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6화(6/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6화
“결국 팬덤명은 데이드림이 최다 득표율 땄네요. 쳇, 아쉽다. 닉스가 부르기도 예뻤는데. 그러면 우리 팬덤 애칭은 뭐로 하죠? 데이? 끝자리 따서 드림? 아니면 백일몽이니까 일몽?”
“구려! 너무 구려!”
내 짜증 어린 외침에 눈을 동그랗게 뜬 류재희가 나를 휙 돌아보았다.
“헐, 지금 제 아이디어 보고 구리다고 한 거예요? 그러면 형이 내보시던가요. 데이, 드림, 일몽보다 더 까리하고 귀엽고 부르기 편하고 입에 착착 달라붙는 애칭이면 인정해 드리죠.”
“뭔 개…… 아니, 헛소리야. 장비 시설이 구리다고. 그런데 너 말본새도 영 구린 것 같다?”
뭐? 내보시던가요? 인정해 드리죠? 인별 피드에서 눈을 떼고 도끼눈으로 쳐다보자 류재희가 깨갱, 꼬리를 내렸다.
안 그래도 지금 마음에 드는 작업실이 눈 씻고 찾아 봐도 없어서 성가셔 뒈지겠는데.
회귀 전에야 반듯한 내 작업실이 있었지만 지금은 쥐뿔도 없었기에 대여밖에 답이 없었다.
회귀 전처럼 따로 작업실을 만들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 현재 재정상태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작곡 장비가 있는 스튜디오들은 대여비도 비싼데다가 지하에 처박혀 있어 건강에도 영 별로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장비가 구렸다.
물론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지만 일단 나는 가렸다. 최신형 장비가 아니면 기분이 영…….
피를 토했다니까 엄마가 기겁하며 한 보따리 보내 준 보약을 마시며 힙합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쌓은 인맥 목록을 쭉 훑다가 눈에 익은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용철이형- 야, 마이 뉴 작업실 함 올래?] [ㅇㅇ 개업 축하 화분 사서 가야 함?] [용철이형- 뭔 개업은 개업이여 내가 창업했냐?]현 날짜상으로 최근에 나눈, 7년의 세월을 거슬러 온 내 기억에는 없는 채팅 내용을 쓱쓱 올리며 매트리스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연락해, 말아?’
신경질적인 손길로 머리를 헝클어뜨린 나는 애써 자기최면을 걸었다.
‘괜찮겠지. 지금은 아직 사이가 안 틀어졌을 때니까…….’
그래도 회귀 전에 관계가 틀어져 마지막에는 최악의 형태로 인연이 끊긴 이에게 연락하는 건 꽤 많은 다짐과 멘탈을 요구했다.
하지만 작업실도 뭣도 없어 데뷔 앨범 곡들 녹음할 때마저 외부 녹음실을 대여한 소속사의 상황과 내 얇디얇은 지갑 사정을 고려했을 때 이게 최선이었다.
내 기억으로 다음 앨범 발매는 데뷔 앨범 활동 발매일로부터 4개월 후. 콘셉트 회의하고 녹음하고 뮤직비디오 촬영하고 하려면 내게 당장 남은 시간은 1개월도 채 안 된다.
그때까지 곡 샘플링을 완성하려면 최대한 빨리 작업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야지 3주 후에 있을 내부 회의에 그 곡을 들고 갈 수 있으니까.
아직은 남돌도 여돌처럼 대중성으로 충분히 승부할 수 있는 시기다.
노래가 잘 뽑혀 대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면 역주행 직캠 그 이상의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다음 앨범도 데뷔 앨범 못지않게 구리다는 게 문제였다.
회귀 전의 레브는 그렇게 차트인 실패 2연타를 맞고 망돌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달리 3천만 명 이상의 팬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이 빌어먹을 회귀를 끝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 앨범을 성공시켜 1군으로 가는 루트를 밟아야 한다.
꾸욱, 엄지손가락이 통화 버튼을 짓누르듯이 터치했다. 몇 번의 신호음 소리가 가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어, 윤이든이! 데뷔 축하한다! 그런데 그 랩 가사 네가 쓴 건 아니지? 존나 구리던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최대한 어색해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곧장 본론을 말했다.
“형, 나 혹시 형 작업실 좀 빌릴 수 있을까?”
-엉, 당연히 괜찮지. 나 지금 작업실인데 지금 올래? 문자로 주소 보내 줄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흔쾌히 허락이 떨어졌다.
