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53화(53/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3화
녹음 부스 밖으로 나온 서예현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서예현의 파트가 표시된 악보를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지금 형 문제가 뭐냐면, 박자가 계속 밀려. 내가 계속 정박이라고 했는데 계속 끝을 엇박으로 마무리해 버리잖아.”
생각보다 차분한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직접 그 파트를 불러 주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한 듯했다.
결국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서예현이 헤매는 부분의 박자를 재현해 주었다.
“이 박자에 맞춰. 알겠지?”
서예현의 손가락이 내가 재현해 주었던 리듬대로 책상을 툭툭 쳤다.
“보컬 파트는 괜찮았으니까 랩 부분만 다시 해 보자. 박자 신경 쓰고. 정박자 헷갈리면 손가락으로 손바닥 박자 맞춰 두드리면서 해 봐.”
미묘한 표정의 서예현이 다시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MR을 재생시키고 녹음을 진행했다.
충고해 준 대로 손바닥을 두드려 박자를 맞춰 가며 랩 파트를 소화해 내는 서예현을 보며 뻑뻑한 눈을 깜빡였다.
‘잠깐, 전에 윽박지르기만 했을 때보다 효율이 훨씬 좋은데…….’
내가 짜증만 냈을 때는 초심도도 깎이고 내 정신 피로도도 깎이고 저 인간 멘탈도 깎이고, 아무튼 가지가지 깎여서 작업 시간만 늘어났는데.
지금은 지적 한 번에 많이 발전했다.
역시 당근과 채찍에서 당근이 답이었던 건가.
게다가 짜증에 에너지 소모도 덜 해서 그런지 심신이 이전보다는 편했다.
서예현의 랩에 맞춰 책상을 두드리고 있던 손가락이 마지막 부분에서 목소리와 살짝 어긋났다.
저도 방금보다 훨씬 나아진 걸 느꼈는지 한껏 뿌듯한 표정으로 내 쪽을 보는 서예현을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시. 마지막까지 박자 신경 써. 마지막에 늘어지잖아.”
그래도 기준점 80은 달성해야지.
비록 여러 번 내 입에서 “다시” 소리가 나오게 만들고 한 파트만 몇 번을 반복했지만, 서예현 파트 녹음은 무사히 끝났다.
마지막으로 김도빈의 녹음 차례.
자신만만하게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간 김도빈이 한 소절을 내뱉자마자 바로 MR을 정지시켰다.
“도빈아.”
화를 꾹꾹 눌러 참은 내 부름에 김도빈이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네.”
“지금 나랑 장난해? 이 노래 장르가 R&B야? 네가 하는 그 소몰이창법이 이 파트에 어울린다고 진심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부른 거냐?”
지끈거리는 미간을 꾹꾹 누르자 김도빈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죄송합니다…….”
“똑바로 하자. 처음부터 다시 간다.”
내 오른쪽 의자에 앉아서 구경하고 있던 류재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빈이 형은 분위기를 푸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이든이 형이 음악에는 예민한 거 알면서 굳이 녹음할 때 장난을 쳐서, 쯧쯧.”
그러고서는 옆에서 촬영하는 카메라를 보며 한마디 슬쩍 덧붙였다.
“그래도 눈치는 없지만 착한 형이에요.”
대략 서예현의 3분의 2 정도 “다시”를 외치고 나서야 김도빈의 녹음 역시 무사히 끝났다.
“기준 너무 빡세요, 형. 저는 보컬 라인이라기보다는 굳이 따지자면 메댄이라는 정체성이 더 큰데…….”
“귀로 음악 들을 때 네 춤 실력도 보인대? 언제부터 음악이 청각과 시각을 모두 아우르는 공감각적 영역이었냐?”
코웃음을 치고 녹음 부스로 들어갔다. 마지막은 내 차례였다.
컨트롤룸에서 헤드셋을 쓴 두 막내 라인 녀석이 팔짱을 낀 채로 나란히 앉아 부스의 유리 벽 너머로 나를 보고 있었다.
