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54화(54/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화
한 사람씩 자기가 뽑은 쪽지를 카메라 앞에 보여 주는 걸 마지막으로 촬영을 마쳤다.
쪽지를 다시 회수해 간 스태프들이 좁은 숙소에서 철수하자마자 소파에 드러누웠다.
벌써부터 궁금해 죽겠다며 설레발을 치는 류재희와 아닌 척 기대하고 있는 견하준과 대조적으로 내가 이름을 뽑게 된 인간은 시큰둥하기 그지없었다.
와, 정말로 선물 고를 맛 안 난다.
“그럼 뮤비 촬영 때까지 누굴 뽑았는지는 비밀이에요? 뮤비 촬영까지 얼마나 남았더라…….”
“우리 도비는 참 당연한 걸 묻네. 참고로 촬영 날까지 D-7이다.”
“생각보다 더 빠듯하네여. 아무쪼록 저를 뽑으신 분은 돈으로 부탁드립니다. 기왕이면 신사임당 두 장으로.”
구체적인 액수까지 정해 주고 자빠진 김도빈을 향해 혀를 차고 있자, 손을 번쩍 든 류재희가 제안했다.
“저희 규칙 정해요. 상대한테 뭐 필요하냐고 묻지 말기. 너무 티 나게 관찰하지도 말기. 선물 뭔지 들키지도 말기!”
“택배로 시키면 어쩌게. 송장 보면 대충 견적 나오잖아.”
“그럼 택배시키기 금지…… 직접 가서 사는 거로?”
“해외직구는 어쩌게? 해외까지 나가서 사라고?”
“택배를 소속사 주소로 보내는 건요?”
“와, 택배 가지러 소속사까지 가기 진짜 귀찮다. 이제 우리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도 아닌데, 귀찮고 성가셔 죽겠다. 안 그래도 할 일 산더미인데 택배 하나 가지러 소속사까지 가야 한다니, 지인짜 시간 아깝고 귀찮다.”
“알았어요, 그냥 재량껏 합시다.”
류재희의 쓸데없는 아이디어를 성공적으로 제지한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촬영 당시 서예현이 했던 말들로 그의 취향에 맞는 선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으나…….
‘돈 봉투를 선물로 줘도 되는 거 맞나…….’
나야 고민할 일도 없고 ATM에서 돈만 뽑으면 되기에 세상 편하긴 하다만.
머리를 빠르게 굴려 만약 크리스마스 선물로 서예현이 원하는 선물인 돈 봉투를 준다면 생길 일을 예측해 봤다.
일단 서예현이 뱉은 말이 있었으므로 내 의도가 ‘성의 없음’으로 곡해되어 봤자 빠르게 해명되겠지만, 논란거리가 되는 거 자체가 피곤한 일이었기에 아예 논란을 만들지 않기로 결정했다.
소파에 드러누운 채로 인터넷에 20대 남자 선물을 검색해서 스크롤을 쭉쭉 내렸다.
리얼리티 측에서 5만 원을 지원받았으니 적당히 10~20만 원 선에서 고르면 되겠지.
너무 돈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건 비호감 이미지의 지름길이기도 하고, 5만 원 선에서는 딱히 살 만한 게 없으니까.
아무리 받는 사람이 서예현이라지만 기왕 줄 거 좋은 거로 줘야지.
제일 무난하고 예산에 가격대가 대충 맞는 두 개를 골라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놓았다.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 담긴 것이라 입을 턴 것치고는 10분도 안 되어 선물 선정이 끝나서 좀 민망했다.
그래, 저 인간을 위해 10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것도 내 나름의 성의라고 볼 수 있지.
“도빈아, 스폐셜 스테이지 안무 수정은 다 했냐?”
“ 말씀하시는 거면 당연히 다 짰죠. 우리가 춰도 어색하지 않을 수준으로 완벽하게 고쳤으니까 걱정은 붙들어 매시고요.”
“내가 최근에 너한테 전달해 줬던 음원 파일이 뭐냐?”
“이요.”
“그럼 상식적으로 무슨 안무를 물어보는 거겠냐?”
“……이요.”
“안무 수정 다 했냐?”
“지금 한창 하고 있슴다.”
저놈은 지금 뭐가 더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모르나? 아도라랑 콜라보 스테이지랑 KICKS이랑 곡 체인지 스테이지면 당연히 후자 아니냐?
