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6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61화(46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61화
“예현이 형 덕분에 사운드 끄고 영상만 보면 우리 제법 프로 밴드 같은데요?”
서예현이 제법 완벽하게 밴드 프론트맨 역할을 해 낸 것이다.
외모빨이 있다고 해도 뻣뻣하게 서 있기만 했으면 불협화음 사운드와 더불어 거슬리는 요소였겠지만, 영상 속 서예현은 내가 서예현을 어떻게든 굴려서 만들려 했던 이상적인 밴드 프론트맨 그 자체였다.
제스처, 시선 처리, 립싱크, 스탠딩 마이크를 잡고 리듬을 타는 동작까지 놀랍도록 자연스러웠다.
분명히 서예현 파트는 30초가량인데 영상만 보면 보컬 서예현이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멱살 잡고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 미친 착시 현상을 이뤄 낸 서예현이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의기양양하게 치켜올렸다.
“봤냐? 너희가 악기 다루는 연습을 쌔빠지게 할 동안 나는 프론트맨이 보컬인 밴드 영상 300개를 돌려보고 보컬 동작을 분석했지! 그리고 우리 곡이랑 비슷한 분위기 곡을 추려서 거기에서 또 동작을 몇 개 추려서 우리 곡을 대입해 보면서 수정하고 적용하고 순서 바꿔 보고 연습하고.”
어지간히 자랑스러운지 서예현은 입에 모터 달린 듯 쉬지 않고 연습 과정 설명을 줄줄 이어 나갔다.
저 정도는 인정이다. 서예현이 이번 활동에서 혼자 꿀 빨았다는 소리는 절대 못 하게 생겼다.
“형님의 이 뼈를 깎는 노력은 제가 리패키지 활동 내내 치하해서 대대손손 전해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치하는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하는 거 아니냐? 형님이라고 깍듯하게 부르면서 치하한다고 하니까 좀…”
“오우, 알았어. 안 그래도 형님이라고 부르면 예전만큼 질색하는 반응이 안 나와서 슬슬 지겹긴 했어. 이제 집어치울게. 할 만큼 했다.”
“아니, 치하라는 단어를 정정하는 게 아니라 형님 호칭을 날리는 거냐고.”
은근히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아하니 역시 내 선택이 옳았다. 내가 서예현 좋은 일은 절대 못 시켜 주지.
“어이, 기타맨 둘. 연습 저 정도는 해라. 지금 둘 다 코드 잡느라 정신 팔려서 자기 파트 반 박자씩 늦게 들어가고 있는 거 보이지?”
막내 라인이 깊이 반성하고 있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는데 예현이 형이 한 노력에 비하면 제 연습은 연습도 아니었네요.”
“아니, 뭐… 나는 악기 연습도 안 하고 하니까 그럴 수 있었지.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게 훨씬 어렵잖아. 너희도 열심히 노력한 거야.”
서예현이 풀죽은 막내 라인을 다독였다.
“드럼 치면서 랩하는 것도 어려워.”
“너는 무슨 동생들이랑 똑같은 말을 들으려 해?”
“나도 나이로만 따지자면 동생인데.”
“치하한다고 해 놓고 동생이랜다. 무슨 위아래가 띠부띠부 씰이야?”
“내가 리더니까 이 팀의 그냥 멤버인 형보다는 위잖아. 그런데 나이는 형보다는 아래니까 동생이고. 그러니까 윗사람 겸 동생이 공존할 수가 있는 거지.”
서예현이 말문이 막힌 얼굴로 입을 벙긋거리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반박할 말이 생각 안 나는 모양이다.
토론 동아리 출신을 이기다니. 나… 의외로 토론에도 재능이 있을 수도?
* * *
밴드가 개허접에서 제법 아마추어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 갈 동안 견하준이 나오는 드라마도 착실하게 방영되었다.
[저는 그녹취요.] [저기, 이혜라 씨? 그녹취가 아니라 뇨끼 아닙니까…?] [세상에, 김유환 씨. 영어도 못 읽으세요? 맨 앞에 G가 있잖아요, G가. 이게 어떻게 뇨끼예요.] [무식한데 당당하기까지… 보통 사람이 아니다.
