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0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05화(505/50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05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상체를 일으킨 류재희가 잠겨서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제가 오자마자 갑자기 쓰러졌다고요?”
나중에 저 음역대도 활용할 수 있는 곡을 한 번 만들어 봐야겠다.
아, 이런 거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래, 갑자기 쓰러지더라니까? 내가 작업하다가 갑자기 쿵 소리 나서 돌아보니까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얼른 병원 가자, 병원. 이참에 건강검진 받아 봐.”
“잠깐만요.”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 손을 내저어 속사포처럼 퍼부은 내 말을 받은 류재희가 거듭 물었다.
“형이 녹음 부스 안에 있었던 게 아니라 여기 의자에 앉아 있었던 거예요?”
“어, 당연히 여기 앉아 있었지. 한창 작업 중이었으니까. 우리 둘 솔로 앨범 때문에 나 바쁜 거 너도 알잖아.”
흠, 말이 너무 길었나. 너무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수상해 보일 위험이 있지. 조금 주의해야겠다.
또 숙소 가자마자 소금이랑 팥 맞고 무당집 가 보자는 설득을 듣는 건 사양이었다.
내 대답을 듣자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은 채로 고개를 숙인 류재희가 앓는 소리와 함께 중얼거렸다.
“그러면 내가 본 건 대체 뭐지…?”
“뭘 봤길래 그래? 갑자기 쓰러진 거랑 관련 있냐? 그런데 귀신이라곤 하지 마라. 그런 종류의 헛소리는 안 받아 준다.”
“녹음 부스 안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형을 봤어요.”
어지간히 무서웠는지 류재희가 자기 팔을 쓱쓱 문지르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노래 잘하는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싶으면서도 견하준이 갑자기 내 실력급의 랩을 내 앞에서 선보이면 나도 저게 진짜 내 친구가 맞는가 의심을 했을 게 분명하기에 관대하게 이해하기로 했다. 갑자기 신들린 듯한 춤 실력을 보여 주는 서예현으로 치환해 봐도 조금 무섭긴 하군.
“꿈꿨냐?”
삐딱한 물음에 류재희가 드디어 내 거짓말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였는지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런데 너는 갑자기 왜 왔냐? 왜 와서 갑자기 픽 쓰러지고 난리야.”
“하준이 형이 자기 오늘 목 상태가 영 안 좋아서 가이드 녹음 못 하고 왔다고, 그러니까 제가 가서 대신해 달라고 부탁받아서 왔죠.”
젠장, 우리 준이가 조금만 덜 섬세했어도 데모곡 한 열 곡은 쌓아 놨을 텐데. 이렇게 류재희한테 들켜서 진땀 빼다가 아이템 하나 더 소모하는 일도 없고.
친구의 섬세함이 평소에는 참 고마웠지만 이럴 때는 고맙지 않았다.
“병원 갈래? 아니면 숙소로 돌아갈래?”
“아니요. 멀쩡해요. 아마 조금 피곤했나 봐요. 악보 보면서 몸 상태 좀 지켜보다가 아무 이상 없는 것 같으면 가이드 녹음 도울게요.”
이 녀석도 왜 본인 건강에 경각심이 없어? 내가 비슷한 상황에 놓였으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을 텐데 류재희는 굉장히 의연했다.
“그래라, 그래. 아프면 바로 병원 데려다줄 테니까 말하고.”
한숨을 푹 내쉬며 류재희한테 오늘 가이드 녹음 해야 하는 곡들의 악보를 건넸다. 여기에서 더 병원이나 숙소를 가라고 강요하면 수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냥 내가 노래 부른 거 맞고 일시적으로 노래 실력이 상승했다고 밝힐까 하다가 지금 작업실에서야 류재희 한 명이지, 이걸 류재희가 숙소로 가서 말하면 팥과 소금을 든 네 명을 상대해야 한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하며 단념했다.
그냥 여기에서 조금 귀찮은 게 낫지. 이 초자연적 현상을 류재희가 숙소로 끌고 가는 순간 며칠간 시달리는 거다.
“형, 녹음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요? 아픈 곳 지금까지 없어요.”
“야, 이런 전조 현상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사람이 아프기 전에 병원을 가야 하는 거야.”
“네네, 가까운 시일 내로 건강검진 잡을 테니까 지금은 얼른 녹음해요.”
류재희는 의심을 다 버렸는지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가는 걸음도 스스럼없었다. 의심했으면 저기 안에 귀신있다고 안 들어가고 버텼겠지. 류재희도 김도빈만큼은 아니지만 겁이 많은 녀석이니까.
한시름 놓고 가이드 녹음을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100%를 채우다가 97%를 마주하니까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견하준이야 작업물로 합을 맞춘 일이 많아서 99.9%까지 채운 거지.
류재희는 견하준한테 하는 피드백보다 더 자세하게 제시를 해 줘야 했다. 아무리 가이드 녹음이라고 해도 이걸로 레코딩 전에 음정과 곡 분위기를 파악하는 만큼 어느 정도는 신경을 써야 했다.
