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2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20화(522/52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20화
“왜?”
내 물음에 류재희가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장유유서잖아요.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제가 먼저 솔로 앨범 발매를 하면 안 되죠.”
류재희의 마음이 너무 기특해서 곡 하나를 더 추가해 주려다가 이러다간 정규 앨범 수준이 될 것 같아서 참았다.
류재희 본인이 솔로로의 정규 앨범은 조금 더 가수로서의 본인을 증명해 보인 후에 내고 싶다고 하니 본인 의견을 존중해 줘야지 어쩌겠는가.
“됐어, 인마. 솔로 앨범은 메인 보컬이 먼저 내야지. 형이 그 정도도 양보 못 해 주겠냐.”
“뭐, 그 이유뿐만이 아니더라도… DTB 시즌 6이 7월에 방영하면 적어도 5월에는 형 앨범이 나와야 하지 않겠어요?”
아, DTB가 있었군. 시즌 5가 하락세를 보이고 와중에 DTB 팬덤이 계속 나를 소환해 대는 걸로도 한 소리를 들은 터라 시즌 6에서도 내가 그렇게까지 조명될지 의문이긴 했다.
“우리 막내가 형 DTB랑 경쟁 피하라고 배려도 다 해 주네. 그런데 딱히 상관없는데. 내가 DTBF도 낸 사람인데 덥넷 눈치 보겠어?”
“형이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DTBFxxk이 맞나 봐요?”
“어허, future라니까.”
사실 하도 우겨 대다 보니 내가 사실 어떤 의도로 F를 넣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진짜 Future였나, 아님 Fxxk이었나.
“제가 봤을 때는 작년 시즌이 제대로 하락세를 탄 덕분에 덥넷 쪽에서 형을 어떻게든 팀 프로듀서로라도 영입하려 할 거란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이번 해부터 원백이 DTB 팀 프로듀서 라인업에서 빠진다는 말을 용철이 형한테 들은 상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하락하는 추세인 프로그램에서 나름 프로그램의 정체성 중 하나였던 원조 팀 프로듀서가 빠진다라… 현재 Wnet, 특히 DTB 발등에 불 떨어진 건 자명해 보였다.
“그런데 형이 만약에 프로듀서 캐스팅을 오케이할 생각이 있으면 솔로 정규 앨범 하나는 나온 상태여야 넷상에서 형한테 심사위원 자격으로 왈가왈부할 일이 줄어들 거 같아서요.”
역시 류재희는 혜안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덥넷한테 캐스팅 제의도 오지 않은 상황에서 생각이 있니 마니 해 대는 것도 좀 웃기기에 그건 좀 뒤로 밀어 놓기로 했다. 발매 순서야 두 앨범 작업 다 마쳐 놓고 바꿔도 되는 거고.
“그러면 딱 말해. 네가 진짜 여름 감성을 하고 싶어서 메인을 여름 감성으로 간다고 하는 거야, 아니면 내 솔로 앨범 발매일 생각해 주느라 봄 감성 하고 싶은데 포기한 거야?”
“아무래도 벚꽃 시즌 특수는 너무 경쟁력이 쟁쟁해서 올해는 여름 특수라는 틈새시장을 노려보려고요. 봄 시즌 연금곡은 정규 앨범으로 부탁드려요. 크리스마스 연금곡은 그룹에 양보했으니 벚꽃 시즌 연금곡은 욕심내도 되잖아요?”
넉살을 떠는 류재희의 머리를 헤집으며 피식 웃었다.
“알았다. 네가 정 여름 감성으로 솔로 앨범을 내고 싶으면 DTB고 뭐고 제쳐두고도 내가 봄에 나와야지 어쩌겠냐.”
생각 바뀌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류재희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런데 형, 저희 없이 형 혼자 서바이벌 나갔을 때 어땠어요?”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지. 그룹으로 평가받기만 하다가 나 개인한테 관심이 집중돼서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왜, 너도 개인 서바이벌 나가 보게?”
