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48화(48/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8화
“안녕하세요.”
미소 지은 윤이든이 인사를 건넸다.
머리 위에는 어떤 고마우신 분이 씌우셨는지 이미 푸른색 계열 꽃이 예쁘게 얽힌 화관이 얹어져 있었다.
서예현으로 입덕한 그녀의 최애를 단번에 바꾸게 만들었던 특유의 시원시원한 미소를 눈앞에서 마주하자, 하려던 말이 머릿속에서 일시적으로 싹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퍼득 정신을 차린 김 모 양은 일단 네 멤버의 사인이 그려진 앨범과 사인 하나 없이 깨끗한 앨범을 내밀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해 준 제 이름과 함께 적히는 사인만 멍하니 보고 있자 윤이든이 먼저 대화의 시작을 열었다.
“오늘 누구 보러 오셨어요?”
“너…… 도 보러 왔고 우리 레브 다 보러 왔지!”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다가 정신줄을 붙들은 김 모 양이 겨우 대답을 넘겼다.
<오늘 팬싸 때문에 또 얼굴 보고 싶으면 어떡해?>
사지선다형이었던 다른 멤버들의 포스트잇과 달리 질문 하나가 써진 포스트잇을 내밀자 윤이든이 펜을 들어 쓱쓱 글자를 적어 나갔다.
‘다음번에 또 만나요’ 정도의 답변을 기대했던 김 모 양의 눈에 반듯하게 적힌 영어 문장이 들어왔다.
우리 애가 내 꿈 꾸래…….
“오늘부터 루시드 드림 연습할게, 이든아.”
“그거 자각몽 맞죠? 저도 그거 인터넷에서 보고 따라 해 본 적 있는데 한 번도 성공을 못 해 봐서…… 혹시 누나는 성공해 보신 적 있으세요?”
“나도 없긴 한데 네 꿈 꾸려면 연습해야지.”
“아, 그래요? 파이팅.”
포스트잇 밑에 ‘루시드 드림 파이팅’까지 끄적여 준 윤이든을 향해 그녀는 준비해 왔던 회심의 멘트를 내뱉었다.
“참, 이든아, 그거 알아? 오른쪽 눈 감고 왼쪽 볼 찌를 수 있으면 상위 1% 천재래.”
“아, 그래요?”
오른쪽 눈, 왼쪽 볼…… 입 속으로 중얼거린 윤이든이 손을 제 볼 깨로 들어 올렸다.
다행히도 아직 눈치를 못 챈 모양이었다.
오른쪽 눈을 살짝 감고 손가락으로 왼쪽 볼을 찌른 그 상태로 윤이든이 웃으며 말했다.
“어라, 쉬운데. 아무래도 저 상위 1% 천…… 재…….”
한 박자 늦게 깨달은 윤이든의 말이 점점 흐려졌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윙크한 채로 볼 찌르기 애교를 선사한 윤이든이 귀 끝과 볼이 확 붉어진 채로 뻣뻣하게 고장 나는 걸 지켜보던 김 모 양은, 덕질 출구가 실시간으로 막히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이런 모습을 눈앞에서 봤는데 어떻게 탈덕을 하겠니…….
마침 견하준 차례에서 지체가 되어 텀이 생긴 터라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류재희가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아 댔다.
마지막으로 하이파이브를 요청하자 윤이든이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너 손 진짜 크다…….”
또다시 무의식의 상태에 빠져 중얼거리자 윤이든이 아쉬움이 담긴 탄성을 내뱉었다.
“어, 한발 늦었다. 그거 제가 치려 했던 멘트 반전형인데.”
“헉, 그럼 내 말 취소할 테니까 멘트 해 줘.”
짝, 가볍게 손바닥을 맞댄 윤이든이 씩 웃으며 말했다.
“누나 손 진짜 작네요.”
이제 이동하실게요!
스텝의 외침에 김 모 양은 미련 넘치는 몸짓으로 미적미적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최애의 얼굴을 눈에 한 번 담고 작별 인사를 하려던 그 순간.
“그러면 꿈속에서 또 봐요, 누나.”
방심한 순간에 훅 치고 들어온 윤이든의 인사에 그녀는 입만 뻐끔거리다.
스텝의 재촉에 하려던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겨우 자리를 찾아와 앉으니 화관을 벗고 고양이 귀 머리띠를 받아 쓰는 윤이든의 모습이 보였다.
