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57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77화(579/57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577화
그렇게 신월에 산업 스파이를 심으려던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왜 그렇게 잔뜩 꼬라지 난 표정이야?”
숙소로 터덜터덜 돌아와서 외주 맡기지 않고 내 머리로 플랜 B를 짜내고 있자, 그런 나를 본 서예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툭- 물음을 던졌다.
“아아니, 자기 필요할 때는 연락 잘 받더니, 이제 와서 차단하고 씹으니까 기분이 영 더럽네? 사람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투덜거리면서 대답을 해 주던 도중, 이게 다른 쪽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는 대답임을 깨달았다.
대번에 심각해진 서예현의 얼굴을 보니 서예현도 아무래도 다른 쪽으로 해석을 한 모양이다.
상대가 차연호라고 해명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했다. 아니, 차연호라고 해명을 하면 모양새가 더 이상해지나.
“너 설마…”
그래, 이를테면 지금처럼 열애설로 오해-
“너 누구한테 돈 꿔 줬냐? 차용증은 확실히 받았지? 액수는 많이 안 크고? 돈 안 주면 바로 소송 걸어 버려. 너 변호사 아들내미잖아.”
-가 아니군. 이것저것 충고해 주는 서예현을 떨떠름하게 보다가 물었다.
“내가 연애 중이라고 오해 안 해?”
“뭐랑? Real music이랑?”
서예현이 <내 우주로 와>가 우리의 대표곡이라는 말을 들은 듯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더 대화를 이어나갈 의지조차 잃어, 방해하지 말고 가라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네 번호를 차단을 했으면 다른 사람 폰으로 연락을 하면 되잖아.”
“상대가 낯선 번호로 걸려 오는 전화는 안 받는 성격이면?”
“그러면 겹지인을 찾아서 그 사람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 그럼 되지.”
이번에는 외주 맡기지 않고 내가 스스로 해결을 해 보려고 했는데 서예현이 외주를 강매했다.
‘겹지인이라…’
차연호가 제일 쉽게 경계를 풀 만 한 이들은 아무래도 알테어 멤버들이겠지만, 타 알테어 멤버들의 전화번호가 내게 있을 리는 없었다.
활동도 몇 번 겹치고, 그룹끼리 예능 촬영도 함께한 적도 있고, 하와이에서 휴가가 겹치기도 했는데 레브와 알테어의 친분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다른 겹지인을 찾아냈다.
“연호 번호? 당연히 있지.”
지원이 형은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고 기꺼이 내게 차연호와의 통화가 연결된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여보세요? 지원이 형, 무슨 일이세요?
“아, 차단 좀 풀어 보라고요, 선배님! 답답해서 돌아가시겠네, 진짜!”
뚜-
전화가 매정하게 끊겼다. 벌레 씹은 듯한 내 얼굴을 본 지원이 형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너 얘한테 돈 빌려 줬어? 연호가 사업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돈 빌릴 정도는 아닌데…”
차라리 돈을 빌렸으면 고소장이라도 날려서 소환하지.
여기에서 한 번 더 전화를 걸어도 지원이 형의 번호로 오는 전화는 차연호가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형 폰으로 연호 선배님한테 문자 한 통만 보내도 돼요?”
“어엉, 내가 협박죄로 고소 독박 쓸 만한 문자는 보내지 말고.”
“에이, 별걱정을 다.”
[KJ] 오후 3:32차연호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제발 알아먹길 바란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이제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튀어나와 가늠하는 눈으로 훑어보며 시커먼 속내를 숨긴 면상으로 웃던 차연호가 그리울 지경이었다.
차연호가 개똥 같은 놈이라는 소리는 맞다.
차연호가 내 번호 차단을 풀 때까지 기억의 파편으로 알게 된 사실을 천천히 머릿속으로 정리해 봤다.
회귀 전, 그러니까 모든 일의 시작점인 1회차라고 해야 하나.
