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6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61화(61/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61화
말을 뱉어 놓고 멈칫했다.
견하준에게도 한 적 없는 얘기를 굳이 여기서 털어놔야 할까? 그것도 제일 어색하고 사이도 먼 서예현 앞에서?
“그러게, 궁금하네. 너는 언더 출신이라면서 왜 아이돌 데뷔했냐?”
서예현이 자기 이야기까지 털어놓은 이상, 내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게, 왜 굳이 아이돌의 길을 선택했더라…….
내가 흘려보낸 7년보다 더 이전의 일이라 이제는 조금 희미해진 그때의 각오와 다짐을 떠올렸다.
“뮤클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서.”
“뮤클?”
“뮤직클라우드. 원찬스도 원래는 거기에 믹테로 올리려고 했던 자작곡이었는데, 참…… 사람 일 몰라.”
그 시절이 행복했었냐고 묻는다면, 행복했던 것도 같다.
그때는 적어도 내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었으니까.
“언더에서 썩긴 싫었어. 그렇다고 오버그라운드로 가는 길은 바늘구멍이라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땐 실력이 오버급도 아니었으니까.”
지금이야 뭐, 상열이 형이 인정한 오버그라운드 탑급 실력이지만 말이다.
당시 한국 힙합은 따지자면 불모지, 마이너 취급이었다.
힙합이 메이저로 부상한 건 Wnet의 힙합 서바이벌 시즌3가 대박을 터트려서 전성기를 연 이후다.
D.I, 그러니까 용철이 형이 바로 그 시즌 3에 나가 준우승을 차지하며 단번에 오버그라운드로 편입한 케이스였다.
그때가 우리 데뷔 3년 차였으니까 이제 힙합 전성기가 오기까지 2년 반 정도 남았나.
자존감도 이상도 높았지만, 실력도 시기도 따라 주지 않았던 열일곱의 윤이든.
그때의 나는 치기 어린 애송이였고, 치기 어린 애새끼가 할 법한 선택을 했다.
“거기서 맨날 듣던 소리가 있었거든. 너는 키 돼, 얼굴 돼, 아이돌 가도 되겠다고.”
“그래서 아이돌 한 거야? 그 말에 자신감 얻어서?”
자신감이라. 순진해 빠진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저거 칭찬 같지? 빈정거림이야.”
아이돌 래퍼 무시하는 힙합 언더그라운드에서 아이돌로 데뷔하라는 말이 퍽이나 격려와 칭찬의 말이겠다. 언더 힙합 자부심이 얼마나 심한데.
나 역시 지금까지도 그 버릇을 못 고쳤고.
“그래서 때려치우고 오디션 보고 연생 생활 시작했지. 내가 아이돌로 데뷔해서 뜬 다음에 솔로 앨범 내면 뮤클에 믹스테잎이나 올리는 너희 다 짓밟아 주는 거다, 이 마인드로.”
그리고 나는 7년 동안 솔로 앨범을 못 냈다.
솔로곡 하나 정도나 레브 앨범에 한 번 수록했을까.
그때 내게 아이돌이나 하라고 쪼갰던 놈들 중 잘된 놈들 하나 없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원망할 사람도 없었다.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고는 했다.
버티다가 시기 타서 빛 본 형들처럼 나도 남아 있었더라면. 그곳에서 원하는 음악 하면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지.’
G1과 작업할 기회도 없어 지적도 못 받았을 테고, 지적받았더라도 이간질과 오해로 인해 형들과 손절할 일도 없어 독기 품고 랩 스타일을 뜯어고칠 생각도 못 했을 테지.
그렇게 나 잘난 줄 알고 평생을 우물 안 개구리로, 용 꼬리로 안주하며 살았을 거다.
최악으로 향하는 길만을 밟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니 내가 밟아 온 모든 길이 최악만은 아니었다.
눈을 감고 연습실 거울에 머리를 툭 기대자 뜬금없이 서예현이 감사 인사를 해 왔다.
“야, 윤이든. 고맙다.”
“뭐가? 위로해 줘서?”
“아니. 덕분에 내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가 한심하게 안 느껴지기 시작했어.”