엄격한 얼굴을 하려고 노력하는 그 꼴들이 웃겨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 파트는 총 두 군데였다.
하나는 1절 벌스 중간, 하나는 2절 훅 바로 앞.
1절 벌스 중간 부분 랩을 마치자마자 MR을 끊은 류재희가 턱을 치켜들었다.
“다시.”
“까불지?”
“우왕, 이든이 형 팬이에요! 너무 멋있어서 다시 한번 더 듣고 싶어요!”
“에휴, 알았다. 다시 MR 틀어.”
막내 녀석들의 장단에 맞추어 주느라 두어 번 파트를 반복하고 나서야 내 파트 녹음까지 디렉팅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멤버들이 쉬고 있는 동안 믹싱 작업까지 마치고 mp3 파일로 변환한 파일을 usb에 옮겨 담았다.
매니저 형한테 녹음 작업이 끝났다고 알리니 리얼리티 프로그램 스태프들이 들어와 카메라를 회수했다.
“한 분씩 개인 인터뷰 딸게요.”
리더라는 이유로 내가 제일 먼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나만 남고 나머지 멤버들이 녹음실을 나갔다.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마주하자 질문이 던져졌다.
“녹음 작업하면서 어렵거나 힘들었던 점은 없으셨나요?”
예상 범위 안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결과물이 제가 생각했던 느낌 그대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점이 조금 답답하긴 하죠. 제 이상, 그러니까…… 기대치만큼 멤버들이 따라오지 못할 때도 있고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완성도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간만 충분했으면 100까지는 어려워도 90까지는 뽑아냈을 텐데.
“인터뷰 자리를 빌려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일단 하준이랑 재희, 언제나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내줘서 고맙고. 도빈아, 장난을 치고 싶으면 오케이 사인 한 번에 떨어질 자신 있을 때 쳐라. 형 힘들다. 마지막으로 예현이 형, 내 기대치가 높아서 힘들었을 텐데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워. 그리고 다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큼큼, 말하고도 괜히 민망해서 헛기침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다음 타자인 서예현이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닫히는 문을 보자 문득 불안감이 몰려왔다.
“저 인간, 내가 쥐잡듯이 잡았다고 인터뷰에서 내 욕하는 거 아니겠지…….”
“설마. 예현이 형도 우리 그룹이 불화설에 휩싸이는 건 바라지 않을 거야, 아마. 그리고 오늘 예현이 형한테 유하게 잘 말하던데, 무슨 걱정이야.”
“불안하니까 ‘아마’는 빼 주라, 준아.”
그렇게 막내인 류재희까지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야 드디어 퇴근할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힘없이 늘어진 서예현이 투덜거렸다.
“다음 활동부터는 녹음 작업 과정 촬영해서 어디 뭐 비하인드로 풀든지, 우리 너튜브 계정 파서 올리든지 하자. 뭔 카메라 하나 있다고 사람이 그렇게 360도 변하냐.”
“180도겠지. 360도면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잖아.”
빡대가리 같은 말을 정정해 주고는 한마디 더 했다.
“그리고 형이 실력을 늘려 오기만 하면 우리 은퇴할 때까지 오늘처럼 대해 줄 수 있어.”
“오, 내 실력 이전보다 늘었어?”
“무슨 착각을 하는 건지는 알겠는데 형 실력이 늘어난 게 아니라 이번 작업물에 한해서 내 기대치를 줄인 거거든. 형 실력은 아직도 노답이야.”
[멤버들과의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저것도 오랜만에 보이니까 왠지 반가웠다.
물론 초심도가 깎일 때의 고통은 전혀 반갑지 않았지만.
아이고, 답답해라. 멘탈 약한 누구누구 때문에 노답 실력을 노답이라 하지도 못하고.
* * *
곡이 완성되었으니 이제 뮤직비디오 촬영에 들어갈 차례였다.
