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6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63화(46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63화
음원 차트 성적에서 처음으로 엎치락뒤치락하지도 못하고 우리한테 완전히 1위를 내어 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까 케이제이랑 나를 다 헷갈리지.
공통점이라곤 팀의 리더, 메인 래퍼, 프로듀싱 멤이라는 포지션밖에 없는데 말이야. 그렇지만 저기는 남의 곡 이름표 바꿔치기랑 짜깁기하는 짭프로듀싱 멤이라 마지막은 공통점이라고 못 하겠군.
“오, 차연호 선배님이요? 저를 딱히 마음에 들어하시진 않으시던데 저랑 선배님을 헷갈렸다… 누가 들어도 수동 공격 같은데 아직 하와이에서 싸운 거 안 푸셨나요?”
“아니, 하와이에서는 그럴 만한 일이 좀 있어서. 진작 풀었어요, 진작. 연호가 그런 쪼잔한 녀석은 아니에요.”
손을 내저으며 웃는 케이제이의 얼굴과 말에는 한 점의 거짓도 없어 보였다.
항상 나를 향한 적의가 눈에 그득 차 있는 차연호와 달리 회귀 전 내게 직접적으로 공격당하고 끌어내려진 케이제이는 내게 딱히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는 듯해 보여 기분이 묘했다.
그나저나 내가 서른두 살이라는 건 뭐야?
‘네가 늙어서 편하게 임종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너 서른 살에 죽었어.’
그나마 제일 가까운 나이가 차연호 왈, 내가 죽었다던 서른 살이긴 했다. 하지만 서른 살 윤이든이 쌩쌩하게 살아서 서른한 살에 나 없는 레브 10주년 콘서트까지 봤다고 했으므로 기각.
“차연호 선배님이 정확히 뭐라고 했길래 제가 프로필상 나이를 속였다는 의심을 다 하셨어요?”
“서른 살이 아니고 서른두 살이었다길래 제가 ‘이든 씨가 나이를 그렇게 먹었다고?’라고 물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또 저랑 이든 씨를 헷갈렸다고-”
케이제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기실의 문이 휙 열리더니 케이제이를 안으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열린 문 틈으로 차연호가 걸어 나왔다.
“저 아직 대화 안 끝났는데, 선배님.”
팔짱을 낀 채로 삐딱하게 웃으며 말하자 차연호가 입술을 한번 꾹 깨물고는 말을 쏟아냈다.
“무슨 할 말이 남았는지는 알아. 곡 관련이지? 정준이 말고 나랑 이야기해. 저녁에 전화할 테니까 문자로 스케줄 비는 시간 보내 줘.”
“그 나이 먹고 보호자 세우지 마시고, 면대면으로 대화 좀 하겠다니까? 알면서 감싸주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선배님.”
쾅-!
대기실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쿡쿡, 나를 찌른 김도빈이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속닥였다.
“형, 차연호 선배…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전에 하와이에서도 그렇고.”
김도빈한테까지 이상한 놈으로 각인되다니, 쯧쯧.
매점에서 서예현에게 들키지 않고 가볍게 먹을 것만 사고 대기실로 돌아와 서예현 몰래 먹기 챌린지를 해냈다.
“레브, 준비해 주세요!”
스태프의 안내에 멤버들이 하나둘 주섬주섬 소파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NOX] 활동 내내 딱 달라붙는 정장만 입다가 후드티, 맨투맨, 남방, 반팔 티셔츠 같은 옷을 입으니 너무 편했다.“자, 다들 준비했던 만큼 보여 주자!”
“오랜만에 파이팅 한 번 외치고 가죠! 저희 첫 밴드 컨셉이잖아요.”
제일 먼저 내민 류재희의 손 위로 네 개의 손이 차곡차곡 쌓였다.
“하나, 둘, 레브 파이팅!”
몇 달간 열심히 연습했던 밴드 무대를 팬들 앞에서 처음으로 선보일 시간이었다.
* * *
“도빈아, 고개를 좀 덜 까딱여도 될 것 같아. 조명 때문에 그런가 연습할 때는 괜찮았는데 여기에서는 좀 정신 사나워 보여.”
