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0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01화(501/50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01화
“이 자리에 서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서예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 표현했지만 회귀 전을 기억하는 내게는 정말로 긴 시간이었다.
준비해 온 멋있는 수상 소감은 대상 수상자로 불린 순간부터 이미 싹 잊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프리스타일로 시작했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택한 길이었습니다. 다른 길을 포기하면서까지요. 그런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오늘 이 상으로 이렇게 증명받아서,”
잠시 말을 멈추고 팔을 뻗어 옆에 있던 견하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내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녀석에게 드디어 네가 맞았다는 걸 이번에는 확실히 보여 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슬며시 고개 숙인 견하준이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린 채로 내 등을 마주 두드렸다. 한풀이가 됐는지 간간이 들리는 친구의 히끅거림을 모르는 척해 주며 더 옆쪽으로 시선을 슬쩍 옮겼다.
“데뷔 초에 했던 오랜 약속을 드디어 지킬 수 있게 되어서.”
눈물을 훔친 류재희가 시선을 마주하자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슬럼프 당시, 슬럼프를 벗어나는 데에 제법 큰 도움을 주었던 서예현, 김도빈과도 시선을 한 번씩 맞추고 다시 고개 돌려 마이크에 대고 수상 소감을 이어나갔다.
“제 음악을 향한 확신을 되찾은 후에 저희의 곡으로 받은 상이어서, 그래서 이 대상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신인상, 그리고 대상.
회귀 전에는 언감생심이었던 상들.
그토록 원하고 부러워했던 그 상을 받기만 하면 너무 벅차올라서 눈물을 펑펑 쏟고 있는 멤버들처럼 절로 눈물이 흘러나올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마음은 차분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데이드림, 우리 일몽이들.”
오랜만에 입에 담는 애칭에 팬석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만도 같았다.
회귀 전 데이드림에 서예현의 팬이 많았다지만 다섯 멤버가 모인 레브라는 그룹을 사랑하는 팬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랬기에 탈퇴 전 레브의 모난 돌이었던, 그리고 먼저 다섯 명의 레브를 버렸던 내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겠지.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운 지금에서야 온전히 아이돌과 팬의 관계로 마주하게 된 데이드림이었다.
“보내 주신 과분한 응원과 사랑에 저희는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자랑스러운 그룹으로, 최고이자 최선의 음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초심을 잃으면 강제 회귀되는 무조건 지켜질 수밖에 없는 약속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반드시 지켜 나갈 약속이었다.
“앞으로도 쭉 같은 꿈을 꾸며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이 자리를 빌어 감히 바라 봅니다.”
민트색으로 빛나는 응원봉이 가득 있는 쪽을 보며 시원하게 미소 지었다. 데이드림이 제일 좋아하는 미소였다.
벅차도록 뛰는 심장에 잠깐 말을 멈추고 작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쉰 후, 지금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아니…”
운을 뗐다가 귓전에 들려오는 옆쪽의 훌쩍거림에 피식 웃으며 서두를 정정했다.
“저희 다섯이 꿈꿔 왔던 백일몽이 현실이 된 이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네요.”
회귀 전에도 어찌 나만이 꿈꿨겠는가.
무대를 보는 눈동자에 서린 부러움의 빛, 저게 우리 곡이었으면 대상 탔겠다며 농담처럼 던지는 말 속에 담긴 아쉬움.
그저 내 불행과 불만이 제일 크다고 내가 외면했을 뿐이지. 나한테는 대상 곡 작곡가라는 영광이라도 돌아갔지 멤버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는데도, 멍청하게.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이 순간을 꿈꿔 왔던 건 회귀 전에도 나뿐만이 아니었다고.
그러니 이건 회귀 전의 그 망할 콩가루 멤버 놈들한테까지 바치는 축사였다.
그걸 자각하자 눈시울이 어쩐지 뜨거워졌다.
“감사합니다!”
꽉 멘 목소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부러 우렁차게 마지막 인사말을 외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찡한 코끝을, 물기 어려 흐릿해진 시야를 들키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쏟아지는 박수 갈채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눈에 잠깐 맺혔던 물기는 날아간 지 오래였다. 덕분에 눈가와 코끝이 다들 발갛게 달아오른 멤버들을 보며 마음 놓고 낄낄거릴 수 있었다.
