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7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72화(47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72화
돌아온 우리가 전해 준 요리의 평가에 견하준이 침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똑같이 해도 할머니 손맛은 못 따라가는 거랑 비슷한 걸까? 능이백숙이 9만 원짜리라 이거 거절하면 매출에 피해 갈까 봐 최대한 똑같이 재현해 보려고 했는데…”
견하준의 염려도 이해가 갔다. 한 번 음식에 기대감이 꺼지고 실망하게 된다면 손님들은 다음이 없다.
식당은 한 번만 실망해도 사람들이 발길을 주저한다. 맛이 살짝 변했다는 이유로 더는 가지 않은 식당들을 내게 말해 보라 해도 이 자리에서 당장 다섯 곳 이상은 말할 수 있다.
“내가 봤을 때는 손맛도 손맛이지만 닭 손질 숙련도도 한몫했다니까.”
서예현이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냉장고 문을 열어 수박을 꺼냈다.
“이거 어떻게 수습하지? 그런데 형, 지금 수박 먹게…?”
식칼로 시원시원하게 수박을 자르는 서예현의 쌩뚱맞은 모습에, 견하준이 고민도 멈추고 물었다.
대답도 않고 쟁반을 깨끗하게 씻어 먹기 좋게 잘 썰어진 수박을 올린 서예현이 우리에게 따라오라는 듯 턱짓했다.
“가자.”
나랑 견하준은 저 인간이 무슨 영문으로 저러는지 몰라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일단 서예현의 뒤를 쫓아갔다.
서예현이 수박이 든 쟁반을 들고 도착한 곳은 식사를 막 끝낸 평상이었다. 그래도 제법 비워진 냄비와 접시에 내심 안도의 숨을 남몰래 내쉬었다.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음식 맛이 어제보다 좀 덜하죠? 저희가 그거 때문에 죄송해서 후식으로 수박 서비스 드릴게요.”
살가운 미소를 장착한 서예현이 식탁 가운데에 쟁반을 내려놓고 견하준을 제 옆쪽으로 끌어왔다.
“그래도 이 친구가 정말 열심히 요리했어요.”
견하준을 알아본 프젝맞선 애청자분들 덕분에 한차례 또 가벼운 팬미팅 및 포토타임이 이루어졌다.
“사장님 손맛이 너무 좋으셔서 저희가 레시피대로 해도 그 맛이 도저히 안 나더라고요. 다음에 한 번 더 꼭 들러 주세요. 그때는 손맛 제대로 보여 드릴게요. 당연히 제가 아니라 사장님께서요.”
서예현의 의도를 곧바로 캐치한 견하준이 능청스럽게 넉살을 떨었다. 5년 차 아이돌 팬서비스 짬바 어디 안 간다. 이런 곳에서 직업 정신을 발휘할 일이 생길 줄이야.
“아니에요. 우리가 언제 연예인이 해 주는 밥을 이렇게 먹어 보겠어. 돈 주고도 못 하는 경험 아니야.”
“충분히 맛있었어요. 우리가 한 말에 너무 마음 쓰지 마요. 원래 본인 요리에는 관대해도 돈 주고 먹는 남의 집 요리는 별 다섯 개 식당이라도 평가가 까탈스러워져.”
“이 정도면 30년 동안 집에서 요리한 나보다 더 잘하네.”
흐뭇한 미소가 얼굴에 걸린 손님들이 훈훈한 칭찬을 쏟아냈다.
“혹시 믹스 커피 드실 분들 계세요?”
진정한 식사 마무리 후식까지 놓치지 않는 서예현의 마지막 질문에 이곳저곳에서 손이 불쑥 올라왔다.
다들 음식 이야기보다 총각들 센스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니 일단은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았다.
“내년 여름에 또 와야겠어.”
커피를 타러 다시 주방으로 향하는 길에 내년 여름에 또 오려 했는데 아쉬웠다고 하시던 분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주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안도와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한 번씩 나누고 바로 믹스 커피 여덟 잔 타기에 돌입했다.
커피 배달까지 모두 마치고 나서야 우리는 긴장을 풀고 잠깐의 휴식에 돌입했다.
계산은 김도빈한테 맡겼다. 옆에 류재희가 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계산과 손님 배웅을 마친 막내 라인이 들고 온 음식 그릇 설거지를 하던 도중, 견하준이 후련한 얼굴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 고마워.”
고무장갑을 낀 손을 무의식적으로 자기 뒷머리에 가져다 대던 서예현이 축축함을 느꼈는지 후다닥 손을 거두면서 머쓱하게 대꾸했다.
