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4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2화(544/54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2화
“무대에 서는 건 막내인데 떨리기는 왜 내가 더 떨리냐…”
내 옆에 앉은 서예현이 기도하듯 손을 맞잡은 채로 중얼거렸다.
형이 결승 무대 서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떨고 있냐고 한 소리 하려 하다가 갑자기 든 궁금증에 방향을 틀어 질문했다.
“형, 내 DTB 파이널 때도 이렇게 떨었어?”
“아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서예현을 매우 떫게 바라보았다. 진심이 아주 한가득 담겨 있는 대답이군.
“비막내 차별을 멈춰 주십쇼. 아, 비견하준 차별이랑 비김도빈 차별도.”
“그 정도면 그냥 윤이든 차별 아니에요?”
김도빈의 깝죽거림에 목소리 낮춰 으름장을 놓았다.
“윤이든? 내가 네 친구냐?”
“에이, 관용구죠, 관용구.”
데뷔 초 때는 내가 무슨 말만 해도 쫄아서 벌벌 떨던 녀석이었는데, 이제 김도빈은 유들유들하게 내 말을 맞받아치며 넘겨 대는 경지에 이르렀다. 참 세월이 무상했다.
본격적으로 생방송 촬영이 시작되고, MC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보이스 레거시> 대망의 결승전, 지금 시작합니다!”
짝짝짝-! 우렁찬 박수 소리가 홀을 울렸다.
“결승전 결과는 방청객 100인의 투표와 실시간 문자 투표를 합산하여 결정됩니다. 각자 단 한 명에게만 투표할 수 있으니, 신중하게 선택해 주시길 바랍니다.”
류재희가 얼마나 신중하게 결승전 경연곡을 고르고 연습했는지 가장 가까운 옆에서 다 봐 왔기에 이번에는 꼭 류재희가 우승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저번에는 3라운드에서 탈락하더니 이번에는 결승까지 온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그때도 내가 도와줬으면 류재희가 결승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까.
그래서 서예현 그룹이었던 그 당시의 레브에서 조금이라도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었으려나.
“휴대폰 켜면 안 되니까 문자 투표도 못 하겠지?”
앞쪽에 리모컨을 들고 앉아 있는 판정단들을 보며 목소리를 잔뜩 낮춰 속닥였다. 우리는 일반방청객이라 투표권이 없었다.
지인들에게 오늘 <보이스 레거시> 보고 유제한테 문자 투표하라고 연락을 싹 돌리긴 했지만, 정작 내 한 표가 류재희의 우승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순서는 노강열 선배님이 첫 번째고 류재희가 두 번째였다.
앞 무대가 너무 압도적이면 뒷무대가 그대로 묻혀 버릴 수도 있을뿐더러, 그걸 보고 있을 류재희의 기가 죽을 수도 있었기에 걱정이 되긴 했다.
사전에 녹화한 노강열 선배님의 개인 인터뷰 영상이 스크린으로 송출되었다.
[노강열: 저희 밴드의 대표곡, <세상만사>를 오늘 경연곡으로 준비해 봤습니다.] [노강열: 저한테, 아니 저희한테는 의미가 정말 깊은 곡이죠.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희는 무명이었던 기간이 제법 길었습니다. 음악을 향한 열정만으로 살아가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더라고요. 그래서 다들 일하고, 일 끝난 밤에 모여서 연습하다가 민원도 받고.(웃음)] [공사판, 택배 배달, 아르바이트 등등 안 해 본 일이 없던 그 시절] [하지만 음악과 생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왔고…] [노강열: 그러던 와중에 또 어머니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셔서, (어쩔 수 없이) 음악을 포기하자… 그래서 우리가 밴드를 접기 전에 정말 마지막으로 한 곡만 내 보자, 하고 발매한 게 바로 <세상만사>였습니다.] [오랜 기간 무명이었던 록밴드 ‘적운’을 세상에 알린 곡] [그 후로 ‘적운’은 대한민국 가요사에 한 획을 긋는 전설이 된다] [노강열: 이 곡 덕분에 저희 밴드의 무명 생활이 끝났고, 음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 수 있었습니다.] [노강열: 그때의 초심을 되살리며 오랜만에 무대에서 이 곡을 불러 보려 합니다.] [그의 인생 이야기나 다름없는 <세상만사> 무대, 지금 시작합니다…★]큰일났다. 경연곡에 얽힌 서사가 너무 세다.