“이든이 형만 안 울었어!”
“그런데 얘도 마지막에 목소리 좀 잠기지 않았어? 그치? 그랬지?”
제법 예리한 서예현이 건수 잡고 나를 털어댔지만 증거가 없었기에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너는 수상 소감에서 그런 말할 거라고 귀띔이라도 해주지. 나 진짜 갑자기 눈물 터져서…”
제일 먼저 눈물을 그치고 마른 눈가를 다시 한번 훔친 견하준이 투정 같은 말을 건네다가 말끝을 흐렸다.
“프리스타일이었어, 준아. 대상 받고 그냥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뉴본에서의 방황이랑 네 조언이더라.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남았으면 평생 못 받았을 상 아니냐.”
“또 울리려고 작정한 거면 성공이야.”
견하준이 다시 눈가를 손끝으로 꾹꾹 누르며 투덜거렸다.
자리에 도착하자 들고 있던 트로피를 류재희한테 건네며 씩 웃었다.
“야, 이 형이 약속 지켰다?”
코를 훌쩍이던 류재희가 트로피를 조심스레 받아 들며 물에 빠진 놈 구해 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소리를 했다.
“그러면 이제 3년 더 받게 해 주겠다고도 약속해 주세요.”
잠깐 어이가 없었지만 대상을 세 해 더 받으면 알테어의 기록을 깨는 거니까 나한테도 좋은 일이었기에 류재희의 정수리를 꾹꾹 누르는 형벌을 내리는 대신 머리를 가볍게 헤집었다.
“그래, 까짓것 해 보자.”
* * *
-레브 대상!!!!!!!!
-제가 대상 가수 팬으로 보이세요? 그렇다면 잘 보셨습니다
-애들 다 울어ㅠㅠㅠㅠ 애드라 울지마ㅠㅠㅠㅠ 이든이는 좀 울어
-미쳤다ㅠㅠㅠㅠ 레브 축하해♥ 대상 확신하고 있었는데도 새삼 갬동이네
-예현이 말하다가 울컥했어ㅠㅠㅠ 운다 어뜨케 울지마ㅠㅠㅠㅠ
-막라 오열하는 거 슬픈데 웃겨
-다 우느라 바빠서 수상소감 발표 못하고 있는데 여유롭게 마이크 잡고 발표하는 우리리더…
-아미친….. 윤이든 수상소감 뭔데ㅜㅜ 나 눈물나니까 그냥 훈화하라고오ㅜㅜㅜㅜㅜㅜㅜㅜ
-나 하준이 저렇게 우는 거 처음 봐 그런데 나 같아도 중대형 뛰쳐나와서 인생을 나랑 같이 좆소에 걸었던 친구가 저렇게 말해주면 눈물 터질 듯
-LnL 온게 최고의 선택이긴 했지 이든이가 뉴본 남아서 KICKS로 데뷔했으면 지금쯤 포메수인 때문에 음… 이든이 없는 레브도 팥 없는 붕어빵이라 음… 어쨌건 둘 다 대상은 요원했을 테니까
-이든이가 오랜만에 너무 리더답다……
-하나하나 짚어주는 거 너무 섬세하고 ㅈㄴ 안불러주다가 대상 탔다고 일몽이라고 불러준 거 너무 좋고
-앞으로도 쭉 같은 꿈을 꾸며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평생 함께 걸을게 너희도 초심 잃지 않고 끝까지 자랑스러운 그룹이 되겠다는 약속 꼭 지켜
-“저희 다섯이 꿈꿔왔던 백일몽이 현실이 된 이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네요.” 이게 뭐라고 마음에 콱 박히냐ㅠㅠ
-그냥 꿈도 아니라 공상이 현실이 됐다는 게 너무… 너무다…
-진정한 좆소의기적
-레브 아무나 윤이든 등짝 좀 때려봐 물리적으로라도 눈물을 봐야겠어 이쯤 되니까 오기 생긴다
-감사합니다 할 때 약간 목 멘 거 같은데?
-왜 이렇게 고개를 급하게 숙이지? HOXY????