“다시. 방금 그 파트 좀 더 아련하게 감성을 담아 봐.”
고개를 끄덕인 류재희가 다시 내가 지시한 파트를 반복했다.
“아니, 이번에는 너무 아련해. 손절 치는데 미련은 살짝 남아 있는 느낌을 살려 봐. 친구랑 싸워서 손절친 적 없어?”
“그런데 이거 사랑 노래 아니에요?”
“너 연애하고 이별해 봤냐? 그걸로 설명한다고 알아먹어? 그리고 나도 해 본 적 없어서 설명 못 해, 인마.”
“그렇다고 곡을 위해 경험을 늘려야 한다면서 연애하시면 안 돼요, 형. 차라리 로맨스 영화를 보세요.”
“네가 굳이 충고 안 해도 이미 그러고 있거든.”
손을 휘휘 내저으며 다시 Inst를 돌렸다. 세 번째 시도에도 원하는 감성이 나오지 않자 결국 소극적 피드백에서 적극적 피드백으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게 말고. I forgive you some time or other- 이렇게 느낌을 살려 보라니까. 이해했어?”
평소처럼 대충 느낌만 살려서 불러 줬을 뿐인데 너무 녹음 디렉팅에 몰입한 나머지 내 노래 실력은 평소가 아니라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뻣뻣하게 굳은 류재희의 모습에 왜 저러나 의문을 가진 것도 잠시, 류재희가 창백한 얼굴로 마이크에 대고 속삭이듯이 겨우 말했다.
“…형 원래 거기까지 음 안 올라가잖아요.”
아, 맞다. 왠지 가성 처리 안 해도 음이 올라가더라.
젠장, 이래서 그냥 등 떠밀고 숙소로 보내 버렸어야. 혀를 차자 얼굴이 저기에서 더 창백해질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창백해진 류재희가 떨리는 손으로 헤드셋을 벗고 녹음 부스 문으로 내달렸다.
물론 내가 녹음 부스 문 앞으로 가는 게 류재희가 녹음 부스를 빠져나오는 것보다 한 발 빨랐다.
매우 다행히도 인간 수면제 아이템 시간이 20분 정도 남았다. 류재희가 잠들어 있는 동안 시스템한테 이 기절이 상대의 건강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확답받았기에 마음 놓고 다시 잠들게 했다.
다시 똑같이 소파에 던져 놓고 첫 번째와 똑같은 위치에서 류재희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류재희가 눈을 뜨자마자 다급하게 외쳤다.
“야, 재희야! 왜 그래! 119 불러 줘?”
“뭐지. 분명히 녹음 부스 문 쪽으로 가고, 이든이 형이 나 잡자마자 갑자기 정신이….”
“무슨 소리야? 너 눈 뜨자마자 헛소리하는 거 보니까 얼른 병원 가야겠다. 얌마, 너 작업실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픽 쓰러졌어.”
첫트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대사를 읊어 주었다.
눈 뜨면 계속 똑같은 대사를 듣는 게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직접 겪어 봤기 때문이다.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하는 걸로 전략을 바꿨다.
“제가 오자마자 갑자기 쓰러졌다고요…?”
“그래, 갑자기 쓰러지더라니까? 한창 작업하다가 갑자기 쿵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까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얼른 병원 가자, 병원. 이참에 건강검진 좀 받아 봐라.”
“잠깐만요. 저희가 가이드 녹음을 한 적이 없다고요? 정말로?”
류재희의 시선이 녹음 부스로 향했다. 정확히는 제가 마이크에 대충 걸어 놓은 헤드셋으로. 류재희가 더 생각하기 전에 다시 잠들게 했다.
혹여나 깰까 봐 까치발로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가서 헤드셋을 제자리에 두고 다시 똑같이 위치를 잡았다.
“야, 재희야! 왜 그래! 119 불러 줘?”
깨어나자마자 류재희는 대답 대신 내 등 너머로 녹음 부스를 확인했다.
“형, 저기 헤드셋….”
“뭐라고? 헤드셋이 왜?”
“사람 손만 닿아도 정신을 잃는 게 가능한가…? 형, 저 한 번 손으로 만져봐요.”
원하는 대로 턱턱 손을 얹어주었다. 이제 아이템 효과 발휘 시간도 끝났으므로 제발 류재희가 의심을 거둬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무슨 소리야? 너 눈 뜨자마자 헛소리하는 거 보니까 얼른 병원 가야겠다. 얌마, 너 작업실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픽 쓰러졌어.”
류재희의 표정이 영 찜찜해졌다.
“어쩔래. 병원 데려다 줘?”
“아니요, 가이드 녹음 할게요. 악보 좀 주세요.”
다행히 이번에는 내가 시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무사히 넘어갔다. 내가 너무 많이 재워서 그런가, 류재희는 녹음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멍해 보였다.