게다가 무명 서사도 우리랑 겹치는데 저기는 더 빡세다. 무명 시절도 훨씬 길고.
우리는 그런 극적인 서사는 없었다고. 를 후속곡으로 밀었던 우리의 서사는 전혀 감동적이지 않단 말이다.
결승쯤 되면 보컬 실력보다는 경연곡 서사가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류재희가 저 서사를 이기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적운은 어르신들도 다 아는 국민 밴드고, 우리는 젊은 층이 주요 팬층인 아이돌 그룹이다.
모두가 다 아는 레전드 국민 밴드의, 생계에 위협까지 받아 가면서 노가다와 병행했던 몇 년간의 무명 시절과 무슨 이름만 들어 본 젊은 애들의 몇 개월도 아니고 몇 주일 아이돌 무명 생활이 비교가 되겠냐고. 나 같아도 전자 고르겠다.
회귀 전 서사로 붙었으면 좀 비벼 볼 만도 했을 것 같기도 한데. 류재희가 공시 준비했던 것까지 깠으면 노가다 서사 발가락 끝 정도는 비볐겠다.
하지만 지금은 몇 년간 망돌로 지내다가 역주행으로 떴던 레브가 아니라 데뷔 초 부터 차근차근 아주 정석적으로 올라온 레브다.
게다가 경연곡이 본인 밴드 곡이라는 건 엄청난 메리트였다. 저 선배님이 그 밴드의 보컬리스트라는 걸 고려했을 때 더더욱.
무대 위에서 스탠딩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고 있는 노강열 선배님은 마치 곡과 한 몸이 된 듯, 완벽하게 소화해 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밴드 사운드도 압도하는 보컬이란 게 무엇인지 가감 없이 보여주며.
류재희가 이걸 뛰어넘는 것 이상의 무대를 보여주지 않으면 우승은 물 건너가는 거다. 그리고 그건… 상당히 난이도가 높아 보였다.
[세상만사 다 그런 게 아니겠어]무대 위의 노강열 선배님이 마지막 소절을 마치자, 함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거나 소매나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청중들도 간간이 보였다.
“어떡하지? 내가 다 기죽는 거 같아. 우리 막내 어떡해?”
서예현이 초조한 얼굴로 내 소매를 끌어당기며 속닥였다. DTB 파이널 때는 걱정도 안 했다더니. 매애애애우 괘씸해서 어깨만 으쓱여 주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류재희가 알아서 잘 헤쳐 나가겠지.
나는 류재희를 믿었다. 승부욕 하나는 나만큼 더럽게 강하고, 끈질기고, 욕심 많고, 대중 심리 잘 읽고, 똑똑한 우리 막내를.
곧이어 류재희의 사전 인터뷰 영상이 송출되었다.
[유제: 제가 오늘 결승전에서 부를 경연곡은 바로, <강을 거슬러 바람을 안고>입니다.] [유제: 아무래도 결승전이라서 뜻깊은, 사연 있는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 곡에는 그런 사연이 없어요.(웃음)] [유제: 제 음역대에도 맞지 않고, 제가 자신 있어 하는 창법이나 스타일도 아니고, 제 주력 장르도 아니에요.] [유제: 그렇지만, 제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제일 꾸준히, 그리고 많이 들었던 곡이죠. 눈 감고도 악보를 그릴 수 있을 만큼이나요.] [유제: 맞아요. 마지막인 만큼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유제의 애창곡 1순위를 차지한 곡] [유제: 한계를 돌파하고 마지막을 향해 나아간다는 가사가 개인적으로 힘들 때마다 위로도 많이 됐기도 하고, 결승전 서사에 제일 걸맞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따스하게 다독여 주는 것보다는 이런 투박한 위로가 더 좋더라고요.] [유제: 이 무대를 보시는 여러분들도 이 노래로, 이 무대로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홀로 곱씹으며 받았던 위로를 다른 이들에게까지 나누고 싶은 마음…] [유제: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는 저 역시 가사처럼 제 한계를 뛰어넘어 최종까지 무사히 도달하길 바랍니다.] [조금은 투박하고 거친 위로를 건네는 유제의 <강을 거슬러 바람을 안고> 무대, 지금 시작합니다!]류재희는 어설픈 서사로 노강열 선배님의 깊은 서사에 비비기보다 본인이 선택한 경연곡에 대한 본인의 오랜 역사와 깊은 애정을 드러내길 선택했다. 그건 내가 봤을 때도 꽤 현명한 선택이었다.
