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6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60화(60/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60화
“자자, 얼마 안 남았다! 연말까지 조금만 더 고생하자!”
짝짝 손뼉을 치며 연습실 바닥에 뻗어 있는 멤버들을 일으켜 세웠다.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우리는 거의 하루 종일 연습실에 살다시피 했다.
그나마 크리스마스 기념송 뮤비 메이킹 영상과 자잘한 일상 촬영분으로 리얼리티 분량을 확보해 놔서 다행이었다.
스페셜 무대 때문에 1대 1 과외로 붙어 안무를 가르쳐 주던 견하준 덕분에 그나마 서예현은 군무 동작 정도는 어느 정도 해내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아직 각도까지 맞추는 건 멀었지만 말이다.
적어도 칼군무 소리는 듣게 완성시켜 놔야 하는데 갑갑했다.
“저희 그만하고 하면 안 될까요.”
류재희가 여전히 연습실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제안했다.
덜 움직이고 싶어서 머리 굴린 게 빤히 보였다.
“그래, 그러면 우리는 이제 KICKS에게 WAMA 신인상도 뺏긴 것도 모자라 실력까지 딸리는 놈들이 되겠지. 이 형은 그런 우리 그룹이 차암 자랑스럽다.”
“자랑스럽다고 하시면서 눈이 돌았는데요…….”
“나 말고 견하준이나 좀 보지?”
거울에 기대어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견하준의 얼굴을 본 류재희가 벌떡 일어나 옆에서 굴러다니고 있던 김도빈을 잡아끌어 일으켰다.
“형,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일어나…… 하준이 형 눈 돌았어…….”
슬쩍 고개 들어 견하준의 눈을 본 김도빈이 번개 같은 속도로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눈이 좀 제정신으로 돌아온 견하준은 서예현을 붙들고 유의 사항들을 늘어놓았다.
“앞사람 보면서 타이밍 맞추기 신경 써요. 각도는 지금 맞추기는 살짝 어렵겠지만 거울 보면서 대충 맞춰라도 보고요.”
편곡 버전의 이 흘러나왔다. 하도 많이 들어 이제는 원곡이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오늘치 연습을 무사히 마치고 연습실을 나섰다.
서예현만이 더 연습한다고 홀로 연습실에 남았다.
스냅백을 뒤로 고쳐 쓰며 숨과 함께 한탄을 내뱉었다.
“그 형은 연습하는 시간만 떼서 보면 세계권 대회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인데 왜 실력이 안 늘까.”
“그런 사람들 있어여. 타고난 몸치 기질 가진 사람들. 연습 죽어라 해도 남들 5분의 1 정도나 겨우 따라오니까 자기도 미치려 하고. 아예 뻣뻣하면 몰라, 연습하면 어찌어찌 되긴 하니까 포기도 못 하겠고.”
비록 살아온 인생 자체가 짧지만, 인생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넘게 춤을 취미로, 전공으로 꾸준히 삼아 왔던 김도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 사람들 꽤 봤거든요. 아마 예현이 형도 스트레스 엄청 받을 거예요. 그거 극복하고 춤 실력 완성시킨 사람 저 이제까지 딱 한 명 봤어요.”
그 한 명이 서예현이 되는 기적은 정녕 일어나지 않는 거냐?
7년 차가 되도록 안무 외우는 데 며칠이 걸리고, 무대 위 안무 실수는 디폴트였던 서예현을 떠올리자 그저 한숨만 나왔다.
그런 내 반응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김도빈이 슬그머니 덧붙였다.
“형같이 그럭저럭 타고난 사람들은 평생 가도 모를걸요.”
“그럼 너는 알고?”
“저도 모르죠. 그냥 저런 케이스들을 봐 와서 하는 소리지. 형보다 훨씬 더 타고난 제가 알 리가 있겠어요?”
“까불지?”
한마디 해 주고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견하준에게 말했다.
“준아, 힘들면 그냥 나한테 넘겨. 내가 경험자라서 아는데 스트레스 장난 아니더라.”
“아니야. 그래도 예현이 형도 노력하고 있고, 생각보다 더 잘 따라와 주고 있어서 괜찮아.”
견하준의 표정이 평온한 게 연기인지 진심인지를 모르겠어서 아리송했다.
연기 천재를 친구로 두면 이게 참 불편하단 말이지.
