왜 김도빈 파트에서만 깔짝거리고 있어?
“도빈아, 들어가서 다시 불러 봐라.”
아직이라고 했지 아예 안 떠민다는 말은 안 했다. 내 말에 나라 잃은 표정을 지은 김도빈이 녹음실 문으로 달려갔다.
도주 시도를 성공적으로 제지하고 울상이 된 김도빈과 진지하게 시선을 마주했다.
“이 현상 하나만으로 녹음실 귀신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 안 그래? 그리고 도빈이 너, 이거 이렇게 흐지부지되면 녹음할 때마다 이 녹음실 못 들어오겠다고 또 난리 칠 거 아니야. 찝찝함 남겨 두는 것보단 지금 확실히 원인을 밝히는 게 낫지.”
내가 너를 모르겠냐. 쫄보 김도빈을 위해서라도 이게 귀신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확실히 밝혀내야 했다.
“너 어차피 녹음 다시 해야 하잖아. 이거 사운드 이렇게 돼서 정식 음원에 쓰겠냐. 똑같은 조건으로 다시 해 봐야지 이게 진짜로 귀신 소리인지 아니면 음향 오류인지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겠냐?”
“그러면 그냥 내일 아침, 아니 낮에 다시 하면 안 될까요…?”
“우리 내일 풀스케줄이잖아. 그리고 너 내일부터 며칠간 <트러블 트레블> 촬영 있고. 다른 사람은 내일 해도 되지만 너는 못 하지. 도빈이 너는 무조건 오늘 끝내야 한다니까?”
너는 귀신이 무섭냐? 나는 마감이 더 무섭다. 그리고 너는 녹음만 하면 장땡이지만 나는 후반 작업까지 해야 한다고.
“너 혼자 녹음실에 남겨 놓는다는 것도 아니고 여기 멤버들 다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갑자기 녹음 부스 문 잠기면 어떻게 해요…?”
“무슨 폴터가이스트냐? 물리력 행사하게? 만약 문 잠기면 내가 녹음 부스 유리 박살 내서라도 꺼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김도빈은 들어가지 않겠다며 소파를 잡고 버티다가 무사히 녹음을 끝내면 김도빈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내 한정판 운동화를 넘겨주겠다는 말에 제 발로 녹음 부스 안에 걸어들어갔다.
물욕이 공포를 이기는 순간이었다. 물론 발걸음이 더럽게 느리긴 했지만.
떨리는 몸으로 마이크 앞에 선 김도빈은 녹음을 재개한 지 1분 만에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며 비명 지르며 녹음 부스를 뛰쳐 나왔다.
방금 녹음본을 재생해 보니 이번에도 이상한 소리가 끼어 있긴 했다.
다만 아까처럼 뒤쪽이 아니라 앞부분에 기괴한 웃음소리처럼 끼어 있었다.
“누가 들어도 귀신 웃음소리잖아요! 진짜 귀신이라니깐요! 지금 여기에 귀신 있다니까요!”
“야, 이게 귀신 웃음소리면 귀신도 네 노래 실력 비웃는 거야. 나 같으면 귀신에게 비웃음 당한 놈 소리 듣느니 음향 오류라고 끝까지 우기겠다.”
“저는 형이 아니라고요!”
김도빈이 거의 오열하듯 나를 붙들고 흔들었지만 귀신이고 뭐고 곡 완성이 먼저였기에 다시 김도빈을 녹음 부스 안으로 보냈다.
방금도 말했지만 형은 귀신보다 마감일 넘기는 게 훨씬 더 무서워요.
혼자라서 무서워할까 봐 캠코더를 든 류재희와 딱히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견하준도 들여보냈다.
“야, 떨지 말고! 다시!”
“이거 귀신이 더블링 안 했어도 못 써먹어. 다시!”
“염소냐? 네가 사탄의 동물 염소 울음소리를 내니까 귀신이 같이 듀엣하지. 다시!”
“막내야, 네가 거기서 웃으면 어떡하냐. 다시 가자, 도빈아.”
“야, 귀신도 웃는다! 귀신도 웃어! 네가 부른 게 얼마나 웃기면 얘도 웃겠냐! 다시!”
“뭐? 웃는 귀신이 제일 위험하다고? 웃는 나도 제일 위험하다는 거 보여줘?”