] [웨이터? 파스타 면이 너무 익었네요. 저는 항상 al dente로만 먹는데 이 집 파스타는 상당히 실망이군요. 이혜라 씨? 접시 회수할 수 있게 포크 좀 내려놓으시겠어요?] [네? 저는 지금 익힘이 딱 맞는데요?] [아니요, 파스타는 al dente로만 먹어야 합니다. 푹 익은 파스타는 파스타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건 파스타가 아니라 뇨끼잖아요.] [뇨끼도 파스타입니다.] [뭐야, 자기 것만 알덴테인가 알단테인가로 먹으면 되지, 왜 나한테까지 자기 취향을 강요하고 난리야? 이런 남자랑 결혼해야 하는 혜라 씨가 불쌍해서라도 내가 최선을 다 해서 파투 내 주지, 이 맞선!
]
2화에서 두 주연의 미친 연기로 대차게 망한 맞선 내용에 더불어, 프로젝트로 인해 두 사람이 여주인공의 회사에서 재회하는 엔딩으로 끝난 덕분에 그냥 소소하게 돌던 입소문이 아주 천장을 뚫었다.
[미치겠다, 저기도 대타였어? 대타 앞에서 내가 그 또라이짓을 해 댔던 거야?] [돌아버리겠네! 뇨끼! 뇨끼! 뇨끼! 나도 그녹취가 아니라 뇨끼라고 읽는 거 안다고!]그리고 본격적으로 협업하는 3화부터 드라마 시청률은 1화 시청률의 네 배가 뛰었다.
견하준이 부른 드라마 OST 역시 음원 차트 순위가 수직상승했다.
<프로젝트 맞선> OST 트랙 2번으로 수록된 그 곡은 오프닝이랑 엔딩에 나오며 이제는 거의 드라마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다.
너무 서정적인 곡이라 드라마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불호평도 있었지만 그 아이러니 역시 막장의 묘미라며 다들 우리 곡을 대표곡으로 인정했다.
드라마가 히트칠수록 나랑 견하준한테 들어오는 저작권료에 붙는 0의 개수가 달라지는 법이라 여기에서 더 흥행하라고 물 떠 놓고 빌고 있었다.
드라마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건 굳이 넷상 반응을 찾아보지 않아도 당장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당장 우리 엄마도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가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나한테 전화를 걸었으니까.
-아니, 엄마 계모임에서 요즘 프로젝트 맞선? 그 드라마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그 이야기만 하도 해 대는 바람에 엄마가 대화를 못 끼겠는 거야. 그래서 재방하는 거 2화부턴가 봤더니 하준이 닮은 사람이 나오더라? 혹시 하준이 드라마 찍었니?
“어, 그거 닮은 사람 아니고 진짜 하준이야.”
-어머, 세상에, 세상에. 하준이 엄마는 좋겠네. 아들이 그렇게 입소문 타는 드라마도 나오고. 어깨 펴고 다닐 맛 나겠다. 너는 뭐해?
“엄마 아들은 전국적으로 입소문 탄 hiphop 서바이벌에 나왔어. 엄마도 당당하게 어깨 펴고 다녀.”
-그거? 배 까고 나왔던 거?
뚜-
엄마의 그 말을 듣자마자 설날에 친척들 앞에서 터틀넥 크롭티 장면을 강제 공개했던 쓰라린 기억이 떠올라 바로 통화를 끊었다.
젠장, 겨우 기억 저편으로 묻었는데.
드라마에서 견하준을 알아본 건 우리 엄마만이 아니었다.
“알았어, 물어볼게. 물어보면 될 거 아니야. 하준이 형, 울 엄마가 이번에 혜라네 할머니 쓰러진 거 혹시 죽을병이냐고 스포 좀 해 달라는데요!”
통화 중인지 휴대폰에 대고 투덜거리며 2층 계단을 내려온 김도빈이 견하준을 쩌렁쩌렁하게 불렀다. 견하준의 표정이 어쩐지 아연해졌다.
“도빈이 네 어머니도 그 드라마 보신대…?”
“어휴, 말도 마요. 제가 형 나온다고 따로 말도 안 했는데 요즘 이모들이랑 만나기만 하면 맨날 프젝맞선 이야기만 한대요. 지금도 형한테 혜라 할머니 병명 얼른 물어보라고 성화예요.”
“다음 화에 나오는데 굳이 지금 스포를 해야 할까?”
“그게… 이모들이랑 죽을병인지 아니면 별거 아닌 병인데 심각한 척하는 건지 돈내기했대요. 만약 오답이면 다음 화 뜨기 전까지 빨리 바꿔야 하니까 얼른 물어보래요.”
그걸 듣고 있는 내 표정도 아연해졌다. 드라마 보는 데에 그렇게까지…? 짧은 한숨을 내쉰 견하준이 스포했다.
“죽을병 아니라고 말씀드려.”