‘저거 쓰고 애교 보여 줬으면 더 귀여웠을 텐데……!’
하필 저 팬보다 빨랐던 제 순서를 원망하며 김 모 양은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눈앞에서 담지 못했으면 사진에라도 담아 가야 했다.
* * *
팬사인회는 특별한 이슈 없이 무사히 끝났다.
자동차 시트에 한껏 몸을 기대고 축 늘어졌다. 아무리 외향형인 나라도 100명이랑 대화를 나누면 지칠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에 자컨으로 했던 MBTI 검사에서 I가 나온 서예현과 견하준은 뻗은 지 오래였고, 극 E가 나온 류재희 역시 창문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고통과 함께 초심도가 깎였다는 상태창이 나타났기에 일단 초심도부터 확인했다.
[초심도: 78]세상에, 초심도가 8점밖에 안 깎였다니.
20점 깎인 이전의 팬사인회와 비교하면 기념비적인 수치였다.
하지만 내가 ‘아, 진짜요’와 ‘아, 정말요’의 대체어로 겨우 찾아냈던 ‘아, 그래요’도 서른 번째 쓰니까 금지어에 등극해 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유학파 콘셉트 ‘아, 리얼요’를 밀어야 할 때가 온 것인가.
“당분간은 사녹 없긴 한데, 그래도 너무 밤늦게까지 깨어 있지 말고.”
매니저 형의 말에 스르륵 눈을 감았다.
KICKS 놈들 노래 편곡 작업을 일정대로 마치려면 오늘도 작업해야 했기에 이런 자투리 시간에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했다…….
……가 아니라.
오늘도 서치 퀘스트 까먹으면 또 페널티다.
어제 편곡 작업하다가 깜빡 잊고 서치 퀘스트를 빼먹은 탓에 오늘은 무조건 해야만 했다.
-서예현 누가 잘생겼다고 했냐 실물로 보니까 인간의 언어로 칭할 수 있는 외모가 아니던데 감히 겨우 잘생겼다는 말에 울오빠를 가두다니
-도빈이 긴장한 거 너무 잘 보여서 나도 덩달아 긴장함…… ㅎ
└강아띠 뒤로 갈수록 긴장 풀렸나보다ㅋㅋㅋ 나 뒷순서였는데 사람좋아강쥐 모드였엉
-오늘도 다시 한번 하준이에게 반하고 왔다 첫사랑재질 미쳐 진짜
-유제 혹시 회귀자니? 프로아이도루 한 10년 하신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신인 짬바가 아닌데……
-이든이에게 고양이귀 머리띠 씌운 거 누구임 ㅈㄴ 감사합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윤이든 저번에는 습관적으로 아진짜요 붙이더니 이번에는 아그래요로 갈아탔던데ㅋㅋㅋ 벌써 동태의 싹이 보인다ㅋㅋ
└엥 나 거의 끝번이었는데 아그래요 안 하던데? 동태면 뒤로 갈수록 더 성의 없어지는 거 국룰 아니었나? 울 윤리다 엄청 열심히 말 걸어 주던데?
└혹시 님 최애가 서예현?이신지?
이번 팬사인회 평은 대체적으로 괜찮았다.
지난번에는 습관성 아진짜요와 초심도 깎이는 고통으로 인한 움찔거림 때문에 말이 좀 나왔지만, 바로 팬카페에 올린 FROM글 덕분에 첫 팬사인회라 긴장했다고 포장되어 가라앉았지.
물론 50명뿐인 팬사인회라 그다지 이슈가 되지 않은 것도 있었고.
대충 10분 만에 모니터링을 완료하고 차에서 짧게 눈을 붙였다.
매니저 형은 이제는 익숙하게 나를 용철 형의 작업실 앞에 내려 주고는 나머지 멤버들을 태우고 숙소로 갔다.
* * *
다음 날, 음악방송 스케쥴.
무려 트리플 크라운까지 달성하며 굳건히 1위를 지키던 NITY의 활동이 저번 주로 마무리되어 이번 주 1위는 레브와 KICKS의 본격 매치였다.
유명 솔로가수의 곡이 지난주 끝 무렵에 발매되어 무서운 상승세로 차트를 달리고 있었지만, 디지털 싱글인 데다가 음방에 출연 안 하기로도 유명한 터라 별문제는 되지 않았다.
W카운트다운은 지난주처럼 레브와 KICKS 두 그룹 다 1위를 하지 못했기에 그냥 넘기고.