모자를 눌러쓰고 현관문으로 나가니 소파에 걸터앉아있던 김도빈이 휴대폰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불렀다.
“이든이 형, 어디 가요?”
“살길 찾으러.”
내 대답에 막내 녀석의 눈이 잘게 떨렸지만 왜 저러나 하고 가볍게 넘어갔다.
* * *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내고 똑똑, 문을 두드리자 문이 벌컥 열리며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나를 반겼다.
내 마지막 기억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여어, ED!”
아무렇지 않게 나를 맞이하는 용철 형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울컥했다.
이간질로 인한 오해 때문에 한순간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렸던 회귀 전 과거가 겹쳐졌다.
맞아, 우리가 이렇게 친했었는데. 형이 먼저 사과했으면 기꺼이 받아 줬을 텐데.
“용철이 혀엉!”
치밀어 오르는 서러움과 오랜만에 보는 이를 향한 반가움에 팔을 넓게 벌리며 달려가자, 정색한 용철 형이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덮어 쭉 밀어냈다.
“아, 다 큰 사내새끼가 징그럽게. 그리고 내가 시발, 용철이라고 부르지 말라 했지.”
아니, 용철이를 용철이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
나를 작업실 안으로 들여보낸 용철 형이 내 옆모습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어째 아이돌이 됐는데도 와꾸가 바뀐 게 없냐?”
“나 참, 뜯어고친 곳도 없는데 외모가 변하겠냐고. 솔직히 내가 성형해야 데뷔할 얼굴이야?”
“하긴, 넌 원래 이게 되니까. 그러니까 언더에서 안 썩고 아이돌로 데뷔했지.”
제 얼굴 앞에 손바닥을 흔들며 용철이 형이 킬킬거렸다.
본명 이용철. 예명 D.I.
Dragon(용) Iron(철) 줄여서 D.I라나.
몇 년 전 내가 ED라는 예명으로 힙합 언더그라운드 씬에 살짝 발을 담갔을 적에 친해졌던 형이었다.
자기는 D.I니 ED.I로 더블 듀오를 결성하는 게 어떠냐는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면서 먼저 다가왔었다.
내가 언더를 포기하고 아이돌의 길을 택함으로써 우리의 길은 달라졌지만 그래도 연락은 데뷔 3년 차까진 계속 이어 나갔다.
그 이간질 사건 이후로는 사이가 틀어져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씁쓸한 기분에 용철 형에게서 시선을 떼고 좁은 작업실을 괜히 한 번 둘러보았다.
분명히 장비는 모두 새것이었지만, 최신식 기기로 쫙 깔아 놨던 7년 후의 내 작업실이 여전히 기억에 생생한 터라 묘하게 구식같이 느껴졌다.
그래, 7년이나 거슬러 온 상황에서 이전과 같은 수준을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DAW(작곡 프로그램)가 깔린 모니터 앞의 신디사이저 건반을 눌러보던 내 어깨에 팔을 턱 걸치며 용철 형이 말을 걸었다.
“마, 기왕 온 김에 데뷔턱이나 내라.”
“당연하지. 근처에 봐 둔 괜찮은 맛집이라도 있어?”
회귀 전에 이 형에게 얻어먹은 게 좀 많았기에 승낙의 말은 흔쾌히 나왔다. 휴대폰을 흔든 용철 형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뭔 귀찮게 나가서 먹어. 중국집 배달이나 시키자. 2번 세트 어떠냐?”
“그거로 돼?”
“그 바닥 상황 훤히 꿰고 있는데, 데뷔 죽 쑨 놈한테 뭔 돈까지 뜯어 가겠냐.”
“그러게, 너무너무 아쉽다. 대박 쳤으면 스테이크나 썰러 가는 건데.”
심드렁한 목소리로 맞받아치니 나중에 성공하면 성공턱도 내라며 용철 형이 내 머리를 헝클였다.
전화한 지 30분도 안 돼서 배달이 완료되었다. 짬뽕+짜장면+탕수육+군만두+콜라 1.25L로 이루어진 2번 세트가 작업실 테이블에 쫙 깔렸다.
짬뽕 그릇에 칭칭 감긴 랩을 벗기며 투덜거렸다.
“그쪽 놈들은 다들 비웃고 있겠네. 이러려고 언더 뛰쳐나갔냐고.”
“어어, 안 그래도 요즘 너 씹고 뜯고 비웃는 게 언더 최고 안줏거리다.”