“엄마! 하준이 형이 죽을병 아니래! 엥, 그럴 줄 알았다고? 그러면 왜 물어봤어?”
듣다 보니 나도 궁금해져서 견하준한테 슬쩍 물어보았다.
“그러면 왜 쓰러지신 거래?”
“기립성 저혈압이었나, 그랬을걸? 너희 와서 카메오 촬영한 후반부에 입원하신 건 맹장염.”
그렇군. 내가 자세한 스포일러를 듣는 동안 제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친 김도빈이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견하준에게 말했다.
“어후, 형. 다음에는 대외비 때문에 스포 못 한다고 해 주세요. 이러다가 맨날 엄마한테 전화 올 거 같아요.”
“네 선에서 컷해, 인마. 그 정도도 못 하냐.”
견하준을 귀찮게 하려 하는 김도빈을 갈구고 있자 서예현도 드라마 관련해서 말을 얹었다.
“나도 동생한테 연락 왔는데. 왜 드라마에 멤버 나온다고 말 안 했냐고. 엄마랑 보다가 깜짝 놀랐다나 뭐라나.”
“이야, 진짜 웬만한 집들 다 보네.”
“<프로젝트 맞선>이 확실히 요즘 이슈이긴 한가 봐. 서나현이나 우리 엄마나 웬만큼 이슈되는 드라마 아니면 드라마 잘 안 챙겨 보거든.”
확실히 우리 엄마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 어머니들도 <프로젝트 맞선>을 보고 계시는 걸 보니 회귀 전보다 더욱 확실하게 이슈를 타려는 모양이었다.
가족과의 연을 끊은 류재희가 혹여라도 홀로 소외감을 느낄까 봐 우리 엄마도 본다는 말은 굳이 안 얹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견하준의 말을 끊고 견하준 폰의 진동이 짧게 울렸다.
화면만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견하준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지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휴대폰의 채팅창을 보자마자 사진 속 티비 화면의 견하준과 눈이 마주쳤다.
[누나- (사진)] [누나- 막둥아 드라마 방영했다고 왜 말 안 했어] [누나- 울 동생 입이 아니라 누나 친구한테 전해 듣게 하면 쓰니ㅠㅠ] [누나- 누나가 기사 뜬 거 시기만 보고 울 막둥이 김정서 작가 드라마 나오는 거 아니냐고 엄마한테 호들갑 떨어 놨는데 얼른 정정해야겠다ㅋㅋ]“너 혹시 너희 가족한테 말 안 했냐?”
내 떨떠름한 물음에 견하준이 빠르게 타자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또 보니까 다른 가족들한테 말 안 하면 안 되냐는 수동적 회피형 성향이 가득 담긴 답장이었다.
지독하다, 지독해. 음성 메시지 잠수 절교가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서예현도 이해를 못 한 듯한 얼굴로 물었다.
“나야 맨날 카이사르 안부 묻는 시간이 더 길어서 가족들한테 우리 멤버 드라마 찍었다고 말하는 걸 까먹었다지만 너는 왜 말 안했어?”
“드라마가 보통 내용은 아니라서.”
견하준의 답변은 참으로 심플했다.
“그래도 이제 곧 김정서 작가님 드라마도 런칭하니까 우리 어머니는 굳이 나 나온 드라마 안 보고 그 드라마 보시지 않을까 싶네. 우리 어머니가 김정서 작가님 드라마 엄청 좋아하시거든.”
“헐, 그때 김정서 작가님 대본도 들어왔잖아요. 심지어 내용도 전국노래자랑 효심 대결보다 훨씬 정상적이야.”
“그러게. 김정서 작가님 스타일이 프젝맞선처럼 대놓고 막장 스타일도 절대 아니잖아. 만약 하준이가 김정서 작가님 드라마 찍었으면 더블효도였네.”
모두의 시선이 그토록 김정서 작가님 작품을 결사반대하여 견하준의 효도를 방해한 내게로 쏠렸다.
“왜, 뭐. 지금 내 감을 다들 못 믿는 거냐? 프젝맞선이 김정서 작가님 드라마 이긴다니까.”
“무슨 제가 형을 몸싸움으로 이긴다는 소리를 하시고 그래요.”
“너는 나를 몸싸움으로 이길 일이 없겠지만, 프젝맞선이 김정서 작가님 드라마를 이길 일은 있다니까?”
아무리 말을 해 봤자 데뷔 초의 우리가 알테어를 이긴다는 소리 정도로 다들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맞선>이 화제의 드라마로 자리 잡은 이 시점, 드디어 김정서 작가님의 드라마 1화가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