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4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3화(545/54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3화
픽, 류재희 위의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꺼졌다. 동시에 콘페티가 팍! 터지며 머리 위로 흩날렸다.
“노 강 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시발 방송국이 앞장서서 만들고 있다니까. 2등 머리 위 조명을 끄면 당연히 2등 얼굴이 안 보여서 잊히지.
그 와중에 조명 원샷으로 빡 1등 얼굴만 비추어 주니까 사람들이 죄다 1등만 기억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무대를 보며 어느 정도는 각오한 결과였기에 충격적이진 않았다.
결승까지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무대를 선보인 우리 막내를 향한 찬사와 우승한 노강열 선배님을 향한 축하의 의미를 담아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축하드립니다!”
무대 위 조명이 다시 켜지며 류재희가 꽃다발과 트로피를 건네받아 노강열 선배님한테 전달했다. 노강열 선배님이 류재희를 가볍게 마주 안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쉽게도 회귀 전과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우승자는 회귀 전이나 후나 여전히 노강열 선배님이었다.
“최선을 다한 결과라 오히려 후련합니다. 이렇게 쟁쟁한 선배님들과 같은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었고, 경연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런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제법 어른스러운 류재희의 준우승 소감이 이어지는 동안, 옆자리 서예현은 연신 눈가를 훔쳤다. 김도빈은 울음을 참느라 크흥, 하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길이길이 남을 웃짤 하나 거뜬히 생성 가능해 보이는 김도빈의 얼굴 때문에, 카메라가 이쪽만 안 비추길 바랄 뿐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우리도 좌석에서 몸을 일으켜 밴으로 향했다.
눈시울이라도 붉히고 있을 줄 알았더니 의외로 멀쩡한 류재희는 우리와 함께 퇴근했다. 류재희가 밴에 타자마자 미리 준비해 놨던 꽃다발을 안겨 주며 물었다.
“<보이스 레거시>는 뒤풀이도 안 한대?”
“생방이라서 정리랑 우승자 인터뷰 때문에 당장은 일정이 빡빡해서 오늘은 어렵고, 며칠 후에 지금까지 나왔던 출연진들 다 같이 불러서 회식한대요.”
하긴, DTB 때도 그랬지.
“오늘 진짜 잘했어, 우리 막내! 형은 네 무대가 훨씬 더 좋았어!”
서예현이 류재희의 등을 두드리며 일부러 분위기를 막 띄웠다. DTB 우승했을 때는 옆에서 정말 감흥 없는 표정으로 박수만 치고 있더니, 정말로 김도빈 말처럼 윤이든 차별이 맞나 보다.
“아쉽긴 하지만 이번 노강열 선배님 결승 무대가 승부 결과를 납득할 수밖에 없는 무대였어요.”
“너도 잘했어. 결과 나오기까지 승부 결과가 예측이 안 될 정도로.”
비죽 혀를 내밀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류재희에게 견하준이 담담한 칭찬을 건넸다.
그 속에 담긴 진심이 충분히 전해졌는지, 류재희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거두고 조용히 웃었다.
“20년 후에는 연륜 쌓인 제가 지금의 노강열 선배님처럼 그 세대에서의 최고 보컬리스트가 되어 있겠죠. 20년 후에도 저는 계속 꾸준히 음악을 하고 있었을 거니까요.”
내가 그때까지는 안 살아 봐서 20년 후 미래는 뭐라고 말을 못 해 주겠다. 기억 다 찾아도 겨우 6년치거든.
그래도 해낼 수 있을 거다. 고작 스물세 살에 연륜 잔뜩 쌓은 레전드 가수랑 어느 정도 비빌 정도면 20년 후의 류재희는 지금의 노강열 선배님을 뛰어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지.
“류재, 최고로 되겠어? 전설 정도는 되어야지!”
김도빈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 줬다.
“최고가 전설이잖아.”
“아니, 그 미묘하게 다른 게 있어.”
“뭐가 달라?”
김도빈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최고와 전설의 차이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이, 밴은 어느새 숙소 앞에 도착했다.
“으아아… 오늘 긴장 너무 많이 했더니 피곤해 죽겠다…”
“오늘 결승 무대한 건 난데 왜 형이 긴장을 해?”