인상을 구기며 옆을 돌아보았다. 서예현의 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그래도 쟤보단 내가 낫지’라는 감정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는 좀…… 마지막까지 훈훈할 수는 없는 거냐?”
서예현과 나는 더럽게 안 맞을 수밖에 없었다.
타고난 성격부터 이렇게 정반대인데 부딪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어깨를 으쓱한 서예현이 몸을 일으켰다.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서예현의 옆에 섰다.
“음악 틀어. 옆에서 봐 줄 테니까.”
“막말하면 한 마디에 10만 원 주냐?”
“언제까지 내 돈 뜯어 갈 건데.”
“네가 막말만 안 하면 뜯길 일이 없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유치원 재롱잔치 준비하는 애들에게 배우고 오라는 말은 너무했어.”
재생되는 음악에 맞추어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아까보다도 더 제법 괜찮아진 서예현의 춤 동작을 거울로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10만 원보다 더 뜯길 일은 없겠군. 다행이다.
* * *
스탠드 하나만 켜진 어두운 방 안.
잔뜩 어질러진 책상 위에 놓인 카메라에 불쑥 얼굴을 내민 김도빈이 뿔테안경을 쓱 올리며 속삭였다.
“안녕하세요, 도빈입니다.”
책상 위에는 두 개의 500ml 생수통, 그리고 하얀 가루가 놓여 있었다.
윤이든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세상 쓸데없는 짓을 준비하고 있는 김도빈의 표정은 쓸데없이 비장했다.
“시청자분들은 알고 계신가요. 소금과 설탕, 물을 섞으면 이온 음료가 완성된다고 합니다.”
신중하게 종이 위의 가루를 두 개의 생수병 안에 각각 붓은 김도빈이 생수병을 양손에 쥐고선 열심히 흔들었다.
“이온 음료가 땀 흘리면서 빠져나간 수분이랑 전해질을 보충해 준다고 하네요. 그래서 내일 연습실에 이온 음료 두 통을 만들어서 가져가려고 합니다. 운이 좋은 사람만이 이온 음료를 마시게 되겠군여.”
한참을 흔들고 나서 생수병을 확인한 그는 바닥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루에 고개를 기웃했다.
“왜 안 녹지? 전자레인지에 돌려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김도빈의 등 뒤로 문이 벌컥 열렸다.
식겁한 김도빈이 반사적으로 물병을 급하게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방으로 들어온 류재희가 곧바로 생수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왕, 목말랐는데 마침 잘됐다.”
“야, 안 돼! 이거 지금 먹는 거 아니야!”
뺏으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 둘의 치열한 사투는 짝! 뒤에서 들려오는 손뼉 소리에 의해 끝을 맺었다.
“얘들아, 밤 12시다, 12시. 형들 잘 시간에 시끄럽게 떠들면 되겠냐?”
‘나 피곤해요’가 얼굴에 적힌 윤이든이 문가에 삐딱하게 기대어 한숨 섞인 타박을 내뱉었다.
김도빈의 손에 들린 생수병을 발견한 윤이든이 말을 덧붙였다.
“생수 냉장고에 넣어 놓고. 내가 500ml짜리는 연습실 가져가야 하니까 숙소에서는 1L짜리 마시랬지.”
“넵, 당장 넣어 두겠습니다.”
윤이든이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김도빈은 다시 열심히 생수병을 흔들어댔다.
“형, 물에 뭐 탔지.”
“지금 흔드는 거 보면 모르겠어?”
“뭐 탔어? 완전 투명한데?
가루가 다 녹은 걸 확인한 김도빈이 겉보기에는 맑은 물처럼 보이는 생수를 흔들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 확인해. 운 좋으면 이걸 마실 수 있을 거니까.”
“‘운 나쁘면’이 아니고?”
* * *
“굳이 이래야 할까……?”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캐시미어 목도리를 느슨하게 풀며 서예현이 퍽 지친 얼굴로 말했다.
편한 추리닝에 롱패딩, 캐시미어 목도리는 딱 봐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패완얼이라고, 착용자가 서예현쯤 되니 퍽 어울리긴 어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울리기보단 패션의 아이러니함이 얼굴에 묻혔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편일 것이다.
그 말에 텀블러를 든 견하준이 어색하게 웃었다. 여기는 텀블러였기에 패션 테러할 일이라곤 없었다.
