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6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70화(47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70화
서예현의 휴대폰에는 템플스테이 홈페이지가 떠 있었다.
떨떠름해하거나 벌써부터 흥미 잃은 눈이 된 멤버들이 보이지도 않는지 서예현은 잔뜩 들뜬 얼굴로 누가 묻지도 않은 자신의 로망을 풀어 놓고 있었다.
“나 템플스테이 한번 해 보고 싶었어. 고요하고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고즈넉한 곳에서 가만히 차를 마시고 명상하고 탑돌이하고 목탁 소리 들으면서 정신을 수양하고.”
벌써 심심해서 탈출을 계획하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훤하게 그려졌다. 견하준은 조금 솔깃한 모양이지만 나랑은 영 맞지 않았다. 김도빈도 나랑 비슷한 생각인지 다급히 반박을 시도했다.
“템플스테이면 108배도 해야 하잖아요. 108배 너무 힘든데요. 그때 막내 수능 때도 하다가 포기했잖아요.”
그리고 그 반박은 류재희가 우리가 필사적으로 숨겼던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가게 만들었다.
“언제는 108배 하다가 무릎 다 나갔다며. 이렇게 형 입으로 108배 한 적은 없다고 결국은 증언을 해주는구나.”
“포기를 한 게 아니라 약간 변형을 시켰어. 그래서 108배는 했는데 한 사람당 108번씩 절을 한 적은 없어.”
“변형 108배는 또 뭔데?”
류재희가 김도빈을 잡고 빨리 설명하라고 털어 대는 동안 서예현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또 우리를 설득했다.
“108배 안 해도 되는 선택지도 있대. 체험형이 있고 휴식형이 있는데 휴식형을 선택하면 일정 소화 안 하고 편안하게 쉬는 거래.”
그래, 알겠어. 그래도 굳이 절에서 일주일 동안 나물만 먹으면서 쉬고 싶지가 않다고.
“공기 좋은 곳에서 속세와 떨어져서 염주도 만들고 차도 마시고 하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 보자, 우리.”
서예현이 열정적으로 템플스테이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누가 보면 템플스테이 홍보대사인 줄 알겠다.
한창 이곳저곳 쏘다닐 나이의 20대 남성 다섯 명이 염주 알 꿰면서 절에 일주일 동안 짱 박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지루했다. 차라리 해외 나가서 서핑 배우는 게 훨씬 낫지 않나.
“그리고 절밥은 채식이잖아. 비건. 그러니까 우리가 휴가 끝나도 체중 조절로 고생할 일도 없고 내가 너희들 식단 단속하느라 고생할 일도 없고, 우리 모두한테 얼마나 좋아.”
아무리 봐도 마지막 말만 본심인 것 같은데,
서예현의 템플스테이 소망을 단념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템플스테이보다 더 괜찮아 보이는 선택지를 찾아서 들이밀어야 했다.
아니면 서예현이 포기할 수밖에 없게끔 템플스테이의 치명적인 단점을 찾거나.
“자, 레브 998회 회의 시작하자. 템플스테이 말고 어디로 휴가를 갈 것인가.”
“아니지. 템플스테이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998회 회의를 하고, 999회 회의를 네가 말한 그걸로 해야지.”
내가 서예현과 998회 회의 주제로 논쟁을 벌이는 동안, 갑자기 무엇인가가 생각난 듯 짧은 침음을 흘린 김도빈이 말했다.
“저희 이모가 저번에 귀곡펜션 묵게 했던 거 미안하다고 형들이랑 재희 데리고 계곡 민박 한번 놀러 오라고는 하셨는데.”
“거기도 귀신 나오는 거 아니야…?”
별 걱정을 다 한다. 그때는 귀신 나왔냐고. 쓸데없는 걸 걱정하는 서예현한테 김도빈이 바로 반박을 해 주었다.
“여기는 저도 부모님이랑 몇 번 갔어요. 확실히 귀신 안 나와요. 앞에 바로 계곡도 있고요. 평상에서 식사하고 바로 계곡 들어가서 놀 수도 있어요.”
김도빈이 우리한테 지도 앱의 리뷰가 뜬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여기예요. 여기는 식당이랑 같이 하는 곳이라 저희 이모도 여름에 계속 상주해 계시고 지도 보면 리뷰도 많아요. 인터넷 검색하면 블로그 리뷰도 꽤 될걸요? 저희 이모 손맛 좋은 걸로 유명하셔서.”