“예현이 형은 ‘pale blue 색깔에 홀리듯~’ 이 부분에서 제스처 좀 더 크게 들어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막내는 박자 신경 쓰고. Inst 깔려 있다지만 손 싱크도 어느 정도 신경 써야지.”
오늘 녹화된 음방 무대를 보며 진지하게 피드백을 나누는 멤버들을 보다가 진동하기 시작하는 휴대폰을 들고 방으로 쓱 들어왔다.
[✆차연호]문자로 보낸 시간을 칼같이 맞추어 차연호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차연호가 빠르게 쏟아내듯 말했다.
-공동으로 이름 올린 작곡가한테 다 들었어. 이번에 그 사람이 쓴 파트, 너랑 공동 작업이었다며. 이름 올려 줄 테니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그 양반이 이번에는 부채감이 없어서 그런가, 입이 영 싸네.
“준비한 게 그것뿐만이 아닌데. 댁도 기억이 고스란히 있으면 내가 또 뭘 준비했는지도 알지 않나?”
-잘 알지. 그것도 포기해. 그건 절대 터트리면 안 돼.
“나를 설득하려 들지 말고 너희 리더에게 정신 차리라고 설득을 하라니까?”
-바뀌려면 진작 바뀌었지. 사람 쉽게 안 바뀌어. 너도 알잖아. 몇 번이고 설득하고 협박하고 별짓을 다 해 봐도 안 바뀌더라. 본인의 아이덴티티가 되어 버린 이상, 놓을 수가 없나 봐.
차연호가 힘없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물론 케이제이의 사정은 내 알 바 아니었다.
“내가 왜 터트리면 안 되는지, 그놈의 정준이 타령은 집어치우고 논리적으로 말 좀 해 주시지?”
-5년 후에 일어날 일, 그게 네가 이번에 터트리려는 일에서부터 시작되거든. 일종의 나비효과라고 해야 하나. 그 일로 정준이만 죽는 게 아니라 너도 죽어.
내가 뭘 들은 건가 싶어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수화기 너머로는 여전히 차연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정준이를 또 다시 서른에 죽게 두고 싶지 않고, 너는 서른두 살에 죽고 싶지 않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협조하라고.
5년 후면 댁이랑 케이제이가 서른한 살 아니냐니까 생일 하루 전에 죽어서 서른이라는 대꾸가 돌아왔다. 혹시 나이 정병? 뭐 그런 거 있나?
심지어 케이제이 생일을 검색해 보니까 12월 31일.
하지만 그러는 나도 30대 때부터는 무조건 만 나이로 카운트할 것이라 결심했기에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잠깐만, 혹시 내가 죽은 나이도 생일 안 지나서 서른두 살이야?”
-내가 네 생일을 어떻게 알아.
짜증스러운 말투를 보니까 그냥 한국 나이로 서른두 살인가 보다. 심지어 이건 서른(한) 살 윤이든의 나이를 지났기에 신빙성이 나름 있었다.
그럼 잠깐, 케이제이가 서른한 살에 죽었다고? 왜 그렇게 절절한가 했더니, 죽어서였어? 그러면 차연호가 전에 말했던 ‘그 애의 빈소’가…
내가 기억하는 회귀 전 타임 라인이 드디어 선명하게 떠올랐다.
처음으로 알테어의 천재 프로듀싱 멤 케이제이의 비밀을 알게 된 건 내가 스물네 살 때였다.
아직은 프로듀서로 큰 성공까진 거두지 못하고 소소하게 성과를 내던 시절. 당시 나는 ed라는 닉네임으로 한 작곡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룬 것도 없고 그룹에 기여하는 것도 하나 없고 제 손으로 저를 위해 주던 인맥까지 다 쳐낸 아이돌 윤이든보다는 곁에 형들도 있었고 크루에서 1인분 그 이상의 몫을 거뜬히 해냈던 언더그라운드 래퍼 ED가 더 좋았기에.
ed라는 닉네임은 그 시절의 그리움을,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었다.
잠깐 딴 길로 샜지만, 아무튼 프로보단 아마추어의 비중이 훨씬 높았던 그 커뮤니티에서 세상에 발표할 일 없는 내 습작물도 간간이 올리며 피드백을 주고받곤 했다.
