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4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4화(546/54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4화
이번 DTB 시즌 6 1차 예선에 몰린 참가자는 총 1만 1천 명. 시즌 5보다 1천 명 적은 수였다.
나를 포함한 신입 프로듀서들은 어마어마한 수에 경악했으나, 이미 1차 예선 심사의 지옥을 지겹도록 맛본 원로 프로듀서들은 1천 명이나 줄었다며 경악은커녕 기뻐하기에 바빴다.
아니, 7천 명이었던 시즌 4 때도 용철이 형 말로는 다음 날 7시 넘어서 끝났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오늘은 대체 몇 시에 집에 갈 수 있는 거야?
“음, 작년보다는 집에 빨리 가겠다.”
“그러니까. 별 이상한 컨셉 잡은 인간들한테 걸려서 멘탈만 안 털리면 버틸 만할 것 같은데.”
최전성기인 DTB 4부터 신청자 수 피크 찍었던 DTB 5까지 프로듀서를 했던 용철이 형과 BQ9은 신입과 원로 그 중간쯤인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용철이 형, 형은 참가자로도 있어 보고 심사위원으로도 있어 봤잖아. 뭐가 더 힘들어?”
“닥후. 전자는 기다리는 게 지루하기만 했지, 후자는 대가리 터져. 합격목걸이 너무 앞쪽에 몰아 준 거 아닌가, 아니면 너무 많이 남았는데 뒤쪽에 붙일 만한 참가자 없으면 어떡하나. 앞에 그래도 괜찮았던 그 참가자 붙여 줄 걸 그랬나. 이런 걱정하느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온 용철이 형의 단호한 대답에, BQ9도 여전히 멀찍이 떨어져서 한마디 보탰다.
“대기하는 거랑 심사하는 거는 비교도 안 되더라. 내가 괜히 3초 심사를 한 게 아니야. 랩 풀로 경청하고 있으면 심사하는 데에 꼬박 사흘 걸렸을걸.”
하긴, 1만 1천 명 중 2차 예선으로 올릴 120명을 선발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사위원 한 명당 할당되는 합격 목걸이는 열다섯 개.
단순 계산으로도 심사위원 한 명당 심사해야 하는 참가자는 1,375명.
아쉽게 탈락하는 인재가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런 사태를 최소화하는 게 심사위원의 몫이었다.
이미 네임드 여럿도 ‘무려 OOO도 넘지 못한 DTB 1차 예선의 벽!’ 같은 자극적인 타이틀을 박은 탈락 모음집까지 만들어지는 DTB라 심사위원이 욕먹을 걱정은 딱히 없지만.
“너도 프로듀싱해 봐서 알잖아. 듣자마자 얘는 그래도 올릴 만하겠다, 감이 딱 와. 허수가 존나 많거든.”
지원이 형이 원로 프로듀서로서 충고를 건네주며 키득거리다가 갑자기 내 꼬라지를 훑어보더니 진지하게 덧붙였다.
“그런데 너는 참가자가 얼타다가 한 템포 늦게 시작해도 좀 봐줘라. 솔직히 내가 참가자로 있어도 얼타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렇게 이상해 보이나 싶어서 대기실의 거울을 쓱 바라보았다.
체인 목걸이랑 선글라스만 벗으면 평범한 아이돌 이벤트 의상인데 뭐가 문제라도?
이제 본격적으로 1차 예선 심사가 시작되었다. 내 몫으로 배정받은 합격 목걸이를 소매를 내린 팔에 달랑달랑 걸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예선장으로 향했다.
* * *
인생 역전의 꿈을 품고 DTB 시즌 6에 지원한 A조의 한 구역이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대열을 맞추어 서자마자 마주한 건…
“자, 적응할 시간 3초 드리겠습니다.”
나름 깜찍한 동물 잠옷을 체인 목걸이와 매치하여 끔찍한 일수 패션으로 소화하고 있는 키 182.7cm의 미친놈이었다.
“3초 후에는 웃겨서 랩을 못했다, 이런 변명 못 받아줍니다.”
눈을 가린 보잉 선글라스가 조명을 받아 번뜩였다.
전혀 웃기지 않다는 걸 제발 알아줬으면 했다. 어설픈 컨셉질은 비웃음과 얕잡음을 불러오지만, 압도적인 컨셉질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참가자들이 이상한 옷을 입고 튀는 행동을 하는 건 방송 분량 확보라는 확실한 목적성이라도 있지, 심사 맡은 프로듀서가 저러고 있는 건 이유가 가늠조차 되지 않아 더 무서웠다.