[녹잎가든]이라는 이름을 가진 민박은 제법 평이 괜찮았다. 별점도 많고, 높고.“오, 그러네. 투숙 안 하고 식당만 오는 사람들도 꽤 되네? 닭백숙이랑 닭볶음탕 맛있대. 해물파전도.”
“그럼 가야죠. 저는 여기 한 표.”
음식에 홀랑 넘어간 류재희도 김도빈 이모의 민박집에 냉큼 붙었다. 그래, 밥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냐.
하지만 하필 서예현은 밥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에게 절밥을 먹이고 싶어 하는 인간한테 밥이, 특히 고기류가 잘 나온다는 설득이 들어 먹힐 리가 없었다.
템플스테이를 원하는 서예현의 표정은 여전히 굳건했다.
김도빈도 템플스테이는 피하고 싶었는지 필사적으로 이모네 민박집을 어필했다.
“이모가 세 끼 다 줄 테니까 몸만 와도 된다고 했어요. 거기 술도 팔아요. 이모가 장 봐 오시니까 저희가 마트 갈 필요도 없어요. 형이 저희가 고르는 냉동식품을 다시 가져다 놓으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에요. 아, 9월에는 문 닫을 거니까 9월 전에만 오래요.”
그저 템플스테이를 피하려는 도피처였건만, 김도빈의 말을 듣다 보니 그 민박집이 굉장히 좋은 휴가처같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의견을 내지도, 누구의 편을 들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견하준이 서예현을 돌아보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형, 템플스테이에는 침대가 없어. 바닥에서 자야 해.”
단 두 마디로 견하준은 서예현의 굳건한 템플스테이 사랑을 흔들었다.
잠자리에 더럽게 까탈스러운 서예현은 침대가 없으면 잘 자지 못한다. 소파라도 있어야 하는 인간이 바닥에서 일주일을 자야 한다? 서예현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이스, 견하준!
서예현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발견한 김도빈이 곧바로 마지막 카운트 펀치를 날렸다.
“형, 여기 민박에 침대방 있어요.”
결국 고작 침대 하나로 서예현이 백기를 들며 우리의 휴가지는 김도빈 이모님네 민박으로 정해졌다. 본인 이모한테 전화한 김도빈이 우리에게 말을 전해 주었다.
“내일부터 와도 된다는데요? 침대방도 가능하대요. 아, 그리고 올 때 8와트짜리 전구 두 개랑 2L짜리 생수 묶음만 사다 달래요.”
“그러면 첫 주에 다 같이 놀고 둘째 주에 각자 할 거 하자. 그래야지 한 주라도 좀 휴가 같지. 맨날 붙어 있는 놈들끼리 계속 얼굴 맞대고 있으면 이게 휴가냐.”
그렇게 우리는 당장 내일 계곡 민박집으로 갈 짐을 챙기러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 * *
휴가 사흘째.
2박 간 정말로 먹고 마시고 계곡에서 물놀이하고 방에서 뒹굴고 술 게임이랑 카드 게임, 보드 게임 하고, 이것밖에 안 했다.
김도빈의 호언장담대로 김도빈 이모님의 손맛이 제법 좋았기에 평소 소식하던 서예현도 겉절이랑 도토리묵만으로 고봉밥을 뚝딱 비웠다.
민박에는 계속 손님들이 있었지만 우리와 동선이 달라 마주칠 일이 잘 없었기에 우리는 마음 놓고 휴가를 즐겼다.
어차피 밥도 공짜로 먹는 터라 점심시간을 피해서 먹고, 사람 없는 점심시간에 물놀이하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은둔이 되더라.
손님들은 알아볼 생각도 없는데 혼자 김칫국 들이키는, 약간 자의식 과잉 같긴 하지만 말이다. 일단 아직까지는 아무한테도 우리가 연예인인 걸 안 들켰다.
“여기 닭 진짜 맛있지 않아요? 역시 직접 잡는 토종닭은 다르긴 한 듯요. 닭 크기도 진짜 크고.”
“닭가슴살이 퍽퍽한 게 아니라 쫄깃하긴 하더라.”
