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56화(56/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6화
“아니, 딸기 그대로 세워서 올리면 빵 시트 찢어지잖아요.”
“반으로 잘라서 눕히면 되잖아.”
“오, 그런 방법이.”
“하아, 그냥 바꾸자. 그게 낫겠다. 네가 생크림 휘핑 쳐라. 내가 딸기 자르려니까.”
류재희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들고는 녀석이 다져 놓은 딸기를 한쪽으로 치웠다.
예비로 구비되어 있던 생크림 보울을 건네받은 류재희가 진지한 얼굴로 거품기를 휘적거렸다.
뭔 뿔이 올라오는 걸 본다면서 세 번 젓고 멈춰 서 들어 올리는 행태를 반복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괜히 역할을 바꿨나 후회가 몰려왔다.
위에 데코레이션할 딸기 다섯 개만을 남기고 딸기를 반으로 갈랐다.
생크림 묻은 거품기를 들어 올린 류재희가 나를 돌아보며 제안했다.
“이런 베이킹 장면 보면 막 얼굴에 묻히면서 장난치고 그러던데 저희도 한번 연출해 보실래요?”
“너무 비위생적이지 않냐? 얼굴에 가져다 댔던 거로 다시 휘젓는다고?”
내 질색에 류재희는 얌전히 거품기를 내려놓고 적당히 휘핑된 생크림을 빵 시트에 바르기 시작했다.
딸기를 모조리 자르고 나서, 도마에 걸쭉하게 묻어 있는 으깨진 딸기를 진지하게 내려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이거 생크림에 섞으면 딸기 크림 되는 거 아니냐?”
“오, 진정한 딸기 생크림 케이크.”
“버리기 아까우니까 넣자.”
“망치거나 맛없으면 다 형 책임…… 농담임요. 형을 말리지 못한 제 잘못도 있겠죠.”
“아, 그럼 넣지 말든가.”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음!”
말릴 틈도 없이 잽싸게 으깨진 딸기를 생크림이 담긴 보울에 넣고 휘젓는 류재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케이크가 망해도 내 잘못은 없다. 기어이 으깬 딸기를 생크림에 집어넣은 류재희 탓이다.
나는 생각만 했다. 생각만.
케이크 맨 위에 초코가 채워진 짤주머니로 힘겹게 Merry Christmas까지 적고 나서야 할 일이 끝났다.
샐러드와 카나페는 진작 완성된 지 오래였고, 이미 완성되어 있던 칠면조구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엉성하게 완성된 케이크를 식탁보가 비스듬하게 깔린 식탁 위에 올려놓자 서예현이 케이크를 보며 떨떠름하게 말했다.
“케이크…… 이게 맞아……?”
“형, 어차피 생크림 유지방이라고 안 먹을 거잖아.”
카메라 앞이다 보니 일단 얼굴에 미소를 띤 채였다. 김도빈도 두 마디 얹었다.
“왜 케이크가 악마의 열매가 되어 버린 거죠. 굳이 다지다 만 딸기를 이렇게 넣어야 했던 이유라도?”
카메라가 식탁 풀샷을 잡은 것을 확인하고는 빵칼을 집어 들었다.
케이크를 대충 다섯 등분해 앞접시에 하나씩 놓아 주고는 옆자리에 있는 김도빈에게 케이크를 떠서 내밀었다.
“자, 도빈아. 먹고 말하자. 아-”
“왜, 왜 이러세요…….”
벌벌 떨던 김도빈은 내가 카메라 앞이니까 눈치 챙기고 빨리 받아먹으라는 뜻으로 미간을 꿈틀하자 얌전히 입을 벌렸다.
내가 뭐 사약이라도 준 것처럼 죽상을 하고 케이크를 우물거리던 김도빈의 눈이 점차 동그래졌다.
웬일로 케이크를 떠먹고 있던 서예현이 정말 인정하기 싫다는 얼굴로 말했다.
“뭐지. 의외로 맛있는데, 이거.”
“기성품이라 그래. 메이드 인 윤이든&류재희가 아니라 메이드 인 마트라서.”
“맞아요. 저희는 그저 쌓고 바르기밖에 안 했어요. 그냥 생크림에 다진 딸기를 넣어서 비주얼만 좀 망쳤을 뿐.”
“그래, 왜 그랬냐, 막내야.”
“먼저 의견 제안한 사람은 형 아니었나요.”
