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0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04화(504/50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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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의자에 등을 한껏 기댄 채 휴대폰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오랜만에 ‘그날’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쌓인 랜덤 티켓이나 까 볼까?’
일명 티켓깡 데이.
아깝게 랜덤 티켓을 날리는 일을 몇 번 반복하고 난 뒤, 나는 정기적으로 랜덤 티켓을 까 보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랜덤 티켓을 모두 다 기간 내에 깔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가지는 티켓깡 시간 덕분에 까지도 않고 버려지는 랜덤 티켓의 수는 많이 줄었다.
[아이템 ‘눈치 백단 모드’가 나왔습니다!] [아이템 ‘존재감 제로’가 나왔습니다!] [아이템 ‘순간 기억력 증폭’이 나왔습니다!] [아이템 ‘능력치 체인지’가 나왔습니다!]아직 네 개밖에 안 쌓였구나. 처음과 달리 많이 안 쌓여서 까기는 편하다.
요리의 신 대장금 아이템이나 한 번 더 나왔으면 했는데. 멤버들이 내 진정한 요리 실력을 다시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눈치 백단 모드: 1시간 동안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 분위기를 읽는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존재감 제로: 시전자의 인상을 흐릿하게 만들어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게 합니다.] [순간 기억력 증폭: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도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은 것을 완벽히 복기할 수 있습니다.]그래도 제법 쓸모 있는 것들이 많이 나왔다. 적어도 한 번은 쓸 만한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아이템. 설마 기억 회복 아이템이라도 던져 주라고 해서 그런가?
그런데 나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달라고 했지 순간 기억력을 높여 달라고는 안 했는데.
[능력치 체인지: 사람을 하나 지목해 원하는 상대의 능력치를 본인의 능력치와 12시간 동안 바꿀 수 있습니다.]마지막 아이템은 왜인지 모를 견하준 랩 실력 PTSD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 페널티 리버스 버전인가.
그때는 강제로 워스트 능력을 그것도 랜덤으로 덮어 쓸 수밖에 없었다면 이번에는 베스트 능력을 내가 골라 탈취할 수 있었다.
내 능력치와 바꿔야 한다는 게 마음에 살짝 걸리는 부분인데 생각해 보니까 내 능력치는 다 평균 이상은 하니까 바뀌어도 괜찮은 것 같았다.
보컬도 뭐… 심각할 수준은 아니잖아?
이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멤버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긴 하지만, 내가 스케줄도 모르는 아티스트의 능력치를 마구 탈취해 댈수는 없었으니 스케줄을 다 꿰고 있는 멤버들의 능력치가 제일 만만했다.
[능력치 교환 가능 항목] [외모/보컬/랩/댄스/체력/작사·작곡/프로듀싱]바꿀 수 있는 항목이 뭐가 많긴 했지만 대부분이 딱히 다른 사람의 능력치가 부럽지 않은 것들이었기에 김샌 숨을 내뱉었다.
서예현의 외모 능력치와 내 능력치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긴 했지만 외모는 눈에 바로 보이는 거라서 패스.
서예현 멘탈이 나갈까 봐 걱정되는 것도 있었다. 내 외모 능력치 정도면 많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일단 서예현한테는 본인 최고 자부심인 외모가 다운그레이드 되는 거잖아.
게다가 서에현이 나한테 외모까지 역전되면 아무리 알 바 아닌 맏형이라 해도 걱정 정도는 들었다.
김도빈의 댄스 실력도 서예현은 누구보다도 가지고 싶겠지만 나는 막 딱히 궁금하거나 가지고 싶은 건 아니니까 패스.
류재희랑 보컬 능력을 바꿔서 견하준 가이드 녹음 버전이랑 개쩌는 보컬을 탑재한 내가 부른 버전이랑 비교나 해 볼까?
오늘은 견하준이 가이드 녹음을 도와주는 날이기도 하고, 단순 보컬 능력치만 견하준 수준으로 높아진다면 견하준 음색을 내가 가질 리가 없으니 류재희랑 바꾸는 게 딱이었다.
