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51화(51/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1화
이번 주의 마지막 스케줄인 인기뮤직.
여기는 어김없이 KICKS와 같은 대기실을 써야 했다. 어제의 대거리 때문에 그런가. 두 그룹 사이에는 냉랭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형형, 아무래도 저기 서로 싸운 것 같지 않아요?”
류재희가 내 귀에 목소리 낮춰 속닥였다.
끈끈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자기들끼리 견제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매우 고소했다.
“뒷담으로 뭉친 놈들의 최후지, 뭐.”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화장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화장실 거울에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한 공간에 있던 얼굴이었다.
지나쳐 가려던 것보다 KICKS의 낙하산이 내게 말을 거는 것이 한발 더 빨랐다.
“오랜만이네요, 윤이든 씨.”
“5분 전까지 한 공간에 있던 사람에게 오랜만이라는 인사는 좀 안 맞는 것 같은데 말임다?”
“이렇게 둘이 대화하는 건 오랜만이잖아요?”
“내가 댁에게 낙하산이라고 했던 그때도 둘만 있었던 건 아니지 않나?”
회귀 전에, 낙하산 녀석이 내부고발자를 자처하며 내게 진실을 폭로했을 때 놀랐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뉴본을 나오기 전, 견하준이 데뷔조에서 퇴출당했다는 게 열 받아 낙하산에게 낙하산이라고 면전에서 지랄했던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놈은 객관적으로 봐도 낙하산이 맞았기에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과거는 묻어 두죠. 그리고 직접 겪어 보니까 음습하게 뒤에서 까 내리는 것보다, 이든 씨처럼 앞에서 대놓고 욕하는 인간군상들이 차라리 더 낫더라고요.”
회귀 전에도 들었던 사실이기에 놀랍진 않았다.
자기들 빼고는 다 까는 모두까기 인형 놈들이 낙하산 뒷담을 안 깠겠냐.
오죽했으면 얘도 면전에서 지랄한 내 편에 섰겠어.
“그래서, 용건이?”
손에 묻은 물을 털며 묻자 낙하산이 직설적으로 용건을 말했다.
“윤이든 씨에게 뒷담 내용 알려 준 내부고발자, 누구예요?”
과거이자 미래의 너요.
그런데 말해 줘 봤자 안 믿을 테고, 나는 정신이 좀 이상한 놈 취급까지 받을 위험이 있는데, 굳이 말해 줘야 하는 이유가?
“그건 왜 물으십니까? 내가 이전에도 말했지 않나? 내부고발자 보호법 모르냐고?”
삐딱하게 입꼬리 올려 묻자 낙하산이 눈을 접어 웃었다.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렇죠. 내부고발할 정신머리가 있으면 저희 그룹에서 저 포함해서 유이하게 제정신 박힌 정상인이잖아요?”
그래, KICKS에서 유일하게 정신 박힌 정상인 된 거 축하한다, 낙하산.
“알아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텐데.”
너 자신이니까.
뭐, 비정상인들 사이에서 미치지 않으려면, 자기 말고도 정상인 하나쯤은 있을 거란 희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참, 최현민이 익명으로 윤이든 씨 인성 찌라시 올리고 다니는 건 알아요?”
“그 자식은 계속 내 얼굴 보기만 하면 첫 타로 시비를 털어 대더니, 이제 내가 만만한가?”
불쾌감을 굳이 숨기지 않고 중얼거리자 낙하산이 짧게 고개를 저었다.
“만만하다기보단…… 윤이든 씨 빠지는 바람에 강제로 포지션 변경됐거든요. 랩으로. 굳이 따지자면 악감정이죠. 윤이든 씨가 데뷔조 걷어차고 뉴본 나간 뒤로 얼마나 욕이랑 저주를 해 대던지.”
서예현이랑 비슷한 랩 실력으로 왜 래퍼 맡았냐고 회귀 전에 놀리고 그랬는데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을 줄이야.
데뷔조 때도 랩 은근히 무시하면서 보컬 부심 부리는 게 같잖았는데 꼴좋다 싶었다.
피식, 비소를 내뱉으며 빈정거렸다.
“계속해서 열심히 퍼트리고 다니라고 전해 주십쇼. 그 자식 미성년자 흡연 사진 인터넷에 퍼지는 꼴 보고 싶으면.”
심심해서 휴대폰 갤러리를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진이었다.
연습생 시절에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약점 잡기에 아주 최적의 사진이다 싶었다.
