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55화(55/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5화
숙소에 설치된 카메라를 켜고는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일상 분량 좀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이런 거로라도 콘텐츠를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자, 그러면 레브 응원봉 디자인 경진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숟가락을 마이크처럼 든 류재희가 박수를 유도했다.
심드렁하게 박수를 치고는 빠루 응원봉이 뜬 휴대폰 화면을 카메라에 들이밀었다.
“혹시 소속사가 일 안 한다고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LnL 직원분들은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저 저희가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러는 것뿐이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빠루는 너무한 거 아니냐고.
우리가 디자인하자고 내가 제안할 때부터 표정이 영 그렇더니, 번쩍 손을 들어 올린 김도빈이 물었다.
“질문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없으면 어떡해요?”
“우승 상품 10만 원을 못 받는 거지.”
“우승 상품 10만 원은 어디에서 나온 거예요?”
“내 통장에서.”
10만 원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모두의 눈에 초롱초롱하게 안광이 돌았다.
크으, 감탄사를 내뱉은 김도빈이 짝짝 박수를 쳤다.
“크, 역시 레브의 갓프로듀서, 킹이든.”
“갓이냐, 킹이냐, 하나만 해라. 그래서 포기한다고, 도빈아?”
“그럴 리가요. 예고의 저력을 보여 드리져.”
소매를 걷고 의기양양하게 웃는 녀석을 보며 픽 웃었다.
그래, 얼마나 디자인 멋있게 뽑는지나 보자.
제한 시간은 30분. 인터넷 검색 자유. 단, 디자인 표절은 엄금.
30분간은 펜 소리와 쓰읍- 숨 들이켜는 소리, 끄응 앓는 소리만이 숙소에 울렸다.
나 역시 인터넷으로 검색해 가며 노트에 미리 생각해 놓았던 디자인을 쓱쓱 그려 나갔다.
침묵의 시간이 길긴 하지만 프로그램 측에서 알아서 잘 편집해 줄 것이다.
30분으로 설정해 놓은 타이머가 울리자 종료를 외치며 펜을 내려놓았다.
“자, 그러면 도빈이 형부터 공개 들어가겠습니다.”
레브 자체 제작 브금으로 깔린 타짜의 패 공개 음악에 맞추어 김도빈이 종이를 당당하게 들어 올렸다.
작대기 위에 D가 올려진, 누구나 떠올릴 법한 상당히 성의 없는 그림이 보였다.
“저희 팬클럽명인 데이드림의 D를 형상화해 봤습니다.”
겨우 그거 그리려고 소매까지 걷으면서 그 쇼를 했던 거냐. 냉정하게 평가를 내렸다.
“창의성 0, 예술성 0, 구현 가능성 5, 총점 5.”
“아니, 현대예술 모르세요? 극강의 심플함과 이 D라는 한 알파벳에 담겨 있는 여러 의미!”
“데이드림 말고 또 뜻이 있어?”
“Dream의 D요.”
그 당당한 말에 할 말이 없어져서 김도빈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다른 멤버들도 나랑 마찬가지였는지 저를 향한 네 개의 시선을 버티지 못한 김도빈이 아무 말이나 내뱉기 시작했다.
“D의 일족의 D-”
“자자, 여기까지.”
김도빈의 말을 급히 잘라 냈다. 그다음 차례는 서예현이었다.
또 김도빈 꼴이 날까 봐 잔뜩 긴장한 게 무상하게도 서예현의 디자인과 그림은 완벽했다.
유리구 안에 채워진 검은색 액체와 별 같은 부스러기들.
유리구 가운데에 설치된 LED 장치는 8방위의 별 모양을 하고 있었다.
‘빙글빙글 돌아감’ 같은 문구를 툭툭 두드리며 서예현이 설명을 시작했다.
“불을 켜면 별빛 같은 빛이 나타날 수 있도록 그렇게 디자인해 봤습니다.”
“우주 컨셉인가요. 아, 설마 대표님의 취향을 적극 반영하신 건가요?”
“그럴 리가요. 우주가 아니라 밤하늘입니다. 꿈 하면 밤이니까…….”
제게 씌워지는 끔찍한 오해에 서예현이 황급히 해명했다.
“실물로 보면 확실히 예쁘긴 하겠네요.”
“동감이여. 이건 예술성 5예요.”
“아…… 아…… 내 거랑 너무 똑같은데…….”
