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5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59화(459/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59화
대체 이 역할이 어느 장면에 필요한지 기억을 짜내 봐도, 사람의 기억력이 컴퓨터가 아닌 이상 예-전에 봤던 킬링타임 드라마의 후반부 세부 장면이 단서 하나 없이 단번에 생각날 리가 없었다.
시즌 1부터 9까지 각 화 미션 정도는 줄줄이 읊을 수 있는 DROP THE BEAT면 몰라.
“내 말이. 대체… 전국노래자랑이 그 드라마의 어느 맥락에서 나오는 거야?”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제일 기뻐했던 서예현이 뒤늦게 이상함을 느꼈는지 한껏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전달받은 카메오 역할은 전국노래자랑에서 무대를 하는 참가자 팀이었다.
무대 하는 게 우리 본업이라 굳이 연기력을 요하지 않는 건 마음에 들었지만 주어진 역할이 너무 생뚱맞긴 했다.
“혹시 여주나 남주 둘 중 한 명의 취미가 전국노래자랑 시청이나 직관 아니에요? 그래서 이제 둘 중 하나가 보러 간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우리가 나오는 거죠. 그런데 그 이후에 상대가 갑자기 무대에 등장하는 거예요. 관람석에서 구경하고 있던 여주 혹은 남주는 깜짝 놀라고.”
서브컬쳐로 단련된 짬밥이 있는 김도빈이 추측만으로 거의 드라마 한 편을 창조해 냈다.
“탈락, 개연성이 없어.”
팔짱을 낀 서예현이 냉정하게 평가를 내렸다.
“왜요? 이 정도면 개연성 충분하지 않아요?”
“아니지. 둘 중 하나의 취향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의 취미일 수도 있지. 봐 봐, 서브 남주인지 아닌지 모르는 하준이가 재벌남이잖아. 그러면 하준이는 클래식 공연이나 발레 같은 거를 보러 다닐 거 아니야. 그런데 남주는 자기랑 똑같이 전국노래자랑 보는 게 취미래.”
왜 갑자기 이런 걸로 진지해지는 건데. 레코딩 들어가기 전에 본인 파트 방향 의견 있냐고 물어봤을 때나 좀 이렇게 진지하게 대답을 해 봐라.
“그러면 이제 스토리가 두 가지 상황으로 나뉠 수가 있어.”
내가 속으로 그런 투덜거림을 내뱉거나 말거나 서예현은 진지한 얼굴로 손가락 하나를 치켜올리며 드라마 내용 창작을 이어나갔다.
“클래식 공연이나 발레는 돈도 꽤 깨지고 취향도 타. 그런데 전국노래자랑은 한국 사람이면 틀어 놓기만 해도 일단 봐. 솔직히 재미있어. 그리고 돈도 안 깨져. 그리고 사람이 취미가 맞으면 더 친해지는 법이야. 그래서 여주가 하준이랑 남주랑 각각 한 번씩 데이트 갔다가 취미 맞는 사람에게 마음이 확실히 기우는 게 상황 1.”
손가락 하나가 더 척 올라갔다.
“아니면 동네에 열린 전국노래자랑 보러 갔다가 남주랑 여주가 관람석에서 우연히 만나는 거지. 그러면서 취미가 같은 걸 확인하고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이게 바로 상황 2.”
“흠, 어떤 게 맞을지는 몰라도 둘 다 전개가 막장이긴 하네요.”
듣다 보니 김도빈의 전개보다는 서예현의 스토리가 개연성이 더 있긴 했다.
하지만 서예현의 말을 듣고도 ‘맞다, 이거였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걸 보아하니 저 중에 정답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일반인이 예측하기 불가능하기에 막장 아니겠는가. 전개가 예측이 가능하면 더 이상 막장이 아니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고 있어?”
“앞으로 이틀 후에 있을 밴드 합주 이야기나 하고 있지. 과연 얼마나 엉망인 불협화음이 될 것인가.”
“저는 일대일 강습으로 인해서 지금 베이스 고수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데요. 지금 보여 드릴까요?”
