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4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5화(547/54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45화
“오우, 형! 패션 무슨 일이에요? DTB 4 때는 쨉도 안 되는데요?”
다른 참가자와 달리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니지어스는 시즌 5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 기어코 시즌 6까지 출석 도장을 찍었다.
“규찬아, 인사보다 형 패션 지적이 먼저냐?”
왜인지 모를 숙연한 공기 가운데에서 분위기를 팍팍 띄워 주는 살가운 녀석을 만나니 나도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지적이라뇨. 지적이 아니라 RESPECT입니다.”
혀를 굴려 대며 양손의 엄지를 척 치켜드는 니지어스의 얼굴은 한 점 조롱도 없이 진지했다. 짜식, 존경까지야.
“형, 저 이제 성인 돼서 뒤풀이 때 술 마실 수 있는데 당연히 1차 예선 정도는 붙여 주실 거죠?”
“응, 탈락.”
저 까불거리던 고딩쉑이 벌써 스무 살 성인이 됐다니, 세월 참 더럽게 빨랐다. 그런데 성인이 돼도 까불거리는 건 여전했다.
진짜로 저를 탈락시킬까 봐 쫄기라도 했는지 니지어스는 내가 시작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랩을 시작했다.
저 새끼 친목질로 비벼서 올라가려 한다고 니지어스에게 세상 띠꺼운 눈빛을 보내던 주변 참가자들의 눈빛도 랩을 듣자 감탄과 인정으로 변했다.
그래도 DTB 4에서 열여덟 살의 나이로 조별 예선까지 올라간 놈이다. 허수 사이의 실수는 어찌 됐건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픽 웃으며 니지어스의 목에 합격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역시 DTB 삼수생답게 1차 예선 정도는 껌으로 패스할 만한 실력이었다.
“나이스!”
주먹을 불끈 쥔 니지어스가 합격 목걸이와 함께 날아갈 듯한 발걸음으로 출구로 향했다.
그 후로 심사가 계속될수록 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DTB 제작진들이 방송 각이 잡힐 만한 곳에 계속 나를 투입한다는 걸. 그야 내게 배정된 심사 구역으로 갈 때마다 이상한 의상들을 마주하는데 알아채지 못하는 게 바보지.
하지만 그 참가자들은 컨셉충스러운 의상을 입고 온 것 치고 다들 딱히 컨셉충스러운 행동은 하지 않았다.
용철이 형은 심사하다가 물구나무 서면서 랩하는 사람도 봤다고 했는데 내가 심사한 참가자들은 옷만 요란하게 입었지 랩은 얌전하게 했다. 내가 굳이 기강 잡는다고 정색할 필요도 없었다.
내 패션으로 기선 제압이 된 건지, 아니면 오직 패션으로만 튀고 싶었던 이 참가자들의 순수한 마음을 내가 오해한 건지.
내가 방송 각을 완전히 확신했던 건, 내가 도착하기도 전부터 술렁거리고 있는 심사 구역에 막 도달했을 때였다.
아직 심사를 받기도 전의 대기 상태이건만 다른 참가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저 위쪽의 대기 좌석에서 앉아 있는 이들까지 목을 쭉 빼고 구경하기에 바쁜 참가자.
시즌 4에서 스코언의 안티테제로 주목받으며 세미파이널까지 올라갔던 유피였다.
시즌 4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무명 래퍼였던 유피는 이제 그 누구보다 주목과 견제를 받는 네임드 래퍼가 되어 있었다.
하필 또 심사 첫 순서가 유피라니.
적응할 시간 3초를 익숙하게 고지한 후, 유피의 앞으로 성큼성큼 향했다.
마침내 마주 서자 내 구역뿐만 아니라 옆 구역도, 좌석에서 대기하고 있는 뒷조 참가자들도 모두 우리를 주목했다.
시즌 4에서 최고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3차 예선, 일대일 대전의 주인공들.
그리고 탈락자가 패자 부활전을 거쳐 기어이 살아 돌아와 다시 붙은 세미 파이널에서 3차 예선의 결과를 뒤집어엎으며 결국 우승자와 탈락자로 갈리게 된 운명.