“와, 빨리 연차 차서 개인 대기실 계속 쓰고 싶다.”
“내 말이. 진짜 세상 편하네.”
우리는 오랜만에 개인 대기실을 받을 수 있었다.
평소였다면 꿈도 못 꿨겠지만, 활동 중인 가수가 적었고, 이번 주 1위 후보에 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떡하죠. KICKS가 1위 하면 안 되는데…… 그 순간 이든이 형 표정 캡처돼서 조리돌림당하기라도 하면…….”
초조한 얼굴로 맞잡은 손을 꼼지락거리던 류재희가 중얼거렸다.
대기실 소파에 늘어져서 이어폰으로 어제 편곡 마친 부분을 점검 차 듣고 있다가 노래를 잠깐 멈추고 대꾸했다.
“우리 그룹에서 KICKS에게 유감 가진 놈이 한둘이냐. 왜 하필 콕 집어서 난데?”
“그야 형은 가만히 있어도 오해 살 인상이잖아요. 그리고 하준이 형이야 워낙 표정 관리를 잘하는데 형은 음…… 뭐랄까…… 성깔이 얼굴에 간헐적으로 튀어나온달까.”
아오, 세팅한 머리라 저 망할 막내 녀석 머리를 누를 수도 없고.
“그래, 우리가 1위 하기나 빌어라. KICKS 놈들 행복해하는 얼굴 보면 네 말마따나 표정 관리 안 될 거 같으니까.”
소속사에서 제대로 칼 갈았는지 오늘 무대의상은 교복풍 캐쥬얼룩이었다.
[11월 다섯째 주 1위 후보 #0303] [1. KICKS 2. 레브 3. 진세]음방 생방송이 틀어진 TV에는 지금 한창 무대 중인 그룹이 나오고 있었고, 화면의 오른쪽 위에는 오늘의 1위 후보들이 적혀 있었다.
곧바로 #0303으로 문자를 보냈다.
당연히 문자 투표의 한 표는 레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며 MC를 맡은 선배 가수와 카메라가 1위 후보 인터뷰를 위해 대기실로 들어왔다.
“네! 저희는 지금 오늘의 1위 후보, 레브의 대기실에 와 있습니다!”
하나, 둘. 조용히 읊조린 내 신호에 맞추어 동시에 카메라를 보고 구호를 외쳤다.
“Dream of me! 안녕하세요, 레브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레브! 이번 주에 뮤직캠프 첫 1위 후보에 올랐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리더인 내게 마이크가 불쑥 들이밀어졌다.
달달 외운 그대로 영광이고 과분한 자리이고 보내 주신 사랑 덕분이고 어쩌고 읊고 있자, 견하준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 나를 툭 쳤다.
좀 더 진실성 실어 말하라는 뜻이었다.
“1위 공약이 빠진다면 섭섭하죠. 과연 레브의 공약은 무엇일지 한 번 들어 볼까요?”
“보컬이랑 랩 포지션 체인지 가겠습니다.”
레브 제24회 회의에서 나온 공약을 말하며 손가락으로 2번을 뜻하는 V자를 만들어 카메라 쪽을 향해 흔들어 보였다.
“오오, 이든 씨의 보컬, 그리고 보컬 라인들의 랩 실력이 너무 궁금한데요. 레브의 공약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지 궁금하시다면 #0303으로 문자 투표 보내 주시고요, 뮤직캠프 채널 고정!”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무대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서야 대기실에서 다시 숨 좀 돌릴 수 있었다.
KICKS보다 앞 순서였기에 1위 발표 때까지 푹 쉬면 됐다.
친구들과 언더 시절 인맥들에게 200원 보내 줄 테니까 문자 투표 좀 해 주라고 문자 싹 돌리고, 편곡 수정안을 잡고 있자 금방 다시 무대 위로 불려 올라갔다.
드디어 기다리던 1위 발표 시간이었다.
MC의 양옆에 우리와 KICKS가 나란히 섰다.
아직 활동 2주 차였기에 꼭 오늘 1위를 하지 못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내 뒷담이나 하는 놈들에게 졌다는 사실에 내 자존심이 많이 상할 뿐이고, 기뻐하는 KICKS 놈들의 면상을 보면서 배알이 꼬일 뿐이겠지.
초조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카메라만 보고 있자 MC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사전 투표 점수까지 합산한 오늘의 1위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