게다가 우리 그룹에는 새 안무의 창시자이자 실수 머신도 계시는데?
“이틀 안에는 연습 들어가야 하니까 그때까지는 끝내라.”
“에이, 그때까지는 당연히 끝내죠.”
김도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이야기를 끝으로, 내일은 화보 촬영 스케줄이 있기에 다들 일찍이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곡 작업이 끝나서 더는 늦은 저녁까지 작업실에 있지 않아도 되어서일까, 이 시간에 숙소 방의 침대에 누워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곧 연말이네.”
얼굴에 팩을 붙인 서예현이 중얼거렸다.
“시상식…… 하. 상 하나쯤은 받을 수 있으려나. 보니까 WAMA 투표는 근소한 표 차로 밀렸던데.”
오늘치 위클리 퀘스트를 몰아서 하다가 서예현의 그 힘없는 말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어차피 WAMA 영향력 없어. 투표 점수도 20%인가 30%인가 그 정도고, 심사기준은 주최 측 멋대로거든. 투표에서 이겼어도 못 받았을 수도 있단 소리지. 그리고 우리 컴백 1주 차에 투표 마감하기도 했고.”
“그러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열심히 하자는 동기부여 좀 하게? 그때 열린 투표가 그것뿐이기도 했고.”
기체후일향만강하셨어요를 열심히 손가락으로 치며 대꾸했다.
휴, 이제 한 줄 반만 더 채우면 최소 기준 완성이다.
“실버디스크랑 나온차트 뮤직 어워드가 그나마 공신력 있다는 소리를 듣긴 하는데, 여기는 지금 투표 열렸나? 아무튼, 여기서 추이를 봐야지 알 것 같네.”
신인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리셋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신인상 하나 못 받은 거로 제로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을 해야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미친 짓이었다.
신인상 못 받고 대상 받은 그룹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신인상 못 탔으면 아쉽지만 정진해서 대상 타면 되지.
하나 실패할 때마다 계속 리셋하면 이게 습관이 되어 버린다니까?
물론 시스템이 신인상 받으라고 초심도 –99점을 걸고 퀘스트를 내면 즉시 최현민의 미자 흡연 사진을 인터넷에 뿌려 경쟁자를 제거할 생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패를 내기에는 아깝다, 이거지.
하지만 우리는 알지 못했다. 한 먹은 팬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 * *
내가 편곡한 이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어차피 본무대는 라이브여서 AR은 필요하지 않았기에 MR에 견하준 가이드+내 랩을 얹어 놓은 데모 버전이었다.
‘더 일찍이 연습에 들어갔어야 했나.’
저게 안무인지 몸부림인지 모를 몸동작을 하고 있는 서예현을 보며 깊은 시름에 잠겼다.
저 꼴 날 걸 예상해서, 연습실에도 카메라를 설치하겠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측에 일주일만 더 시간을 주시라 부탁한 내 선견지명에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저게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 돌이킬 수 없어진다.
KICKS의 퍼포먼스는 빡세고 칼 같은 군무가 특징이었다.
이 특징을 그대로 살린 김도빈의 수정 안무는, 이때까지 날로 먹는 거나 다름없었던 레브의 안무를 소화하던 서예현에게 있어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던 거였다.
생각해 보니까 또 열받네? 누구는 좋은 곡이랑 난이도 중(中) 안무로 개꿀 빠는데.
누구는 구린 곡을 꾸역꾸역 편곡하고 댄스 실력 거지 같은 놈 이끌어서 난이도 상(上) 안무도 해내게 만들어야 한다니.
우리한테 메리트를 주든가 KICKS에게 페널티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서예현의 옆에서 자세를 하나하나 교정해 주고 있는 김도빈을 거울로 보다가 생수를 들이켰다.
저걸 처음부터 견하준에게 맡기면 고혈압으로 쓰러질 게 걱정되었기에 일단 김도빈에게 기초적인 부분만이라도 해낼 수 있게 만들라고 했다.
내 옆으로 다가온 견하준에게 물었다.
“어때? 연말 가요축제 무대 서기 전까지 저 인간 잘 따라오게 완성시킬 수는 있을 거 같아?”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다, 이든아.”
들리지 않게 한숨을 작게 내뱉은 견하준이 대답했다.
“안무 따라오게 하는 것까지는 어떻게 해 보겠는데 칼군무는 멤버 전체랑 맞춰야 하는 거잖아. 그것까지 따라올 수 있느냐가 문제지.”