얼굴만 봐도 감정과 기분을 알아채는 친구 사이는 됐다고 생각하지만 견하준이 작정하고 숨기면 나도 읽기 힘들다.
“그런데 형 왜 제가 선물한 스냅백 안 쓰고 다녀요?”
내 스타일 아니니까 안 쓰고 다니지, 인마.
하지만 이 말을 한다면 녀석이 정말로 울어 버릴 것 같았기에 적당히 돌려 말했다.
멤버 울렸다고 시스템이 초심도 깎으면 어떡하겠냐고.
“우리 막내가 선물한 걸 어떻게 눌린 머리 가리기용으로 쓰겠냐.”
“그렇다고 치기에는 평소에도 안 쓰고 다니시던데.”
“너무 깊게 파고들지는 말자. 쌍방 피곤하니까.”
류재희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이자 김도빈이 옆에서 깝죽댔다.
“에이, 솔직하게 말해도 돼여, 형. 그 스냅백 마음에 안 들죠? 제가 분명히 옆에서 그거 형 스타일 아닐 거라고 뜯어말렸는데 막내가 자기 마음에는 든다고 그냥 사더라고요.”
“시꺼, 도비.”
대꾸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은 나는 내가 연습실에 휴대폰을 두고 왔다는 걸 그제야 상기해 냈다.
어쩐지 연습실 밖으로 나갈 때 뭘 두고 가는 것 같더라니.
“아, 휴대폰 두고 왔다.”
“이따가 예현이 형한테 챙겨 오라고 문자 넣어 놓을까요?”
“아니, 지금 가지러 갔다 올 테니까 너희 먼저 들어가.”
나는 휴대폰 분리불안증이 있는 21세기의 흔한 인간이었기에 곧바로 진로를 틀어 연습실로 돌아갔다.
서예현이 언제 올 줄 알고 휴대폰 없는 상태로 기다리고 있겠는가.
연습실 문을 슬쩍 여니 음악 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허우적거림에서 이제는 제법 춤 같은 모양새를 보이는 동작을 팔짱 끼고 문가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인기척을 느낀 건지 서예현이 뚝 동작을 멈추고 내 쪽을 돌아보았다.
“뭐야, 왜 왔어?”
음악을 멈춘 서예현이 물었다. 말없이 성큼성큼 스피커 옆에 놓여 있던 휴대폰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내 휴대폰을 주워 들고는 흔들었다.
“이거 찾으러.”
고개를 까딱이고는 다시 음악을 재생하려는 서예현을 제지했다.
“이쯤 하지그래?”
미간을 찌푸린 서예현이 고집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아직 동작 완벽하게 못 익혔어. 군무 각도 맞추려면 오늘까지는 다 익혀야 해.”
“거기서 더 무리하면 몸에 무리 갈걸. 조금 쉬었다가 하기라도 하던가.”
털썩 거울에 기대어 앉으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잠시간 갈등 어린 얼굴로 망설이던 서예현이 내 옆에 조금 떨어져 앉았다.
시끌벅적한 음악 소리마저 사라지자 고요한 침묵만이 연습실 안에 내려앉았다.
그 침묵을 먼저 깨고 내게 말을 붙인 건 서예현이었다.
“야.”
“왜.”
“네가 보기에도 한심하지.”
갑자기 등 뒤가 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왜 갑자기 저러는 거지? 갑자기 자괴감 느껴서 때려치우려고 시동 거는 건가…….
회귀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 머릿속을 뒤져 봤지만, 회귀 전에는 이렇게 빡센 춤을 연습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걸 회상해 봤을 때.
지금 상황은 좆된 상황임이 틀림없었다.
아무리 저 인간 실력이 노답이긴 하지만 4인조 대형보다는 5인조 대형이 훨 나은데.
4인조 레브까지 뻗어 나가던 생각을 끊어 낸 건 건조하고 잔뜩 지친 목소리였다.
“나 왜 아이돌 한다고 했을까.”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연예계 길이 꼭 아이돌만 있는 것도 아닌데.”
물론 연기가 안 되는 게 문제긴 했겠지만.
내 중얼거림에 서예현이 고개 돌려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꼽 주는 거 아니야. 진짜 궁금해서 그래.”
그 말에 입술을 달싹이던 서예현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미래가 없었거든. 재능도 없었고, 공부도 그럭저럭, 사교성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고. 대학도 성적 맞춰서 학과 선택한 터라 재미도 없었고.”
