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46화(46/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6화
그렇게 류재희의 주도하에 캐릭터성을 정립했지만, 우리에게 놓인 일은 끝나지 않았다.
바로 활동이 끝나자마자 있을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이라는 큰 산이 남아 있었다.
올해 데뷔한 신인인 우리는 한 곡만 하고 무대를 내려가면 됐지만, 문제는 스폐셜 스테이지였다.
신인치고 뜬 덕분에 M사에서 열리는 가요빅매치 행사는 KICKS와 곡 체인지 무대가, 다른 공중파 행사인 가요페스티벌은 김도빈 덕분에 아도라와의 콜라보 무대가 잡혀 있었다.
뮤직대전은 스페셜 스테이지를 신인보다는 어느 정도 연차와 인지도가 있는 그룹으로 꾸리는 걸 선호하기에 여기는 이번 신곡만 부르면 된다.
홍콩에서 열리는 WAMA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나는 거기에 서라온 무대 피처링까지 더해졌다.
파트가 25초밖에 안 된다고 해도 무대에서 어느 정도 동선은 맞춰야 했기에 행사 전에 몇 번 불려 다닐 예정이었다.
피처링이야 평소 내 실력대로 해도 되니 논외라고 쳐도…….
“KICKS랑 곡 체인지 무대는 절대 대충 못 하지. 우리가 실력으로는 압살한다는 걸 보여 주마.”
이건 그룹의 자존심, 더 멀리 가서는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그런데 그 자식들이 우리 노래로 무대 꾸밀 거 생각하니까 묘하게 열 받는데? 좋은 노래로 무대 하면 당연히 호평받겠지. 왜 내 노력이 그 자식들 올려치기 용도로 전락해야 하는 거지?”
미간을 꿈틀하며 말하자, 옆에서 류재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제 말이요. 저희한테 너무 불리한 거 아니에요? 솔직히 원찬스랑 비교했을 때 Watch Out이 훨씬 더 구리잖아요.”
“어어, 일부러 구린 곡 골랐어. 어차피 쫙 편곡하면서 뜯어고칠 테니까 원곡이랑 비교되라고.”
기필코 너튜브에 검색하면 레브 ver이 제일 위에 뜨게 만들어 줄 것이다.
원곡에 ‘레브 버전 듣고 원곡 왔는데 심심해요ㅠ 편곡한 게 더 나은 듯’이란 댓글이 달리게 해 줄 거라고.
놈들이 한 무대 영상에 ‘역시 원곡자 못 이긴다 ㅅㄱ’라는 댓글이 달리는 것까지 상상하자 행복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럴 때는 이든이 형이 참 믿음직한 것 같아서 마음이 한결 놓이네여.”
“오, 그러면 평소에는 안 믿음직스러웠다는 소리냐?”
“노, 노코멘트.”
김도빈이 후다닥 제 입술 위에 손가락으로 X자를 만들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KICKS의 안무가 다 칼군무라는 건데.”
견하준이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단 한 사람을 향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서예현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윤이든이 편곡한다니까 안무도 뜯어고칠 수는…….”
“조금씩은 바꿔야 한다고 해도 칼군무 기조는 유지해야죠. 내려치기 꼬투리 잡힐 건수를 아예 내주지 않으려면.”
냉정하게 말한 견하준이 서예현의 어깨에 턱 양손을 올렸다.
“괜찮아요, 형. 형은 할 수 있어요.”
“어, 어어……?”
“이든이는 바쁘니까 제가 도와드릴게요. 설마 KICKS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고 싶은 건 아니죠?”
“아니, 물론 하긴 해야지…….”
언제나 차분한 갈색 눈동자에 날카로운 이채가 서려 있었다.
KICKS 엮이니까 눈 돌아갔구먼, 견하준.
“잘됐네. 이참에 둘이 붙어서 연습하면서 어색한 사이도 해소하고 그래.”
내 일이 아니어서 덕담이나 던져 주었다.
잠깐, 설마 가르쳐 주다가 견하준 성격 다 버리는 거 아니야?
레브의 유일한 갓성이 몸에 화가 많은 제2의 서예현이 되어 버린다면…… 오우,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준아, 정 못 해 먹겠으면 SOS 쳐라. 경험자로서 도움은 줄 테니까.”
“네가 제일 바쁜 거 아는데 어떻게 그러겠어.”