“하이고, 똑같은 무명 처지끼리 아주 지ㄹ…… 쇼를 해요, 쇼를.”
“푸핫! 너 데뷔했다고 바른말 쓰기 캠페인이라도 하냐?”
터진 폭소에 무어라 대꾸하지 못하고 뒷머리만 긁적였다.
욕하면 초심도가 깎여서 회귀한다고 설명하기에는 내가 생각해도 미친놈 같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짬뽕과 탕수육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군만두 두 개째를 먹으려던 그 순간.
[열량이 높은 음식을 한꺼번에 섭취한 것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찌릿, 느껴지는 고통에 군만두가 다시 그릇으로 툭 떨어졌다.
지금 체중 조절하라고 꼽 주는 거야?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는데, 별 걸로 다 깎네. 밥은 좀 편하게 먹자, 어?
“안 먹냐?”
“어, 형 많이 먹어.”
이 망할 시스템이 나보고 밥도 처먹지 말란다. 아이고, 시스템이 사람 잡네. 피도 토하게 만들더니 이제 밥도 마음 놓고 못 먹게 해, 아이고.
[모든 음식이 아니라 ‘균형이 잡히지 않은 열량 높은 음식’ 한정입니다.]그거나그거나. 열량이 높을수록 맛있는 음식이라는 진리도 모르냐?
변명하듯 띄운 상태창을 향해 휘적휘적 파리 쫓듯 손을 내저었다.
“비밀번호는 9125니까 아무 때나 와서 작업해라. 나는 당분간 안 올라니까. 나중에 작업실 필요할 때도 말하고.”
“대여비는?”
내 물음에 용철 형은 대답 대신 나무젓가락으로 짜장면 그릇을 툭 두드렸다.
“뭐야, 데뷔 턱이라며.”
“겸사겸사 퉁 치는 거지. 정 내고 싶으면 성공해서 갚던가, 짜샤. 젊은 놈이 앨범 하나 망했다고 인생 끝난 것처럼 죽상하고 있는 거 보기 안 좋다.”
저것도 위로라고 자기 스타일로 건네는 나름의 위로에 미약하게나마 위안을 느낀 나는 형의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던져 주었다.
“고마워, 형. 만약 힙합 서바이벌 오디션 나가려면 꼭 머리 짧게 치고 가. 대걸레 같은 머리스타일이 용철컷으로 불리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뭐라냐.”
덥수룩한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린 용철 형이 뒷정리를 마치고 모아 놓은 빈 그릇을 들고는 작업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곧바로 컴퓨터를 켜고 신디사이저 앞에 앉아 손끝으로 건반을 툭툭 두드렸다.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뽑기에는 너무 위험도가 높다.
아직은 눈치 보이지 않고 투자받을 수 있는 소속사 자본, 아직 데뷔 초라는 가능성으로 최대한 빨리 승부를 봐야 했다.
그러려면 이 도박의 성공률을 어떻게든 최대치로 끌어내야 한다.
대중성이 입증되고 성공 확률이 어느 정도 보장된 곡.
중독성 있는 훅과 따라 하기 쉬운 안무가 어울리는 곡.
그러면서 너무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컨셉에 찰떡인 곡.
“훅 코드가 이거였나?”
건반을 두드리자 내 손끝에서 멜로디가 완성되었다. 멜로디에 맞춰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추억에 잠겼다.
이 곡은 바로 내가 과거에 작곡했던 곡이었다.
내가 무슨 노래를 작곡해 가져가든 항상 어깃장을 놓던 우리 소속사의 태도에 배알이 꼴려 충동적으로 중소형 엔터의 신인 보이그룹에게 팔았던 곡이다.
꽤 높은 순위로 차트인한 노래 덕분에 그 보이그룹은 대중들의 눈도장을 찍고, 그 후로도 우리 소속사보다 훨씬 감 있는 그쪽 소속사의 푸쉬를 받으며 나름 중박을 쳤다.
내게 저작권료 수입의 달콤함을 처음으로 알려 주었던 곡이기도 했다.
다른 작곡가의 히트곡을 가져다가 쓰면 엄연한 도둑질이지만 이건 ‘내 곡’이니 충분히 쓸 자격이 되겠지.
어쩌다 미래의 데뷔곡을 뺏기게 된 그 그룹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했다.
미안, 대신 나중에 괜찮은 곡 하나 뽑아 줄게. 그럼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