담담하게 늘어놓는 속마음은 분명 처음 듣는 것이었다.
7년이라는 세월 동안 함께했지만 한 번도 관심 두지 않았고, 듣지도 못했던.
“그런데 마침 캐스팅도 받았겠다. 내 실력에 대형 기획사는 꿈도 못 꿀 거 아니까 그냥 들어왔지. 6개월 안에 무조건 데뷔시켜 주겠다는 공수표도 받았고.”
서예현이 데뷔한 이유에는 간절함 하나 없었다. 그 무심함에 열 받지 않은 건, 나 역시 비슷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외모가 제일 중요한 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내 유일한 장점도 그냥 여기서는 덤일 뿐이더라고.”
“하도 외모 관리에 신경 써서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거 말고는 내 장점이 어디 있어? 춤은 도빈이가, 노래는 재희랑 하준이가, 랩이랑 프로듀싱은 네가 잡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부족하다면 부족했지, 뛰어난 면이 하나도 없잖아.”
회귀 전, 망돌 생활을 거치는 동안 우리 다섯 중 제일 힘들어했던 건 서예현이었다.
당시에는 웃기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력이 있는데도 뜨지 못한 넷과 실력 없이 오직 얼굴만으로 그룹에 들어왔던 하나.
연습생 기간도 두 번째로 짧은데다 얼굴 말고는 변변찮은 놈.
우울하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티 내는 건 다른 놈이어야지. 네가 아니라.
멘탈 하나는 더럽게 약하다고, 짜증 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놈이 그룹 기사회생의 원인이 되었을 때의 그 심정이란.
온전히 기뻐할 수도, 고마워할 수도 없는 상태로 어정쩡하게 갑작스레 쏟아지는 인기를 만끽하고 있다가 내가 유일하게 그룹에 기여할 수 있는 길조차 막혔음을 직면했을 때.
네게만 쏟아지던 수많은 스케줄과 인터뷰, 네게로 몰린 인기.
내가 내심 무시하고 있던 너보다 낮은 위치로 추락해 버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딴 화법으로 사람 자존감 깎아 먹지 말라고 했었지.’
제 얼굴 하나로 그룹을 역주행시키고 당당하고 환하게 웃던 회귀 전의 너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내 자존심과 자존감을 짓밟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망돌로 추락할 길이 어느 정도 막힌 지금. 변수만 없다면 순탄하게 2군 자리는 확정인 지금.
나는 네 자존감이 만개할 기회를 빼앗아 갔구나.
개화는 할지언정 회귀 전처럼,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그룹을 회생시켜 그 낮은 자존감이 만개할 날은 영영 오지 않겠구나.
이건 등가교환인가, 복수인가.
“그래서, 대답 좀 해 주라. 네가 보기에도 내가 한심해?”
땀방울이 툭 방울져 떨어지는 서예현의 머리끝을 보다가 실소했다.
“한심하다고 하면 때려치우기라도 하시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혹여나 저 인간이 정말 때려치운다고 할까 봐 한마디 덧붙였다.
“노력을 한심하다고 까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이 말만은 진심이었다.
제아무리 결과가 제일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내 가치관 역시 과정보다는 결과주의지만.
남의 노력을 비웃을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었다.
“한심한 건 성공 길이 뻔히 있는데도 힘들다고 노력할 생각도 안 하고선 망할 길 고수하는 태도고. 예를 들면 원찬스 두고 굳이 내우주로 활동하고 싶어 했던 서예현과 김도빈이라던가…….”
찔리라고 한 소리인데 찔렸으려나.
무릎을 세워 얼굴을 파묻은 서예현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건……. 발목 잡을까 봐 걱정돼서 그랬어. 나 때문에 무대를 망치고 뜰 기회를 놓쳤다는 소리 들을까 봐 무서워서…….”
“지레 겁먹었구먼?”
그래도 내 감독하에 죽어라 연습한 건 알았기에 더는 무어라 하지 않았다. 지나간 일에 무슨 말을 얹겠어.
“내 노력만이 아니라 내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도 한심하기 그지없잖아…….”
떨리는 목소리에 턱을 괸 상태로 서예현을 돌아보았다.
“참나, 그게 뭐 어쨌다고? 그 이유가 한심하면 나는 무슨 천하의 한심한 놈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