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2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25화(527/54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25화
“100위였던 게 기억나는데, 95위였던 것도 기억나거든요? 그런데 그냥 100위에서 95위로 올라간 거 아니에요?”
“아니야, 처음부터 95위였다니까?”
류재희는 기억을 헷갈려 하는 것 같고, 서예현은 확실히 95위라고 믿고 있고.
“차트 끄트머리라는 것만 기억하는데. 아무튼 위로 올라가지 않았어? 진입 순위가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견하준은 헷갈리는 게 아니라 그냥 순위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고.
막내 라인만 헷갈리는 걸 보니 저 두 녀석들은 차트인부터 추억 회상을 하고 있었나.
이렇게 말이 갈리는데 이게 큰 흐름을 어긋나게 하지 않은 걸로 인정된 게 용하다 싶었다. 그때 정말로 삐끗했으면 돌아오지 못하고 5년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는 끔찍한 사실이 피부로 느껴져 소름이 다 돋았다.
증겨를 남겨 놨던 김도빈과 서예현이 캡처해 놓았던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김도빈이야 당연히 차트를 캡처해 놓았을 것 같긴 했지만 서예현이 캡처한 건 조금 의외였다.
하긴, 바꾼 과거에서는 진정한 회귀자가 된 내가 불화 조장을 일으킨 일도 없고, 후속곡으로 갈등을 일으킨 일도 없으니 서예현도 역주행 차트인이라는 뜻밖의 행운에 순수하게 기뻐했을 만하지.
“자, 여기. 5년 전 8월 19일에 레몬 차트 95위잖아.”
차트 95위 캡처본을 찾은 서예현은 사진 상세 정보까지 보여주었다.
“저희가 차트인했던 게 19일이었어요?”
“그건 몰라. 데뷔 2주 차 되기 전에 차트인 했으니까 시간상으로 대충 맞지 않아?”
“진입하고 바로 캡처한 거예요, 아니면 시간 좀 두고 캡처한 거예요?”
“네가 사진을 찾으면 100위 진입인 게 증명이 되지 않아?”
“그래서 지금 저도 찾고 있어요.”
열심히 갤러리 스크롤을 내리고 있던 김도빈이 당혹감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라, 이상하다… 그때 분명히 캡처했는데 왜 안 보이지?”
아무래도 김도빈이 간직하고 있던 사진이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오만가지 피사체를 다 찍어 대고 별걸 다 캡처해 대는 김도빈의 갤러리를 보고 있자니, 오히려 캡처본을 못 찾는 게 이상하진 않았다.
본인도 사진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본인 휴대폰에 귀신이 들렸다고 난리 치지는 않는 걸 보니 지금의 현상을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았다.
“거 봐, 그냥 기시감이라니까.”
이때를 틈타 냉큼 물타기를 시도했다.
“…기시감? 데자뷰…? 작업실…?”
그리고 내 말은 류재희의 어떠한 기억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또 작업실의 삿된 기운 음모론을 내뱉으려는 류재희에게 잽싸게 휴대폰을 쥐여 주며 말했다.
“막내야, 인터넷으로 차트인 찾아봐라. 이런 건 네가 전문이잖냐.”
본인이 잘하는 일을 부탁받은 류재희는 금세 기시감이든 데자뷰든 잊고 눈을 빛내며 SNS와 팬카페 검색을 시작했다. 그런 류재희의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마음을 놓았다.
“인터넷 검색해 봐도 가 차트인한 사진은 95위부터밖에 없어요.”
역시 모니터링의 대가답게 금방 찾아낸 류재희가 우리한테 찾은 사진을 보여 주며 브리핑했다.
“이때 저희가 팬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짹에도 팬카페에도 게시글이 하나씩밖에 없어서 늦게 발견하고 올리신 건지, 아니면 이제 진짜 진입 순위인 건지를 모르겠네요. 올라온 날짜는 19일, 20일.”
결국은 김도빈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고, 95위 진입이 맞다고 결론이 났다.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소름이 돋으… 려다가 말았다. 그래서 100위 캡처 사진이 삭제된 거야, 원래 없었던 거야, 아니면 95위로 바뀐 거야?
