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52화(52/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2화
미니 앨범 2집 활동이 마무리되었지만, 휴식 시간을 가질 새도 없이 우리는 또 숨 가쁘게 달려야 했다.
크리스마스에 맞추어 발매할 크리스마스 기념 팬송 녹음 및 뮤비 촬영, 그리고 연말 시상식 및 가요축제 스페셜 무대 연습이 남아 있었다.
“자, 가이드 지금 들어 보고. 이건 각자 파트.”
멤버들에게 악보를 나누어 주고는 견하준의 목소리로 녹음된 데모곡을 재생시켰다.
캐럴 멜로디 샘플링이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들어간 경쾌한 분위기의 댄스 록(dance rock)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 괜찮다고, 좋다고 칭찬 한마디씩을 던졌다.
그런 훈훈한 칭찬 릴레이가 이어지는 가운데 홀로 입 다물고 있던 류재희가 쓰읍, 숨을 들이켜며 소신 발언했다.
“과연 이 곡이 쟁쟁한 크리스마스 캐럴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왜? 애매하냐?”
“노래 좋긴 한데 확 잡아끄는 부분이 없어요.”
“나도 알고 있긴 하다만 확인 사살까지 들으니까 영 그러네?”
“아니, 형, 형의 노력을 폄하한 건 아니니까 오해하진 마시고.”
다급히 변명 같은 말을 덧붙이는 류재희를 향해 심드렁하게 한마디 던졌다.
“누가 너한테 뭐라 했냐?”
“기분이 영 그러시다는 거 아니에요?”
“솔직하게 감상 말한 건데 그게 왜. 내가 이 노래 내놓기가 영 그렇다고.”
스케줄 때문에 바쁘고 정신없는 상태에서 급히 작업한 곡이라 성에 안 차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작업하는 도중 페널티로 각혈하고 병원까지 실려 갔으니 더더욱.
마찬가지로 시간과 여유는 촉박했으나 이를 갈고 작업했던 KICKS의 편곡은 1절만이기도 했고, 동기부여도 충분했기에 만족할 수준의 결과물이 나왔다.
하지만 이 크리스마스 기념 팬송은 작업하는 데에 딱히 동기부여 할 것도 없어서 문제였지.
남이 시켜서 하는 거랑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 다르니까.
그래도 저란 말을 들은 이상 이대로 세상에 내놓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반복 재생을 시켜 놓고 툭툭 손가락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는지도 어느덧 1시간째.
어김없이 가장 적은 파트를 분배받은 서예현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내 파트는 충분히 다 익힌 거 같은데 나 방으로 들어가도 되냐?”
“아니, 그 악보 버려.”
대꾸하며 몸을 일으켰다. 소파에 대충 던져놨던 겉옷을 걸치고 현관으로 나갔다.
“수정 작업하러 다녀온다.”
김도빈 때문에, 입에 붙어 버린 보고를 내뱉고는 반지하 숙소에서 나왔다.
“그냥 네가 전세 내라. 이게 동생인지 원수인지…….”
“아, 형, 오늘까지만. 나 이제 진짜 작업실 구함.”
작업실 의자에서 비트를 찍고 있던 용철 형을 자연스럽게 밀어내고, 지겹도록 들은 파일을 열었다.
반주음의 코드 몇 개에 손을 대고, 1시간 동안 들으면서 어색하게 이어지던 부분을 캐치하여 멜로디를 수정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데모곡 따기 전에 전체적으로 한 번 들어 볼 걸 그랬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수정 없이 바로 진행했는지.
‘하긴, 지긋지긋하긴 했지.’
그때는 다시 듣기도 싫었는데 지금은 여유가 생겼기에 귀에 음악이 좀 들어오는 듯했다.
류재희의 솔직한 평가가 나름 동기부여도 됐고 말이다.
몇 군데 고쳤다고 이전보다는 들을 만해진 곡을 반복 재생시켜 더는 어색한 부분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검토했다.
‘시간도 늦었으니 견하준 불러서 가이드녹음 시키기는 좀 그렇고…….’
그냥 내가 해야겠다.
악보를 훑으며 멜로디에 맞추어 가사를 흥얼거리다가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에서 뚝 멈췄다.
내가 부르는 거 아니라고 막 작곡해 놨구나.