가벼운 농담이었는데 의외로 류재희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바이벌은 아니고 공중파 보컬 경연 예능이에요. 솔로 앨범 내기 전에 이렇게라도 인지도를 높이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요.”
내 표정이 진지해지자 류재희가 멋쩍게 웃었다.
“솔직히 제가 레브에서 개인 인지도는 제일 낮잖아요. 그룹 막내라는 캐릭터성만 제일 뚜렷하고.”
한창 핫한 이슈였던 힙합 서바이벌 우승자, 공중파 버라이어티 예능 고정 패널, 시청률 대박 친 드라마 주조연, 현 세대 한국에서 미남의 대명사가 된 인간 하나.
이런 멤버들 틈바구니에서 단순 메인 보컬이라는 정체성은 곡에서는 단연 돋보여도 외부 인지도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류재희가 서라온 선배님과 함께 했던 듀엣에서 서라온 선배님이 남성 보컬 격파를 하며 류재희의 보컬 실력이 반짝 주목받았을 뿐이지.
“저한테 제안 들어왔다고 소속사 통해서 전달 받긴 했는데 아직 참여 여부 결정은 못 했어요. 대충 훑어 보니까 원로 가수 분들이랑 락밴드 보컬 분들 같은 쟁쟁한 분들이 노래로 경연하는 예능 같은데 비교군인지 아니면 언더독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돌 보컬도 필요한가 봐요.”
설명을 들으니 무슨 예능인지 알 것 같았다.
류재희가 회귀 전에 나갔던 예능이기도 했다. 원래 캐스팅된 그룹 메인 보컬이 펑크내며 땜빵 용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류재희는 나름 그곳에서 선방하며 인지도를 높였었다.
편곡 라운드에서 곡 해석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결승까지 두 계단을 앞두고 탈락 했지만 그래도 유제라는 보컬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켜 줬던 경연 예능이었다.
신선한 포맷과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쟁쟁한 참가자들, 매주 나오던 레전드 무대 덕분에 프로그램 자체도 주목을 제법 받았고.
“한번 해봐. 쟁쟁한 가수들 다 나오면 어때. 네가 다 이기면 되지.”
그때 다른 그룹을 프로듀싱하느라 바빠 류재희의 편곡을 도와주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결과를 보고 싶어 흔쾌히 류재희의 등을 떠밀었다.
그 프로를 꼬박꼬박 챙겨 보지는 않아서 각 라운드마다 도움을 주는 건 어렵지만 그때 도와주지 못했던 그 편곡 라운드만은 류재희가 우승할 수 있게 전력을 다해 도와줄 생각이었다.
류재희가 영 자신 없어 하는 목소리로 잔뜩 말끝을 흐려댔다.
“제가 거기 나가도 주목받을 수 있을까요… 보컬 실력 선보이려고 나가는 건데 거기에서 제 한계만 보여 주고 오면…”
“얌마, 경연은 기합이야. 공중파에서 한다며. 그러면 적어도 DTB보다는 점잖겠지.”
사실 공중파든 지상파든 어떤 경연이든 DTB보다는 점잖을 것 같긴 했다. 사람 면전에서 욕 갈기고 디스하는 서바이벌 흔치 않지. 물론 나는 바르고 고운 말만 썼지만.
“언더독으로 멋있게 뒤집고 와. 아이돌 래퍼도 우승했는데 아이돌 메인 보컬이 우승 못 할 이유가 뭐가 있냐.”
류재희가 지능 외주를 받아줬으니 나도 자신감 외주 정도는 받아 줄 수 있었다.
류재희에게 한창 자신감 외주를 주고 있는데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어우씨, 이 새… 자식 또 전화질하네.”
목 끝을 넘어 혀끝까지 나온 욕을 겨우 삼켰다. 그런 내 반응을 본 류재희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형 사생한테 번호 털렸어요?”
“아니. 뻔뻔한 독촉꾼 하나 있어.”