김도빈이 그 캡처본을 본인이 삭제했는지 아니면 95위로 바뀌면서 100위 진입이 없던 사실이 되어 존재가 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조금 오싹하긴 했다.
차연호가 열심히 우기던 기억 조작 진실이 바로 이거였을 수도.
없는 기억을 진짜라고 우긴 게 아니라 회귀 전 기억들을 교묘하게 끼워 맞춰 헷갈리게 만드는 거지. 물론 차연호가 가지고 있는 악질 위험도 시스템이라면 없는 기억을 진짜라고 우기게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이긴 하다만.
그러고 보니 차연호는 내가 보낸 문자에 아직도 답이 없었다.
나는 그저 점잖게 왜 교통사고 피하려고 하지 않고 몸빵을 했는지, 그리고 왜 몸빵하면서 나한테 위험도 시스템을 넘기려 한 건지, 의도가 함께 시스템을 없애 보자는 긍정적인 의도였는지 아니면 나한테 넘기고 뒈져 버리려던 속셈이었는지, 만약 본인이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으면 나한테 홀랑 시스템을 넘겨서 나는 듀얼 시스템 체제로 살게 만들고 본인은 시스템 없는 행복한 세상에서 살려고 했는지, 만약 함께 시스템을 없애 보자는 긍정적인 의도였으면 왜 나랑 미리 의논을 하지 않았는지, 설마 앞 문장을 읽고선 나를 바보로 알고 긍정적인 의도였는데 미처 연락하지 못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할 생각은 아닌지, 그리고 시스템을 나한테 토스하고 본인은 무슨 목적을 이뤘는지.
이렇게만 아주 소소한 피드백을 요구하는 문자를 보냈을 뿐인데.
이게 이렇게 답장이 몇 주씩 걸릴 일이냐고. 병원 침대에 누워서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하루 만에도 답장 보냈겠다. 퇴원을 하고도 보내지 않는 건 일부로 씹는다는 소리밖에 더 되겠는가.
그래서 차연호한테도 괘씸죄가 또 추가되었다.
나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이라 상대의 개짓거리든 선의든 결코 잊지 않는다.
물론 차연호도 따지자면 내 장례식에 온 사람 명단에 들어가 있었지만 의도가 불순하잖아. 그러니 이건 개짓거리로 분류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나름 직속 후배인데 저희가 홍보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여? 이든이 형, 소속사에서 전달받은 거 없어요? 인별 게시글 좀 올려 주라든가, 아니면 커버 영상을 찍어 달라든가.”
“딱히 없는데?”
레브 여동생 그룹으로 데뷔 전부터 홍보한 것치곤 소속사는 딱히 우리한테 홍보를 부탁하진 않았다.
“찾아보니까 이든이 형이 편곡 참여한 정도로 소소하게 홍보되고 있는 거 같은데요? 저희가 너무 적극적으로 홍보해도 마플 뜨기 쉬우니까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아요. 지금 적당히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류재희가 줄줄 말하는 사이, 매니저 형한테서 문자가 도착했다.
“엥, 우리한테 니텐스랑 같이 커버 영상 찍어 달라는데?”
“미쳤어! 하지 말라고 해요! 데뷔 막 한 애들 욕먹일 일 있냐고! 해도 우리끼리 커버한다고 해요!”
류재희의 다급한 만류로 합동 커버는 무산되었다. 사옥에서 마주한 니텐스 리더가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네는 걸 보니까 딱히 니텐스에게 도움이 되는 홍보 방식은 아니었나 보다.
* * *
<보이스 레거시> 1화 방영만으로도 류재희는 그 쟁쟁한 20인의 가수들 틈새에서 충분히 주목을 끌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인정한 그 지옥의 조에서 아이돌 보컬이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을뿐더러 걸 그룹 보컬이 탈락하며 경연에 유일하게 남은 아이돌이 되었기에 희소성 면도 챙겼다.
얕잡아 보던 아이돌 보컬의 반전 실력이 셀링 포인트라 이것도 따지고 보면 언더독 서사지.