반지하 숙소의 좁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카메라가 그런 우리를 찍고 있었다. 건네받은 큐시트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자신이 뽑은 쪽지에 적힌 멤버에게 주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정해 보세요. 크리스마스 선물은 뮤직비디오 촬영 때 공개됩니다.”
우리의 앞에 다섯 개의 쪽지가 담긴 상자가 등장했다.
류재희가 작은 상자를 들어 흔들어 보는 동안 계속해서 큐시트의 문장을 읽어 내렸다.
“쪽지에는 레브 멤버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하나씩 뽑으신 다음 본인이 뽑은 멤버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정해서 뮤비 촬영 전까지 마련해 주시면 됩니다. 지원금은 5만 원이며, 예산 초과 시 개인 지출도 가능합니다. 네, 그렇다네요.”
따지자면 마니또 같은 건가. 뮤직비디오 촬영 때 공개되는 거라면 성의 없는 선물이나 가격대가 저렴한 선물은 절대 금물일 테고.
쪽지를 하나씩 가져간 멤버들이 그걸 펼쳐 보기 전, 진지한 얼굴로 아직 접힌 상태의 쪽지를 손에서 굴리던 류재희가 불쑥 물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뽑는 경우는 어떻게 해요?”
“자기 필요한 거 사서 나 자신에게 셀프로 선물해야지. 어쩌겠냐.”
내 시큰둥한 대꾸에 류재희가 질색하며 안고 있던 쿠션에 머리를 박았다.
“우와아, 진짜 싫다. 제발 나 자신 안 뽑았길.”
그런 류재희를 의외라는 눈으로 돌아본 서예현이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나름 괜찮지 않나? 딱히 필요도 없는 선물을 받느니, 내가 필요한 거 사는 게 훨씬 낫지.”
“아니죠, 형. 과연 누가 나한테 무엇을 선물할까 상상하면서 선물 받을 날만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설렘! 두근거림! 이게 묘미라고요. 그런데 나를 뽑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딱히…… 나는 차라리 돈으로 줬으면 좋겠다.”
세속에 찌든 어른 같은 말을 내뱉는 서예현의 옆에서 류재희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엥, 돈은 너무 성의 없지 않아요?”
“그 돈으로 내가 필요한 거 사면 되지.”
“정성이 없잖아요. 난 돈 받으면 나한테 신경 하나도 안 쓴 거 같아서 기분 나쁠 거 같은데. 아니, 저만 그래요? 형들은 어떻게 생각해요?”
류재희가 우리를 휙 돌아보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견하준이 류재희의 의견에 손을 들어 주었다.
“선물은 정성이지.”
김도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뭔 소리임. 머니머니 해도 돈이 짱이에여. 저를 뽑으신 분은 부디 두툼한 돈 봉투로 부탁드립니다.”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당당하게 돈 봉투를 요구하는 김도빈을 돌아본 류재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이랑 예현이 형은 낭만이 없어.”
“허얼, 낭만이 밥 먹여 주냐?”
한껏 얄미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김도빈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으며 입을 열었다.
“뭐, 예현 형이나 도빈이 말대로 돈으로 받으면 효율적이긴 하겠다만 나도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 담긴 거라 생각하는 편이라. 그래서 나도 막내에게 한 표.”
“역시 이든이 형은 낭만이 있군요.”
류재희가 크으, 소리를 내며 옆에서 짝짝 박수 쳤다.
멀뚱히 나를 보고 있는 서예현과 시선이 마주하자 심드렁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봐?”
“아니, 의외다 싶어서. 너도 돈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참 의외인 것도 많아. 대체 저 인간 머릿속의 나는 어떤 이미지이길래 뭐만 하면 의외라는 건지.
“나도 일단 나름 창작자거든…….”
메마른 감성으로 어떻게 곡을 쓰겠냐.
대화를 적당히 잘라 내라는 수신호에 서로의 쪽지를 보지 못하도록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는 쪽지를 펼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실화냐.’
쪽지에 반듯하게 적힌 이름 석 자를 보며 터져 나오는 한숨을 꾸역꾸역 삼켰다.
[서예현]이거 교환은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