어차피 오늘은 류재희가 확실하게 스케줄이 없었기에 능력치가 바뀌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류재희가 혼자 노래를 부르다가 충격 정도야 받을 수 있겠지만 나는 무려 스케줄이 있는 날에 견하준의 랩 실력으로 무대를 선보였다고. 나약한 징징거림은 받지 않는다.
[아이템 ‘능력치 체인지’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능력치와 대상을 차례로 선택하십시오.]“능력치는 당연히 보컬이고, 대상은-”
삐비비빅-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와 함께 작업실의 문이 열렸다. 김도빈인가? 아니면 류재희? 내가 능력을 탈취하려는 류재희면 돌려보내려고 몸을 돌리자 뜻밖에도 작업실로 들어오는 견하준이 눈에 들어왔다.
“엥? 준아, 왜 이렇게 빨리 왔냐? 한 시간 후 아니었냐?”
“스케줄이 좀 일찍 끝나는 바람에 시간이 붕 떴거든. 내가 빨리 간다고 문자 넣었는데 안 봤어?”
랜덤 티켓깡 하느라 휴대폰에 신경을 끄고 있었기에 놓친 모양이다.
“맞네, 견하준 문자 왔었네.”
휴대폰 화면을 켜서 아무 생각 없이 잠금 화면 알림 상단에 뜬 문자 발신자 저장명을 읽자 띠링- 소리가 들리며 상태창이 내 눈앞에 떴다.
[교환 능력치: 보컬교환 대상자: 견하준]
잠깐만, 잠깐만!
기겁하며 시스템을 말리자 눈을 깜빡인 견하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든아? 무슨 일 있어?”
“어? 어. 별거 아니야.”
[교환을 실행합니다.]망할 시스템 자식아. 음성 인식 똑바로 해! 왜 앞에 말한 ‘어’만 인식하고 뒤에 말한 ‘아니야’는 씹냐고.
“그냥 약속 시간대로 1시간 후에 올까?”
어차피 이 아이템의 지속 시간은 12시간이다. 지금이나 1시간 후나 견하준의 보컬 실력은 똑같을 거라는 소리다. 보냈다가 1시간 후에 오라고 한들 그냥 왔다 갔다 똥개 훈련 시키는 꼴만 되지.
그러니까 그냥 견하준을 세뇌시켜서 빨리 보내 버리는 편이 나았다.
“아니, 괜찮아, 괜찮아. 여기까지 왔는데 굳이 쫓아내겠냐? 녹음 시작하자.”
내 손짓에 겉옷을 벗어 소파 위에 얹어놓고 녹음 부스 안에 들어간 견하준은 한 소절을 내뱉자마자 심각해진 얼굴로 목을 문지르며 노래를 뚝 멈췄다.
“이든아, 잠깐만. Inst 좀 멈춰 줘.”
마이크에 대고 진지한 목소리로 Inst 정지를 요청한 견하준이 미안함이 한가득 담긴 표정으로 내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 내가 목 관리를 잘못했나 봐. 오늘 목 상태가 조금 안 좋은 것 같아.”
내가 세뇌시키려 했던 내용을 견하준이 그대로 읊었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목 상태가 좋지 않은 견하준의 보컬이 내 보컬 수준이냐고.
“목 상태가 갑자기 왜 이러지…? 아침까지는 괜찮았는데.”
계속 목을 매만지며 견하준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나는 내 페널티 때의 충격을 고스란히 견하준한테 돌려준 꼴이 된 거다. 의도치 않은 리벤지였다.
서브 래퍼인 서예현의 랩 실력이 그 수준이었던 건 죄이지만 리드 보컬인 견하준의 랩 실력이 그 수준인 건 죄가 아니긴 했다.
그래도 나의 마음고생과 개고생은… 아무리 그래도 아무 죄 없는 친구한테 시스템의 농간으로 복수심을 가지는 건 좀… 아니, 그래도 그 랩 실력도 좀…
“목감기인가 봐. 얼른 병원 가 봐, 준아. 지금 가이드 녹음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걱정하는 눈빛을 한껏 담은 표정을 꾸며 내며 견하준의 등을 떠밀었다.
