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3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35화(537/54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35화
우리를 보는 견하준의 눈에 삐딱한 빛이 감돌았다.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보자 견하준이 눈을 접어 가면서까지 아주 싱그럽게 웃고 있어서 그 삐딱한 눈빛은 다시 보이지 않았다.
“한 명.”
견하준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우르르 몰려가면 과보호 받는 거 같아서 민망하잖아. 한 명만 있으면 돼.”
한 명이라니! 네 명 중에 겨우 한 명이라니!
다 같이 억장 무너진 표정을 짓고 있자 견하준이 여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설마 재미있어서 보여서 다 같이 따라간다는 건 아니지? 설마 우리 멤버들이 그러지 않을 거라고 나는 믿어.”
관짝 뚜껑 덮고 못질까지 한 셈이었다.
견하준이 저렇게 말한 이상, 계속 다 같이 따라가겠다고 고집 부리면 멤버가 일 때문에 보기 싫은 놈들 만나는 걸 본인 도파민 채우기 위해 직관하러 따라가는, 아주 싹수 노란 놈이 되는 거다.
그리고 고집 부린 놈이 싫어하는 국이 일주일 내내 밥상에 오르겠지.
“한 명 정해지면 내일까지 알려줘.”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언젠가 들은 김도빈의 말이 환청처럼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견하준이 거실을 떠나 본인 방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최후의 1인을 차지하려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냥 나한테 양보해. 내가 다녀와서 썰 풀어 줄게.”
“썰은 제가 제일 맛깔나게 푸는 거 모르세요?”
“썰 듣는 거랑 직관은 다르지! 야구 중계 방송이랑 직관의 느낌이 다르듯이!”
서예현이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어릴 적 사진으로 구단 유니폼 입은 야구장 직관 사진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다운 비유였다.
저 버럭 하는 외침에서 정말로 간절히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지만, 나 역시 견하준 방송 활동 첫날 때부터 기다려온 이 시간을 양보할 수 없었다.
견하준과 정이서만 있었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프로시비러에 빈정거리기 1급, 얼굴 철판 1M 최현민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최현민의 인성으로 봤을 때 낙하산을 꼽주고 깎아내리기 위해서라도 100퍼센트 견하준을 끌어들일 거고, 그러면 낙하산 역시 최현민을 비롯한 KICKS를 공격하기 위해 견하준을 카드 패로 쓸 거다.
그러니 레브 다섯 명이 다 있어야지 기선 제압이 될까 말까인데 성인이 되기 전까지 과보호 받고 살아온 우리 막둥이께서는 과보호가 싫으시단다.
입 다물고 경멸스럽게 노려보기만 할 견하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얘는 깽판을 못 친다고. 깽판을 쳐도 쳐 본 놈이 잘 치지. 나처럼 말이야.
아닌가…? 가사 써 오랬더니 디스랩 가사를 써 온 견하준(a.k.a.CB)을 보면 충분히 면전에 대고 훌륭하게 터는 게 가능할지도?
“당연히 내가 가야지! 형은 권윤성이 뭐야, 최현민한테도 한 주먹 거리잖아! 그리고 김도빈 너는 맹하니 만만하게 생겨서 안 돼!”
“저 만만하게 생겼다고 하는 사람은 형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형 옆에 있으면 누구나 만만하게 보이거든요?”
“그래서 윤이든 네가 가면 안 된다는 거야! 주먹질할 생각만 머리에 만연하잖아!”
“주먹질을 왜 해? 눈 한 번 부라리면 끝나는 걸 가지고. 형은 주먹까지 들어야 다른 사람들이 쫄랑말랑 하겠지만 나는 아니거든?”
레브 회의는 다섯 명이 모여야지만 레브 회의이기에 이건 그냥 말싸움이었다.
우리가 누가 가는 게 형평성에 맞나 진지하게 토론을 빙자한 개싸움을 벌이고 있을 동안, 류재희는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류재희가 러브액츄얼리 메타로 견하준을 설득하려고 하는구나 싶어서 혀를 찼다. 내가 아는 견하준이라면 코웃음도 안 치고 그냥 무시할 것 같은데.
똑똑-
스케치북을 든 류재희가 견하준의 방 문에 노크하자 견하준이 고개를 쓱 내밀고 물었다.