순수 취향이라면 그건 또 그거대로 공포였다. 방송용 벌칙이라기에는 벌칙용 의상이라고 해도 믿을 옷을 입고 있는 장본인의 표정이 너무 쓸데없이 당당하고 뻔뻔했다.
하필 윤이든이 심사를 맡게 된 첫 타자는 시즌 4 윤이든의 1차 예선 패션을 비슷하게 따 온 참가자였다.
하트 피어싱과 초커라는 디테일한 포인트는 다 날려 먹고 오직 베레모와 청자켓만 고증한 이 참가자는 솔로앨범도 하나 없이 컨셉 패션쇼 원툴인 놈한테 심사받는 걸 비웃는 윤이든 디스 가사를 준비해 왔다.
윤이든 본인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어도 심사위원 저격 랩으로 짧게나마 분량을 확보할 수 있고, 윤이든 본인 앞에서 하면 분량 확보는 따 놓은 당상이니 더더욱 좋고.
-라고 생각했었다.
범접 불가능한 동물 잠옷 일수 패션을 코앞에서 마주하기 전까지는.
베레모와 청자켓, 민소매 패션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주변인들을 경악에 빠트린 센세이션한 패션이었으나, 저 미스매치 일수 패션과 마주하자 정말 평범한 패션으로 보였다.
이래서 발전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동물 잠옷 한쪽의 소매를 걷고 있어 더 잘 보이는 팔뚝의 근육에, 참가자는 쓰고 있던 베레모를 슬며시 벗었다.
“갑자기 베레모는 왜 벗어요? 내 1차 예션 패션 카피한 거 아니에요?”
“그냥 유행따라 산 거라… 사 놓고 아까워서 기왕 DTB 나오는 거 쓰고 왔는데…”
횡설수설 내뱉는 변명을 피식 웃는 걸로 끊어 낸 윤이든이 손짓했다.
“시작하죠.”
이미 패션으로 1차 주눅이 들고 압도하는 분위기에 2차로 주눅이 든 참가자가 면전 디스랩을 당당하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프리스타일로 가사를 이 자리에서 바꾸기에는 실력이 안 됐다. 고개 숙여 웅얼거리는 본인 디스랩을 표정 변화 없이 듣던 윤이든이 3초 만에 참가자의 랩을 끊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 한마디를 남기고 팔에 걸어 놓은 합격목걸이를 절그럭거리며 옆으로 걸음을 옮기는 윤이든에게 대거리 한 번 못 해 보고 참가자는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가자들이 3초간 필사적으로 눈에 담았긴 했지만 겨우 3초의 시간으로 저 크레이지 큐티빠띠빠따 일수 패션에 적응하긴 무리였다. 일단 윤이든이 앞에 서면 한 1~2초간은 얼타곤 했다.
윤이든은 그런 참가자들을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었다. 그 덕분에 저 꼬라지를 하고도 참가자들의 마음에 존경심이라는 게 싹틀 수 있었다.
심사위원이 돼서까지 극악 패션을 유지하는 광기를 면전에서 마주하고 컨셉질을 포기하는 참가자들이 속출했다.
“그냥 좀 튀고 싶었을 뿐인데 왜 저희를 압도를 하세요…”
윤이든 구역에서 탈락한 한 참가자의 기죽은 인터뷰였다.
윤이든은 본인이 맡은 구역뿐만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 구역의 컨셉충들도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윤이든 구역 바로 옆 구역이었던 BQ9의 심사 구역에서 프로듀서끼리 나란히 마주한 타이밍.
바지 내리기 퍼포먼스를 준비해 온 참가자는 바지를 내리다가 본인 구역 라인 심사가 끝난 윤이든이랑 선글라스 너머로 시선을 딱 마주치자마자 바지를 주섬주섬 올렸다.
남의 팬티를 볼 위기에서 벗어난 BQ9이 윤이든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세웠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VXTR(벡스터)의 건휘입니다!”
“옷 멋있게 입고 왔네요.”
‘따, 따라 했다고 꼽주는 건 아니겠지…?’