내가 힙합 서바이벌에서 써먹지 못해서 매우 아쉬웠던 그 서사를 류재희가 보컬 경연에서 마음껏 보여 주어 절로 대리만족이 되었다.
이제 내가 DTB에서 보여줄 수 있는 언더독 서사는 참가자들에게 무시당하는 팀 프로듀서밖에 없었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프로듀서를 선택한 유일한 참가자한테 끝내주는 곡과 무대 프로듀싱으로 보답해 주는.
그런데 솔직히 이것도 안 될 것 같다. 나는 무시당하기에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개쩌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류재희는 내가 모르쇠 하며 스포를 슬쩍 흘린 대로 특정 파트의 음역대를 바로바로 바꾸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류재희가 2라운드에서 누구랑 붙는지는 까먹었지만 일단 2라운드에서 붙는다는 건 알았기에 마음이 좀 놓였다.
견하준의 솔로곡 디지털 싱글 발매 준비 역시 착실히 진행되어 갔다.
“방금 괜찮았어? 진짜? 나는 끝음이 좀 떨린 거 같은데 진짜 괜찮았어?”
“한 번만 더 해 볼게. 이번에는 끊어서. 방금 거랑 비교해서 뭐가 더 나은지 판단 좀 해 줘.”
“첫 번째 버전이 더 괜찮았다고? 다시 들어 봐. 내가 두 버전 다 다시 불러 볼게.”
“아니, 준아. 내가 충분히 판단하고 말한 거라니까. 열 번째야, 열 번째! 다음 소절로 좀 넘어가자!”
“이든아, 예현이 형은 스무 번씩 ‘다시’ 하잖아. 그런데 나는 겨우 열 번만 해도 질려…?”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아오, 미치겠네! 왜 또 논리가 거기까지 점프하냐고! 불쌍한 척 연기하지 마, 인마! 다 보여!”
“정말? 연기 수업 좀 더 받아야겠네.”
“그 정도 가증스러운 연기는 다 보이거든? 나 참, 누구를 그 정도도 파악 못 하는 놈으로 보냐.”
견하준은 레코딩 과정에서 본인이 더 나를 들볶았다. 승부욕이 제대로 발동된 모양이었다.
발매 날짜도 본격적으로 잡혔다. 4월 1일. 최대한 낙하산보다 선빵을 쳐 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날짜였다.
뮤직비디오는 기획 시간도 촬영 시간도 부족했기에 따로 촬영하지 못하고 녹음실에서 녹음하는 장면이 다였다. 나도 까메오로 슬쩍 얼굴 한 번 비추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보면 궁금증이 들긴 했다.
“낙하산은 어쩌고 있으려나.”
계륵 같은 곡으로 컴백 준비를 하고 있을 낙하산이.
아마 내게 새 곡을 달라는 소리는 죽어도 못할 것이다. 곡은 겉으로는 문제가 없고, 그 곡을 소화 못 시키는 건 본인의 실력 부족으로 인식을 하고 있을 테니까.
자존심이 더럽게 센 놈이 과연 남한테 그걸 순순히 인정하고 털어놓으려 할까?
당장 디그린 연습생 시절 일화만 들어도 그 드높은 자존심을 자알 알 수 있는데. 나한테 복수한다고 설친 것도 내가 본인을 낙하산이라고 면전에서 깎아내려 본인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가 아니냐고.
그렇다고 또 새 곡을 받아 올 생각도 함부로 하지 못할 거다.
어쨌건 나한테 곡을 받아 왔다는 정신 승리를 하기에는 딱 좋지 않나. 일단 곡 멜로디는 좋으니 이 곡으로 재기에 성공할 거라는 미약한 희망을 놓지도 못할 테고.
잠깐만… 이거 완전 자존심 때문에 본인 발등을 찍다 못해 본인 살을 파내는 중인데.
“준아, 가끔은 자존심을 조금 꺾을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이렇게 반면교사 거리가 많다니, 세상은 참 넓구나. 왜 회귀 전에는 알지 못했을까.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견하준이 약간 부루퉁한 얼굴로 반박했다.
“곡을 완벽하게 발매하려는 게 어때서.”
“너 말고 나.”
내 대꾸에 견하준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귀도 손으로 덮지 그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