“나 사이에 두고 너희들끼리 그런 훈훈한 분위기 연출하지 말아 줄래?”
이 따스하고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김도빈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KICKS랑 체인지 무대 말고 또 뭐 놓친 거 없으세요?”
“이거 말고 중요한 게 또 뭐 있어?”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리를 하세요! 아도라 선배님들이랑 하는 콜라보도 최선을 다해야져!”
어차피 우리가 불러야 하는 1절 안무는 김도빈이 우리에게 어색하지 않도록 적당히 뜯어고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굳이 말을 얹지 않았다.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고생한다는데 내가 거기에 대고 무어라 말을 하겠는가.
“몸 좀 빡세게 굴려야 하겠구먼.”
한탄하다가 멈칫하고 김도빈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참고로 그 이야기 아니다, 도비. 오해하지 마라.”
“이제 오해 안 한다고요!”
그럼 됐고.
* * *
[snow dream(크리스마스 기념곡)_진짜_레알_정말로_최종.mp3]“드디어 끝이다…….”
작업 파일 저장까지 끝내자마자 의자에 늘어져 중얼거렸다.
작업이 끝났다고 마음껏 기뻐할 기력도 없었다.
하필 랜덤 티켓으로 뽑은 아이템 ‘언젠가의 USB’에 내가 작곡한 크리스마스 기념 송 하나 없을 줄이야.
있었으면 이번 처럼 날로 먹을 수 있었을 텐데.
크리스마스 때마다 울려 퍼질 연금용 캐럴 하나 만들 생각도 안 했다니, 과거의 나 자신에게 조금 실망했다.
뒤에서 컵라면을 후루룩 먹고 있던 용철 형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의자에 흐느적거리며 널브러져 있는 내게 말을 걸었다.
“축하한다. 그럼 이제 내 작업실 돌려받을 수 있냐?”
“아니, 이제 KICKS 노래 편곡해야 함.”
“아오, 그냥 여 위층 사서 작업실로 쓰라고. 이제 돈도 버는 놈이 언제까지 여기에 눌러앉아 있을 건데.”
“내가 면목이 없다, 형. 진짜로 이번 작업까지만 신세 질게.”
손가락 사이에 끼운 카드를 흔들며 말하자 용철이 형이 어차피 당분간은 작업할 거리도 없으니 얼마든지 더 있어도 괜찮다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작업실 계약금과 저 인간의 배 속으로 들어가는 소고기값을 재보다가 포기했다.
내가 얼른 내 작업실 만들어서 나가야지.
뻑뻑한 눈두덩이를 문지르니 용철이 형이 혀를 차며 말했다.
“너 그러다가 과로로 훅 간다. 오는 건 순서 있어도 가는 건 순서 없는 거 알지?”
“안 그래도 골로 갈까 봐 운동 시작했어.”
사실은 망할 시스템이 강제적으로 시켰다. 몸 관리 항목을 추가하더니 위클리 퀘스트에 기어이 운동까지 구겨 넣더라.
진심으로 내 건강을 생각한다면 그 맛대가리 없는 발사믹 샐러드 식단이나 멀쩡한 집밥으로 바꿔 주던지.
“운동?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자라, 미친놈아. 눈 밑 시커메진 거 봐. 너희 이번 컨셉이 무슨 잠 못 자고 죽은 귀신이냐?”
“풋풋한 하이틴이라니까.”
“하이틴? 너는 혹시 하버드를 목표로 공부하다가 뒈진 도서관 너드 귀신 컨셉 맡았냐?”
“어떤 너드가 은발로 탈색을 하겠냐고. 그리고 편곡까지만 마쳐도 잘 시간 생겨, 이제.”
“일하는 것만 보면 아주 월클이야, 월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용철이 형이 컵라면 하나를 던졌다가 받으며 물었다.
“야, 여기서 야식으로 컵라면이나 하나 먹고 갈래? 너보다 나이 많은 놈이 숙소에서 저녁에 뭐 입에 대기만 해도 지랄한다면서.”
“마음만 받을게. 내일도 스케줄 있거든. 지금 라면 먹고 얼굴 부으면 내일 욕을 바가지로 들어먹을걸.”