“여기까지 와서 닭가슴살만 먹는 것도 참 respect해.”
“이모가 불러서 진짜 다행이다. 하마터면 일주일 동안 절밥만 먹으면서 염주 꿰고 명상하고 탑 돌고 있을 뻔.”
“해물파전 해물 양이 미쳤던데. 야, 저녁에 해물파전 또 먹자.”
“저녁은 쫌 굶어! 닭죽도 두 그릇씩 비워놓고!”
“아, 그래서 지금 열심히 수영하잖아! 수영으로 태울 수 있는 칼로리가 얼마인데! 굶으려면 혼자 굶어, 인간아!”
“얘들아, 평상에서 지금 아래 내려다본다. 소음 좀 줄이자.”
당장 직전 휴가 때 갔던 하와이보다 환경은 당연히 못 미쳤지만 만족도는 하와이 못지 않았다. 비행기를 네 번 경유할 일이 없다는 안정감도 한몫했다.
사람 없는 틈을 타 늦은 저녁에 평상에서 김도빈 이모님이 주신 수박을 먹으며 편히 드러누워 소망을 읊었다.
“와, 이대로 아무 일 없이 쭈욱 푹 쉬었다가 서울 갔으면 좋겠다.”
“오, 형 그거 무슨 일 터질 거라는 플래그. 이제 형 때문에 우리 못 쉴거예요.”
“아주 저주를 해라, 저주를 해.”
“어우, 저녁이라고 전구에 벌레 몰려드는 거 봐. 에프킬라 없어?”
“그거 뿌리는 순간 수박에 다 떨어진다. 수박 다 먹고 뿌려.”
그리고 그 저주는 정말로 이루어졌다. 이건 나 때문인가, 김도빈 때문인가. 김도빈 때문이겠지.
일은 이 민박으로 내려온 지 사흘째 오전에 터졌다.
마트에 식자재를 사기 위해 오전 일찍이 차를 타고 나가신 김도빈 이모 내외께서 계속 돌아오지 않으시다가,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김도빈한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교통사고요? 헐, 두 분 많이 안 다치셨어요? 입원해야 돼요?”
하필 이 집의 하나뿐인 자식은 해외에서 일하고 있어서 임시로 이 민박을 맡지도 못하는 상태.
“그러니까요. 지금 묵고 계시는 분들한테 갑자기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네? 내일 예약 손님도 있어요?”
김도빈이 전화로 상황 중계하는 걸 들으며 우리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역시 그게 낫겠죠?”
“식사야 뭐, 나도 있고 예현이 형도 있으니까. 시간이랑 재료 충분한 이든이도 있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도움이 된다는 확답은 못 하겠다. 그걸 미뤄 두더라도, 나도 찬성.”
“와, 윤이든 벌써부터 밑밥 깐다. 그런데 하긴, 우리가 이틀 동안 얻어먹은 게 있으니까…. 새삼 계곡 물가 대박이다.”
의견은 대충 하나로 모아진 것 같았다. 휴대폰을 귓가에 대고 어쩔 줄 몰라하는 김도빈에게 우리의 의견을 전달했다.
“도빈아, 일단 우리가 돕는다고 해. 지금 공짜로 얻어먹은 거랑 숙박비만 해도 얼마냐.”
능이백숙 9만 원에 해물파전 2만 원, 닭볶음탕 7만 원, 오리주물럭 8만 원, 도토리묵 무침 2만 원, 한 병에 5천 원이었던 술 여섯 병.
거기에 이제 닭 질린다는 김도빈의 투정에 사다 주신 삼겹살이랑 목살과 기꺼이 내주신 라면과 서예현의 한 끼 식사가 된 당근과 오이까지.
그리고 플러스로 무료 숙박.
귀신도 없는, 분위기만 약간 으슥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펜션에서 며칠 묵은 것치고 너무 과분한 대접이었다. 이렇게 대접받아 놓고 입을 싹 씻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닌 거다.
그리고 사람이 미친 듯이 몰리는 성수기도 아니고 거의 휴가 끝물이니 우리가 도울 만도 할 것 같았다.
“이모, 그러면 저희가 사흘간은 도울게요. 어차피 9월에 쉰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우리는 팔자에도 없는 민박집 임시 사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