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7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77화(477/50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77화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뜩 깨진 상태창은 섬뜩함까지 불러일으켰다.
무슨 시스템도 버그가 생기고 난리냐.
“우리 집은 엄마 친한 이모님 통해서 자주 사 먹었거든. 엄마가 우리 숙소에도 몇 번 챙겨 준다고 했는데 서나현이 다 먹어서 번번이 무산되긴 했지만. 나는 그냥 있으면 먹는 정도인데 걔는 진짜 오디에 환장한 것 같아.”
와중에 서예현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무시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디버깅을 해 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31)’이라는 글자가 계속 눈에 걸렸다.
저런 식으로 뒤에 괄호 안 숫자를 붙이고 다섯 글자이기까지 하는 것을 나는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기억의 파편(28)’, 바로 이 형태로.
[이상을 감지했습니다.]드디어 이상을 감지하고 점검에 들어간 준비를 마친 듯한 푸른 상태창.
그리고 점점 짙은 붉은색으로 변하며 빨리 수락하라는 듯 눈앞에서 더욱 빨라진 속도로 미친 듯이 깜빡거리는 버그 상태창.
내가 죽었다던 나이의 기억을 도저히 넘길 수가 없어서, 정상적인 접근이 아닌 버그임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손을 뻗었다.
“형, 나 딱 10분, 아니 5분만 잔다. 이따 깨워.”
“뭐? 야, 윤이든! 자려면 들어가서 자! 나 혼자 너 어떻게 옮겨! 야, 이 근육돼지 자식아! 양심이 있어라!”
씩씩거리는 서예현을 무시하고 평상 바닥에 퍼질러져 누워 눈을 감았다.
내가 왜 죽는지는 알아야지 레브가 10년, 20년 오래오래 할 거 아니냐. 이게 다 우리 그룹을 위한 거니까 이해해라, 서예현.
[‘�ㅇㅓㄱ� ㅍㅏ�(31)’ㅇㅡㄹ ㅇㅕㄹㄹㅏㅁ���.]속이 뒤집히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마구 흔들리다가 암전되더니, 시커멓던 시야에 빛이 퍼져나가며 주변 풍경이 변해 갔다.
* * *
암막 커튼으로 가린 창문 덕분에 방은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모를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짜증스러운 중얼거림과 함께 베개에 박고 있던 머리를 떼고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아, 씨… 겨우 잠들었는데.”
며칠 전에 또 하나 새로이 박은 타투가 욱신거려 겨우 든 선잠에서 깬 터였다. 통증도 통증이었지만 휴대폰에서 연속으로 울린 짧은 진동도 한몫했다.
찌푸린 눈으로 팔뚝을 보자 타투 주변 부위가 염증이 올랐는지 붉게 부어 있었다.
음주와 흡연 때문인지, 헬스장에 가서 조지고 온 웨이트 때문인지, 아니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냅다 튼 뜨거운 물 샤워 때문인지.
멍한 머리로 원인이 무엇일지 더듬어보다가 이유를 찾아내길 포기했다.
어차피 애초에 아프자고 새긴 거 아닌가.
“어떤 씹새끼가 이 밤중에 문자를 쳐 보내고 지… 젠장, 10시라고?”
[010-21XX-98XX- 시간 될 때 얼굴 한번 보자] 오전 10:30 [누구세요?] 오후 3:41 [010-21XX-98XX- 나 서예현] 오후 3:49 [좆까 씨발 네가 서예현이면 나는 ㅅㅂ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오후 3:50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 메시지에 신경질적으로 답장을 보내고 휴대폰을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오우, 요즘 스팸은 연예인도 사칭하네.”
저 인간이랑 연락 따윈 안 하고 살아온 기간이 몇 년인데. 탈퇴 전, 아직 레브였던 시절부터 연락을 끊고 살았는데 지금 와서 연락을 할 리가 있겠냐고. 당연히 스팸이지.
습관처럼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와 함께 냉소를 내뱉었다.
그렇게 신종 스팸 수법으로 넘기고 며칠 후.
류재희한테 전화가 왔다. 아주 뜻밖의 내용으로.
-이든이 형, 예현이 형이 형 한 번만 만나고 싶대요.
“왜 그걸 너한테 전달해? 만나고 싶으면 직접 말하라고 전해.”
-형한테 연락했는데 스팸이라고 오해받고 씹혔다던데요.
그게 사칭이 아니라 진짜였다니.