“당연히 쫄리지! 이든이 형 DTB 결승 결과 나올 때보다 더 쫄렸어, 솔직히. 누구 하나가 이겼다고 단정할 수 없는 무대들이어서.”
김도빈의 말에 오히려 류재희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생글생글 웃었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류재희가 무언가 바라는 게 있는 듯한 눈을 한 채 내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훤히 읽히는 속에 피식 웃으며 류재희의 머리를 헤집었다.
“졌어도 잘 싸웠다.”
무심히 건넨 내 위로 겸 칭찬에 류재희의 눈가가 빨개졌다. 눈을 꾹꾹 두어 번 감은 류재희가 쩌렁쩌렁 외쳤다.
“이든이 형이 한 입으로 두말한다!”
“이게 칭찬을 해줘도, 쯧.”
“언제는 졌잘싸가 어디 있냐면서요.”
“여기 있잖아, 여기. 그래서 인마, 졌으니까 네가 했던 노력들이랑 네 무대들이 의미가 없어지는 거냐?”
“그건 아니죠.”
“그래, 짜식아. 그런 거지.”
살면서 생각도 바뀌고 그러는 거지. 아이돌 뮤직은 뻐킹이고 힙합이 리얼 뮤직이라고 말하던 과거가 있었던 것처럼.
류재희가 그제야 환하게 씩 웃었다.
“<도시의 푸른밤>으로 노강열 선배님 한 번 이겼으니까 넘사벽은 아니라고 생각할래요.”
“이번 무대도 넘사벽은 아니었어. 우리 서사가 좀 많이 약했을 뿐이지.”
“그리고 PD님이 표 차이 그렇게 막 많이 안 났대요. 그 정도로도 충분히 자신감 생겼어요. 그 무대에도 밀리지 않았다는 소리잖아요.”
“거 봐, 잘했다니까 그러네.”
원하는 만큼 칭찬을 받아 낸 류재희는 매우 만족한 얼굴로 위층 계단을 후다닥 올라갔다. 모니터링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도 이참에 위클리 퀘스트 서치 퀘나 완수하자 싶어 오늘 <보이스 레거시> 무대 반응을 검색해 보았다.
-우리 유제 무대가 최고였어ㅠㅠㅠㅠ
-엄빠랑 할머니까지 문자 투표 동원했는데도 밀리다니…. 그래도 내 마음속에선 1위가 울 재희야
-상대가 노강열인데 그럴 수도 있지 아니그런데 우리 막내가 이렇게 멋진 무대를 보여줬는데 그래도 상대가 노강열인데 계속 반복중
-서사 때문에 임팩트는 좀 밀렸긴 해도 노래는 안 밀렸어!
-유제 준우승 축하해♥ 우승만큼 값진 준우승이야
-사연 있는 무대가 심금을 울렸다면 온전히 그 노래를 즐기는 무대는 심장을 울렸다
거 봐, 다들 잘했다잖냐.
덕분에 나도 마음 놓고 잠들 수 있었다.
* * *
경연 예능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가. 또 다른 경연 예능이 시작된다.
류재희는 참가자로, 나는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게 다른 점이었다.
Team 윤이든 & D.I
Team BQ9 & 공출
Team 몰틱 & T:ZE
Team G1 & 록한
새로 정비한 프로듀서 팀 조합이 먼저 기사를 통해 발표되었다. 나는 용철이 형이랑 한 팀이 되었다.
-덥넷 시즌5 말아먹고 여기에서 시청률 더 나락갈까 봐 쫄려서 윤이든 히든카드 냈네ㅋㅋㅋㅋㅋ
-죽기 전에 낙서 조합을 공식으로 볼 수 있다니
-윤이든 강림! 윤이든 강림! 윤이든 강림! 윤이든 강림! 윤이든 강림!
-아무리 우승자 출신이래도 정규는커녕 솔앨도 하나 없는 래퍼?를 심사위원으로 꽂는 게 맞는거임?