그런 서사를 가진 두 사람이 시즌 6의 1차 예선에서 참가자와 프로듀서 구도로 재회했는데 이게 방송 각이 아니면 무엇이 방송 각이겠는가.
내가 시즌 4에 나가지 않았으면 유피는 그가 서 있는 저 참가자 자리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이 프로듀서 자리에 있었을 거란 생각에 새삼 기분이 묘해졌다.
“미쳤다…”
몸까지 돌려 이쪽을 구경하던 유피 옆자리 참가자가 중얼거렸다.
그래, 방송 각 한 번 기가 막히게 잡힌 미친 상황이긴 하지.
“진짜 잠옷이다…”
미쳤다는 게 이 상황이 아니라 내 패션이었냐.
이너로 반팔티랑 반바지를 잘 입고 있다고, 잠옷만 입고 나온 미친놈은 아니라고 구구절절 해명하기에는 가오가 상하기에, 잠옷 가슴팍을 잡고 펄럭거리며 안에 입은 반팔티를 가볍게 확인시켜 주는 걸로 만족했다.
나를 마주한 유피의 첫 마디는-
“화제성 다 가져가는 건 여전하네요.”
그래, 댁의 쿨찐 면모도 여전하고.
이렇게 입고 온 나를 탓하지 말고 이런 패션을 한 나를 굳이 댁이 있는 구역으로 심사하라고 보낸 제작진을 탓해라.
“어유, 이 정도 화제성도 뛰어넘을 자신 없으시면 일찌감치 하산하셔야지.”
삐뚤어진 선글라스를 쓱 고쳐 쓰며 능글맞게 맞받아쳤다.
내 수신호에 유피가 무반주 랩을 시작했다. 무명이었던 시즌 4와 달리 오버그라운드 래퍼로 올라온 그가 시즌 6에 던지는 도발적인 출사표였다.
실력이 흠잡을 수 없는 수준이기도 했고, 언더독 서사를 잃은 유피가 이번에는 어떻게 경연들을 헤쳐 나갈지 궁금하기도 했기에 유피에게 합격 목걸이를 건넸다.
꾸벅 인사하며 합격 목걸이를 건네받은 유피가 출구로 떠나기 전,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칭찬이었는데.”
아니, 누가 칭찬을 그렇게 무덤덤한 쿨찐 표정으로 해. 나만 칭찬을 도발로 받아들인 놈이 되어 버렸잖아.
유피 바로 다음 순서 참가자가 팍삭 기죽은 채로 랩을 하길래 3초컷 했다. 이건 솔직히 내 패션 때문이 아니라 유피 때문이다. 인정?
유피 이후로도 순탄한 심사가 계속되었다.
“내가 시발, DTB 1차 예선 심사를 하는지, 기인열전 심사를 하는지. 빨리 후반대 번호로 가고 싶다. 거기는 기다리다 지쳐 있어서 이상한 짓을 못한다니까. 할 힘이 없는 거야.”
“아, 진짜요? 아무래도 제작진 분들의 판단 미스인 것 같은데. 제가 가는 쪽은 튀는 사람 없었다니깐요. 아, 지원이 형. 그러고 보니까 유피 왔던데요.”
“유피? 네가 심사했어? 붙였어?”
“사감 다 떼 놓고 봐도 그 실력은 붙여야죠.”
그리고 나는 교대 겸 휴식 시간에 타 프로듀서들의 개고생 썰을 듣고 혼자 웃은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아주 호되게.
“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익숙하게 참가자를 탈락시키고 옆으로 이동했다. 다음 순서는 초등학생 참가자라 눈높이가 훅 낮아졌다. 이제 초딩들까지 DTB에 나오는군. 15금 프로그램에 초딩이 나와도 되는 거야?
그래도 초등학생 때부터 힙합에 관심을 가진 게 기특해서 심사 볼 때 1점 정도는 깔아 주기로 했다.
하지만 기특함도 잠시. 내가 앞에 서자마자 초등학생 참가자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냉정한 심사가 이루어지는 주변 분위기에 압도당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내가 오기 전까지 저 초등학생 참가자는 아주 멀쩡했다.