얼마나 비슷한 건지, 류재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런데 저거 구현 가능?”
“구현하기는 어려울 거 같은데요. 제작 단가 장난 아닐 듯.”
“창의성 5, 예술성 5, 구현 가능성 0, 총점 10.”
구현 가능성에서 0을 받았어도 제법 높은 점수에 서예현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류재희가 제 디자인 도안을 들어 올렸다.
유리구에 별 모양이 들어 있는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오, 깔끔하니 괜찮네. 디자인이 예현 형 거랑 좀 겹치긴 하지만.”
“그쵸? 저는 구현 가능성까지 생각해서 디자인을 해 봤습니다. 데이드림 하면 꿈, 꿈 하면 밤, 밤 하면 별이죠! 너무 겹치면 달로 바꿔도 전 무관합니다.”
당당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평가를 내렸다.
“창의성 3, 예술성 3, 구현 가능성 4, 총점 10.”
“이의 있습니다! 구현 가능성 왜 4예요?”
“도빈이가 5니까. 그 심플함을 뛰어넘기는 아무래도 좀.”
“이거 상대 평가였어요?”
다음으로는 견하준의 차례였다.
도안을 보자마자 드는 데자뷔에 무심코 김도빈의 것과 번갈아 보았다.
필기체로 그려진 R이 작대기 위에 올라가 있었다.
“저희 레브의 로고 첫 글자를 올려 봤습니다.”
“창의성 3, 예술성 1, 구현 가능성 5, 총점 9.”
최대한 좋은 점수를 선사해 주자 김도빈이 이의 신청을 해 댔다.
“너무 편파 판정 아닌가여. 제가 5점인데 왜 하준이 형이 9점이죠?”
“도빈아, 지금 내 공정성을 의심하는 거니?”
“왜…… 왜 갑자기 나긋나긋하게 말하시는 거죠……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카메라, 망할 놈아.
“다 꿈에 초점을 맞췄는데 혼자 우리 그룹 로고에 초점을 맞춘 것에서 창의성 3점.”
“그럼 예술성은요?”
“알파벳이 필기체라서 1점.”
“저도 필기체로 바꾸면 예술점수 추가 있나요?”
“있겠냐?”
인상을 찌푸리고 투덜거리자 류재희가 입 모양으로 ‘컨셉’을 벙긋거렸다.
김도빈 갈구기는 단념하고 내 도안을 공개했다.
“와, 드림캐쳐!”
“오, 디자인 완전 예뻐.”
열렬한 반응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드림캐쳐를 형상화한 도안입니다. LED라서 불 들어오고요. 깃털 세 개로 포인트를 더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이렇게 양쪽 끝에만 고정되어서 빙그르르 돌릴 수도 있습니다.”
설명을 마치자마자 자체평가를 내렸다.
“창의성 5, 예술성 5, 구현 가능성 5, 총점 15. 오케이, 우승자 정해졌네.”
땅땅땅, 바닥을 두드리며 선언하자 사방에서 야유와 이의가 날아 들어왔다.
“아니, 형! 자기 걸 자기가 채점하는 게 어디 있어요! 공정성에 어긋나는 거 아니냐고요!”
“그런가? 그럼 너희들이 해.”
내 디자인을 앞에 두고 나머지 네 명이 다 들리게 쑥덕거렸다.
“창의성은…… 이건 5 드려야 할 거 같은데요.”
“동의, 나도 데이드림에만 생각이 매몰되어서 드림캐쳐 생각도 못 함.”
“예술성도 이만하면 5 줘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예현이 형 디자인이 5를 받았는데 이것도 5면 형평성이 좀…….”
“그러면 4로 하자.”
“구현 가능성은 5? 4?”
“구현 자체가 어려울 것 같진 않은데? 디자인이 심플하진 않아서 그렇지.”
“그러면 이것도 4로 가죠.”
바닥에 내려놓았던 숟가락을 든 류재희가 점수를 말했다.
“그래서 종합하자면 창의성 5, 예술성 4, 구현 가능성 4로 총점 13!”
“뭐야, 그래서 누가 1등이야?”
“도빈이 형 총점 5, 예현이 형 총점 10, 저 총점 10, 하준이 형 총점 9, 이든이 형 총점 13이요. 그렇다면…….”