“왜, 꼴에 노래라도 내고 싶대? 그런 거면 다른 사람 찾아보라 그래라.”
-그냥 형이랑 대화 좀 하고 싶다고…
“이제 와서?”
-두 분의 대화 단절이 솔직히 예현이 형의 일방적인 잘못은 아니죠.
단호한 류재희의 말에 할 말이 없어 머리를 마구 헤집기만 했다.
날짜와 시간은 30줄에도 여전히 톱스타 자리를 차지한 서예현에게 맞췄다. 서예현이 약속 장소로 제시한 곳은 의외로 내 집이었다.
내 집으로 약속 장소를 잡으면 약속 펑크는 내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건가.
하지만 막상 약속 당일, 티비 화면에 나오는 반질반질한 서예현의 면상을 마주하자 갑자기 얼굴이 보기 싫어져 약속 시간 1시간 전에 작업실에 나가 그곳에 세 시간 동안 틀어박혀 있었다.
서예현과 류재희한테 끊임없이 전화가 왔지만 모두 무시했다.
이쯤이면 포기하고 돌아갔겠지, 싶어 집으로 가자마자 내 집 출입문 앞에 기대어 앉아 있는 인영을 바로 발견했다.
“씨발, 뭐야.”
“성격 좆같은 건 여전하다, 너.”
옷을 탁탁 털며 몸을 일으킨 서예현이 여상하게 맞받아쳤다. 몇 년 만에 서예현과 가장 길게 나눈 대화였다.
“시비 걸려고 온 거면 꺼져.”
“세 시간 동안 기다린 내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못 꺼지겠는걸.”
“공동 현관 비밀번호는 대체 어떻게… 류재희가 알려 줬겠군. 류재희가 집 비밀번호는 안 알려 주디?”
“알려 주긴 했는데 집 주인 허락도 안 받고 들어가긴 좀 그렇잖아? 네가 나 주거 침입으로 신고하면 내 이미지는 어떡하라고.”
어깨를 으쓱하며 뻔뻔하게 대꾸한 서예현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내게 쇼핑백을 내밀었다.
“뭐야?”
“우리 어머니가 멤버들한테 나눠 주라고 보낸 거.”
내가 이제는 레브 멤버가 아니란 걸 서예현도 알고 나도 알았지만 둘 중 아무도 그 사실을 부러 지적하진 않았다.
퍽 의외였다. 나도, 서예현도.
대충 식탁에 그 쇼핑백을 올려놓은 내가 냉장고에서 수입맥주캔 묶음을 꺼내 오자 서예현이 눈썹을 치켰다.
“빈속에 술 먹긴 그런데. 방울토마토 같은 거라도 없어?”
존나 까다롭네. 대꾸도 하기 싫어서 예전처럼 서예현의 말을 무시하며 포장을 뜯어 맥주 한 캔을 까자 한숨을 푹푹 내쉰 서예현이 몸을 일으켰다.
집주인 허락도 없이 냉장고를 멋대로 열어 본 서예현이 경악했다.
“미친놈. 냉장고에 술만 채워 놨네. 집 꼬라지가 이렇게 개판일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뭐 제대로 먹고 살긴 하냐?”
대화가 단절된 채로 살아온 시간이 마치 없던 것처럼 서예현은 자연스럽게 내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그래 아주 오래 전, 우리가 으로 역주행하기 전, 그나마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고 살았던 그 시절처럼.
다만 서예현은 몰라도 나는 그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해 줄 기력도, 마음도 없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제가 가져온 쇼핑백을 낚아챈 서예현이 그 안에 든 과일을 씻어서 가져왔다.
“이건 뭔데.”
“오디잖아. 너 오디 한 번도 안 먹어 봤어?”
한 번도 안 먹어 보긴 했지.
오디에 맺힌 물기를 가볍게 털어내고 입에 넣었다. 진한 단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그게 서예현이 쥐어짜 낸 최대한의 대화 주제였던 듯, 어색한 침묵이 길게 감돌았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이번에는 내 쪽이었다. 궁금해서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은 업계 선배 자살시킨 놈이랑 엮여서 뭐 좋을 게 있다고 집까지 찾아와?”
삐딱하게 묻자 서예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가, 특히 음악에 있어선 없는 말을 지어 낼 놈이 아니라고 믿으니까.”
다시 그릇으로 뻗어지던 손이 그 말에 멈칫했다. 그러고도 남을 놈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줄 알았는데.