-에제에랑 영빌리랑 원백까지 빠지니까 걱정되긴 한다 솔직히 캐리는 원년프듀팀 래퍼들이 다 했는데
-심사위원들 너무 물갈이돼서 내가 아는 DTB가 아닌 것 같음.. 일단은 윤이든 나오니까 보긴 할 건데 윤이든으로도 못살리면 담시즌부턴 안볼듯
반응은 뭐, 여러 가지 반응이 섞였지만 대체로 괜찮은 것 같았다. 솔로 앨범 어쩌고 하는 말도 어차피 방영되기 전에 솔로 앨범 나오니까 상관 없었다.
DTB 시즌 6 1차 예선 날.
2년 전에는 참가자 신분으로 갔다면, 올해는 심사위원 신분으로 1차 예선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향하기 위해 신중하게 의상을 골랐다.
“수미상관을 위해서 형이 시즌 4 1차 예선 때 입고 간 옷이랑 똑같이 입고 가는 건 어때요? DTB 패션 유행의 서막을 열었던 그 패션이요.”
“수미상관이라는 말은 그런 데에다가 쓰는 거 아니다.”
김도빈의 헛소리 같은 말은 의외로 오늘 패션에 영감을 주었다.
시즌 5에서 거품이 꺼져 가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해서 그런지 최전성기였던 시즌 4보다 신청자들이 적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DTB 거품이 가라앉지 않아서인지 1차 예선에 몰린 사람들이 어마어마했다.
그때도 느끼긴 한 건데 우리나라에 이렇게 힙합하는 사람들이 많았나.
“아직 5월밖에 안 됐는데 너 혼자 무슨 패션이 한여름이냐.”
용철이 형이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채 쇼핑백 하나 덜렁덜렁 들고 대기실로 들어온 나를 보고 한소리 했다.
지원이 형이 키득거리면서 거들었다.
“왜, 기선 제압하려고 하나 보지. 시즌 4 이후로 컨셉충들이 아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잖아. 시초가 기세로 눌러 줘야지, 어쩌겠냐.”
“오늘 기선 제압하려는 목적은 맞는데 이 패션은 아직 기선 제압 완성 패션이 아닙니다.”
지원이 형의 말에 손가락을 까딱이며 엄숙하게 대꾸했다.
“들어오기 전에 1차 예선 신청한 참가자들 쭉 봐 보니까 여기가 힙합 서바이벌의 장인지 패션쇼의 장인지 헷갈릴 정도로 온갖 패션이 난무하더라고요.”
쇼핑백 안에서 챙겨 온 것을 꺼내자 프로듀서로 모인 래퍼들의 표정이 아득해졌다.
“그래서 그 원인이나 다름없는 제가 책임지고 DTB를 패션쇼에서 다시 힙합 서바로 돌려놓기 위해 오늘 그 컨셉러들의 기선 제압을 제대로 해 보려고 합니다.”
모두의 경악 어린 시선 속에서, 주섬주섬 준비해 온 옷을 챙겨 입었다.
문신이 없는 쪽 팔의 소매와 그 반대쪽 다리를 삐딱하게 쓱 걷고, 체인 목걸이를 목에 걸고 선글라스까지 콧대에 척 얹자 완벽한 기선제압 패션이 완성되었다.
나랑 가까이에 있었던 BQ9이 슬며시 내게서 멀어졌다.
“저기… 혹시 그 옷 입고 출연료 더 받기로 미리 합의했어요?”
T:ZE가 조심스럽게 나한테 물어보았다. 고개를 젓자 그럼 아무것도 안 받고 맨정신으로 입는 거냐고 T:ZE가 다시 경악했다.
“맨정신이 아니니까 입는 거지! 100만 원 더 쳐 줄 테니까 동물 잠옷 입고 심사하라고 해도 돈 안 받고 말지, 여기에서 저거 입고 사람 1만 명 모인 곳에서 심사할 사람이 어디 있어!”
“와씨, 존나게 힙합이다. 컨셉충들 기죽이려고 동물 잠옷 저따구로 입고 심사하기. 그런데 안 어울려서 우스운 게 아니라 더 무서워 보여요. 절대 바깥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스타일.”
“심사를 2인 1조로 안 해서 정말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용철이 형이 진심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형은 내가 쪽팔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