“아니, 뭘. 나는 딱히 요리에 도움도 안 됐으니까 이런 걸로라도 도움 보태야지.”
“아니야, 형은 닭도 잡았잖아.”
닭은 나도 잡았다. 서예현의 과도한 겸손이 나를 아무것도 안 한 놈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하준이, 네 요리라서 이렇게라도 수습 가능했지. 막내나 윤이든 요리 내갔다고 생각해 봐. 이건 진짜 수습 불가야.”
반박할 수가 없다는 게 더 열 받았다.
쓸데없이 나만 빼고 훈훈한 분위기에서 설거지까지 모두 마친 후, 새로 받은 단체 손님들이 정오가 넘어도 계곡에서 놀기에 바빠 점심 식사를 시킬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제야 다 같이 방에서 늘어졌다.
민박집 임시 사장이 된 지 하루도 아니고 고작 두 시간 반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진이 다 빠졌다.
바닥에 대(大) 자로 드러누워 있던 견하준이 대뜸 선언했다.
“그냥 닭 요리 뺄래.”
일방적인 통보에도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닭들이 불쌍해서라도 찬성이요. 저 당분간 닭 못 먹을 거 같아요. 아, 오늘 잡은 닭이 꿈에 나올 것 같아.”
마른세수한 류재희가 한탄 조로 중얼거렸다. 어지간히 충격이었나 보다. 솔직히 나도 힘들었다.
“그러면 저희 이제 오리 주물럭이랑 해물파전 주문만 받아요?”
김도빈의 질문에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머릿속을 스치고 간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내뱉었다.
“아니. 아예 우리의 주력 메뉴를 밀고 나가서 기존 메뉴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전략으로 가자.”
“뭔 소리예요?”
이해하지 못한 멤버들한테 아주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이게 이렇게 맛있으면 맛있다고 소문 난 이 집 백숙이랑 닭볶음탕은 얼마나 더 맛있을까. 이런 식으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음 방문을 유도하는 거지.”
“너는 헛소리를 참 설득력 있게 하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아. 그래도 닭 요리 빼는 건 나도 찬성이야. 두 번은 못 하겠더라.”
서예현이 진절머리 치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어쨌건, 다들 내 의견을 따르는 것에 동의했다. 제법 그럴싸하게 들렸나 보다.
“주력 메뉴는 좋은데 지금 단체 손님 수가 많으니까 그거 고려해서 메뉴 짜야 해. 백숙이나 닭볶음탕처럼 한 테이블당 한 냄비씩 나가도 괜찮은 걸로. 아, 그리고 최대한 주방에 있는 식자재를 활용할 수 있게끔 고려해서도.”
“해물파전은 그대로 가져가죠?”
“계곡 물놀이한 이후니까 국물 요리나 뜨끈한 요리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오, 예현이 형 아이디어도 괜찮다. 그리고 재료 없으면 내 차 끌고 후딱 마트 다녀오면 돼. 일단 정해 봐.”
어차피 8월도 다 끝나가고 있으므로 벽에 걸린 달력 8월을 뜯어 뒷면에 메뉴명과 가격을 적어 임시 메뉴판을 만들었다. 메뉴 가격은 김도빈네 이모님 컨펌을 받아 책정했다.
평상 기둥에 붙어 있는 메뉴판 위에 달력 종이로 만든 임시 메뉴판을 덧붙였다. 두어 발짝 떨어져 메뉴를 다시 점검하다가 픽 웃었다.
“메뉴판만 보면 무슨 민박 예능 촬영하는 줄 알겠다.”
“나름 특색 있지 않아요?”
휴대폰 카메라로 임시 메뉴판 사진을 찍으며 류재희가 키득거렸다.
다시 봐도 기가 막힌 선정 메뉴를 보며 감탄하고 있자, 우리 뒤로 쓱 다가와서 기웃거리며 메뉴판을 스캔하던 손님이 말을 붙여왔다.
“여기 민박에서 일하시는 분들 맞죠? 혹시 닭백숙이랑 닭볶음탕은 안 돼요?”
“네, 거기 메뉴판에 있는 메뉴만 주문 가능하세요. 혹시 주문하실 거면 여기에 수량 좀 적어주실래요.”
서예현이 미리 만들어놓은 주문서를 내밀자 당황한 얼굴로 얼떨결에 받아든 손님이 “잠시만요”라는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
“저희 두 시에 식사할 거거든요? 공깃밥은 이따가 식사할 때 시켜도 되죠?”
잠시 후에 다시 돌아온 손님이 주문서를 내밀었다.
“혹시 무슨 예능 촬영해요? 여기 닭백숙이랑 닭볶음탕 맛있다고 해서 왔는데 갑자기 메뉴가 이상, 아니 독특하게 바뀌었네요?”
