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7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73화(47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73화
“짜식들아,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먹는 척이라도 해라. 내가 기어코 여기까지 내려와야 되겠냐? 빨리 내려가, 빨리.”
딱 봐도 바닥이 깊어 시커메 보일 정도의 계곡물에 겁도 뛰어들 준비를 하는 꼬마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며 손짓으로 제지했다.
빨리 저쪽으로 내려가라고 얕은 하류를 가리키자 비치볼을 잡고 있던 꼬마 하나가 불퉁하게 내 말을 맞받아쳤다.
“저긴 너무 얕은데요.”
“얘들아, 얕은 곳은 재미가 없지?”
짐짓 눈높이를 맞춘 친절한 말투로 묻자 꼬마들이 이제야 좀 말이 통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꼬맹이들한테 냉정한 현실을 말해 주었다.
“얕은 곳은 재미가 없지만 깊은 곳은 너희들 목숨이 없어질 수가 있단다. 재미 찾다가 골로 갈래?”
평상에 있던 부모들도 이 사태를 발견하고 당장 하류로 내려오라고 뒤늦게 거들자, 입이 댓 발 나온 꼬마들이 터덜터덜 하류로 내려갔다.
하지만 계속 계곡 상류를 힐긋거리는 걸 보아하니 순순히 포기하진 않은 듯 싶어서 결국은 상류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이따가 방 청소랑 수건 빨래도 해야 하는데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냐.
근데 이게 휴가가 맞나…?
그 사이, 처음에는 하류에서 놀면서도 내 눈치를 보며 힐끔거리기만 하던 꼬맹이들은 곧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사라졌는지 슬금슬금 내게로 다가왔다.
“아, 나 이 형 어디에서 본 것 같은데.”
오, 공중파 주말 예능에 나오는 김도빈도 못 알아봤는데 나를 알아본다고? 이야, 내가 유명해지긴 했나 보다.
한껏 높아진 내 콧대를 내리누른 건 꼬마의 다음 질문이었다.
“형 혹시 파프리카 tv 해요?”
“아니.”
김샌 얼굴로 대꾸했다. 내가 나오는 TV는 그 TV가 아니다, 인마.
“그럼 형 너튜브 해요?”
“헐, 맞아. 나도 파프리카 아니고 너튜브에서 이 형 본 거 같아.”
“어어, 나 나오는 내 채널은 있어.”
내가 나오는 레브 공식 채널이 있었으므로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가 곧 레브고 레브가 곧 나 아니겠는가.
내 대답에 나를 멋대로 게임 너튜버로 단정짓고 무슨 게임 하냐고, 롤 티어 몇이냐고 귀찮게 굴던 꼬맹이들은 내가 학창 시절에 하던 게임 몇 개를 읊어 주자 틀딱 게임이라 칭하며 김샌 얼굴로 떠났다.
역시 애들을 괜히 순수 악이라고 칭하는 게 아니었다.
너희들이랑 내 나이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난다고 틀딱 게임이냐. 제일 큰 놈이 초등학교 4~5학년 정도는 되어 보이구먼.
“야야, 너희들 다 보인다! 빙 돌아가면 못 잡을 줄 알았냐?”
“아, 쪼잔하게. 그냥 봐주면 안 돼요? 위쪽 계곡 따로 돈 더 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고 난다고! 이것들이 살려 줘도 난리야!”
여자애들은 얌전하게 얕은 물에서만 놀고 있는데 대체 남자 놈들은 왜 저러는 거야?
이게 몇 번 반복되자 이 꼬맹이들은 슬슬 나를 안 무서워하는 것을 떠나 만만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살면서 망할 우리 멤버들을 제외하곤 만만한 취급을 받은 적이 거의 전무했기에 처음 겪는 지나치게 신선한 경험에 기가 다 막혔다.
말 안 듣는 초등학생을 막으려면 성인보단 한두 살 위의 형이나 중학생들을 데려와야 먹힌다는 게 사실인가 보다.
“형, 컵라면 한 입 먹을래요?”
“이거 먹고 상류 올라가게 해 달라 하려고 그러지. 어딜 은근슬쩍 컵라면 한 입으로 로비를 해?”
“와, 어떻게 알았지? 이 형 눈치 존나 빨라!”
“형, 초코바 하나 먹을래요? 이거는 진짜 뇌물 아님.”