“다진 딸기 생크림에 넣은 사람이 누구였더라.”
한껏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식사를 마치고 난 우리 앞에는 다섯 개의 동물 잠옷이 놓였다.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은 류재희가 동물 잠옷을 훑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건 모쪼록 자기 이미지대로 입는 거죠. 음, 햄스터가…… 없네.”
“야야, 햄스터 대신 날다람쥐는 있다.”
“그럼 날다람쥐 이쪽으로 패스! 형은 강아지 입으면 되겠다.”
류재희가 김도빈에게 강아지 잠옷을 건넸다. 이제 세 개 남은 잠옷 중 검은 고양이 잠옷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혹시 새끼고양이 태어나서 한 번도 못 보셨냐는 그 답글이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그런 말을 듣고도 굳이 고양이 잠옷을 입어야 할까.
퀭한 눈으로 세 개 남은 동물 잠옷을 멍하니 바라보자 시스템이 즉각 제지를 가해 왔다.
[동태눈깔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이든이 형은 고양이요.”
고통으로 인해 생태눈깔이 된 눈으로 류재희가 건네는 고양이 잠옷을 순순히 받아 들었다.
다른 잠옷도 괜찮은 건 아니었기에 그나마 이 선택지가 최선이긴 했다.
“하준아, 뭐 입을래?”
“형 먼저 고르세요. 저는 남은 거 입을게요.”
견하준은 서예현한테 선택권을 넘겼다.
“으으음…… 토끼냐, 밤비냐…….”
“날 새겠다. 아무거나 입어.”
내 시큰둥한 충고에 결국 서예현은 제 발치에 있는 밤비 잠옷을 집어 들었다. 덕분에 견하준은 자동으로 토끼가 당첨됐다.
티와 바지 위에 통풍 하나도 안 돼서 그렇지 않아도 따스한 스튜디오를 더욱 후텁지근하게 만드는 동물 잠옷을 입고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 앞으로 모였다.
“오, 그러고 보니 나 크리스마스트리 처음 꾸며 봐.”
서예현의 감탄에 장식을 트리에 달고 있던 류재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서예현을 돌아보며 물었다.
“진짜요? 어렸을 때 안 해 봤어요?”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 자체를 안 챙겼어.”
“왜요? 형네 집 불교예요?”
“아니, 무교.”
부모님의 조기교육으로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섯 살에 알았다며, 서예현이 종 장식을 트리에 달며 키득거렸다.
그래서 선물로 돈 봉투를 원하는 삭막한 인간이 되어 버린 건가.
구 장식을 대충 가지에 걸며 생각했다. 한 번씩 카메라를 돌아보며 웃는 얼굴로 손 흔들어 주는 건 덤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선물 교환식 타임.
스튜디오 바닥에 푹신하게 깔린 이불 위에 다섯이 나란히 누웠다.
“누우니까 좀 졸리다.”
“이든이 형, 진짜 자는 거 아니죠?”
“어어…….”
몽롱한 정신을 겨우 붙잡으며 대꾸했다.
우리가 꾸민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놓여 있는, 각자 준비한 선물상자를 제비뽑기로 뽑은 상대의 머리맡에 살짝 두고 다시 이불로 돌아와 누우면 됐다.
지금까지의 촬영 중에서 제일 쉬웠다.
제일 첫 타자는 나였다.
살금살금 까치발로 내가 준비한 선물상자를 들어 서예현의 머리맡에 슬쩍 놓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누웠다.
촬영 중임을 계속 상기하며 점점 가물가물해지는 의식을 붙잡고 있자, 머리맡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부산스러운 발걸음을 보아하니 류재희 아니면 김도빈일 것이다.
뮤비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리얼리티에 나올 선물상자 오픈식을 진행했다.
제일 먼저 서예현이 선물상자를 오픈했다.
선물 위에 올려놓은 한 장짜리 크리스마스카드를 집어 든 서예현이 적힌 글자를 읽었다.
“TO. 서예현 FROM. 윤이든. Merry Christmas. 헐, 너였어?”
나를 돌아보며 놀란 눈으로 묻는 서예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사실 예현이 형 맞춤 취향으로 돈 봉투를 줄까 하다가 그래도 마음이 담긴 선물이 낫다는 판단하에 고심하여 골랐습니다.”
10분간 고민한 것도 고심이라면 고심이지.