이걸 받아야 해, 말아야 해? 어차피 받아도 똑같은 소리를 해 댈 게 분명해서 수신 거부를 하니 득달같이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다시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에 류재희가 당황하며 물었다.
“형 사채 썼어요?”
“하… 차라리 사채면 좋겠다. 사채는 돈으로 갚을 수라도 있지. 이건 돈으로 무마도 안 되는 거라.”
마른세수를 하며 과거의 내 주둥아리를 매우 쳤다. 물론 실제로 치면 아프니까 상상으로만 쳤다.
내가 그때 왜 승낙을 해서 일을 귀찮게 만들었지. 내가 그때 오케이만 안 했으면 이렇게 시달릴 일도 없었을 텐데.
낙하산은 이제 슬슬 컴백해도 될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는지 내게 빚 독촉도 아니고 곡 독촉을 해 대고 있었다. 양심이란 게 어디로 갔나 싶었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드는 놈이 마음에 안 드는 짓만 골라서 한다.
다른 놈이었으면 초심도 감점을 감수하고 쌍욕을 박았을 텐데, 하필 낙하산 이 자식이 견하준이 뉴본 데뷔조였을 때 겉돌았다는 것과 밀려난 이유도 알고 있어서 문제였다.
그걸로 협박질을 해 대네, 시발롬이.
낙하산이 공격당한 가장 큰 이유가 몇 년간 동고동락했던 데뷔조 멤버였던 견하준을 밀어내고 뻔뻔하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건데, 낙하산이 그걸 밝히면 당시 그 일에 엮이기 싫어 입을 다물고 있던 우리까지 이번에는 진흙탕 싸움에 제대로 끌려 들어갈 수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KICKS 놈들도 문제였다. 그 자식들이 견하준을 제대로 포용하기만 했어도 낙하산 자식이 나한테 이런 협박질을 못 했을 거 아니야.
2년이라는 시간은 잊히기도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아주 작은 불씨만 있다면 다시 불타오르기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 일에 관계된 모두가 아직 연예계를 은퇴하지 않았다는 것까지, 아주 환장의 콜라보군.
“아하.”
내 휴대폰 화면에 찍힌 부재중 전화의 이름을 고개 쭉 빼고 훑은 류재희가 상황을 금세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곡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직도 안 줬어요?”
“곡은 주려고 했어. 다만 대중들이 화해했다고 생각할 건덕지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적당히 예명 쓰려고 했지. 그런데 낙하산 이 자식이 계속 내 이름이 올라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대잖아.”
“그쪽은 형 곡을 받아서 이쪽이랑 화해했다는 이미지를 덮어쓰는 게 좋으니까 그렇죠. 그러면 KICKS만 이제 피해자한테 용서받지 못한 가해자로 남는 거잖아요.”
류재희가 내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낙하산의 생각 양식을 제대로 짚어 주었다.
와, 그냥 내 곡을 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이런 음침한 의도가 숨어있었다고? 내 마인드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이런 젠장, 그 자식은 그러면 절대 작곡가명 양보 안 하겠네.”
전에도 다짐했듯이 나를 이용해 먹으려 하는 게 괘씸해서라도 정이서 좋은 일은 결코 해 주고 싶지 않았다.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류재희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두드리며 물었다.
“그러면 형은 지금 낙하산한테 곡을 가명으로 주기를 원한다는 소리죠?”
“어어, 그래야지 내가 기획한 ‘하준이한테 복수의 기회 주기’ 프로젝트가 막을 올릴 수가 있거든. 누구 덕분에 지금 시작조차 못 하고 있긴 하지만.”
올해로 어떻게든 이 질긴 악연을 끝내리라 다짐하며 이를 갈았다.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인 류재희가 은근하게 운을 뗐다.
“형,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 알아요?”
그래, 내가 준 자신감 외주 값을 두뇌로 받을 차례지. 나름 기브 앤 테이크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