거기에다가 오늘 선택한 경연곡이 본인과는 여러모로 맞지 않는다는 걸 언급하며, 그런 곡을 과연 어떻게 소화할까- 하는 기대감도 높였다.
곡의 가사도 “도전과 극복”이라는 결승전 서사와 잘 맞아떨어진다.
노강열 선배님이 힘들었던 시절의 본인을 위로하는 무대를 꾸렸다면, 류재희는 노래를 듣는 청중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무대를 꾸린 것으로 차별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었다.
완전히 방향을 틀어 아류처럼 느껴지지 않게 전혀 다른 목적을 만든 셈이었다.
류재희가 선택한 경연곡 <강을 거슬러 바람을 안고> 역시 살면서 아빠 차 라디오에서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곡이라 노강열 선배님의 경연곡인 <세상만사>에도 인지도가 뒤처지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무대의 완성도.
한 줄기 빛만이 내려앉은 어두컴컴한 무대 위로 류재희가 올라왔다. 모든 청중들이 숨죽인 고요한 정적 속에서 류재희가 손에 쥔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짧은 전주가 흘러나오고, 어두운 무대 분위기와 걸맞지 않은 시원스러운 류재희의 첫 소절이 서막을 열었다.
음악이 고조될수록 조명 역시 서서히 밝아졌다. 모던 록이라는 장르를 류재희 본인의 스타일대로 소화하면서도 곡 본연의 느낌은 고스란히 살린 무대는 클라이맥스의 고음 부분에서 극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깊은 인상을 확 박는 것에 성공했다.
류재희가 선택한 노래는 단순히 경연곡이 아니라, 이 순간 본인을 증명하는 외침이어야 했다.
그리고 류재희는 본인의 애창곡으로 유제라는 보컬리스트를 아주 확실히 증명했다.
[오늘도 끝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거슬러나를 밀어내는 물살과 바람을 끌어안고]
읊조리듯 내뱉는 마지막 소절.
류재희가 마이크를 내리기가 무섭게 이전 무대 못지않은 환호성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우리 넷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우리 막내 최고다!”
김도빈의 외침을 용케 들었는지 우리를 발견한 류재희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손을 흔들었다.
“자, 이제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판정단 여러분들은 버튼을 눌러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현재 시청 중이신 시청자분들, 여러분의 한 표가 최종 우승자를 결정합니다!”
아마 지금 TV로 보고 있다면, 화면 하단에 문자 투표 방법과 마감까지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무교이지만 기도 메타를 선택했다. 천지신명, 부처님, 하나님, 기타 등등 중 아무나 들어주겠지.
“투표 마감까지 10초! 과연 여러분의 선택은 누구일까요? 10, 9, 8…”
카운트다운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위에서 우리처럼 두 손을 꽉 맞잡고 있는 류재희의 모습이 눈에 비쳤다.
“투표 종료!”
투표 마감 후 집계하는 동안, 두 우승 후보의 소소한 소감과 서로의 무대를 본 감상 발표가 진행되었다.
“저는 유제 씨 무대를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이게 이렇게 젊은 친구가 낼 수 있는 감성이 맞나. 2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이 친구가 내 동시대에서 가요계에 한 획을 그었겠구나, 이 생각이 들더라고.”
“아니에요, 전 오늘 제일 긴장했어요. 결승전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노강열 선배님 무대가 너무, 너무 완벽해서 과연 내가 이 무대랑 견줄 수 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을까… 이런 부담감이 들 정도였어요.”
서로 칭찬을 주고받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류재희가 20년 일찍 태어났으면 내 삼촌뻘이잖아.
“모든 투표가 마감되었습니다. 이제 결과 공개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가 만들어 낸 결과, 과연 오늘 영광의 1위는 누구일까요!”
두 줄기의 스포트라이트가 노강열 선배님과 류재희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긴장감을 잔뜩 고조시키며 MC가 외쳤다.
“<보이스 레거시> 최종 우승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