“케이제이한테 곡을 뺏기다가 자살한 연습생은 진짜 있었을 거고, 그걸 터트린 네가 공개해야 할 결정적인 증거를 잃어버렸건, 유일한 증인이 등을 돌렸건, 둘 중 하나겠지.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
더는 듣기 싫어 서예현의 말을 자르며 빈정거렸다.
“탐정 놀이 하러 왔어? 그게 아니면 용건이나 말해.”
지금 와서 서예현과 추억팔이를 할 생각도, 서예현을 붙잡고 내 억울함을 토로할 생각도 없었다.
속눈썹을 내리깐 채로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던 서예현이 손안의 맥주캔을 만지작거리며 또 오랫동안 침묵을 고수했다.
용건 없으면 꺼지라고 말하기 1초 직전에야 드디어 서예현이 입을 열었다.
“10주년 콘서트에서 너를 본 것 같았거든. 내 착각일 수도 있는데 그게 몇 달간이나 생각나서, 정말로 혹시나 해서…”
“겨우 그거 물어보러 온 거냐? 류재희가 티켓 줘서 갔다. 됐지, 이제?”
용건 끝났으면 꺼지라고 하려다가 아직 그릇에 오디가 남았기에 쫓아내지도 못했다.
“왜 왔어?”
“방금 말했잖아. 류재희가 티켓 줘서 갔다니까? 벌써 치매 왔냐?”
내 빈정거림에, 들고 있던 맥주캔을 벌컥벌컥 들이켜 원샷한 서예현이 맥주캔 하나를 더 까며 중얼거렸다.
“나는 네가 우리 그룹을 지긋지긋하게 여겼다고 생각했어.”
“맞게 봤네. 존나게 지긋지긋했어.”
멤버 절반과의 사이는 개판이고, 내 곡은 한 번도 멤버들의 목소리로 불리지도 못하고, 제일 능력치가 딸리던 서예현만 외모로 주목받으며 서예현 그룹, 서예현과 아이들이라는 소리나 듣고, 내 음악을 다른 루트로라도 세상에 내보였더니 우리 그룹에나 신경 쓰라고 팬싸 때 팬한테 면전에서 꼽이나 듣고.
이런데 어떻게 지긋지긋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왜 우리 10주년 콘서트 무대를 그렇게 허탈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건데?”
“…….”
“제 발로 나간 건 넌데 왜 네가 마치 쫓겨났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어?”
“…….”
“왜 방금도 오디 받고도 너는 탈퇴했으니까 멤버가 아니라고 부정도 안 해.”
“…….”
“뒤도 안 돌아보고 탈퇴했으면 후련한 얼굴이라도 하든가. 보란 듯이 잘 살든가. 왜 그딴 얼굴로 몇 달 내내 사람을 신경 쓰이게 만드냐고.”
침묵을 고수하다가 서예현이 말을 다 쏟아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왜, 레브에 미련 있다는 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찾아온 거냐? 그런데 미련 있으면 어쩔 건데. 어차피 못 돌아가잖아.”
레브라는 그룹으로도.
그리고 그 시절로도.
어느 하나도 불가능한데 미련이 남았다고 서예현한테 토로해 봤자 달라지는 게 있나.
실소 섞인 내 대답에 쓰게 웃은 서예현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재희가 하도 너 걱정하기도 해서 대체 어떤 꼴로 살고 있나 걱… 궁금하기도 했고. 너 그렇게 살다가 진짜로 제명에 못 살 것 같다던데. 네 타투랑 다크서클 보니까 재희가 호들갑 떤 건 아니라는 걸 느낀다.”
“이렇게 살다 뒈질 때 되면 뒈지지, 자살은 안 해.”
냉소하며 남은 맥주를 입에 한 번에 털어 넣고 다시 맥주 한 캔을 더 까며 말을 이었다.
“내가 자살로 뒈지면 이젠 죄책감에 자살했다는 개소리나 지껄이면서 거 보라고 물어뜯기에 바쁠 텐데, 내가 누구 좋으라고 스스로 죽어 줘?”
“이렇게 살다가 젊은 나이에 골로 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살이야.”
“요절이겠지.”
다시 대화가 끊기며 침묵이 찾아왔다. 우리 사이에는 이 침묵이 더 익숙했다.
제법 길게 이어진 침묵을 먼저 끊은 건 조심스럽게 꺼낸 서예현의 말이었다.
“참, 하준이 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