“형, 혹시 고음 3옥타브까지 올라가?”
“이게 작업실 삥 뜯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 데모 셔틀까지 시키네. 내가 그 정도로 고음 올라가면 발라드 가수 했지, 래퍼 하고 있겠냐?”
“형, 예전에 여친 누구였더라…… 아무튼 여자 친구한테 차이고 노래방에서 She’s gone 부를 때 고음 쫙쫙 올라가더만.”
“나가, 인마.”
내 입에서 나온 본인의 흑역사에 용철이 형이 의자를 걷어차는 시늉을 했다.
좁은 작업실은 녹음 부스가 없었기에 마이크 켜고 곧바로 가이드녹음을 진행했다.
가장 고비였던 고음은 가성으로 무사히 처리했다. 류재희가 알아서 진성으로 치환해 줄 것이다.
가이드 작업을 마치고 마이크를 끄자 뒤에서 입을 틀어막고 울 듯이 웃고 있던 용철 형이 끅끅거리며 참았던 웃음을 마음껏 내뱉었다.
“고음에서 목소리 갑자기 가녀려지는 거 개웃기네, 진짜.”
“아, 고음이 안 올라가는 걸 어떡하라고.”
“너는 평생 랩이랑 싱잉 랩만 하고 살아라. 새하얀 꿈↗ 크흡.”
“안 그래도 방금 녹음하면서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사람 그렇게 희화화하면서 따라 하지 마쇼.”
“희화화라니. 그대로 재현해 준 건데.”
내 고음 가성 처리를 따라 하는 용철 형을 향해 툴툴거리며 작업 파일을 휴대폰에 옮겨 담고는 프린트한 수정 버전 악보를 챙겨 작업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감사 인사를 남기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내가 열창한 데모곡을 재생하자 데자뷔가 일었다.
벌스까지만 해도 ‘오’ 하는 표정이더니 고음 부분이 나오자마자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꼴들을 보다가 그냥 눈이나 꾹 감았다.
그래, 나 고음 안 올라간다, 이 자식들아.
3분 15초짜리 노래가 끝나자 멤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떠냐?”
“고음이 인상ㅈ-”
“고음 이야기하기만 해 봐라.”
텀을 두고 덧붙인 말에 고음 이야기를 하던 김도빈이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이전 노래에 문제를 제기했던 류재희도 이번에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진 듯요? 확실히 멜로디가 이전보다는 머릿속에 딱 박히네요.”
“이든아, 내 파트 있잖아, ‘흰 눈이 와요 내가 그대에게 하는 첫 고백’ 이쪽. 음이 ‘와요→ 내가↗’ 이거보다는 ‘와요↘ 내가↗’ 이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목에 무리 덜 가게끔.”
“아, 지금은 좀 무리야? 내가 가이드 따면서 고음은 가성 처리해서 못 느꼈다. 그럼 악보 수정해 놓고 녹음할 때 그렇게 바꿔 불러. 막내야, 거기 펜 좀 줘 봐라.”
견하준의 요청에 악보 음표를 수정하고는 다시 견하준에게 넘겼다.
자기 파트를 연습하고 있는 김도빈과 서예현의 표정 역시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이제 녹음만 무사히 끝내면 되는데…….
녹음 당시를 회상하자, 갑자기 곧 다가올 암울한 미래가 눈에 훤했다.
내가 과연 촬영 중이라는 걸 잊지 않고 무사히 녹음을 마칠 수 있을까.
작업 과정 방송 탔다가 나만 성격파탄자 비호감멤으로 낙인찍히는 거 아니겠지.
* * *
녹음 및 촬영 당일.
샵에 들려 메이크업과 헤어 세팅이 완벽하게 된 상태로 녹음실에 도착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측에서 잡아 준 스튜디오의 녹음실은 훌륭한 편이었다.
장비 퀄리티에 걸맞게 음질도 좋았다. 다만 G1의 작업실을 보고 온 덕에 내 눈이 하도 높아졌을 뿐이지.
녹음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녹음 부스 안팎에 각각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컨트롤룸의 의자에 앉아 기도하듯 고개 숙여 중얼거렸다.