막 작곡을 시작했거나 취미로 하는 수준인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나는 프로나 다름없었지만 굳이 튀고 싶지는 않았다.
덕분에 그 커뮤니티에서 내 실력보다는 아버지 찬스로 가끔 저작권 문제 관련해서 간단한 법률 상담을 해 주는 걸로 더 유명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익명으로 쪽지가 왔다.
본인이 대형 기획사랑 계약을 했는데, 내가 커뮤니티에 올린 습작곡 일부를 도용하여 작곡한 곡을 딱 그 부분만 가져가서 곡에 넣고 그 곡의 저작권을 몰수당했단다.
법을 잘 아는 것 같은 내가 그 곡에서 내 습작물을 발견하여 법적 조치를 밟아 가면 일이 커질까 봐 순순히 이실직고를 한 거다.
동시에 자기가 공론화하기엔 본인도 남의 곡을 도용한 터라 자격이 없기도 해서 내게 도움을 요청한 거고.
그 익명의 작곡가가 계약한 기획사가 바로 알테어의 기획사인 신월 엔터.
그리고 그 쪽지를 받은 날로부터 몇 달 후, 알테어의 신곡에서 나는 익숙한 멜로디를 듣게 된다. 작사·작곡에 케이제이의 이름을 달고 나온 그 신곡에서.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나는 커뮤니티에 올린 습작물이 내 작업물에 혹여라도 쓰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곧바로 영구 삭제를 해 왔기에 이게 표절임을 증명할 증거가 없었다.
아니, 누가 습작물을 도용하고, 그 도용한 곡을 또 갈취당해서 이런 식으로 세상에 내보낼지 알았겠냐고.
프로듀서로서 이룬 것도 많이 없던, 망돌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서예현 그룹의 멤버 1 정도로만 알려진 내가 증거도 없이 케이제이와 신월 엔터에게 선빵을 날리는 건 달걀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다.
그 익명의 작곡가는 도용충 치고는 그래도 양심이 있는 편이었다. 너무 죄송하다고, 혹시 이거 관련해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최대한 돕겠다고 내게 싹싹 빌었다.
아무리 습작물이어도 눈 뜨고 곡을 뺏긴 것에 눈이 돌아간 나는 2년 동안 케이제이의 작업물을 주시하며 차곡차곡 표절 증거를 쌓아 갔고, 동시에 그 익명의 작곡가와 컨택하여 신월 엔터의 유령 작곡·작사가들 착취 증거를 모아갔다.
그리고 케이제이의 작업물 표절을 터트림과 동시에 사회 고발 시사 프로그램에 유령 작곡가 저작권 착취 건을 찔렀다. 스물여섯 살의 나는 제법 프로듀서로 자리 잡았기에 그 폭로는 묻히지 않고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그렇게 알테어는 표절 그룹, 도용 그룹 등의 멸칭을 달고 정점에서 추락했다. 물론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1군에서 2.5군 정도로 내려온 정도지만. 군백기와 세대 교체도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고.
2년 전의 사과를 받기 위해 아직 덜 터트린 건이 있다고 넌지시 암시하자 찾아와서 사과는커녕 내 멱살을 잡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발악하던 케이제이와, 제 친구와 똑같이 뻗대다가 곧 상황 파악을 마치고 자존심 상한 얼굴로 고개 숙여 멘탈 나간 케이제이 대신 이제 그만하라고 빌던 차연호.
이게 내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내 기억 속에서는 케이제이가 죽지 않았다. 당연하다. 현재의 나한테는 28살 8월 8일까지의 기억밖에 없으니. 거기에 플러스로 29살에 견하준과의 절연을 담은 조각 기억.
그 죽음이 나하고 연관됐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스물아홉 살의 기억을 찾아야만 했다.
수화기 너머로 초조하게 들려오는 차연호의 숨소리를 듣고 있으니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왜… 내가 탈퇴하면 리셋이라면서 그렇게 나를 탈퇴시키려고 했던 놈이 왜 갑자기 패를 다 까고 협조를 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