그때 케이제이는 죽기 전에 굳이 본인을 표절 건으로 공격하고 착취로 인한 연습생 자살 건을 까발렸던 내게 전화를 걸어서 진실을 밝혔다.
알테어 데뷔 전에도 똑같이 착취당하다 죽은 연습생이 있었고, 케이제이는 그 사실을 묻은 대가로 알테어로의 데뷔를 보장받았다.
혹시나 해서 구글링도 해 보고 류재희한테도 서치를 부탁해 보니 정말로 신월 연습생이 투신 자살했다는 기사가 존재했다. 그마저도 언론사 딱 하나.
시기도 알테어 데뷔 몇 년 전이니 얼추 들어맞았다.
기사에는 정확한 이유가 드러나 있지 않았지만 케이제이가 말한 ‘나랑 같이 연습생이었던 그 형’이 이 기사의 사망한 연습생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침묵을 대가로 데뷔한 케이제이가 훗날 진실을 폭로할까 두려워한 소속사는, 그가 결코 입을 열지 못하도록 똑같은 가해자가 되도록 종용하며 그의 약점을 쥐었다.
그러던 중, 내가 공공연히 자행되어 오던 그 착취의 일부분을 파헤쳐 폭로하자, 신월 엔터는 방패막이 겸 꼬리 자르기로 케이제이에게 모든 비난이 집중되도록 만들며, 문제의 본질을 구조적인 문제에서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둔갑시켜 유유히 빠져나갔다.
케이제이가 자업자득으로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케이제이도 따지고 보면 결국은 망할 신월 엔터의 착취 시스템에 의해 버려진 또 하나의 희생양일 따름이었다.
-그러니까, 너도 조심하라고. 내가 봤을 때, 나 다음은 너야.
-내 꼴 나지 마.
그리고 케이제이의 경고를 봤을 때, 서른 살의 내가 그 꼴이 난 건 신월 엔터의 개입도 한몫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LnL을 나온 나는 소속사도 없는 프리 작곡가였고, 대형 기획사가 히트곡 좀 있을 뿐이지 전직 아이돌로서 팬도 많지 않고 인지도도 딱히 높지 않았던, 아니 오히려 그딴 식으로 탈퇴하며 미움을 샀을 나 같은 놈 하나 묻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테니까.
물론 LnL에 계속 있었어도 그때의 LnL이 그닥 나를 잘 보호해 줬을 것 같진 않지만.
내가 찾은 기억의 파편과 그 기억을 바탕으로 추론한 사실들은 여기까지다. 그래서 그 이후를 기억하고 있는 차연호가 필요했다.
특히, 케이제이가 남긴 유서.
차연호가 케이제이 유서의 존재를 알고 있느냐 없느냐는 매우 중요했다.
그 대답 여하에 따라서 차연호와 손을 잡을지, 아니면 차연호도 신월과 한패로 규정할지 정해지니까.
차연호가 만약 케이제이 유서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면, 나를 죽음으로 내몬 것에 일조한 것뿐만 아니라 신월의 이 빌어먹을 착취 시스템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그 시스템의 굴레에서 케이제이만 쏙 빼는 게 목적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나는 그 꼴 못 본다. 나는 신월 엔터의 착취 시스템을 박살 내는 게 목표였다.
내가 케이제이라는 인간 하나 좆되게 하려고 그렇게 고발을 해 댔겠냐고. 표절하고 착취하는 꼴 뭐 같아서 고발을 한 거지.
그런데 더 큰 배후가 있으면 가담한 개인은 일단 후 순위로 제쳐 두고 그걸 고발하는 게 우선 아니겠냐.
회귀 전처럼 케이제이 개인한테 모든 화살이 쏠리는 걸 막기 위해서는 신월 엔터의 만행부터 먼저 까발려야 했다.
신월 엔터 소속인 차연호가 그 조력자가 될 것인지, 박살 내야 하는 일부가 될 것인지.