“저게 진짜 귀신이라고 해도 녹음실 귀신인가 뭔가 나오면 대박 친다며. 너는 대박 칠 곡을 겨우 이 정도로 완성하고 싶냐? 더 정성을 다해야 할 거 아니야. 다시!”
“내가 피드백 해 줄 것도 없어! 딱 나한테 오케이 받은 정도로만 하라고! 다시!”
“봐, 이제 안 나오잖아! 갔네! 이제 겁먹지 말고 다시!”
수많은 ‘다시’의 향연 끝에 드디어 다시 마음에 쏙 들게 김도빈 파트의 녹음본이 완성되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이상한 사운드가 섞여 있지 않았다.
드디어 녹음 부스에서 해방된 김도빈이 헤드셋을 걸어놓고 후다닥 튀어나왔다. 거의 넘어질 뻔했음에도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여기에 뭐 찍힌 거 아니겠죠? 그러면 조회수는 따놓은 당상인데.”
“심령 사진 중에서도 진짜라고 증명된 건 없다는데 설마 이런 캠코더에 찍혔겠어?”
“사실 아무것도 안 찍혔으면 좋겠어요. 귀신 있는 녹음실은 낮에도 무섭잖아요.”
류재희와 견하준도 안에서는 나누지 못한 대화를 나누며 김도빈의 뒤를 따라 나왔다.
이마에 잔뜩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김도빈이 중얼거렸다.
“와씨, 녹음실 악귀 Vs 녹음실 귀신. 세기의 대전이었다. 아무래도 녹음실 귀신이 기 눌려서 튄 것 같은데요.”
김도빈의 말이 끝나자마자 녹음 부스의 조명이 다시 한번 깜빡거렸다.
“으아악!”
“도빈아! 네가 말 함부로 해서 빡쳤나 봐!”
“있다니까! 진짜 뭐 있다니까!”
식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터라 또 한번 녹음실이 우당탕 요란하게 뒤집혔다.
“죄송합니다! 함부로 입 놀려서 죄송합니다!”
“저거 조명 맛 갔나 보다. 내일 갈자.”
녹음 부스 유리 앞에서 싹싹 빌던 김도빈이 조명 갈 생각을 하던 나를 돌아보더니 슬그머니 내 등 뒤로 향했다. 하여간 쫄보 자식.
“다음, 예현 형님 들어가십쇼.”
“모레 낮에 밝을 때 하면 안 될까? 저 조명 깜빡거리는 걸 보고도 나를 저기에 들여보내고 싶어?”
“어차피 녹음실에 창문도 없어서 밝은지 어두운지도 모르는데 시간대가 상관이 있습니까?”
“있어! 내 심리적 안정감이 상관이 매우 크게 있어!”
누가 쫄보 아니랄까 봐 서예현은 김도빈이 아무 일 없이 레코딩을 마친 걸 옆에서 똑똑히 보았음에도 녹음 부스에 들어가지 않으려 버티고 있었다.
“그러면 막내 먼저 할래?”
“저는 이 모든 상황을 이 캠코더에 기록으로 담아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모레 따로 할게요.”
류재희도 헛소리 같은 말로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가는 걸 회피했다. 견하준은 이미 자기 파트 녹음을 다 끝냈기에 더 할 게 없고.
오늘 녹음을 싹 끝내겠다 계획했건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사인가 보다.
“그래, 그러면 오늘 내 파트까지만 녹음하고 숙소 가서 자자. 내일 스케줄도 있고 하니까.”
“그러면 왜 저만 강제로 녹음 부스 안에 들여보내서 저를 중간에 두고 귀신이랑 기싸움을 하셨는지…?”
“너는 따로 녹음할 시간이 없잖아, 인마! 그리고 귀신이랑 기싸움은 얼어죽을.”
내 파트라도 먼저 녹음해 놓으려고 디키 프로듀서에게 디렉팅 보조를 맡기고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공기가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왜 그렇게 난리를 쳐 댔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갈 테니까 Inst 틀어 줘.”
내 파트는 서예현의 파트로 채택한 싱잉 랩보다는 랩 록에 가까웠기에 힘을 쫙 뺐다기보단 평소 스타일에서 힘을 한 스푼 덜어낸 스타일이었다.
Inst에 맞추어 내 파트의 랩을 하던 중 옆에서 웅얼웅얼 들려오는 목소리에 비웃음을 한 번 내뱉으며 페이스를 올렸다.
하, 새끼. 랩 박자 더럽게 못 따라오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