하품하며 대꾸하고 있는데 책상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류재희- 헐헐 형] [류재희- 저희 초동 봤어요?]류재희의 문자를 보고 나서야 앨범 초동이 나왔다는 걸 알았다.
그러고 보니 활동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 하도 숨 가쁘게 지내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몇 장인데?] [류재희- 6만 장!] [류재희- KICKS랑 5천 장 차이밖에 안 나요!]“으아아악!”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비틀거리며 다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아, 깜짝이야. 뭔 일인데?”
“우리 그룹 앨범 초동이 6만 장이래.”
“100만 장도 아닌데 왜 호들갑이여.”
“이게 호들갑으로 보여? 우리 망했다고! 씨발, 겨우 6만 장……. 아니, 그런데 지금이 몇 년도지?”
휴대폰으로 연도를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진정했다. 지금은 초동이 그리 중요시되지 않는, 음반 인플레 시대 전이었기 때문에 이 숫자가 맞았다.
그나마 우리가 코어팬들이 있는 남자아이돌이라 이 숫자지, 여돌은 이 절반일 거다, 아마.
KICKS 놈들과 5천 장 차이밖에 안 난다는 것까지 보고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이 시대에는 이게 정상이지.
는 차트 빈집+음방 버프를 받아 3사 차트 1위까지 올라갔다.
중독성 있는 훅 덕분에 대중성을 잡은 것도 한몫했을 터였다.
KICKS의 <시간됐어>는 1위 사흘 찍고 다시 3위로 회귀했다. 그야말로 삼일천하가 따로 없었다.
회귀 전, 이 노래로 활동했던 후배 그룹 활동을 뛰어넘는 추이에 내심 레브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내 버킷리스트에 있는 무대를 완벽히 재현했다고 해도,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우리 그룹의 이미지는 실력의 50%나 발휘할까 말까 하는 팀워크 엉망, 노래도 엉망, 춤도 군무는 꿈도 못 꾸는 그런 그룹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엉망 그룹 이미지에 아주 큰 지분을 차지했던 서예현을 이번 회차에서 그리 빡세게 잡아 댔던 거고.
회귀 전의 나는 이맘때쯤 어쨌더라.
망할 게 분명한 다음 활동을 준비하며, 귀에 때려 박히지도 않는 난해한 노래가 울리는 연습실 바닥에 앉아 언젠가는 꼭 내 곡으로 활동하리라 다짐하고 있었던가.
확실한 건 이렇게 바쁘지는 않았다는 거다. <내 우주로 와>가 웬만큼 망한 게 아닌 터라, 회귀 전의 레브는 연말 가요축제 무대에도 서지 못했다.
친구들 만나서 홍대 거리 돌아다녀도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볼 만큼 참으로 자유롭고 한가했다.
나중에는 지하철을 타고 다녀도 아무도 관심 한 톨 안 주긴 하더라.
물론 2군으로 뜨고 나서는 이야기가 달라졌지만.
그런데 이맘때쯤 겨울에 무슨 큰일 하나 터졌었던 것 같은데…….
내 체감상으론 7년 전 일이라 좆됐다고 머리 쥐어뜯으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거 말고는 도저히 무슨 일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을 되살려 줄 아이템 하나 던져 줄 시스템 어디 없나.’
평소에는 나오지 말라 해도 튀어나와서 온갖 제약 다 걸어 대더니, 이럴 때만 기가 막히게 먹금하는 빌어먹을 시스템을 향해 속으로 욕설 몇 마디 내뱉어 주고는 용철 형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형, 나 컵라면 좀.”
“얼굴 부을까 봐 안 드신다면서.”
“소리 지르고 나니까 갑자기 배고프잖아. 라면에다가 우유 넣어 먹으면 덜 붓는다던데, 저 앞 편의점에서 우유나 사 와서 섞어 먹을까.”
“아, 씹. 말만 들어도 토할 것 같다. 야, 그냥 처먹고 우유 따로 먹어.”
용철이 형의 질색에 어쩔 수 없이 컵라면에 물을 붓고 인고의 기다림 끝에 우유 대신 라면 수프 반으로 타협한 라면 한 젓가락을 입에 밀어 넣은 순간.
[활동 기간 중 금지된 식품 섭취가 감지되었습니다.] [사유: 나트륨 함량 높음] [초심도 –1]거봐, 이 새끼 초심도 깎을 때만 기가 막히게 골라서 나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