그리고 다음 날.
“형, 노래 불러봐요.”
“갑자기?”
아침 식사 자리에서 뜬금없이 요구해 오는 류재희에게 어디서 아침부터 형한테 노래를 시키냐고 윽박 몇 마디 박아 주고 노래를 불러 주었다. 어차피 12시간 지나서 그냥 내 실력이었다.
“아니, 진짜 어제 뭐였지?”
류재희의 표정이 더욱 혼란으로 물들었다.
“왜 그래, 류재?”
“왜 아침부터 우리가 얘 노래를 듣게 만드는 거니, 막내야.”
“어제 가이드 녹음할 때 무슨 일 있었어?”
“어제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공포 체험을….”
멤버들이 류재희한테 더 캐묻기 전에 선수 쳐서 한탄했다.
“막내가 작업실 오자마자 갑자기 쓰러지더라고. 병원 가자니까 끝까지 안 가더라. 누가 설득 좀 해 봐라. 우리 막내가 머리 좀 커졌다고 내 말은 들어먹지를 않아.”
이제 류재희는 공포 체험의 궁금증 대신 걱정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나 머리 좀 쓰는 듯?
* * *
그렇게 아이템 한 번 잘못 쓴 대가로 치른 소동을 무사히 넘기고 다시 며칠간 작업실에 틀어박혔다.
가끔 류재희가 무언가를 확인하기라도 할 것처럼 예고도 때리지 않고 벌컥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긴 했지만 그것쯤은 관대하게 봐줄 수 있었다.
오늘도 다른 때처럼 작업실에서 곡 작업에 매진하고 있던 도중.
[⚠비정상적인 외부 간섭이 감지되었습니다!]갑자기 경고를 알리는 붉은 상태창이 눈앞에 떴다. 저번에 위험도 시스템이 떠넘겨질 때의 경고창과 똑같은 것이었다.
에휴, 한두 번이어야지. 이제는 이런 게 갑자기 나타나도 놀랍지도 않았다.
저번처럼 글자가 깨져서 보이는 게 아니라 멀쩡하게 보이는 걸 봐서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집 시스템이 방비를 제법 잘해 놓은 모양이다.
‘씨발, 차연호 이 새끼가 또.’
협조 좀 하자니까 이딴 식으로 뒤통수를 쳐?
이를 갈며 책상 위에 얌전히 놓인 휴대폰을 잡아챘다. 당장 차연호한테 전화를 걸려는 내 시도를 1차로 막은 건.
[#&!ERROR¡&#] [#&!ERROR¡&#] [#&!ERROR¡&#]미친 듯이 눈앞에서 깜빡이기 시작하는 에러 창이었고.
‘이 새끼,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통화 시도를 2차로 막은 건.
[용철이형-https://www.halunews.com/news/article…
] [용철이형- 이거 너 아니지?]
용철이 형을 비롯한 수많은 지인들에게 온 뉴스 기사 링크였다. 링크를 터치하자 이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던 것 같은 기사가 떴다.
[속보]5인조 인기 아이돌 그룹, 교통사고로 멤버 혼수상태회귀 전 그때도 보도 선점하려고 이런 거 내용 없이 막 내보냈다가 욕 바가지로 먹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잠깐, 그러고 보니 차연호가 알테어 교통사고를 물어봤던 게…
생각해 보니 그 사고의 날짜도 이맘때쯤이었다. 멤버 하나가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일주일 만에 의식을 되찾고, 다른 멤버도 군면제가 될 정도의 부상을 입은 워낙 큰 사고다 보니 흐릿하게나마 기억은 하고 있었다.
다급히 검색하자 그 아이돌 그룹의 그룹명과 혼수 상태에 빠진 멤버의 이름도 기재한 뉴스가 이제 막 올라오는 게 보였다.
알테어, 그리고 차연호.
[#&!ERROR¡&#] [#&!ERROR¡&#] [#&!ERROR¡&#] [⚠방화벽이 비활성화되었습니다!] [⚠비상 루트 1을 발동합니다.]대체 무슨 일인지 상황 파악을 마치기도 전에 시야가 암전되었다.
* * *
“……형. 이든이 형!”
나를 부르는 류재희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오늘도 불쑥 작업실로 찾아왔다가 내가 쓰러진 걸 발견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뜨자마자 내 눈에 보이는 건…
“이런 씨…!”
앳된 열일곱 살 류재희의 얼굴이었다. 자동으로 나오려는 욕을 겨우 삼켰다. 휙휙, 다급하게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곰팡이 핀 반지하 숙소의 벽지가 정답을 말해 주고 있었다.
“왜 그래요, 형? 혹시 오늘 데뷔하는 것 때문에 긴장해서 정신 놨어요?”
정말로 잊지 못할 대사가 류재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필사적으로 속였던 며칠 전 류재희의 마음을 강제 역지사지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딱 다시 기절하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다시 데뷔 초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