“결정했어?”
“결정하기 전에 하준이 형 설득의 시간을 가져 볼까 해서요.”
스케치북을 쓱 들며 류재희가 말했다. 픽 웃은 견하준이 짧게 고개를 저었다.
“감동 이벤트로 스케치북 고백이라도 하게? 그거 나한테 안 먹힐 텐데.”
“뭐야, 류재! 혼자 이벤트 준비라니! 이건 반칙이지!”
김도빈도 류재희가 스케치북에 열심히 휘갈기고 있을 때는 가만히 두더니 갑자기 감동 이벤트라니까 위기감이 느껴졌는지 이제 와서 득달같이 달려와 따져 댔다.
그런 김도빈에게 스케치북을 떠안긴 류재희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아니요? 스케치북 고백이 아니라 브리핑 자료인데요.”
말문이 막혔는지 견하준이 웃음을 거두고 입을 다물었다.
류재희의 손짓에 의해 얼떨결에 김도빈이 스케치북 첫 장을 넘겼다. 삐뚤거리는 글씨체로 무어라 막 적혀 있었다.
어차피 류재희가 읽어 줄 것이었으므로 굳이 저 지렁이 기어 가는 글씨체를 해독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왜 다음 주에 다섯 명이 다 같이 음방 출석을 꼬박꼬박해야 하는지 이유를 발표하겠습니다.”
또 언제 준비했는지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쓴 류재희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첫째, 저희가 다 같이 따라간다는 이유는 도파민 충족이 아니라 레브라는 그룹의 이미지 메이킹이에요. 멤버의 솔로 활동을 응원하러 전 멤버가 스케줄이 없는데도 음방 스케줄을 함께 가는 건 서로를 위하고 소중히 여기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고요, SNS나 커뮤에 올라가든 연예 뉴스에 뜨든 하면 하준이 형의 버즈량도 한 번 더 늘어나는 거죠.”
첫 번째부터 부정할 수 없는 논리적인 이유를 대자 ‘어디 한 번 들어볼까’ 식이었던 견하준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도 삼파전 구경 및 혹여 모를 상황에서의 견하준 실드만 생각했지 이런 관점으로는 생각을 못 해 봤기에 속으로 감탄사만 내뱉었다.
우리 막내가 이렇게 또 두뇌 외주로 <보이스 레거시> 편곡 미션 외주 값을 갚는구나.
“그리고 둘째, 한 명만 데려가긴 위험 부담이 커요. 만약 이든이 형만 데려가면 제가 봤을 때 형 혼자로는 감당하기 벅차서 말려 줄 사람이 세 명은 더 필요하고요, 예현이 형은 시비 붙어도 형 편 머릿수 늘리기 용밖에 안 되고요, 도빈이 형은 머릿수 늘리기 용이나 되면 몰라, 헛소리 하다가 어그로 더 끌어요.”
서예현이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입을 뻐끔거리다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견하준의 설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들었을 때는 얼추 맞는 말 같았기에 어느 부분이 거슬렸는지 궁금했다.
“셋째, 저희는 저희 흥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준이 형을 위해서 함께 간다고 하는 거예요. 몇 년이 지났어도 형한테는 아직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는 일이잖아요. 저희는 그저 형한테도 의지할 멤버들이 있다는 걸 당당하게 그 인간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뿐이에요.”
서예현과 말없이 시선을 한 번 쓱 교환하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래, 그러면 다 같이 가자.”
류재희의 브리핑에 설득당한 견하준은 지금부터 서로 죽이라는 명령을 철회하고 이번 주만 일일 매니저 네 명을 두기로 했다.
삐딱한 눈빛은 어디 가고, 은은하게 감동이 묻어 나오는 눈빛으로 우리를 보는 걸 보니 류재희의 브리핑에 제대로 감화된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류재희의 활약 덕분에 다 같이 삼파전을 구경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김도빈을 도와 보노보노 PPT나 만들고 있던 녀석이 언제 저렇게 커서 형들이 삼파전 직관도 갈 수 있게 해 주고…
물론 김도빈은 여전히 지금도 보노보노 PPT를 만들 것만 같았다. 어떤 의미론 참 한결같은 녀석이었다.