그렇다면 주변 분위기를 제외하고 저 꼬맹이가 울만 한 이유는…
내 패션을 마주하고 숙연해지거나 눈을 내리까는 모습은 이 DTB 1차 예선 심사에서 지겹도록 많이 봐 왔어도, 울려고 하는 모습은 처음 마주했기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어떡해. 운다, 운다.”
“무서웠나 봐. 하긴, 성인도 무서운데…”
주변에서 속닥거리는 말들은 이 분위기를 한층 심각하게 만드는 데에 한몫했다.
공인은 여자, 아이, 노인을 조심해야 한다.
그분들에게 잘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미지 1을 조질 걸 10을 조지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장면이 어떤 자막을 달고 나올지도 쉬이 상상이 됐다. 그래도 지금은 울먹이는 정도지, 더 조지기 전에 빨리 수습해야 했다.
“아니, 왜왜왜왜왜. 뭐가 문제야? 이거? 이 선글라스 때문에 그래?”
눈을 가리는 선글라스가 괜히 애한테 위압감 들게 해서 이러나 싶어 다급하게 벗고 맨얼굴로 초등학생 참가자를 마주하자 울상이 한층 더 심해졌다.
이제는 입술을 앙다물고 히끅거리기 시작하는 초등학생 참가자를 보며 이마를 짚었다.
꼬마야, 제발…! 이 형은 참가자 한 명을 울려서 랩도 못 하게 만들어 탈락의 늪에 담가 버렸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다고…!
결국 나는 최후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우리 친구 랩하는 동안 형 이러고 있을까? 이러면 좀 괜찮아?”
동물 대가리가 달린 잠옷 후드를 최대한 끌어내려 얼굴을 하관만 빼고 전부 가리자 다행히 히끅거림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래, 내 얼굴에 안 어울리는 너무 깜찍한 옷을 입고 온 내 죄다, 내 죄.
그런데 시발 문제는 이러고 있으니까 내가 앞이 안 보였다.
“친구야, 형 눈에 지금 우리 친구가 안 보이니까 고개로 답하지 말고 육성으로 대답으로 좀 해 봐. 괜찮다고?”
“네, 고개 계속 끄덕이네요.”
보다 못했는지 옆자리 참가자가 대신 육성으로 전달해 주었다.
“그래, 그래. 준비해 온 랩 한 번 해 봐.”
심사도 보기 전에 기가 다 빨려 지친 목소리로 스타트를 끊어 주었다. 그래서 이 고생을 하여 겨우겨우 시킨 랩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그럴 리가. 놀이공원 동물탈 알바생 꼴이 된 내 모습이 웃겼는지 초등학생 참가자가 초딩스러운 랩을 하다가 웃음을 터트리며 끝났다.
“얌마, 너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
타박하는 순간에도 이 꼬마가 또 울어 재낄까 봐 꿋꿋하게 동물 대가리 후드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다.
드디어 몸을 돌려 사라지는 폭탄 꼬마의 뒷모습을 보고 안도하며 모자와 선글라스를 다시 고쳐 쓰고 옆자리로 향했다.
“저기, 혹시 저도 방금처럼 모자로 좀 가려주시면… 역시 안 되겠죠… 네….”
말하다가 스스로 깨달은 참가자가 바로 랩을 시작했다. 육성 전달의 고마움으로 1점이라는 점수도 깔아 줬건만 그는 가사를 까먹으며 장렬하게 탈락했다.
몇 번의 교대를 더 거치니 이제 슬슬 심사도 후반부에 접어들고 있었다.
참가자들도, 프로듀서들도 힘들어 죽어 가고 있었다. 시즌 4에서는 그나마 빨리 심사를 받은 거라는 걸 새벽 1시가 넘어가자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자, 적응 시간 3초 드립니다.”
이제는 입에 붙은 말을 익숙하게 고지하기게 무섭게.
“야! 그 꼴을 하고 3초로 되겠냐! 인간적으로 10초는 줘라!”
지금까지 나를 거쳐 간 대략 8백 명의 참가자 중에서 처음으로 3초에 불만을 가지고 대거리를 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새벽 1시까지 대기한 것치고는 정말 팔팔한 외침이었다.
참으로 익숙한 목소리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우리 형진이는 나를 프로듀서로 만나도 차암 한결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