“난 이든이 형한테 이제 좀 잘 한다고 칭찬받았는데. 이든이 형이 칭찬해 줬다, 부럽지?”
“류재, 설마 반복적인 폭언을 듣다 보니까 칭찬의 기준이 현저히 낮아진 건 아니지? 나도 그랬어. 맨날 윽박만 듣다가 ‘드디어 제법 사람이 만든 것 같은 멜로디를 탄생시켰구나’ 이 한 마디가 칭찬 같고 감격스럽고 그러더라니까? 내가 봤을 때 너도 지금 같은 상태야! 빨리 정신 차리고 빠져나와!”
“빠져나오긴 뭘 빠져나와. 내가 너희들한테 가스라이팅했냐. 나는 그냥 진실을 담백하게 말했을 뿐인데 더럽게 억울하네.”
견하준이 숙소로 돌아오자 다들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아직은 커피차도, 깜짝 카메오 출연도 견하준한테 비밀이었기에 촬영일까지 들켜서는 안 됐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커피차를 받고, 촬영장에 깜짝 방문한 우리를 마주하며 감동한 견하준을 카메라에 담는 것까지가 콘텐츠의 완성이었다.
일상의 콘텐츠화를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드라마 측에서 메이킹 필름이 따로 나오지 않는 이상, 견하준의 첫 드라마 촬영을 이렇게라도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 * *
다음 날.
커피차와 함께 견하준을 제외한 우리 넷은 <프로젝트 맞선> 드라마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분야가 다르다 보니 드라마 촬영 현장은 처음이었기에 흥미를 담은 눈으로 촬영장을 휙휙 둘러보았다.
그러던 내 눈에 카페 라떼 테이크아웃 컵을 쥔 채로 본인 담당 매니저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견하준이 들어왔다.
당황한 기색이 보이긴 했지만 입가에 웃음기가 은은하게 묻어나오는 걸 보아하니 이 상황이 마음에 제법 든 모양이었다.
“하준이 형, 서프라이즈!”
“세상에, 이걸 이렇게 나 몰래 준비했어? 돈이라도 보태게 미리 말하지.”
“형이 돈을 보태면 그건 이제 더 이상 선물이 아니잖아요. 그냥 멤버들의 소소한 마음을 받아주시면 돼용.”
“와, 말투… 김도빈 카메라 의식 레전드.”
“첫 촬영부터 보냈어야 했는데 이제 생각하면 어쩌냐고 투덜거렸던 이든이 형이 저를 음해해용.”
“뭘 모르네, 도빈이 형. 이든이 형의 투덜거림은 그런 류야. 어른들이 본인이 잘못해 놓고 민망하면 괜히 투덜거리는 거 있잖아. 즉, 이든이 형은 커피차를 빨리 떠올리지 못해 첫 촬영부터 보내지 못한 게 본인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역시 가부장 언어 해석 1타 강사.”
“뭐라는 거냐, 얘들아.”
우리가 응원하러 와서 평소 같은 대화를 하고 있든 말든 견하준은 서예현이 든 캠코더 앞에서 커피차와 멤버들의 깜짝 방문을 서프라이즈 선물로 받은 소감을 읊고 있었다.
“멤버들한테 너무 고맙네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아서 감동이에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커피와 간식을 받고 견하준을 향해 잘 먹겠다고 인사하고 가는 모습을 보니 괜히 다 뿌듯했다.
커피차 앞에서 SNS에 올릴 인증샷을 몇 컷 찍고 나서야 우리는 드라마 PD님한테 정확한 촬영 내용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촬영하는 순서까지 촬영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구석에 모여 대기를 타며 목소리 한껏 낮추어 대화를 나눴다.
“우리의 예측이 다 틀렸다니…”
“6인실 병실에서 전국노래자랑 최우수상 시상자 아들을 둔 할머니에게 텃세 당하는 여주 할머니를 위해서 남주랑 여주가 전국노래자랑에 최우수상을 노리고 직접 나간다는 스토리를 대체 누가 예상해.”
심지어 또 나름 중요한 장면이었다.