은근하게 덧붙이는 질문에 고개를 젓고 진실을 말해 주었다.
“방송은 아니고, 저희가 지금 사흘간 임시직이라서 닭요리를 못 팔아요. 다시 오시면 닭백숙이랑 닭볶음탕 드실 수 있을 거예요.”
유일하게 그나마 닭 요리가 가능한 견하준이 못 하겠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으니 없는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아, 그러면 연예인 아니죠? 티비 나오는 분이랑 닮아서 방송 촬영 온 줄 알았네.”
나랑 류재희는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긍정도 안 했지만 부정도 안 했으므로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마트에서 현재 주방에 없는 재료만 후딱 사서 다시 돌아와 요리를 시작했다. 설거지할 그릇이 얼마나 나올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감바스랑 갈치조림 넷 먼저 나가!”
“에그 인 헬 하나 나갔지? 여기 또 하나 가져가.”
“형들, 즉석 만두피 떡볶이 언제 오냐는데요?”
“회오리오믈렛 김치볶음밥 가져가라!”
“해물파전 한 테이블 부족해요! 그리고 2번 테이블 버너 부탄가스 다 떨어졌나 봐요. 버너 불이 안 켜져요.”
“부탄가스 저기 있어. 얼른 가져가서 갈아.”
서른 명에 가까운 단체 손님을 받는 주방은 전쟁통이나 다름없었다. 류재희와 김도빈이 서빙으로 빠지고, 사실상 견하준과 서예현만 30인분에 가까운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요리에 큰 도움을 보탠다고 하기에는 양심이 좀 찔렸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견하준이 후라이팬에 재료 싹 얹어 준 김치볶음밥 볶기와 회오리오믈렛 만들어서 그 위에 얹기, 견하준이 만든 해물파전 반죽 섞어서 후라이팬에 부어 놓기, 만두피 말기 정도였으니까.
이번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요리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둘러대야겠다.
마지막 음식 서빙까지 마친 막내 라인이 지친 얼굴을 하고선 터덜터덜 주방으로 돌아왔다.
“음식 뭐래?”
“메뉴가 와인바랑 인별 뜨는 식당이랑 동네 노포 합쳐진 것 같대요.”
“맛은?”
“맛있다는데요?”
주먹 불끈 쥐고 기뻐하다가 갑자기 몰려오는 회의감에 슬그머니 주먹을 내렸다.
우리는 아이돌인데 왜 음식 맛 평가에 일희일비하고 있는 거지.
“너 알아보는 사람들은 없디?”
“어떤 분이 트트블 막내랑 닮았다고 하니까 한 꼬마 친구가 저 오빠는 안 뽀샤시해서 아니라고… 심지어 그 친구가 트트블 막내, 그러니까 저를 좋아한대요.”
꼬마 친구가 못 알아본다 했으니 이건 자체 뽀샤시 효과를 익히지 못한 김도빈의 잘못이었다.
“메이크업과 조명과 후보정의 힘이란.”
“보통은 연예인이 카메라 없이 민박집에서 이 꼴로 서빙하고 있을 거란 생각은 잘 못 하죠.”
설거지를 끝낸 우리는 평상 하나에 늘어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곡에서부터 들려왔다. 평상 난간에 기대어 앉아 있던 류재희가 계곡 상류를 가리키며 우리를 돌아보았다.
“형들, 꼬맹이들이 상류로 올라가는데요.”
“헉, 그러고 보니까 이번 단체 손님들에게 계곡 상류 가지 말라는 안내를 까먹었다.”
“얼른 수습해라, 도빈아.”
사고라도 일어나면 큰일이니 계곡 상류로 올라가는 꼬마들을 향해 김도빈이 급하게 외쳤다.
“얘들아, 거기 위쪽으로 올라가면 안 돼! 그쪽으로 올라갈수록 깊고 물살 거세서 큰일나!”
“우와, 여기가 더 깊대!”
그 말에 우르르 더 높은 상류로 향하는 꼬마들을 가리키며 김도빈이 일러바치듯 말했다.
“이든이 형, 애들이 제 말은 그냥 무시하는데요? 아무래도 형이 나서야 할 것 같아요.”
“알았다. 얘들아, 그쪽 가지 말고 내려와라!”
김도빈의 외침과 마찬가지로 꼬마들은 들어먹은 척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로만 막은 결과는 똑같았으므로 사고 방지를 위해 결국 직접 계곡 쪽으로 내려갔다.
에휴, 주방일에 메뉴 컨설턴트에 하다 하다 이제 안전 요원까지 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