***
“이제 우리 나가리 됐다 이거지. 단독 대기실 쓰던 게 아주 꿈만 같네. 누구 덕분에 이 연차에 다른 그룹이랑 같이 대기실 쓰고.”
그래도 온 김에 권윤성한테 인사나 하자 싶어서 KICKS 대기실로 들어가자마자 투덜거리는지 같이 대기실을 쓰는 그룹한테 기선 제압을 하는 건지 모를 최현민의 빈정거림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착하게 좀 살지 그랬냐, 인마. 누가 들으면 너네 그룹 잘못은 하나도 없는 줄 알겠다.”
너희가 잘못이 없으면 대중 반응은 왜 싸늘하겠냐.
그런 최현민을 향해 한 소리 해 주자 KICKS와 대기실을 나눠 쓰는 아이돌 그룹이 벌떡 일어나 내게 인사했다.
“깜짝이야! 형은 왜 왔어? 하준이 형 피처링?”
튕기듯이 일어난 최현민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아니. 내가 주도한 이 삼자대면이 궁금해서?”
물론 나도 엮여있는 일이긴 했지만 견하준이 더 깊이 엮여 있어서 양보했다. 나는 자의로 나가기라도 했지, 견하준은 낙하산한테 쫓겨서 타의로 나가야 했지 않은가.
내게 인사 겸 짧게 손을 흔든 권윤성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별걸 다 궁금해한다. 정이서가 우리 대기실 찾아오지 않는 이상 우리가 걔 대면할 일은 없어.”
“그래, 우리도 지긋지긋하다고.”
KICKS 멤버 한 놈이 미간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신인개발팀 팀장님한테 불려 가서 제일 겉돌던 이를 묻는 질문에 견하준의 이름을 댄 놈 중 하나였다.
한두 놈이 아니라 문제지. 누구 하나 겉도는 사람 없이 다 같이 잘 어울린다고 말하면 얼마나 좋냐. 성질 같아서는 다 패 버리고 싶지만 언제까지 폭력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낙하산은 양반이 아니었고, 잔뜩 인상을 쓴 채로 대기실 문을 열어젖혀 들어왔다. 대면한 일이 없다고 불과 1분 전에 말했던 권윤성만 내게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너희, 4월 컴백 생각도 안 하고 있었으면서 내가 4월에 컴백한다니까 일정 당긴 거지?”
“에엥, 우리가 왜? 굳이? 너무 자의식 과잉 아니야? 우리가 형을 왜 그 정도로 신경 쓰겠어?”
역시 예상대로 최현민이 빈정거리기 1급의 실력으로 정이서를 상대했다.
“거짓말 치지 마! 너희 예정된 활동 일자는 7월이었던 거 다 알고 있으니까!”
“형 외삼촌이 뉴본에 산업 스파이라도 심어 놓으셨나 보다? 어떻게 우리보다 더 잘 알아? 우리는 올해 중하반기라는 말밖에 못 들었었는데.”
긁는 솜씨가 아주 예술이었다. 말빨에서 밀린 정이서가 나를 발견하고 내게로 타겟을 돌렸다.
나를 한 대 칠 것 같이 성큼성큼 다가온 정이서가 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악에 받친 말을 쏟아냈다.
“윤이든, 너지? 네가 얘네한테 내 컴백 날짜 흘렸지? 권윤성이랑 다시 친한 척할 때부터 알아봤어. 견하준 솔로 활동도 일부러 4월 초로 잡은 거지? 이렇게 나 비교당하게 해서 엿 먹이려고!”
정답이었다. 그런데 정답이면 어쩌라고.
그러게 누가 나 이용해 먹으면서 견하준이랑 내 사이 이간질 시도하래?
“와우, 이제 내가 만만한가 봐?”
비웃으며 오히려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자 당황한 정이서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 정이서 신발의 앞코를 발로 툭 차며 삐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서야, 정이서. 협박질 좀 먹혀 들어가니까 내가 너무 만만해서 면전에서 눈 부라려도 될 것 같이 보이든?”
역시 내 판단이 옳았다. 내가 따라와서, 그래서 내가 정이서를 상대해서 다행이었다.
평생을 얌전하게 살아온 견하준은 가사로만 표출하지, 면전에서는-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분명 견하준 목소리인데 왜 꼭 내가 말하는 것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