자연스럽게? 우연히 지나가다가 전국노래자랑 무대에서 즐겁게 노래하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을 본 김유환(견하준 역)이 자신은 여주인공을 행복하게 해 주기엔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물러서는 장면이었으니까.
내가 봤을 때는 행복하게 해 주기에 부족한 게 아니라 간절함이 부족한 것 같지만.
좋아하는 여자가 전국노래자랑 무대 한 번 오르고 싶다고 하면 아무리 가오 떨어지더라도 같이 올라가 주는 게 맞지 않냐.
아무튼, 그렇게 나름 중요한 컷에 나올 우리가 카메오로 맡은 정확한 역할은 바로…
“네 분 스탠바이 부탁드려요. 예현 씨가 손자 역할 맡아 주시면 되겠네요. 촬영 전에 소품 휴대폰으로 예현 씨 사진 한 장만 찍을게요. 여기 보시고 그냥 자연스럽게 웃어 주세요. 네, 그렇게. 와, 필터 따로 없이 후면카메라로 찍었는데도 되게 잘 나오셨다.”
여주인공과 같은 취지로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을 제치고 최우수상을 받은 여주 할머니 병실의 다른 환자 할머니 손자 및 손자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손자 역은 제일 잘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예현이 차지하게 되었다.
레브에서 내가 제일 잘생겼다고 해 주는 유일무이한 사람인 우리 외할머니가 들으면 격분하실 이유였다. 물론 외할머니 빼고는 아무도 그런 소리를 안 해 줘서 주제 파악은 잘하고 있다.
천만다행히도 발연기의 대가 서예현이 직접 손자 역할을 연기할 일은 없었다. ‘얘가 우리 손자여!’ 대사와 함께 여주 할머니 병실의 다른 환자 할머니 휴대폰에 담긴 사진으로만 등장하면 됐다.
대사도 전국노래자랑 촬영 장면에서 딱 두 번만 하면 됐고 말이다. 팀 소개랑 수상 소감, 이렇게 두 번.
우리의 순서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 무대의 바로 다음 차례였다. 카메오 출연 제의 단계에서 우리한테 신청곡까지 받아 갔기에 곡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제법 많이 준비했는지 경쾌한 무대를 선보이는 작중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을 맡은 주연 배우들의 캐미를 지켜보며 박자에 맞추어 고개를 까딱이고 있는데 옆에서 서예현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냥 부를 걸 그랬나?”
“네 명 대형은 또 언제 맞춥니까. 그리고 우리가 축제 무대 뛰는 연예인으로 카메오 나온 것 도 아니고 일반인으로 나오는 건데, 일반인이 전국노래자랑에서 부르면 호응이 나올 것 같습니까? 분위기 안 살아서 바로 탈락행입니다, 형님. 열심히 연습해 놓고 왜 그러십니까.”
“맞아요. 노래는 제가 다 하는데요. 앞부분은 이든이 형이 다 하고.”
“안무 실수 안 하겠지? 내가 이 중요한 촬영에서 NG를 내진 않겠지? 우리 아침에 1시간밖에 연습 못 했잖아.”
“성장한 형님이 우리의 평소 난이도보다 훨 낮은 수준의 안무를 실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1절만 하는 걸.”
원래는 우리 노래 중에 가장 상큼하고 분위기 확 살릴 수 있는 를 부르려고 했는데 전국노래자랑의 주 시청층과 주 관객층을 고려하여 선곡을 바꾸었다. 물론 안무도 김도빈이 10분 만에 뚝딱 짰다.
사회자 역할을 맡은 배우가 다음 순서를 소개하고 우리는 수신호에 맞추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희 할머니께 효도 한 번 거하게 하러 이 무대에 친구들과 함께 올라온 효심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예현이 제게 주어진 두 개의 멘트 중 하나를 읊었다. 특유의 뻣뻣함은 숨겨지지 않았지만 긴장한 일반인처럼 보이는게 더 자연스럽다고 판단했는지 NG는 나지 않았다.
서예현의 멘트가 무사히 끝나고.
몇십 년 동안 이어진 노래방 스테디셀러, <잘못된 인연>의 전주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