여전히 그 자식은 미성년자기에 지금 이 시점에 일단 퍼지기만 하면 무조건 논란이 된다.
[이 새끼는 언더 출신인 나도 과거사 털릴까 봐 쫄려서 못 했던 미자 흡연을 대놓고 하네. 간 한번 커.] [그건 형이 쫄보인 거.] [현민아, 계속 나대면 니 데뷔 못 하게 인터넷에 이거 뿌린다.] [그런데 이제 나랑 형이랑 같이 데뷔하면 형도 망함. 수고.]뉴본 소속사 건물 뒤편에서 나란히 벽에 기대어 낄낄거리며 나눴던 그때의 대화가 흐릿하게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때야 같은 그룹으로 데뷔할 줄 알았기에 사진 찍고 장난식으로 했던 협박이 진심 어린 협박거리로 바뀌어 버릴 줄 누가 알았겠냐.
그리고 미성년자 흡연 사진 말고도 1년만 있으면 강남 모 클럽에서 DJ로 일하는 아는 형들에게 부탁해서 남돌 친목 모임 클럽 사진도 입수할 수 있다.
스무 살 되자마자 클럽 죽돌이가 되던 놈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로 지나쳐서 대기실로 돌아가려 하자, 낙하산이 제 휴대폰을 불쑥 내밀었다.
“번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눈썹을 치키자 낙하산이 싱긋 웃었다.
“찌라시 뿌리고 다니는 거 몰랐던 눈치로 보아하니 업데이트가 안 되고 있으신 모양인데 내부고발자2나 하죠. 저는 윤이든 씨랑 친하게 지내고 싶거든요.”
“뭔, 뒷담 피해자 연합도 아니고…….”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번호를 찍어 줬다.
‘KICKS 놈들이 뭐라 뒷담을 까고 어떤 뒷공작을 하고 있는지나 알자’가 60%.
‘저 낙하산이 이번에도 그걸 빌미로 회귀 전에 했던 요구를 똑같이 할까 궁금해서’가 40%였다.
부재중으로 찍힌 번호를 저장하려다가 멈칫했다.
“이름이?”
다른 KICKS 멤버 놈들이야 같이 지낸 시간이 있어서 이름을 기억한다지만, 굳이 낙하산의 이름까지 외울 의리도 의무도 없었기에 본명을 몰랐다.
설마 제 이름도 모를 줄 몰랐다는 듯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보던 낙하산이 내 손에서 휴대폰을 가져가 이름을 입력했다.
[정이서]내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는 많았고, 내 기준 특이한 성이나 이름은 아니었기에 누군지 잊어버릴 확률이 꽤 높았으므로 이름 뒤에 괄호로 설명을 덧붙였다.
[정이서(KICKS 낙하산)]같이 들어가면 나머지 KICKS 놈들의 의심 어린 눈초리를 받을 게 분명했기에 내가 먼저 대기실에 들어갔다.
내가 대기실 소파에 앉자마자, 내 소매를 잡아당긴 류재희가 다시 내 귀에 속닥거렸다.
“저 인간들 단체로 하준이 형한테 돈 빌리고 안 갚았어요? 왜 하준이 형이 입만 열면 조용해짐요?”
“단체로 찔리는 게 있어서 그래. 그나저나 뭔 일 있었냐?”
“형 없으면 못 짖는다고 쪼개다가 예현이 형 빡쳐서 뭐라 하고, 딜교 좀 하다가 하준이 형이 한마디 하니까 입 다물고, 아무튼 그랬죠.”
“쟤들은 왜 학습 능력이 없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소파에 등을 편하게 기대자 낙하산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힐긋 보니 낙하산에게 살갑게 말을 붙이는 놈은 없었다. 왜 손절 치고 이쪽에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대기하다가 1위 후보 인터뷰한다고 동시에 불려 갔다.
“네, 안녕하세요! 11월 다섯 번째 주, 생방송 인기뮤직!”
“오늘의 1위 후보 세 곡입니다. KICKS <시간됐어>, 레브 , 진세 <또 다른 너>.”
마지막 발라드 가수는 음방 출연을 안 했기에 1위 후보로 불려 온 건 우리뿐이었다.
“그럼 오늘의 1위 후보들을 만나 볼까요? 차례로 시청자분들께 인사 한 번씩 부탁드려요.”
“둘, 셋! KICKS the world! 안녕하세요, KICKS입니다!”