목 관리 꼼꼼히 하면 견하준한테도 좋은 거지, 뭐.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미약한 미안함까지 내다 버린 채로 성공적으로 견하준을 보내 버리고 진지한 얼굴로 악보를 집어 들었다.
가볍게 흥얼거리는 것에서부터 느낌이 달랐다.
세상에, 나한테서 이런 노래 실력이 나오는 일이 다 생기다니! 내 예상대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견하준의 음색까지는 적용이 안 됐지만 보컬 실력이 이만큼이나 늘어난 것 자체가 신세계라 막 아쉽지는 않았다.
“그래! 이때 가이드 녹음을 막 해 놔야 해!”
견하준이 아무리 곡을 잘 이해하고 내 의도대로 딱 감정과 강도를 살려 불러 준다고 해도 아무래도 원곡자인 내 해석과 100% 들어맞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0.1% 정도는 아쉬웠던 게 있었는데 이걸 오늘 해소하는구나.
“야, 이게 되네, 이게! 피드백을 주지 않아도 원하는 녹음본을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삶이라니!”
음색이 좀 아쉬웠지만 내 목소리도 사랑하기로 했다. 원래 사랑은 했지만.
신나서 inst 틀어 놓고 가이드 녹음한답시고 노래를 열창하고 쉬고를 열창하고를 반복한 지 한 20분이나 지났을까.
눈 감고 노래를 열창하다가 갑자기 드는 오한에 눈을 번쩍 뜨니 녹음실 유리 부스 너머에서 눈을 크게 뜬 채로 입까지 떡 벌리고 나를 보는 류재희가 눈앞에 있었다.
녹음실 부스를 울리는 멜로디에 묻혀서 비밀번호 입력 소리를 듣지 못한 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우리 멤버들은 나의 보컬 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놈들이었다.
시바, 들은 거겠지? 저거 100% 들은 표정이지?
헤드셋을 벗고 녹음실 부스 문으로 다가가자 류재희가 겁먹은 얼굴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문을 벌컥 열고 성큼성큼 류재희한테 다가가자 류재희가 미친 듯이 뜀박질하여 작업실 출입문까지 물러났다. 녀석이 도어락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전에 덥석 목덜미를 잡았다.
[아이템 ‘인간 수면제’를 사용하시겠습니까?]이 아이템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손이 닿는 사람을 즉시 잠재울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아마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 쓰라고 준 것 같은데 내가 납치당할 일이 어디 있겠냐.
그리고 지금이 제일 위급 상황이었다.
또 귀신인가 뭔가에 빙의 당했다고 숙소 달려가서 동네방네 지랄할라.
김도빈만 귀신 같은 쓸데없는 걸 믿을 줄 알았는데 류재희도 성격 반전 페널티가 당첨됐던 저번에 보니까 참 적극적으로 윤이든 귀신 빙의설을 믿더라.
하지만 이 정도의 보컬 실력 업그레이드는 내가 봐도 초자연적인 현상이었기에 말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실제로도 초자연적이지.
내 의지와 함께 아이템이 발동되자마자 내 손에 닿고 있는 류재희가 앞으로 푹 꺼졌다. 이마를 바닥에 찧기 전에 턱, 붙잡아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이렇게 막내 생각해 주는 이런 형이 어디 있냐. 만약 우리 크루 형들이었으면 나는 작업실 바닥에서 눈 떴어.
10분 뒤, 류재희가 몽롱한 얼굴로 눈을 떴다. 두어 번 눈을 깜빡인 류재희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파닥거렸다.
“야, 재희야! 왜 그래! 119 불러 줘?”
“이상하다… 분명 평소의 이든이 형인데…”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러면 평소 윤이든이지 무슨 특별 윤이든이냐? 너 눈 뜨자마자 헛소리하는 거 보니까 얼른 병원 가야겠다. 얌마, 너 작업실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픽 쓰러졌어.”
내가 류재희를 기절시킨 빅피쳐가 다 있었지.
일명 ‘아, 시발 꿈’.
그렇게 세뇌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