-얼른 고개 들어봐 눈물 맺혔는지 보게
-눈가 발개졌다!!!! 눈가 좀 빨개졌다!!!!!
-가장은 눈물을 보이면 안됨 아무리 기쁘거나 슬픈 일이 있어도 뒤돌아서 눈물 삼키는 게 가장의 참모습임 그러므로 윤이든은 참가장임
-서예현 사랑해
견하준 사랑해
김도빈 사랑해
류재희 사랑해
윤이든 기체후일향만강해
└ㅅㅂㅋㅋㅋㅋㅋㅋㅋ
* * *
숙소로 돌아와서는 소속사에 말하고 OA앱 대상 기념 라이브를 켰다.
“짠, 여기가 저희가 지금까지 받은 트로피를 모아 놓은 진열장인데요, 제일 위쪽 칸은 보시다시피 비어 있죠. 일부러 비워 놓은 거예요. 언젠가 받을 대상을 위해서.”
“그리고 오늘 대상 트로피를 받았죠. 드디어 이 칸에 트로피가 놓이는 영광의 순간! 그 순간을 데이드림이랑 함께하고 싶었어요.”
내가 대표로 실버디스크어워즈 대상 트로피를 장식장 맨 위쪽 칸에 놓았다.
아직 하나이긴 하지만 드디어 트로피가 놓인 장식장이 왜인지 이전과 다르게 꽉 차 보여서 그냥 실실 웃음이 났다.
다 같이 숙소 거실에서 큰절 한 번 올리고 라이브를 끈 다음, 샴페인을 터트리며 축하 파티를 즐겼다.
“맨날 대상 받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예현이 형이 치킨이랑 스테이크 먹어도 아무 말 안 하잖아요.”
“내가 봤을 때는 저 형, 세 번이 뭐야. 두 번만 더 대상 받아도 이제 파티 음식이 눈에 들어올걸. 지금이야 기뻐서 자기가 치킨 뜯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지.”
혹여나 서예현의 귀에 들려서 서예현이 자각할까 봐 김도빈과 한껏 목소리 낮추어 속삭였다.
[▷기억에 남을 수상 소감을 발표해 보자! ✓▶과반수 팬들에게 당신의 수상 소감이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보상으로 초심도 10과 랜덤 티켓이 주어집니다.]
퀘스트 성공 창이 떴을 때는 대상을 받았을 때도 나지 않던 기쁨의 눈물이 흐를 뻔했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퀘스트를 끝냈구나.
연말 시상식 시즌마다 또 어떤 엿 같은 페널티가 걸릴까 바짝 긴장하는 엿 같은 일도 이제 안녕이었다.
‘흠, 그런데 그냥 벅차올라서 주절거린 건데 그걸로 성공을 했다고?’
그게 정성 들여서 준비해 갔던 4분 수상 소감을 이겼다고? 대체 어느 부분이? 이제는 팬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어렴풋이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류재희한테 물어봐야겠다. 나보다는 류재희가 더 잘 알겠지.
다음날에 진행되는 실버디스크어워즈 음반 부문 대상은 알테어에게로 돌아갔다. 기록을 깨려면 우리가 4년 더 받거나 음반과 음원 부문에서 동시 수상을 이뤄 내야만 했다.
레브는 서뮤대에서도 대상을 받으며 지난해의 대상 아이돌로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견하준이 로 받은 OST 상도 서뮤대 대상, 최고의 음원상, 본상, 한류 특별상 트로피와 함께 트로피 진열장에 놓였다.
“형들! 오늘도 대상 받았으니까 오늘도 치킨 파티 고?”
“너무 자주 하는 거 아니야? 원래 축하 파티는 한 번씩만 해야지 그 기쁨이 배가 되는 거야.”
대상이라 차마 단호하게 말리지는 못하고 서예현이 미적지근한 반박을 제시했다.
내가 틀렸다. 두 번이 뭐야. 한 번 만에 정신을 차릴 줄이야.
그렇게 축하 파티 대신 ‘축하 파티는 몇 번이 적정선인가’로 레브 제1,012회 회의가 열렸다.
아, 그러고 보니 제1,000회 회의는 회의 1,000회 기념으로 뭘 할까 회의하는 걸로 날려 먹었지.
참 레브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