그건 오롯이 차연호에게 달려 있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시선을 내리자 휴대폰 화면에 [차연호 선배님]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차연호가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용건을 말했다.
“회귀 전에, 케이제이가 남긴 유서가 있었어?”
-1회차랑 2회차 때도 유서로 염병 떨더니, 지금도 이러네.
차연호가 치가 떨린다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차연호가 전화를 끊기 전에 잽싸게 덧붙였다.
“그러면 질문을 바꾸지. 케이제이가 유서를 남겼다는 걸 너는 알고 있었어?”
-…뭐라고?
한참의 침묵 끝에, 차연호가 겨우 숨을 뱉어내듯 속삭임으로 되물었다.
이게 연기면 차연호는 솔직히 아이돌 때려치우고 할리우드로 진출해야 한다. 오스카 남우주연상도 타겠어, 아주.
“기억 하나 찾았어. 케이제이가 죽기 전에 나한테 전화를 해서, 유서의 존재를 알렸더라고.”
일단 케이제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배후가 신월 엔터라는 사실은 제외하고 진실을 알려주었다.
-그때 네가 계속 나 붙들고 유서 소리만 해 대길래, 나는 네가 정준이 유서에 이름이 적혀 있을까 두려워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차연호의 말은 꼭 유서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처럼 들렸다.
-없었어.
차연호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내가 분명 최초 발견자였는데. 혹시나 유서가 있을까 하고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그렇게 온 집안을 뒤졌는데도 없었-
차연호의 말이 뚝 멈췄다.
-아…
차연호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침음을 흘렸다.
-정준이 집이, 숙소였어. 다른 애들 다 연차 차서 나가는데 정준이 혼자…
숙소에 홀로 남은 게 케이제이의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후자라면 어떻게든 소속사의 통제하에 두려고 했군.
“유서는 장례식 끝나고부터 찾아본 건가?”
-아마… 그때는 119 부르고 병원까지 따라가고, 소속사에 연락하고… 아무튼 정신 없었으니까.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눈앞에서 마주하고도 멀쩡하게 유서를 찾고 있을 정신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이성적으로 보였던 견하준도 내 영정사진 앞에서 무너졌는데.
차연호가 유서를 찾은 게 케이제이의 장례 이후라면 그동안 신월이 유서를 빼돌릴 시간은 충분했다.
신월 엔터 인성이라면 꼬리 자르기를 하고 난 이후에 케이제이가 폭로하지 못하도록 인터넷 접속을 차단해 버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조작으로 몰릴 걸 염려해서 자필 유서를 고집했을 수도 있고.
“네가 케이제이 죽음을 겪은 게 현재 회차 제외하고 총 6회차 중에 몇 번이야?”
-두 번… 처음, 그리고 두 번째.
“두 번째 때는 껄끄러운 점이나 이상한 점 없었어? 그때는 케이제이 죽음의 원인이 뭐였는데?”
-그때도 네가 너네 그룹 탈퇴하고 폭로했잖아.
“1회차랑 똑같이? 아니면 케이제이 개인이 아니라 너희 소속사를?”
-…소속사로 시작했지만 결국 화살이 정준이한테 갔지. 결국 그 연습생의 곡을 가져다 쓴 건 정준이었으니까.
결국은 2회차의 나도 신월 엔터의 착취 시스템 저격을 실패했다는 소리였다.
“이상한 거 있으면 다 말해 봐. 빨리.”
-아, 2회차에서 정준이가 나를 좀 껄끄러워했어. 그냥, 나는 부담 때문에 표절한 줄 알고 미래 히트곡들 가져다주고 그랬는데, 그게 답이 아니었는지.
그러니까 2회차의 케이제이는 출처 모를 곡을 막 가져다주는 차연호도 본인을 착취 가해자로 만들고 있는 소속사와 한패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2회차의 차연호도 유서의 존재를 몰랐고.
잠깐만,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그냥 막 해도 되나? 거짓말 탐지기 정도는 사이에 놓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