두두두두두, 바닥을 두드려 자체 효과음을 만들고는 류재희가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윤이든 씨, 최종 우승입니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카메라 앞에 서서 도안을 들고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네, 제 도안이 채택되어서 참으로 기쁘네요. 이 디자인은 저희가 소속사에 잘 전달드리겠습니다. 우승 상품인 10만 원 역시 제 통장에서 다른 통장으로 신속히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창의성과 예술성과 디자인 실력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내 피 같은 10만 원을 생으로 날리지 않아도 되어서.
내가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는 동안 카메라를 들고 있던 류재희가 수상 소감이 끝나자 카메라를 껐다.
이제 이건 응원봉이 나오면 응원봉을 들고 소개하는 우리의 영상과 합쳐져 나올 것이다.
“그래도 소속사 삽질 덕분에 콘텐츠 하나 뽑았네.”
“아무리 그래도 빠루는 너무했어요, 진짜.”
“바꾸면 망치 나왔을 듯여.”
김도빈의 농담에도 난 웃지 못했다. 진짜로 회귀 전 응원봉 디자인이 망치였기 때문이다.
이러고 보니 진짜 가지가지 했구나, 회귀 전 레브.
* * *
뮤비 촬영일이자 대망의 선물 공개일이 다가왔다.
크리스마스는 멀었지만, 크리스마스에 맞추어 방송이 나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틀 후에 홍콩에서 열리는 WAMA 시상식 참석을 위하여 출국해야 했기에 시간이 빠듯했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트리로 꾸며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세트장에 도착했다.
미리 시놉 받아본 뮤비 내용은 별거 없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및 파티 요리 만들기+동물 잠옷 입고 크리스마스트리 꾸미기+한곳에 모여 자는 척하다 한 명씩 몰래 일어나서 머리맡에 선물 놓기. 이게 전부였다.
뮤비 촬영하는 과정은 모두 카메라에 담겨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나갈 터였다.
며칠 전 다시 뿌리 염색을 하고 애쉬그레이로 변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오랜만에 눈을 가리지 않고 적당히 잘린 길이의 앞머리가 어색했다.
도착하자마자 바리바리 싸 왔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서로에게 들키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가리며, 선물상자에 넣어 한곳에 둔 우리는 뮤비 콘셉트 설명을 들었다.
“크리스마스 파티 상차림을 요리하는 장면부터 촬영할 건데요. 샐러드랑 카나페 정도만 만들어 주시면 되고요. 크리스마스 케이크랑 칠면조구이는 요리하는 척만 해 주시면 됩니다.”
샐러드는 다이어트용 요리면 기가 막히게 해내는 서예현이 맡았고, 카나페는 견하준이 맡았다.
생칠면조를 오븐에 넣고 완성된 칠면조를 오븐에서 빼기만 하면 오케이인 칠면조 구이는 김도빈이.
생크림 치고 빵에 생크림 올려 바르고 케이크 데코까지 해야 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나랑 류재희가 맡았다.
“그러니까…… 이거 오븐에 넣고 빼면 되는 거죠? 오븐은 작동시키는 척만 하고?”
생칠면조와 이미 조리가 다 된 칠면조를 번갈아 가리키며 김도빈이 물었다.
류재희와 나는 이미 단계별로 준비되어 있는 케이크 시트와 딸기를 보며 한 층에 딸기를 몇 개까지 쌓아야 하는가로 토론 중이었다.
내 쪽을 비추는 카메라를 향해 거품기와 생크림 담긴 보울을 들어 올리며 씩 웃었다.
“오늘은 제가 제빵왕 김ㅌ- 아니, 윤이든입니다.”
“꿈빛 파티시엘 아니고요?”
“애니냐, 만화냐?”
“둘 다여…….”
적당히 크림을 치고 케이크 시트에 발라 주랬지. 생크림을 거품기로 휘저으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순탄하겠는데?’
시트에 생크림을 바르려고 하자마자 주르륵 물처럼 흘러내리는 생크림에 당황했다.
“형이 너무 많이 저었나 봐요. 뭔 뿔이 올라올 때까지? 그때까지만 저어야 한다는데.”
“그런데 재희 너는 왜 딸기를 다지고 있냐. 딸기잼 만드냐?”
“헉, 다지는 거 아니었어요?”
“너 딸기 케이크 한 번도 안 먹어 봤냐?”
하하, 순탄하긴 개뿔. 그래. 순탄하면 레브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