얄밉게 웃고 있는 김도빈은 카드지갑을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있었고, 류재희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나였다는 소리다.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피어싱과 스냅백, 건강 효과라고는 1도 없는 음이온 팔찌.
“……젠장, 레드카펫 워스트 드레서가 된 기분이야.”
뒤로 뒤집어쓴 스냅백은 앞머리를 넘겨 다시 고쳐 쓰며 투덜거렸다.
이건 다 류재희의 빌어먹을 제안 때문이었다.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모습 촬영하자고 카메라를 챙기던 김도빈.
그리고 옆에서 그러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것들 하루 동안 착용하기 미션이라도 하자고 땡강 부리던 류재희를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이렇게라도 안 하면 이든이 형은 절대 제 선물 착용 안 하잖아요. 귀엽고 깜찍한 막내가 준 선물을 소중히 여기고 싶어 하는 형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선물은 자고로 착용했을 때 더 가치가 살아나는 법이라고요.”
“네 입으로 스스로가 귀엽고 깜찍하다고 내뱉으면 두드러기 안 올라오냐?”
그리고 딱히 소중히 여기고 싶은 마음도 없어, 시발. 그냥 내 취향에서 아웃이라고.
알록달록한 원색의 조합도 모자라 옐로 페이스의 스마일 마크가 떡하니 붙은 유치찬란한 스냅백은 둘째 치고.
줄이 길게 늘어진 십자가 피어싱은 걸을 때마다 줄과 십자가가 함께 찰랑거려서 엄청 거슬렸다.
거슬리는 게 싫어서 귀에 딱 붙는 피어싱만 하고 다니는 내게 이 피어싱은 고역이었다.
하여간, 꼭 사 와도 자기 같은 걸 사 왔어.
연습실에 도착하자 패딩을 벗은 서예현이 목도리를 잡아끌다가 멈칫하고 물었다.
“설마 연습할 때도 목도리 하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연습할 때는 벗으셔도 돼요. 대신 조건! 휴식 시간에는 무조건 착용하고 있기!”
그 말에 곧바로 스냅백을 벗다가 류재희에게 제지당했다.
“사람 차별하냐? 왜 누구는 벗으라 하고, 누구는 계속 착용하고 있으라 해?”
“형은 평소에도 스냅백 쓰고 잘 연습하잖아요. 예현이 형은 땀나고 더우니까 목도리 벗으라고 한 거고요.”
“야, 나도 머리 더워.”
“형, 설마 선물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거예요……?”
여기서 그렇다고 하면 초심도 몇 점이나 깎이려나.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초심도 깎이는 여부까지 생각해야 한다니. 아아, 그리운 예전이여.
“설마. 우리 막내가 사 준 선물이 어떻게 마음에 안 들겠냐.”
스냅백을 앞으로 고쳐 쓰며 대꾸했다.
챙겨 온 생수 여덟 통을 연습실 구석에 내려놓은 김도빈이 무슨 조무래기 악당처럼 웃었다.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생수병에 식초라도 탔나? 그렇다고 물을 안 마실 수도 없고, 연습실 근처엔 편의점도 없다.
카메라 가져와서 촬영하자고 징징거린 걸 보면 분명 쓸데없는 짓을 꾸민 모양인데.
물에 못 먹는 거 섞어 놨기만 해 봐라. 택시 타서라도 생수 사 오라고 할 테니까.
한창 안무 연습을 하다가 멤버들이 지친 기색을 보이자 10분 휴식을 외쳤다.
그리고…….
“아오! 이거 뭔데! 야, 김도빈!”
“혹시 이거 때문인 거 아니야?”
“말이 되는 소리 좀.”
“아니, 밑져야 본전이라고, 한 번 빼 봐.”
“뭐야, 진짜 이거 때문이야?”
“헐, 뭐야? 형, 저도 한 번만요.”
“이거 도빈이 형이랑 이든이 형 둘이 짠 거 아니죠?”
“나 이제 좀 무서워지려 그래…….”
연습실에서 있었던 끔찍한 일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고, 리얼리티 방송에 그대로 나갔다.
[자세한 내용은 마이돌 카메라에서 확인하세요!]