“어쩌긴, 안무 최대한 빨리 익히게 만들고 군무 계속 뺑이 쳐서 맞춰야지.”
“글쎄…… 저 형이 빨리 익힐 수는 있을까.”
견하준의 말에는 기대감 하나 담겨 있지 않았다.
“안 돼도 되게 해야지. KICKS에게 밀리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견하준의 인격을 바꾸는 마법의 주문에, 심드렁하게 서예현을 보고 있던 견하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래, 내가 약한 소리를 했네. 이건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하는 자존심 싸움인데 말이야.”
우리가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던 류재희는 어느새 슬그머니 김도빈의 옆으로 가서 서예현의 안무 익히기를 돕고 있었다.
“아니, 형. 그게 아니라니까요. 거기서는 왼발이 먼저 나가야 한다고요.”
속 터져 죽겠다는 김도빈의 목소리를 들으며 동기부여가 될 만한 말을 던져 주었다.
“형, KICKS 낙하산도 그 안무를 소화한다니까? 낙하산보다 못하고 싶어?”
“이건 KICKS 안무보다 더 어렵지 않아?”
서예현의 물음에 옆에서 듣고 있던 김도빈이 매우 억울하다는 표정을 하고선 따졌다.
“헐,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세요? 제가 예현이 형이 못 따라오실까 봐 원본보다 티 나지 않게 난이도 겨우 낮춰 놨건만, 지금 제 피 같은 노력을 한 큐에 무시하신 거예요?”
“아니, 난 몰랐-”
“제가 이 안무 영상 찍으려고 학교에서 입 무거운 친구들만 선별해서 비밀 엄수 좀 해 달라고 얼마나 빵이랑 우유를 사다 바친 줄은 아세요?”
“미, 미안하다…….”
결국 사과한 서예현이 다시 김도빈의 지시하에 연습을 시작했다.
“오, 내 택배 왔다.”
찍힌 부재중과 함께 택배 배송 완료를 알리는 문자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인터넷으로 배송한 크리스마스 선물 나머지 하나가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다.
뮤비 촬영 날까지 하루 남았는데 올 생각을 하지 않아 신경 줄을 타게 만들었던 선물이었다.
지쳐 주저앉은 서예현에게 물을 건넨 류재희가 한껏 기대 어린 미소를 얼굴에 한가득 머금고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선물이랑 상대도 공개되겠네요.”
“그러면 우리 크리스마스 때는 선물 아무것도 없는 거예여? 저 트리 설치하고 그 밑에 선물 놓는 게 로망이었는데…….”
“도빈아,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 그 좁아터진 집구석에 트리를 어떻게 설치하냐. 넓은 숙소로 이사 가고 나서 해.”
“그러고 보니까 우리 이사 언제 가요?”
“몰라, 또 갑자기 무속에 꽂히셨는지 손 없고 좋은 날로 택일해야 한다고 다음 달까지 기다리래.”
우주 집착에 이어서 이제는 무속 집착까지, 정말 가지가지 하시는 우리의 노답 대표님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류재희가 슬쩍 물었다.
“형 때문 아니에요?”
“내가 바람잡이 했다는 거냐, 지금?”
“아니, 형이 저희 컴백 날짜 잡을 때 월운이 어쩌고 하셔서 그런 거 아닌가 싶어서…….”
시발, 진짜 나 때문인가.
연습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 휴대폰에 매니저 형이 보낸 파일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응원봉 시안 나왔다는데.”
파일을 열어 보자마자 나온 스포르찬도 기호에 눈을 깜빡였다.
오, 맞아. 그러고 보니 이런 게 있었지.
“이건 무슨 빠루야?”
“와, 우리 소속사 진짜 대박이다. 야광스틱 양 끝만 꺾어 놓은 걸 지금 응원봉 디자인이라고 내놓은 건가.”
지난 회차 응원봉을 회상했다.
빠루로 먼저 출시했다가 팬이 호구냐고 욕을 엄청 처먹고 바꿨던가.
그것도 디자인이 상당히…… 했기에 구린 응원봉 top3에 꼭 뽑혔던 거로 기억한다.
또 우리 팬들이 그런 응원봉을 흔들게 둘 수는 없었다. 노트를 꺼내며 제안했다.
“야, 차라리 우리가 디자인하자. 그게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