“어어, 고맙다. 그래도 위쪽 올라가는 건 안 된다.”
“형, 영양갱 줄까요? 저는 영양갱 싫어해요.”
“어어, 나는 좋아해. 고맙다.”
꼬마들은 이제 내게 다가와서 자기들 간식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만만한 취급의 몇 안 되는 순기능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계곡에 있던 이들이 모두 물에서 나왔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꼬맹이들도 엄마의 부름에 평상이 있는 위쪽으로 올라가자 더 이상 계곡 상류를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어진 나도 몸을 일으켜 계곡에서 나와 빨래 조에 합류했다.
양옆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그제야 우리가 점심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 상기됐다.
나야 꼬맹이들이 가져다 바친 초코바와 영양갱이라도 먹었지, 평상에서 쉬고 있었던 나머지 멤버들은 뭘 먹을 생각도 못 하고 널브러져만 있던데.
“배고파서 진이 다 빠진다…”
“그러고 보니까 저희 정신이 없어서 점심도 못 먹었네요. 저녁에 중국집 시킬까요? 치킨은 아직 낮의 충격이 가시질 않아서 좀…”
류재희가 인터넷 지도에 뜬 가장 가까운 중국집을 보여주며 내게 제안했다. 중국집은 그릇도 회수해 가니 쓰레기가 많이 생길 일도, 우리가 설거지를 할 일도 없었다.
역시 레브의 두뇌다운 아이디어였다.
“이건 솔직히 예현이 형도 찬성할 듯. 만약 살찐다고 반대하면 예현이 형한테 설거지 몰빵 가자.”
“그런데 중국집이라 충분히 반대할 가능성이… 치킨까진 봐줘도 짜장면은 안되는 게 예현이 형 철칙이잖아요. 아니면, 고기 사 와서 바비큐 구워 먹는 건 어때요?”
서예현을 잘 아는 김도빈이 새로운 대안을 내놓았지만 중국집 배달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것도 추가 노동을 필요로 하긴 하지. 숯 버리고 바비큐 그릴 닦아야 하잖아.”
“아.”
서예현이 칼로리 집착증 말기 환자이긴 하지만 네 명이 설거지 몰빵을 미끼로 몰아붙이면 이사 때처럼 허락해 줄지도?
* * *
우리한테는 퍽 다행히도 단체 손님들은 저녁 식사를 식당에서 주문하는 대신 바비큐 파티를 택했다.
점심에 겪었던 설거지 지옥을 다시 겪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매출 걱정을 아주 쉽게 이기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자영업은 글러 먹은 것 같다. 평생 음악만 하고 살아야지.
바비큐 그릴을 설치하는 건 이전에도 우리끼리 바비큐 파티를 하며 몇 번 해 봤기에 어렵지 않았다.
“민주야, 저녁 먹었어? 그러고 보니까 여기 민박에 네 방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포스터랑 닮은 오빠들도 있더라.”
-아, 엄마는 키만 크면 다 레브 닮았다 하잖아!
“얘는, 엄마가 언제 그랬어? 아니, 그런데 진짜 닮았다니까?”
-그렇게 말해도 안 부러워. 안 아쉬워. 나는 집에 있는 게 좋아. 엄마가 닮았다고 한 거 중에 한 번도 진짜 닮은 걸 본 적이 없어.
설치된 바비큐 그릴을 평상 앞으로 가져와 토치로 숯불에 불을 붙이다가 의도치 않게 모녀의 통화 내용을 들어버렸다.
따라 오지 않은 데이드림 소녀가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니 최대한 저 손님 따님분의 방 벽에 붙은 포스터와 동일 인물임을 들키면 안 된다.
바비큐 그릴 설치를 마치고 우리도 평상에 앉아 중국집 배달을 시켰다.
서예현도 어지간히 지쳤는지 순순히 찬성하더라. 탕수육을 주문에 끼워 넣어도 아무 말을 안 하더라니까?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단체 손님들과 멀찍이 떨어진 평상이었지만 대화 소리는 어렴풋이 들렸다. 듣자 하니 동네 친한 가족들끼리 모여서 단체로 온 모양이었다.
배달은 금방 왔다. 얼마나 배고팠는지 다들 대화 한 마디 없이 묵묵하게 자기 그릇과 탕수육 그릇을 넘나들며 젓가락질하기에 바빴다.