막내 라인의 재촉에 서예현이 선물상자에서 선물을 꺼냈다.
남성용 캐시미어 머플러와 옴므 스킨케어 세트.
“오, 의외네.”
이건 뭐 무의식적으로 나온 중얼거림이야, 나 멕이려는 중얼거림이야?
“어떻게 나한테 꼭 필요한 것만 이렇게 딱딱 줬는지 몰라.”
저도 모르게 나온 감탄사였는지 서예현은 혼잣말처럼 슬며시 문장을 덧붙여 수습했다.
내가 뭐 쓰레기라도 넣어 놨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뭔지.
“이거 아무리 봐도 5만 원대에서 살 수 있는 선물이 아닌데요. 형, 얼마 들었어요?”
“노코멘트. 선물 줄 때 상대 앞에서 가격 말하는 건 예의 아니다.”
류재희를 가볍게 타박하며 동물 잠옷 모자에 덮인 머리를 가볍게 헝클였다.
다음으로는 류재희가 선물상자를 오픈했다.
“발신인이…… 하준이 형이네요.”
견하준이 준비한 류재희의 선물은 유선 이어폰과 오르골이었다.
이어폰은 슬쩍 보니 음질 좋기로 유명한 브랜드였다. 내가 알기로는 가격대가 좀 있을 텐데.
그러고 보니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한 번씩 자각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유선 이어폰이었지.
미래에서는 무선 이어폰에 익숙해진 터라 이어폰에 줄이 있으니 또 어색하더라.
다른 하나 역시 오르골 모으는 취미가 있는 류재희에게 딱 맞는 선물이었다.
한껏 감동받은 류재희가 견하준을 덥석 끌어안는 에피소드가 한바탕 있었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그다음으로 김도빈이 선물상자의 뚜껑을 잡으며 비장하게 읊조렸다.
“과연 내 소망대로 돈 봉투가 들어 있을 것인가.”
입으로 자체 BGM까지 깔면서 상자를 오픈한 김도빈이 크리스마스카드인지 명함인지 모를 종이를 들어 글씨를 읽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예현이 형이.”
조심스럽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내려놓은 김도빈이 선물상자 안에서 브랜드 카드지갑을 꺼냈다.
“지갑 열어 봐.”
서예현의 말에 슬쩍 지갑을 열어 본 김도빈은 지갑에 꽂혀 있는 신사임당 두 장에 감격하여 입을 틀어막았다.
어째 카드지갑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오, 센스 있다.”
“그렇지. 역시 지갑 선물할 때는 돈까지 넣어 주는 게 정석이지.”
양옆에서 들려오는 칭찬에 서예현의 어깨가 아닌 척 미세하게 들썩였다.
돈을 받은 탓에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닌 세뱃돈으로 착각이라도 한 건지 서예현에게 넙죽 큰절을 올리는 김도빈을 보며 생각했다.
크리스마스에 큰절이라. 이 무슨 동서양 혼종이지.
다음 순서인 견하준이 선물상자를 열어 선물과 발신인을 공개했다.
“도빈이네. 도빈아, 편지 읽어도 돼? 엄청 길게 썼다.”
“아, 아니요. 형 혼자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도빈이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선물은 텀블러와 무드등.
지원금 5만 원대 내에서 무난하게 살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고마워, 마침 새 텀블러 필요했는데.”
무드등은 잘 때 옆에서 휴대폰 화면만 켜도 무언의 짜증을 내는 견하준이 반길 리가 없었다.
텀블러만 고맙다고 하지 무드등은 언급도 안 하는 저 모습 좀 봐라. 역시 호불호 하나는 확실했다.
그럼 내 선물 발신인은 류재희겠군.
성인 셋의 선물이 공개될수록 점점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변해 가던 류재희의 모습을 회상하니, 원래도 바닥이었던 기대가 완전히 제로를 찍었다.
미성년자 녀석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좋은 선물을 사겠나. 김도빈처럼 5만 원 내에서 마련했겠지, 뭐.
“이야, 어떻게 자기 자신은 쏙쏙 피해서 뽑았어, 다들.”
“진짜 유제의 오르골 컬렉션을 걸고 맹세컨대 조작은 없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내 오르골 컬렉션은 왜 거는데?”
투덕거리기 시작한 막내 라인 녀석들을 뒤로한 채 선물상자를 오픈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제가 받은 선물을 공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