“카메라 있다는 거 잊지 말자. 지금은 촬영 중이다. 카메라, 카메라…… 작업 오늘 안에는 끝내야 하니까 마음에 안 들어도 적당히 넘기고…….”
내가 혼잣말로 마음을 다잡는 동안 견하준은 목을 풀고 있었고, 서예현은 악보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으며, 막내 라인은 자기들끼리 목소리 낮춰 속닥거리고 있었다.
“녹음할 때마다 맨날 촬영했으면 좋겠다.”
“왜?”
“봐봐, 이든이 형 벌써 마인드컨트롤 하잖아. 카메라도 있으니까 이든이 형도 좀 유해지지 않을까?”
“에휴, 형은 진짜 눈치가 없다. 이든이 형이 음악 걸린 일에 그럴 리가 있겠냐고. 저 형은 방송 촬영보단 음악이 먼저일걸.”
희망에 가득 찬 김도빈의 말에 류재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누구 말이 맞을지는 녹음이 진행되어 봐야지 알 것 같았다.
카메라의 불이 깜빡이고, 촬영과 함께 녹음이 시작되었다.
첫 타자는 류재희였다. 시원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보컬을 들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막내야, 훅 첫 소절만 다시 한번 더 해 보자.”
최대한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하자 류재희가 유리벽 너머에서 순간 식겁하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다가 내가 눈을 부라리자 황급히 표정 관리를 했다.
뒤에서 제가 엄지를 번쩍 치켜드는 게 녹음 부스 유리창에 비친다는 걸 김도빈 저 녀석은 알려나 모르겠다.
두어 번 만에 류재희의 녹음이 끝나고, 다음은 견하준의 순서였다.
역시나 오늘도 내 취향인 음색을 들으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오늘 안으로 작업을 끝내야 했기에 기준점을 100에서 80으로 낮춘 상태라 견하준도 순탄하게 두어 번 “다시” 소리를 듣고 자기 파트 녹음을 끝냈다.
“형, 왜 이렇게 가식적인 사람이 됐어요? 제가 아는 형은 이렇지 않은데……!”
중간에 가지는 휴식 시간.
내게 따뜻한 물을 건넨 류재희가 장난식으로 울먹였다.
물을 원샷하고는 자애로운 미소를 얼굴에 걸치며 말했다.
“뭐라는 거니, 막내야. 이 형은 항상 이랬잖니.”
“형, 지금 카메라 안 켜져 있음요.”
“막내야, 표정 관리 똑띠 해라.”
그 말에 류재희가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빈 컵을 내 손에서 수거해 갔다.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음 순서는…….
‘올 게 왔군.’
앞선 두 사람이 지난번 보다 훨씬 수월하게 녹음을 마치고 나온 걸 보면서 긴장감이 풀렸는지.
평온한 얼굴로 녹음 부스에 들어가는 서예현을 보며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가장 쉬우면서도 고난인 파트가 시작되었다.
나는 정말로, 웬만하면 서예현 한정으로 기준점 70만 도달해도 넘기려고 했다.
어차피 성적 줄 세우기용 곡도 아니고, 그냥 깜짝 선물용 곡이니까.
그런데 도저히 타협이 안 되더라. 기준점 80까지는 끌어올려야지 내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오겠더라.
“잠깐만, 다시 가 보자. 소복이 쌓인 눈을 헤치고- 이 부분까진 괜찮았거든? 그런데 그 뒤쪽 음정이 흔들린다.”
“형, ‘헤치고’ 이 부분 부를 때 목에 힘 좀 빼 봐. 그 뒤부터 음정이 흔들려 버리잖아.”
“내가 여기 바이브레이션 넣으라고 했던가? 힘만 빼라고 했는데 음이 왜 떨려. 다시.”
“엇박 아니라 정박이다. 박자 맞춰. 다시.”
“나 분명히 아까 정박이라고 했어. 다시.”
“박자 맞추라고. 다시.”
“하아, 다시.”
“다시.”
내 입에서 나오는 문장이 짧아지고 내 얼굴에서 점점 표정이 사라져갈수록 녹음실의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기어이 열 번째 “다시”를 말한 나는 묵직한 한숨을 내뱉으며 MR을 끊었다.
나랑 눈이 마주하자마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서예현을 향해 손을 까딱이며 말했다.
“예현이 형, 잠깐 나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