기부받은 간식으로 대충 배를 채웠다고 생각했는데 간짜장 한 입을 먹으니까 허기지긴 했다는 게 느껴지더라.
그렇게 전투적으로 중국집 요리를 먹고 있는데 계곡 상류로 가겠다고 나를 그렇게 귀찮게 했던 꼬마 하나가 우리 평상에 슬그머니 다가왔다.
“왜, 군만두 하나 줄까?”
어차피 서예현은 안 먹을 게 뻔하니 서예현의 몫의 군만두를 쓱 들어 올리며 묻자 냉큼 받아먹은 꼬마가 내 얼굴이 박힌 DTB 4 너튜브 영상 썸네일을 보여 주며 물었다.
“형 DTB 4 나왔어요?”
파프리카 tv와 게임 너튜버에서 헤매던 녀석들이 드디어 정답을 맞혔다. 고개를 까딱하자 몸을 돌린 꼬마가 신나서 외쳤다.
“야, 맞대! 궁예 맞대!”
킹스맨도 있고 산악회도 있고 복면도 있는데 왜 하필 궁예냐고. 그래, 그래도 어른들 있는 데에서 나를 가슴골이나 크롭티로 호칭하지 않는 게 어디냐.
“유피랑 무대 내려와서 현피 뜬 거 찐이에요?”
“아니야, 현피는 지테랬어!”
“프리스타일이 진짜 가사 안 쓰고 막 하는 거예요?”
“아니죠? 미리 다 써 놨죠? 그거 아니면 지금 프리스타일 랩해서 증명 좀요.”
“어른들이 이따 장기 자랑 시킬 거라는데 제 대타로 랩 한 번만 해 주면 안 돼요?”
“옷은 왜 그렇게 입고 나온 거예요? 형 그렇게 입고 티비 나오는 거 안 쪽팔렸어요?”
우르르 몰려온 꼬맹이들에 당황한 것도 잠시, 정신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멤버들은 웃느라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질문에서 다시 한번 느끼지만 아이들은 정말로 순수 악이었다.
“야, 15금 방송을 니들이 어떻게 알고 봐. 방송 심의 등급 딱딱 안 지켜?”
가슴골이랑 복근 노출하는 걸 초등학생 애들이 봐도 되는 거야? 이제까지 딱히 별생각 없었는데 얘들이 봤다니까 갑자기 방송 심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싶어졌다.
“에이, 15금은 다 보죠.”
“어린 나이에 벌써 그런 거 보지 마라. 특히 힙합은 머리 여물고 들어. 너희들이 힙합에 허구한 날 추임새로 나오는 마더퍼어쩌고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아냐?”
뭉개고 뭉갠 게 효과가 있었는지 F워드를 입에 올렸는데도 다행히 초심도가 안 깎였다.
이제 이 정도 회피 스킬이야 껌이다, 이 말이야.
[⛭시스템 업데이트 중…]아, 좀.
“안 좋은 말이에요?”
“패드립이야, 인마. 엄마 앞에서 부르면 너희들이 집 쫓겨날 수도 있는 수준이야.”
“그러면 형은 이거 다 알면서 왜 힙합해요?”
“내가 너희들처럼 영단어 뜻도 모르는 초등학생이냐? 그리고 나는 그런 단어 내 가사에 안 쓴다.”
순수 악 초등학생들과 디스 방어전을 하고 있자 어머님 한 분이 애들을 데리러 오셨다.
“형들 밥 먹는 데 방해하지 말고 얼른 와. 고기 먹고 형들도 밥 다 먹으면 놀아.”
“엄마, 이 형이 그 형이야!”
꼬마 하나가 나를 가리키며 당당하게 하는 말에 어머님이 당황하며 물었다.
“아는 형이야?”
“아니, 내가 맨날 명절 때 틀던 효륜디스랩 부른 사람! 엄마가 맨날 듣기 싫다고 끄라고 했던 그거 있잖아.”
효륜디스랩이 왜 여기서 나와…?
“아아, 그거?”
어머님의 대꾸는 누가 들어도 벼르고 있던 말투였다.
효륜디스랩을 초딩들이 따라 부른다고 할 때 걔들도 얼마나 쌓인 게 많았으면 그러겠냐고 낄낄거리던 게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어머님의 따가워진 눈길에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음, 레브인 것만 안 들켰으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