“하나, 둘, Dream of me! 안녕하세요, 레브입니다!”
대충 대본에 있는 말을 주고받고 짧게 후렴구 한 소절씩 부르면서 포인트 안무를 추는 거로 인터뷰는 짧게 끝났다.
팬덤+대중성+화제성이라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로 평가하기 때문에 지상파 3사 음방에서 제일 높게 쳐주는 게 인기뮤직 1위라 앞선 두 음방보다 더 신경 쓰이는 감은 있었다.
여기서 1위를 KICKS에게 뺏긴다면 진정한 1위는 KICKS이네, 하는 말이 들려올 게 분명했기에.
평소보다 힘이 빡 들어간, 교복 느낌이 물씬 나는 무대의상과 헤어만 봐도 코디가 얼마나 칼을 갈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도 깔끔하게 1위 하고 가자.”
내 말을 듣곤, 옆에 있던 KICKS 리더 놈이 들으란 듯 제 팀원들을 격려했다.
“얘들아, 인기뮤직 1위가 진정한 1위인 건 알지? 잘하자, 오늘.”
그리고 컴백 2주 차인 11월 다섯 번째 주.
KICKS 리더가 공인한 진정한 1위까지 거머쥐며 레브는 KICKS에게 공중파 3사 1위를 한 번도 내주지 않는 것에 성공했다.
* * *
마지막 활동 기간인 3주 차, 12월 첫째 주.
W카운트다운과 뮤직캠프는 1위를 KICKS에게 양보해야 했지만, 나머지 두 공중파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함으로써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음반 총판은 18만 장.
신인도 초동 10만 장이 기본인 음반 인플레 시대를 살다 와서 그런지 눈에 차지 않는 숫자이긴 하지만, 지금 이 시절에 이 정도 총판이면 꽤 괜찮은 성적이었다.
“그런데 형, 초동이 그렇게 중요했어요? 총판이 더 중요하지 않나? 보니까 음방 때문에 주별로 나눠 사기도 한다던데.”
활동을 무사히 마친 기념 겸 뒤늦은 레브의 첫 1위 축가 기념 회식 자리.
대표님께서 숟가락 꽂은 소주병을 들고 열정적으로 떠들어 대시는 동안 류재희가 속닥였다.
“안 중요해. 네 말대로 총판이 더 중요하지.”
지금은. 마지막 말은 입속으로 삼키며 다 익은 소고기를 불판에서 집어 들었다.
하긴. 레브 4년인가 5년 차부터였나,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초동이 중요시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딱히 초동에 의미를 두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초동 늘려야 한다고 초동 기간에 팬사인회를 엄청나게 잡아 댔지.
덕분에 초동이 30만 장인데 총판이 35만 장으로 뜨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그때의 기억이 박힌 나도 무의식적으로 초동에 더 의미를 두고 있는 거일 테다.
“우리 LnL 식구들, 못난 대표를 믿고 다들 여기까지 잘 따라와 줘서 정말로 고맙고, 앞으로도 발전해 나가는 LnL이 될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을…….”
와, 우리 1위 수상소감보다 더 긴 듯.
그런데 딱히 대표님을 믿고 따른 적은 없는데. 믿고 따랐으면 회귀 전처럼 망돌 루트 밟고 삼겹살집에서 열 명이서 회식하고 있었겠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대표님의 소감 발표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회식이 한창 진행되는 식당을 돌아보았다.
멤버 수와 직원 수가 똑같았던 예전보다 소속사 직원들 수가 제법 늘어 있었다. 최근엔 사무실도 이사를 마쳤다.
왜 우리 숙소 이사는 계속 늦어지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서 빨리 리얼리티가 방영되어 열약한 우리의 반지하 숙소 환경이나 만천하에 알려지기만을 빌 뿐이었다.
“자자, 1등 공신 우리 레브 리더! 분위기 살리게 건배사 한 번 가자!”
대표님의 재촉에 술잔을 들고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LnL 소속사 7년 차, 대표님이 제일 좋아하는 건배사 정도는 꿰고 있었다.
“올 한 해 저희 활동 기간 동안 힘써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남은 날들 역시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우리가!’ 하면 ‘남이가!’ 외쳐 주십쇼. 우리가!”
내 선창에 우렁찬 후창이 가게를 울렸다.
“남이가!”
레브 멤버들과 잔을 부딪치고는 시원하게 원샷했다.
항상 이 건배사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남이지,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