아이돌 래퍼들의 우상인 윤이든의 업그레이드판으로 DTB에 아이돌 의상을 입고 온 아이돌 래퍼 후배는 그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선배를 마주하고 압박감에 랩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윤이든은 아무 생각 없었다. 제2의 본인이 되기에는 글렀다고 속으로 혀만 차고 있을 뿐이었지.
그렇게 컨셉충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다니는 윤이든을 보며 다른 의미로 쫄리는 인간도 존재했다.
박규혁(a.k.a.빡규)은 점점 다가오는 윤이든을 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딱 두 명만 피하자니까 왜 시발 딱 걸리고 지랄이냐.’
D.I와 윤이든 이간질을 시도했다가 어린놈한테 욕설에 가까운 찐한 독설을 거하게 처먹었던 전적이 있던 터라 윤이든에게 심사를 받는 게 너무 켕겼다.
아이돌로 튄 놈이 저런 거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박규혁은 모르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그걸로 인해 D.I와 손절까지 쳐 버린 터라 윤이든이 저한테 얼마나 깊은 유감을 가지고 있는지.
함께 접수했던 본인 패거리 래퍼가 합격 목걸이를 받는 모습에 그나마 안도한 것도 잠시.
“시작하죠.”
선글라스를 쓱 내려 눈을 드러낸 윤이든의 눈빛이 매우 띠꺼운 빛으로 그를 훑고 있는 걸 보자 입안이 바싹 말랐다. 시발, 이 새끼 나 기억하는구나!
여기에서 갑은 합격 목걸이를 들고 있는 윤이든이었고, 을은 그였다. 랩을 한 3초간 했을까.
“예, 수고하셨습니다.”
그 한마디만 던지고 조금의 주저도 없이 옆자리로 향하는 윤이든의 모습에, 박규혁은 몸을 돌려 터덜터덜 출구로 향했다.
윤이든의 입꼬리가 시원스레 호선을 그리는 걸 보지 못한 채로.
완벽한 권선징악 스토리라고 윤이든이 자화자찬할 만한 에피소드였다. 그 미소에 쫄아 붙은 다음 참가자가 가사를 더듬은 건 유감이었다.
* * *
A조 심사를 마치고 교대하러 가는 길, 제작진한테 붙들려 인터뷰를 하는 참가자 옆을 지나쳤다.
너무 많은 사람을 심사해서 저 사람도 내가 심사했는지 긴가민가했다. 인터뷰 내용이 흐릿하게 들렸다.
“…이 켈X그 콘푸로스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데 그걸…”
우와, 세상에. 살다 살다 콘푸로스트 코스프레를 하고 온 놈도 있어? 세상에는 진짜 별별 인간이 다 있구나.
입고 있던 호랑이 동물 잠옷 안으로 바람이 통하게 펄럭거리며 혀를 찼다.
“심사 어땠냐?”
나랑 같이 A조 심사에 투입되었던 지원이 형이 생수병을 건네며 내게 물었다. 지원이 형이 보유한 합격 목걸이도 내 합격 목걸이처럼 딱히 수에 변화가 없어 보였다.
A조에서 딱 하나 나가다니. 박규혁 패거리에게 준 건 나름의 빅피쳐였다. 그렇게 남 이간질하고 다니는 새끼들이 자기들끼리의 의리가 얼마나 되겠냐. 한 놈 잘되면 또 나한테 한 짓 자기들끼리 똑같이 할걸.
그리고 복수의 감정을 빼더라도 줄 만도 했고.
“다들 얌전하던데요? A조에는 컨셉 잡고 온 사람들 얼마 없었던 거 같더라고요. 이쯤 되면 제가 한 구역이 아니라 그냥 컨셉러들 전용 프로듀서로 투입되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패션이 확실히 효과가 있기는 했는가 보다. 나는 거의 세 줄에 한 번 꼴로 관종들 만났어.”
BQ9도 바지를 내리다가 갑자기 선악과를 먹은 인간처럼 수치심이라는 걸 깨닫고 바지를 올리던 참가자의 이야기로 열변을 토하며 내 패션의 효능을 증명했다.
다른 조에 투입되어도 우연인지 내 구역 참가자들은 참으로 얌전했다. 그저 랩을 시작하기 전에 스턴 걸린 것처럼 잠깐의 텀이 있을 뿐이었다.
심사를 계속하다 보니 낯익은 얼굴들도 간간이 보였다.
쟤는 왜 또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